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를 직역하면 ‘나도 너에게 말한다.’이다. 이는 성부 하느님께서 베드로에게 신앙 고백을 하게 하신 것처럼 나도 베드로 너에게 진리를 말하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베드로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시겠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신다. 새 이름은 ‘바위, 반석’이라는 뜻의 베드로이다. 이는 아람어로는 ‘케파’에 해당되며(요한 1:42; 고린토 1 15:5; 갈라 1:18) 케파는 당시 많이 사용되던 이름이었다.
‘내가 이 반석 위에’라는 말씀을 직역하면 ‘너는 반석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라고 번역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 시몬에게 케파(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신 것은 그를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신 것이며, 동시에 교회의 반석이 되라는 사명을 주신 것이다. 베드로의 이름을 좀 더 알아보면, ‘베드로’는 그리스어로는 ‘페트로스’라고 불린다.
이것의 여성형이 ‘페트라’이고 한국교회는 ‘페트로스’ 를 베드로라 읽는다. 앞에 제시된 ‘페트로스’가 남성형 고유 명사인데 비해 여기의 ‘반석’은 여성형 일반 명사로 ‘바윗덩어리’를 의미한다.
이러한 언어적 차이 때문에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는 반석을 동일시하는 것을 부정하는 주장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 구절의 ‘반석’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여러 견해를 살펴보면
1) 베드로는 단순히 ‘반석’이라는 의미에 지나지 않고 베드로 자신이 증언한 것처럼 예수님께서 친히 ‘반석’이 되신다는 1 베드로 2 장 5 절의 견해가 있다.
예수님은 교회 자체이시기도 하고, 교회를 세우시는 분이시도 하며, 교회의 기초도 되시기에 예수님은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울 수 있는 권능과 권한을 가지고 계신다.
2) 유한한 인간인 베드로가 어떻게 영원한 교회의 기초가 될 수 있느냐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18 절에 분명히 예수님은 베드로를 반석으로 삼으셨고, 그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베드로는 19 절에서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말씀하심으로써 교회의 수장으로써 그 역할을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3) ‘반석’ 을 베드로의 신앙 고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4) ‘반석’ 을 베드로 자체로 보자는 견해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어의 ‘페트로스’와 ‘페트라’ 가 남성형과 여성형으로 각각 사용되었으나 이것은 주로 시적 표현을 사용할 때 사용하는 것이고, 예수님이 사용한 언어인 아람어에서는 두 경우 모두 ‘케파’로 사용되고 있다.
즉 ‘너는 케파이다. 내가 이 케파 위에...’라고 표현된다. 그 이유는 이 단어가 이름으로도, 또한 반석이라는 의미로도 쓰였기 때문이다. 또한 아람어와 같은 어원인 시리아어로 기록된 ‘페쉬타 사본’에는 두 단어가 구분 없이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교회’라는 단어는 ‘-로부터’라는 ‘에크’와 ‘부르다’의 ‘칼레오’의 합성어로서 하느님으로부터 불림을 받은 공동체임을 뜻한다.
70 인 역에서는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집회, 모임, 회의’의 뜻인 히브리어 ‘카할’을 번역한 것으로 이 히브리 명사는 여러 종류의 집회들과 관련되어 사용되었으나 점차 하느님의 백성, 선택된 무리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교회는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불러 모으시는 공동체이기에 그리스도의 교회인 것이다.
교회는 하느님의 영원하신 구원 계획안에서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하느님의 은혜를 나타내기 위해 교회가 계획되었다고 볼 수 있고, 역사적으로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통해서 교회가 설립되었다고 본다(사도 2:2-4; 4:32).
구약에 이미 공동체로 불릴 수 있는 광야의 이스라엘 무리가 있었지만 그것은 장차 주님께서 세우실 교회의 예표였고, 실제는 주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세우신 것은 하느님의 성령이 제자들과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내려오신 성령강림 때이다.
하느님의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근거하여 새 생명으로 거듭난 신자들 위에 임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교회가 되게 하셨다. 사도행전 2:1- 4; 4:32;1 고린 12:13 참조.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씀에서 ‘저승’은 그리스어로 ‘하데스’로 ‘지하 세계, 죽은 자들의 거처’등의 의미를 지닌다. 히브리어로는 선한 사람이나 악인이나 구분 없이 들어가는 ‘죽은 자의 영역’이란 뜻의 ‘스올’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히브리인들의 전승에 따르면 이곳은 어둡고 소외된 장소로서 매우 높고 단단한 성벽과 문으로 둘러처져 있기 때문에 인간을 한 번 받아들이면 다시는 내어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세력’으로 번역은 헬라어 ‘퓔라이’는 문자적으로는 ‘대문’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저승의 세력’은 ‘저승의 대문’이라는 의미로서, 저승에 들어가는 문에는 항상 죽음이 따르게 된다.
따라서 ‘저승의 세력’이란 표현은 욥기 17:16;38:17; 시편 9:13; 107:18 등 구약의 여러 곳에서 자주 쓰이는데, 쓰일 때마다 이 말은 사망과 임종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구절의 의미는 죽음의 세력이 교회를 이길 수 없거나, 비록 잠시 이기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곧 패하여 영원히 굴복할 것이라고 암시하고 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설립된 그리스도의 교회는 육체적 사망의 권세 아래 놓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문’을 깨뜨리시고 죽음의 정복자로서(로마 6:9; 요한 묵시 1:18) 군림하시기 때문이다.
죽음을 물리치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시며 모든 신자들의 부활의 확증이 되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영원성의 근원이시고 원천이시기 때문이다. 1 고린 15:50-58 절 참조.
이렇듯 주님의 생명력을 지닌 교회에 속한 우리 모두는 주님의 생명을 얻어 누릴 뿐만 아니라 죽음의 세력이 우리를 파괴할 수 없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