"잘가시오, 잘있으오, 축배를 든 손에
석별의 정 잊지 못해 눈물만 흐르네
이 자리를, 이 마음을 길이 간직하고
다시 만 날 그날 위해 노래를 부르세"
"올드 랭 사인" 석별의 정.
영국시인 로버트 번스가 스코틀랜드
지방을 여행하다, 당나귀 몰던 노인이
부르던 민요를 채집하여 시어를
붙었고 작곡가 윌리엄 쉴드가 악보를
만들어서 세계로 퍼진 작별곡이다.
우리나라에는 망해가던 조선 고종때,
일본 근대음악가 이자와 슈지가
민족 정기와 기개를 누르고자 암울한
음률을 전파하여 궁상각치우 오음계가
기본인 조선 궁정 가락에 일본의 음계, 요나누끼 음계 도레미솔라 를 끼워 민족혼 말살을 목적에 둔 고도의
책략적 서양곡의 전파이다.
그러나, 이자와 슈지가 의도했던
생각과 달리, 조선 선각자들은 노랫말을 개사해서 첫 소절부터
구슬프고 가녀리게 울리던 선율이
조선 민초들을 뜨거운 마음들로
결집 시켰으며 나라 빼앗긴 시간을
그만 작별하고 정리하고 싶은 애절한
마음을 보이며 절절하게 불렸을 것이라고 감히 짐작해본다.
안익태의 애국가 작곡이 태동 전,
애국가 대신으로 조선 민초, 백성은
노래 하였고 망국의 한도 달래며
독립적 내면 의지도 표출 하였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작별이란 왠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어디 간 들 잊으리오 두터운 우리 정
다시 만 날 그날 위해 노래를 부르세"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의 국보급
문화재 삼만여점 수탈및 인적자원,
조선인들을 강제징용하여 군함도를
시설하고 광물채굴의 노역에 동원, 태평양 군도에 비행장, 군사기지,
암굴참호 건설에 십칠만명을
희생시킨 징기즈칸의 몽고제국이
고려 지배보다도 더 참담한 인명
손실과 국토의 침탈로 도륙했다.
조선 소녀와 여인들을 위안부로
성노예적 일본군 사타구니에 쏟은
붉은 피 고름의 한스런 칠천여명의
조선 무궁화 난자의 찢낀 꽃잎들!
그 귀곡성들이 그치질 않았는데,
일본제철, 미쓰비시, 등 군국 회사,
사죄와 배상도 없는데, 개무지의
지도자들은 친일외교와 굴욕의
김대중, 오부찌 선언처럼 관계
개선을 부르짖고 있으니 천국이
노하고 호국영령들이 슬피 울어
이번 물난리 폭우는 아니였을까!
드보르작은 관현악단 지휘도 하고
비올라 연주 작곡도 하였지만
곤궁한 생활고를 벗어 나지 못했다.
34세의 드보르작은 인생역전의
기회가 왔다. 오스트리아 정부의
장학자금을 받아 일 년 수입에
세배되는 돈을 오년간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었기에 세계의
명곡, 슬라브 무곡이 탄생한다.
브람스가 추천하고 기회를 부여해,
짙은 음률 색채와 감미로운 향기의 구슬픈 멜로디가 심금을 울리는
슬라브 무곡, 신세계로 이어지는
브람스를 능가하는 작품들을
작곡해 내는 인생의 반전을 이룬다.
사람이 삶의 시간을 보내는데 있어
성공의 기회는 몇 번이나 올까!
세번 정도 온다는데, 나는 단 한번도
기회를 맞이했거나 그럴 징후조차도
감지하지 못하고 반세기가 지나도록
성공이나, 성취의 기회도 모르고,
늪 속으로 서서히 빠져 들어가는
꿈결로 가는 거친 숨소리만 느끼는,
"올드 랭 사인"의 원곡을 폰으로
들으며 올해도 삼사분기, 가을이
오는 계절의 바뀜만 먼 하늘로
응시하는, 나 어디로 가야 할까!,
이룬 것도 없고 이룰 것도 없는
부초 뜬 산림에 둘러 싸인 늪지,
나의 삶에서 욕망, 탐욕, 불안 등,
쓸데없는 감정의 덩어리만 남고!
그래도 노래 한곡 들으며 의지와
성찰하는, 성공과 기회는 한번 쯤
남아 있다는 기대해 보는, 저녁도
거른 우울한 주말이다.
- 풍운유서(석별)중 -
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