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통합부대의 흑인 병사와 치루다나깔의 달리트
미국의 흑인 노예 해방 선언이 1863년 링컨 대통령에 의해서 이루어졌지만 1955, 1956년의 시내버스 흑인 차별대우에 반대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코트 투쟁>, 1963년 백인들과 동등한 시민권을 얻기 위한 흑인들의 <워싱턴 대행진> 등을 보면 인종차별의 문제는 정치적인 선언이나 법조항으로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님을 알 수가 있다.
1863년에 노예 해방선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인들은 흑인들을 동등한 권리를 가진 미국의 시민으로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만한 백인들의 차별의식은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사회 등에 깊숙이 박혀 있어서 흑인들은 미국 시민의 발밑에 있는 쓰레기처럼 존재하였다.
남북전쟁 당시 게티즈버그에서의 북군의 승리는 노예 해방 선언에 감격한 흑인 병사들의 용맹과 희생의 결과였다. 그러나 미국은 1,2차 세계대전에도 흑백연합부대를 형성하지 않았으며 흑인부대를 따로 구성하여 그들을 후방지역에서 보급이나 취사 등 하찮은 일들만 시켰다.
1948년 7월 26일 트루먼 대통령은 행정명령 9981호를 내려 미군부대의 흑백통합을 지시하였다. 그러나 미군 내에서 통합에 대한 반발이 커서 통합부대 형성이 지연되었다.
1951년 가을부터야 흑백통합이 시도 되었고 1954년에야 비로소 완전한 육군의 흑백통합이 이루어졌다. (274쪽, 잊혀진 전쟁의 기억)
미군의 흑백통합을 가속화시킨 것은 한국전쟁이었다.
한국전에 참전한 미 육군 사단 중에서 2사단, 3사단, 25사단이 전쟁 초기 일부 흑인부대를 독립적으로 편성하고 있었다. 특별히 25사단 24연대는 장교단을 제하고 흑인으로만 편성된 가장 큰 부대였고 3개 대대가 완전히 편제되어 있는 유일한 흑인부대였다. (275쪽, 잊혀진 전쟁의 기억) 그러나 이 흑인 연대는 전투에서 도망만 다니는 지리멸열한 부대로 악성 루머가 자자하였고 당시 미25사단장 윌리엄 킨 소장은 24연대를 승전에 방해가 되는 최악의 부대로 평가하였다. 그리하여 킨 소장은 24연대 부대원들을 각기 다른 전투부대로 분산 배치하기로 하였다.
당시 미군은 1950년 7,8, 9월 전투로 사상자가 많아 군인들이 부족하여 백인부대들은 보충병을 요구하고 있었고 흑인 군인들은 전투부대에 배치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었다. 킨소장은 용단을 내려 1951년 10월 보병 24 흑인연대를 해체하여 모든 미군 부대에 분산 배치하였다. 그리하여 트루먼이 내린 흑백통합의 행정명령이 한국 땅에서 전쟁 중에 실현되었다. (276쪽 잊혀진 전쟁의 기억)
그러나 흑백통합부대에서 백인 병사들의 반발이 거셌다. 그들은 흑인 병사들이 사용한 그릇, 수저, 시트, 담요를 사용할 수 없다고 항의하였다. 웃지 못 할 일이지만 당시 백인 병사들의 생각과 의식세계가 그러하였다.
<나팔도 없이 북도 없이>에 나오는 한 백인 부사관이 흑백통합 편성 후 새로 전입한 흑인병사에게 커피를 권하였다. 그러나 그 흑인 병사는 커피 잔을 받지 않았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지만 백인 병사들이 그 잔이 흑인 병사인 자신이 만진 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잔을 기피할 것이고 자기에게 보복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276쪽, 잊혀진 전쟁의 기억)
커피 잔을 거부하는 흑인 병사가 느끼는 공포와 불안이 심장에 꽂혔다.
순간 그가 안드라푸라데쉬 데칸고원 라열라씨마에서 만난 수많은 달리트(천민, 5계급)의 모습으로 내 곁에 와서 울었다.
우리 달리트들은 상위계급에 의해 불가촉천민으로 부정을 타는 존재로 3천 년 인도 역사 속에서 차별과 천대를 받았다. 그들은 죄가 많은 존재이기 때문에 시골 음식점이나 찻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 특별히 치르다나깔의 달리트들은 더 많은 차별과 천대를 받고 있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달리트라는 이유로 정당한 돈을 내고도 바깥에 서서 차를 마셔야 한다. 상위 계급들은 좋은 컵에 담아 주지만 달리트들에게는 진흙으로 만든 컵에 주고 잔을 돌려받지도 않고 마시고 바로 그 자리에서 깨도록 하였다. 지금은 시골에고 플라스틱이 몰려와서 차를 얇은 비닐 컵에 담아 주므로 잔이 뜨거워서 바로 마시기 어렵다. 달리트들은 이런 차별에 대하여 분노와 치욕을 느끼지만 미국의 흑인들처럼 저항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에 그들이 당하는 불공평과 불의를 불쌍히 여기거나 분노하며 공감하는 사람이 없다. 상위계급이나 지식인이나 교육, 언론, 종교가 일체 무관심하다. 그들은 달리트들이 차별을 당하는 것은 전생에 죄 값을 치루는 것이므로 그들이 죄 값을 치르게 하는 것이 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달리트들이 조상 대대로 청소부계급으로 불결하고 부정한 존재이므로 부정을 타지 않으려고 한 마을 같은 공간에 사는 것 자체도 거부한다. 달리트들은 마을의 중앙대로도 마음대로 걸을 수가 없다. 힌두 사원에도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달리트들은 상위 계급인들의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기들만의 열악한 거주지를 형성하고 있다.
치르다나깔루 달리트들은 대중버스를 이용할 때도 수모와 치욕을 당한다. 순서대로 좌석에 앉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지만 달리트는 상위계급이 일어나라고 하면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자리를 양보하며 수치를 당하기 싫어서 아예 좌석에 앉지 않는 달리트들도 있다.
다른 계급 사람들에 의해서 달리트들이 사람 이하로, 짐승으로 취급을 당하는 것을 목전에서 보면서도 나그네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상위계급의 만행에 흥분하고 분노하며 달리트들의 손을 잡고 울 뿐이었다. 해방의 복음을 선포하며 기도하며 용기와 위로를 줄 수 있을 뿐이었다. 지금 코로나 상황에서 우리 달리트들이 무슨 박해를 받고 있는지? 어떻게 빈곤과 실업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받고 있는지? 마음만 달려간다.
<워싱턴대행진>이 끝난 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 흑인의 인권 문제가 미국 백인들에게 더 이상 자신들의 불의와 폭력, 죄악과 야만의 민낯이 되지 않길 빈다. 하나님께서 인권을 유린하며 세상을 재앙과 공포로 몰아가는 그들의 잔악과 패덕을 기억하시고 흑인 형제들을 위해 새 일을 도모하시길 간구한다. 아울러서 우리 달리트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향해 출애굽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길 빈다.
해방을 선포하고 자유를 주시는 성령님의 개입하셔서 힘과 물질에 근거한 우월감으로 인간이 인간을 유린하고 살해하는 일이 멈추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환상을 본다.
2021.4.21.수
우담초라하니
참고서적
정연선 저, ⎾잊혀진 전쟁의 기억⏌, 문예출판사,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