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3장 영광과 교만 (7)
공자 난(蘭)의 출생에 대해서는 재미난 일화가 전해온다. 10여 년 전의 일이다. 정궁(鄭宮)의 궁녀 중에 연길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연길이란 남연(南燕)태생의 길씨라는 뜻이다.
어느 날 궁녀 연길이 잠을 자는데 별안간 방문이 열리며 한 헌헌장부(軒軒丈夫)가 손에 난초를 들고 나타나 그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 나는 너의 조상인 백조(남연의 시조, 오제 중 하나인 황제의 후예)이다. 내가 이제 이 향기 짙은 난초를 줄 터이니, 너는 이 난초를 아들로 삼아 정(鄭)나라를 번성케 하여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방 안에는 난초 향기가 가득했다.
연길은 그 꿈 이야기를 다른 궁녀들에게 얘기해 주었다. 꿈 얘기를 들은 궁녀들은 한결같이 깔깔거리며 연길을 조롱하였다.
- 네가 귀한 아들을 낳지 않으면 누가 낳겠니?
그때 마침 정문공(鄭文公)이 내궁으로 들다가 궁녀들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는 궁녀들을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궁녀들이 연길의 꿈 얘기를 해주며 또다시 까르르 웃어댔다.
그러나 정문공(鄭文公)만은 웃지 않았다.
- 그것은 매우 길한 징조다. 내가 너의 꿈을 성사시켜 주리라.
그러고는 연길만을 따로 불러 속삭였다.
- 오늘 밤 난초 꽃을 한아름 따서 치마에 담고 오너라. 그것을 내관에게 보이면 내 방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그 날 밤 정문공(鄭文公)은 연길과 잠자리를 함께 했다. 다음날 그는 연길에게 난초 한 그루를 내주며 말했다.
- 이것으로 네가 후궁이 되었음을 증거하라.
얼마 후 연길에게 태기가 있었고, 만삭이 되자 아들을 낳았다. 정문공은 그 아이의 이름을 난(蘭)이라 지어주었다. 공자 난(蘭)은 자라나면서 매우 총명했다. 정문공은 그런 공자 난을 몹시 아끼고 사랑했다.
세자 화(華)는 아버지가 공자 난(蘭)을 지나치게 총애하는 것을 보고 후일 자신의 지위가 위태롭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래서 그는 비밀리에 공족 대부인 숙첨(叔詹)에게 이 일을 의논했다.
- 공자 난(蘭)으로 인해 제 자리를 빼앗기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 얻느냐 잃느냐 하는 것은 하늘의 뜻입니다. 세자는 그저 효도만 극진히 하십시오.
이 같은 숙첨의 대답에 세자 화(華)는 실망했다. 이때부터 그는 숙첨(叔詹)을 마음속으로 미워했다. 그는 다시 공숙을 찾아가 공자 난(蘭)의 일을 걱정했다. 공숙(孔叔) 역시 반응이 무덤덤했다.
- 딴 생각 마시고 효성을 지극히 하십시오.
세자 화는 공숙도 난(蘭)의 당이라고 단정하고 일체 그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세자 화(華)의 동복동생 장은 기이하고 허황된 것을 즐기는 성격이었다.
그는 평소에도 도요새의 날개를 모아 만든 관(冠)을 쓰고 다녔다. 하루는 사숙(師叔)이 그런 장에게 주의를 주었다.
- 그 관은 예(禮)에 없는 복장입니다. 공자께서는 앞으로 그런 관을 쓰지 마십시오.
공자 장은 사숙의 충고가 여간 고깝지 않았다. 그래서 형인 세자 화(華)를 만나 얘기할 때면 언제나 사숙(師叔)의 험담만 늘어놓았다. 결국 세자 화(華)는 정나라 세도가인 숙첨, 공숙, 사숙 등 세 대부에게 모두 좋지 않은 감정을 품게 되었다.
그러던 중 정문공(鄭文公)으로부터 영무 회맹에 대신 참석하라는 명을 받았다. 세자 화(華)는 제환공으로부터 아버지 대신 자기가 온 것을 추궁받으면 어쩌나 걱정되어 숙첨을 찾아가 솔직히 말했다.
"나는 가기 싫습니다. 대부께서 아버님께 말씀드려 직접 가시도록 하게 하십시오."
그러나 숙첨(叔詹)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주공의 명을 어겨서는 안 됩니다. 세자께서 가셔야 합니다."
이로 인해 세자 화(華)는 더욱 숙첨을 원망했다.
'이놈들, 어디 두고 보자. 자기들은 모두 빠지고 나만 제환공(齊桓公)에게 욕 보이려 하는구나.'
세자 화(華)는 세 대부뿐만 아니라 아버지인 정문공까지 저주하며 영무를 향해 떠나갔다.
"비밀리 고할 일이 있습니다."
세자 화(華)는 영무에 당도하자마자 패공 제환공(齊桓公)에게 밀담을 신청했다.
세자 화의 버릇인가. 그는 눈을 연신 깜빡거리고 있었다.
'산만한 자로군.'
제환공은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모처럼만에 정나라와 화해한 뒤인지라 세자 화(華)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였다.
방안에 들어서서도 세자 화(華)의 눈동자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제환공(齊桓公)마저 마음이 안정되지 않을 정도였다.
"비밀리에 할말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정(鄭)나라 공실에 관한 일입니다."
"....................?"
"언제부터인가 우리 정나라 정치는 숙첨, 공숙, 사숙 등 삼족(三族)에 의해 결정되어 왔습니다. 지난날 수지 땅에서 저의 아버지가 회맹에 참석하지 않고 도망치듯 돌아오신 것도 다 그 세 대부의 농간이었습니다. 청컨대 패공께서는 우리나라의 그 세 대부를 처치해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제나라의 부용(附庸)으로서 패공을 섬기겠습니다."
듣고보니 정(鄭)나라에 내분이 일어날 조짐이었다. 제환공(齊桓公)의 머릿속에서는 순간적으로,
'정나라를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다."
제환공의 망설임 없는 승낙에 세자 화(華)는 희색이 얼굴에 가득했다. 그가 돌아가자 관중(管仲)이 들어와 물었다.
"무슨 말씀을 나누셨습니까?"
제환공은 잠자리에서의 일까지 감추지 않을 정도로 관중에 대해 신뢰하고 있었다. 그는 세자 화(華)가 부탁한 일을 그대로 얘기해주었다. 관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주공께서는 뭐라 대답하셨습니까?"
"정(鄭)나라 공실이 어지럽게 되면 그만큼 우리에게는 득이 될 것 같아 그러마, 하고 대답해주었소이다."
관중(管仲)의 안색이 변했다.
"주공께서는 경솔하셨습니다."
"내가 잘못 대답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지금 모든 제후들이 우리 제(齊)나라에 복종하는 까닭을 주공은 알고 계십니까?"
".......................?"
"그 까닭은 단 하나입니다. 우리 제(齊)나라에겐 예의와 신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나라 세자 화(華)는 어떻습니까? 먼저 그 아들 되는 자가 아비를 나쁘게 말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두 번째로 우호를 맺으려고 온 자가 자기 나라를 어지럽히고자 하는 것은 신의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숙첨, 공숙, 사숙은 정나라를 어지럽히는 주범들이라 하지 않소?"
"그것은 주공께서 잘못 아시고 계십니다. 신이 듣기로는 정나라의 그 세 대부는 '삼량(三良)'이라 불릴 정도로 백성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운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맹주로서 중요한 것은 인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공께서는 세자 화(華)의 말을 믿지 마십시오."
관중(管仲)의 말에 제환공은 머쓱해져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튿날 제환공은 세자 화(華)를 다시 방 안으로 불러 말했다.
"간밤에 내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대가 하고자 하는 일은 국가 대사이다. 함부로 결정할 일이 아닌 듯하니 차후 그대 아버지와 다시 의논할까 하노라."
세자 화(華)는 얼굴이 벌개졌다. 가슴이 뛰고 등골에 진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떨리는 다리로 물러나와 겨우 회맹에 참석한 후 정나라로 돌아갔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관중이 이미 세자 화(華)의 마음속을 간파하고 심복 부하 한 사람을 몰래 정문공에 보내두었을줄을.
세자 화(華)는 신정에 당도하자 아버지 정문공에게 영무 회맹의 일을 보고하며 말했다.
"제환공(齊桓公)은 아버님께서 친히 오시지 않은 것을 몹시 수상쩍게 여기고 계십니다. 그러니 제(齊)나라와 수호하기보다는 차라리 초(楚)나라와 교분을 두텁게 하는 것이 나을 줄로 생각합니다."
정문공은 세자 화(華)의 뻔뻔하고 간교한 행동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의자를 차고 일어나며 소리쳤다.
"이놈, 아비에게 반역한 놈아! 나라를 팔아먹으려고 한 주제에 무슨 소리를 중얼거리느냐! 당장 이놈을 깊은 방에 가두어라!"
가을 서릿발 같은 호령에 좌우 무사들은 세자 화(華)를 꽁꽁 묶어 별궁 빈 방에 가두었다. 유실(幽室)에 갇힌 센자 화(華)는 비로소 자신이 제환공에게 말한 것이 누설되었음을 알고 벽을 뚫어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유실을 감시하는 무사에게 들켰다.
정문공은 세자 화(華)가 군주 재목이 아님을 깨닫고 그를 참수형에 처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것은 이만저만 비정(非情)이 아니다. 하물며 다음 계승자로 내정된 세자를 죽임에랴.
세자 화(華)가 참수형에 처하자 다른 네 아들들은 한결같이 놀랐다.
'죽임을 당할 만한 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다.'
이렇게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 들도 언제 같은 처지가 될지 몰라 불안했다. 네 형제는 모여서 다른 나라로 달아나기로 뜻을 모았다. 공자 장은 송나라로 향했고, 공자 난은 진(晉)나라로 탈충했다. 그 밖의 다른 두 공자도 각기 신정성을 빠져나갔다.
이것이 또한 정문공(鄭文公)의 노여움을 샀다.
"모두 내 아들이 아니다!"
그는 곧 자객을 보내 신정을 탈출한 네 공자를 죽이게 하였다. 이에 공자 장은 송나라에 당도하기 전에 자객의 칼에 맞아 죽임을 당했고, 다른 두 아들들도 모두 아버지의 손에 살해당했다. 다만, 공자 난(蘭)만이 자객의 칼을 피해 무사히 진(晉)나라로 달아나는 데 성공했다.
BC 652년(주혜왕 25년, 제환공 34년, 정문공 21년)의 일이었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