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께서는 항상 성모님과 함께 일하신다.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을 조금 더 생각해 보자. 이 날이 바로 교회가 그 사명을 실천하기 위하여 첫걸음을 내디딘 위대한 날이다. 성모님도 그 자리에 함께 계셨다. 성령께서는 성모님의 기도로 신비체 위에 내리시어 당신의 '모든 위엄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 (1역대 29,11) 를 지니시고 그 안에서 사신다. 성모님은 그리스도의 실제 육신을 돌보셨던 것처럼 그리스도 신비체를 돌보신다. 이러한 법칙은 새로운 공현이라 할 수 있는 성령 강림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주님 공현 때 성모님이 필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 강림 때에도 성모님이 계셔야 한다. 그러므로 성모님은 하느님의 모든 일에 끝까지 필요한 분이시다. 성모님이 빠진 상태에서 하느님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기도하고 활동하고 노력한다 하더라도, 성모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성모님이 안 계신 곳에는 은총이 베풀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를 압도하는 저항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성모님을 무시하거나 모욕하는 이들은 정말 아무 은총도 받지 못하는가?" 그런 사람들도 사실은 은총을 받는다. 성모님에 대해서 너무도 몰랐기 때문에 성모님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께는 얼마나 죄송스러운 일이며, 우리를 항상 도와주시는 성모님께 이 무슨 푸대접이 되겠는가! 더구나, 이렇게 얻는 은총은 풍성히 넘쳐흐르는 은총의 작은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이들의 일생의 신앙생활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성모님께 어떤 지위를 드려야 하는가? 어떤 이들은 일개 피조물인 성모님이 그토록 엄청난 능력으르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 그 자체가 하느님을 경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며 의아스러워 한다. 그러나 만일 성모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오히려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이 된다면, 그것이 어떻게 하느님의 엄위하심을 경시하는 것이 되는가? 이 중력의 법칙은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되어 전체 자연계를 통하여 하느님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은총의 세계에서 성모님께 그만한 힘을 드리는 것이 불경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야 하는가? 하느님께서 자연계를 위해서 정하신 법칙이 하느님의 권능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하느님께서 성모님을 위해 정하신 법칙이 하느님의 선하심과 전능하심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성모님의 지위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방법과 정도의 문제는 아직 남아 있다. '성모님께 대한 기도, 성삼위께 드리는 기도, 또는 성인들에 대한 기도는 각기 어떤 비율로 나누어 바쳐야 하는가?' 하고 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가 어느 정도라야 많지도 적지도 않게 정확히 바치는 것인가?" 하고 묻기도 한다. 게다가 '성모님께 직접 기도를 드리면 하느님께는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닌가?' 라고 말하면서 반대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의구심들은 모두 하늘나라의 일을 세속적 사고 방식으로 생각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성부와 성자 성령, 그리고 성모님과 성인들을 떠올리면서, 마치 그분들의 성상이 한곳에 여기저기 모셔져 있을 때 그중 한 분의 성상을 향해 예의를 갖추면 자연히 다른 분들에게는 등을 돌리게 되는 것과도 같은 경우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이를 올바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예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간단하고 거룩한 해결책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드리되, 성모님과 함께 드리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모님께 지극한 신심을 바르게 지니게 되면, 따지고 셈하는 곤욕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