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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부족은 주로 비잔틴제국의 영토인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이슬람의 전파는 물론 금은보화와 식량 그리고 노예를 포획한다. 아들 오르한은 발칸 반도 동쪽 해안까지 영토를 넓히고 이후 계속 영토를 넓히던 오스만 부족은 1402년 몽골계 티무르의 침입을 받아 대패하면서 주춤한다. 약 10년간의 혼란기를 거친 후 메흐메드1세에 이르러서야 안정을 되찾는다.
'콘스탄티노플 정복'
메흐메드1세의 손자 메흐메드 2세는 오늘 날까지 투르키에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술탄이다. 그의 별명은 '파티흐(Fatih, 정복자)'. 기독교 세력의 상징인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비잔틴 제국을 정복한 그는 갓 스무살의 혈기왕성한,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켜야만 동서교역로를 손에 넣고 동시에 유럽으로 진격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청년 술탄이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이 어떤 곳인가. 로마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탐욕과 혼란이 가득한 로마를 떠나 서기 330년 모든 문명과 물자를 옮겨온 최대의 성벽 도시이다.
세겹의 깊고 높은 성벽과 쇠사슬로 무장한 콘스탄티노플은 난공불락의 상징이다. 더구나 그들은 '그리스의 불'이라는 신비한 불멸의 무기도 가지고 있다.
술탄 메흐메드2세는 헝가리 출신 대포 기술자 우르반이 만든 당시 세계 최대의 대포로 성벽을 공격한다. 황소 60마리와 병사 400명이 끌고 온 포신 길이만 8미터인 이 대포는 포탄이 1킬로를 날아가는 엄청난 파괴력으로 성벽을 파괴한다. 그러나 이 대포는 큰 약점도 있다. 한번 발사하면 한참동안 포신을 식혀야 한다. 그동안 비잔틴 병사들은 파괴된 성벽을 보수할 정도다.
오스만군은 땅굴을 파기도 하고 사다리로 오르기도 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앞바다에서 공격하는 방법은 아예 승산도 없고.
난관에 빠진 메흐메드2세가 궁리를 짜낸다. 성벽 아래의 좁은 만을 가로막고있는 쇠사슬을 피해 산등성이를 넘어가기로 한다. 며칠밤에 걸쳐 거대한 함선과 큰 대포들을 밀면서 끌면서 산꼭대기를 넘어간다. 기상천외한 일이다.
어느날 새벽 함성을 지르며 성벽의 뒤쪽을 공격하는 오스만 병사들을 보고 비잔틴의 용병들은 혼비백산하여 뿔뿔이 흩어진다. 7천명 남짓 남은 용감한 기사와 병사들은 다시한번 신에게 맹세하며 마지막 결의를 다진다. 이들은 밀려오는 16만 대군에 맞서 죽을 힘을 다해 한달이나 버티지만 결국 양쪽에서 공격해오는 오스만제국 군대에게 무너진다.
1453년 5월 29일. 한 쪽은 역사상 유래없는 큰 승리이고 또 다른 한 쪽에게는 천년 역사가 무너지는 비극이다. 비잔틴제국의 후예라고 자처하는 그리스인들은 이날을 국치일로 여긴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이스탄불로'
메흐메드2세는 오스만제국의 수도를 새로 점령한 콘스탄티노플로 옮긴다. 새 수도의 이름도 이스탄불(Istanbul, 중세그리스어 '이스틴 폴린', '도시를 향하여') 로 바꾸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다시 정비한다.
튀르크인들을 이주시켜 살게 하고, 기존의 그리스인들도 보호한다. 사실 그리스인들 없이는 이스탄불이라는 거대한 도시가 굴러갈 수가 없다. 점차 튀르크인과 그리스인뿐만 아니라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등 여러 인종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술탄은 이들에게 이슬람을 강요하지 않는다. 모든 종교를 허용하며 각 종교별로 자치 활동을 하도록 한다 . 기존에 있던 기독교(정교회)도 물론 정상 활동을 하지만 그 위용은 당연히 예전같지는 않다.
이즈음 정교회 일부가 러시아로 떨어져 나가고 (러시아정교회) 러시아 황제가 비잔틴제국의 황제(카이사르)의 계보를 잇는다면서 스스로 '짜르'라고 부르게 한다. 기독교 정교회의 구심점이 사라진 것이다.
'유럽을 떨게 한 지중해의 주인'
콘스탄티노플 정복 이후에도 오스만 제국의 팽창은 멈출 줄 모른다. 발칸 반도를 차지하고 크림 반도와 흑해까지 오스만 제국 수중에 들어간다. 또한 이란 북서부와 시리아와 이집트까지 영역을 넓혀나간다.
술탄 셀림1세는 이집트를 정복하여 칼리파 지위까지 가져온다. 아랍인들에게 이어져온 칼리파가 튀르크인으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를 이룬 쉴레이만 1세 대제는 동유럽 전체와 헝가리를 정복한다. 1529년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이자 합스부르크 왕조의 본거지인 오스트리아의 빈을 포위 공격한다. 비록 포위 공격은 실패하지만. 기도교인들에게는 천만다행이고 이슬람인들에게는 아쉬운 순간이다. 빈 공격 실패 이후에도 바그다드와 아프리카 북부를 정복하고 동지중해를 장악한다.
'로마의 바다'였던 지중대가 이제 '오스만의 바다'로 그 주인이 바뀐다. 메흐메드2세 이후 동서교역로가 이슬람의 오스만 제국으로 넘어가고 이제 지중해 연안 지역들도 차례차례 정복 당한다.
오스만제국의 세력에 밀려나온 서유럽국가들은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그중 하나가 대서양이다. 거친 바다로 나가 새로운 무역로를 탐험하고 곳곳에 식민지를 만든다.
훗날 이번에는 서유럽 국가들이 그 옛날 초강대국이었던 오스만 제국을 침탈하고 아랍지역을 식민지화시킨다. 이렇게 역사는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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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
메흐메드2세가 콘스탄티노플 성을 공략할 때 사용하였던 당시 세계 최대 대포는 헝가리 기술자 우르반이 '바실리카'라고 이름지어 술탄에게 납품한 고가의 신제품이다. 바실리카의 성능에 만족한 술탄은 다른 거포들도 많이 만들게 한다.
그러나 거포 제작에 들인 많은 자원과 인력에 비해 거포의 이동과 설치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긴다. 쉴레이만1세의 빈 공격에도 거포들을 이동시키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 공격의 기회를 놓쳤다는 주장도 있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