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수목 / 노국희 *2016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물음으로 짜인 나무 그늘에 앉아있어
긴 오후가 지나가도록
지금 나뭇잎 한 장이 세상의 전부인
왕개미 옆에서
나의 주인이 되어주세요
헤프게 구걸도 해보았다
당신의 삶을 훔치는 것으로
도벽을 완성하고 싶었어
알록달록 실패들을 엮어 만든 바구니를 들고
저기서 당신이 걸어온다
마른 생선 하나를 내어주고는
가던 길을 간다
비릿한 기억이 손 안에서 파닥거린다
목이 없는 생선이 마지막에 삼킨
말들이 마른 비늘로
바스러진다
낡은 허물 위로 매미소리가 내려온다
울어본 기억만 있고
소리를 잃은 말들이
그림자 속에서 가지를 뻗는다
(이창하 시인 분석) https://naver.me/5wAbXbbh
그림과는 달리 시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추상적이어서, 폴 발레리(Paul Valéry)의 말처럼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미 해독을 위해서 많은 생각에 잠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번 시를 읽어보면서 왜 ‘위험 수목’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다. 왜냐하면 시의 내용을 확인하는 첫 단추는 단연 시제(詩題)에 힌트가 있기 때문이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뒤에서 하도록 하고 우선, 시의 내용을 살펴보자.
‘물음’은 의문에서 출발한다. 그러니까 물음은 ‘왜’라는 의미와 같다. 오랫동안 왜 그렇게 되었지, 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이야기의 출발이다. 왕개미에게 나뭇잎 한 장이 세상 전부였던 것처럼 당신만이 내 곁에 있어 준다면 된다고 여겼고 사랑을 구걸해서라도 당신의 마음을 훔칠 수 있다면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당신에 대한 사랑의 욕구가 절실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당신은 예쁜 실로 엮은 바구니를 들고 오면서 /마른 생선 하나를 내어주고는 /가던 길을 간다/에서 보듯 연인은 화려한 모습에 비해, 건조한 인사만 하고 쓱 지나쳐버린다는 의미로, 서정적 자아는 그것이 서럽다는 것이다. 비록 비릿한 생선 내가 풍기듯 어색했지만, 내게 적극적이었던 예전에 비해 지금은 머리 없는 생선(사랑에 대한 생각)처럼 예전에 내게 속삭여 주었던 말들은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바스러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매미가 허물을 벗어 버리고 떠나간 자리엔 예전에 예찬했던 기억은 있지만, 지금은 떠나버린 매미의 사랑 노래는 들을 수가 없다는 것 같다는 말이리라. 생선을 등장시킨 것은 다소 비약적이기는 하다. 파닥거리는 생선과 마른 생선으로 대비는 과거는 어눌했지만 역동적이었던 사랑에 비해 현재의 단절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메타포(metaphor)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래도 좀…, 어쨌든 그것은 마치 실체는 사라지고 나무 그림자 속에서만 존재하는 매미 허물 같다(실패한 사랑)는 것이다.
실연의 상처 혹은 짝사랑은 결말이 매우 심쿵하다. 심약한 사람이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쯤 생각해보면 왜 시제를 ‘위험 수목’으로 한 것인지 감 잡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실연의 상처를 매미 허물에 비유하면서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매미 허물처럼 실연(失戀)의 허무를 ‘위험 수목’으로 연결한 것이 시인의 의도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통속적인 사랑의 감정을 이렇게 장엄하면서도 메타포가 깊은 작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시인에게 찬사를 보낸다. 특히, /낡은 허물 위로 매미 소리가 내려온다 / 울어본 기억만 있고 / 소리를 잃은 말들이 /그림자 속에서 가지를 뻗는다/라는 표현을 “아!”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아름답고 예쁜 언어가 있었다니…, 이렇게 본다면 이번 시는 상징성이나 언어의 선택 그리고 표현 면에서 완벽한 시라고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