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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5악 紺岳山
- 위 치 :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양주시 남면, 연천군 전곡읍
- 높 이 : 675m
<단체기념사진>
Ⅰ. 개황(槪況)
1. 일 시 : 2014. 4. 24. 08:00
2. 장 소 : 감악산
3. 참석인원 : 29명
4. 등산코스 : 범륜사입구 - 만남의 숲 - 숯가마터 - 장군봉 - 임꺽정봉 - 정상 -
운계능선 - 충혼탑주차장
5. 교통정보
- 빠른 길 찾기 정보
▶ 검 색 지 : KBS춘천방송총국 ⇨ 범륜사
▶ 거 리 : 105,4km
▶ 소요시간 : 2시간40분
- 다녀온길 : 경춘국도 - 하턴교차로 - 서파교차로 - 진목사거리 - 삼숭교차로 - 화암교차로 - 김삿갓교삼거리 - 가곡사거리 - 범륜사입구
- 동원차량 : 강원 70바 1734 이 훈 웅
6. 날씨예보상황
- 기 준 : 2014. 4. 24. 05:00기준
- 개 황 : 오전, 오후 맑음
▶ 비 올 확 률 : 0
▶ 기 온 : 6 ~ 26℃
7. 활동상황
○ 08:00 --- KBS춘천방송총국앞 출발
○ 09:52 --- 범륜사입구
○ 10:00 --- 감악산관리소. 휴게소
○ 10:01 --- 단체기념사진촬영 및 일정안내
○ 10:02 --- 들머리진입
○ 10:15 --- 운계폭포(비룡폭포)
○ 10:20 --- 범륜사
○ 10:24 --- 명상의 숲
○ 10:35 --- 숲가마터
○ 10:46 --- 묵은밭 1-4 구조신고지점
○ 10:49 --- 만남의 숲, 임꺽정봉. 감악산비 갈림길
○ 11:10 --- 헬기장
○ 11:35 --- 신암저수지 갈림길
○ 11:37 --- 임꺽정굴
○ 11:44 --- 범륜사 갈림길
○ 11:53 --- 신암저수지 갈림길
○ 11:55 --- 장군봉
○ 12:00 --- 임꺽정봉
○ 12:13 --- 양주감악정
○ 12:14 --- 감악산 정상, 감악산비
○ 12:24 --- 점심식사
○ 13:00 --- 운계능선 팔각정
○ 13:08 --- 전망대
○ 13;20 --- 산촌마을 갈림길
○ 13:39 --- 헬기장
○ 13:43 --- 임도
○ 13:45 --- 객현리 갈림길
○ 13:59 --- 설마교
○ 14:00 --- 충혼탑주차장
○ 14:28 --- 후미도착
○ 14:37 --- 하산행사
○ 15:10 --- 충혼탑주차장 출발
○ 17:20 --- KBS춘천방송총국 앞 도착(포천 내촌휴게소경유)
Ⅱ. 지역특성
<감악산 장군봉일원>
1. 지역유래
- 오늘 나들목이 소재한 파주군 지역유래를 살펴본다. 파주군은 일제감점기인 1912년 당시 파주의 행정구역은 크게 4개 군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즉 교하군, 파주군, 장단군, 적성군인데 1914년 대대적인 행정구역 통폐합이 이루어 졌다. 그 결과 적성군이 연천군에 흡수되었고 교하군 전역이 파주군에 폐합 되었으며 또한 양주군·고양군·적성군의 일부가 파주군에 편입되어 주내·월롱·천현·광탄·조리·임진·파평·와석·청석·탄현·아동 11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이후 1945년 해방 후 38선을 경계로 남북이 분단되자 종래 연천군 관할이던 적성면과 남면이 파주군에 편입 되었고 이듬해 남면이 양주군에 편입 되었다. 1963년에는 장단군 군내면에 속했던 백연리·정자리·조산리·읍내리·송산리·공덕리·방축리·방목리가 임진면에 편입 되었다. 1972년에는 장단군의 장단면·군내면·진서면·진동면이 파주군으로 편입 되었다. 1973년에는 아동면이 금촌읍으로 임진면이 문산읍으로 승격되어 2읍 9면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1980년에 주내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83년 다시 주내읍이 파주읍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989년에는 천현면이 법원읍으로 승격 하였다. 1996년에 파주군은 도농복합의 파주시로 승격하였으며 2002년 조리면과 교하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현재 5읍 4면 2동 1출장소의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2. 감악산 살펴보기
<감악산 등산로 안내도>
- 감악산은 화악산, 송악산, 관악산, 운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의 하나로 정상에 오르면 강 건너편으로 휴전선 일대의 산과들이 눈앞에 펼쳐지며 맑은 날에는 개성의 송악산과 북한산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온다. 산 정상에는 흔적도 없이 마모되어 글씨를 찾아 볼 수 없는 감악산비가 석대위에 우뚝이 서있다. 파주시 향토 유적 제8호인 이 비는 글자가 없다고 하여 몰자비(몰자비), 또는 빗돌대왕비, 설인귀사적비 (설인귀사적비) 등 여러 개의 비 이름과 함께 전설들이 구전되어 오고 있다. '80년대 후반에 일부 등산로가 개방되면서 몇 개의 등산코스가 개방되었다. 범륜사를 통해 정상으로 가는 길은 범륜사 입구에서 하차, 비탈길을 올라가면 관광 안내소와 비룡폭포가 나타난다. 5분 정도 더 오르면 범륜사, 이곳에서 식수를 준비하고 계곡을 따라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게 된다. 1시간 20분 정도 오르면 능선안부 좌측이 정상, 우측이 장군봉이다. 정상은 펑퍼짐한 평지에 감악산비가 석단위에 있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안부(안부)를 지나 장군봉까지 암릉길을 따라가면 암봉 아래 임꺽정굴이 있다. 능산을 따라 내려가면 신암리로 가게 된다.
인기명산 44위
- 경기오악의 하나인 감악산은 수도권에서 가까워 사계절 두루 인기가 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 예로부터 경기 5악의 하나로서 폭포, 계곡, 암벽 등을 고루 갖추고 있으며, 임진강, 개성 송악산 등의 조망이 좋은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수량이 풍부한 운계폭포가 있고, 정상에는 글자가 모두 마멸되어 판독이 불가능한 비뜰대왕비(파주군 향토유적 제8호)가 있는데 `설인귀(薛人貴)' 설과 `진흥왕 순수비'설이 나뉘어 속전되고 있다. 임꺽정이 관군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숨어 지냈다는 장군봉 아래 임꺽정 굴이 있다.
- 산행코스 : 감악산 등산코스는 아래와 같이 지역별로 여러 개의 코스가 산재해있다. 이중 파주지역의 제1코스와 제3코스를 연계하여 일정을 잡았다.
<연천지역>
Ⅲ. 산길여정
- 서울. 경기지역 주간날씨예보는 기압골의 영향으로 27일과 28일에 비가 오겠고, 그 밖의 날은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들어 가끔 구름 많겠다고 예보하였다. 기온은 평년(최저기온 : 6~10도, 최고기온 : 18~24도)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겠으며 강수량은 평년(강수량 : 2~4mm)보다 많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오늘은 오전, 오후 맑고 기온은 6 ~ 26℃ 분포를 보일 것으로 예보하였기 때문에 좋은 산행환경을 예고할 수 있었다.
- 오늘은 산행환경이나 접근성면에서 모자람이 없었고, 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인기명산 44위에 올라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30명 선을 넘지 못한 채 춘천을 출발하였다. 빠른 길 찾기 정보에 따라 10:30경 현지 도착을 예상했었는데 의외로 빨리 도착하는 바람에 30여분 상당 운영시간에 여유가 있었다. 오늘 들머리인 범륜사입구는 우리 일행 분들이 유일한 고객이었다. 들머리입구는 감악산등산로안내도, 범륜사입구안내판, 감악산안내판, 입산시유의사항안내판 등이 즐비하여 언 듯 보아도 감악산 산행 나들목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반드시 있어야 할 편의시설 중 화장실이 없어 곤혹스러웠다. 춘천을 출발한 후 경춘 국도에 있는 북한강휴게소를 그냥 지나친 것이 화근이었다. 북한강휴게소에서부터 들머리 어간에는 경유할 휴게소가 없었던 것이다. 현장에서 일정안내와 더불어 감악산등산로안내도를 배경으로 단체기념을 남기고 입산하고자 하였으나 워낙 상황이 다급한 관계로 실마천 상류 범륜사 방향으로 무작정 진입하였다. 범륜사입구에서 5분쯤 올라가면서 감악산관리소, 휴게소, 화장실이 있어 다급한 생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여기서 단체기념과 일정안내를 마치고 들머리에 들었다. 오늘은 운영시간을 4시간30분으로 잡고 14:30하산을 예고하였다.
<운계폭포(비룡폭포)>
- 10:15 운계폭포(비룡푹포)경유
- 들머리에서부터 범륜사 경내까지 아스팔트 포장길이다. 감악산관리소를 지나 S자 커브 오르막 구간을 8 ~ 9분 정도 올라가면 진행방향 왼쪽 계곡으로 운계폭포(비룡폭포)가 시야에 잡힌다. 숲이 우거져 조망은 어렵다. 곧이어 폭포 갈림길에 이른다. 갈림길에서 왼쪽 계곡은 운계폭포(비룡폭포)가 자리하고 맞은편으로 올라가면 범륜사(梵輪寺)에 닿는다. 갈수기인 탓에 수량이 적어 볼품없어 보이지만 2단을 이룬 모습에서 한여름의 풍광을 그려볼 수 있었다. 폭포를 보기 위해서는 갈림길에서 암벽쪽으로 내려 가야하지만 접근은 어렵다. 1단폭포는 올려다 볼 수 있지만 2단폭포는 내려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한다. 폭포를 보고 올라오는 동안 일행 분들을 놓치고 말았다.
-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감악산의 대표적인 명소인 운계폭포는 실마천을 끼고 있는 20m의 아기자기한 계곡이다.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며 비룡폭포 또는 은계폭포라고도 불린다. 절벽에서 푸른 물이 쏟아지는 풍경이 장관이다. 특히 여름철에는 물이 불어 경관이 아름답고, 가을에는 단풍이 우거진다. 경사가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겨울에는 빙벽 훈련 장소로도 인기가 높다. 휴전선에 인접한 관계로 감악산이 오랫동안 입산금지구역이었던 덕택에 운계폭포 역시 많이 알려지지 않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최근에는 통제가 완화되고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면서 운계폭포 역시 유명해지는 추세라고 한다.
<범륜사(梵輪寺)>
- 10:20 범륜사 경유
- 범륜사는 경기 파주시 적성면 설마리에 있다.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가 불타 없어진 운계사터에 새로 지은 절이다. 한국불교태고종에 속한다. 감악산에는 원래 감악사, 운계사, 범륜사, 운림사 등 4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모두 소실되었고, 지금의 절은 1970년에 옛 운계사터에 다시 세운 것이다. 창건시기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1481년(성종 12)에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에는 이 절이 존재한다고 기록되어 있고, 1799년(정조23)에 편찬한《범우고》에는 폐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현재 있는 건물은 대웅전과 강원, 요사채 등이고 요사채 옆에는 조선 후기의 기와 조각이 쌓여 있다. 조선시대의 탑재들을 조립하여 근래에 조성한 삼층석탑이 있다. 중앙에 대웅전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머타전과 동양 최대의 백옥 11면 관세음보살과 전면에는 9층 석탑과 자연석으로 세운 세계평화의 비가 있고, 절 입구에는 해탈교라는 작은 다리가 있고 경내에는 하얀 불상이 우뚝 서 있으며, 절 뒤편으로는 산신각이 있는데 그 안에서 시원한 석간수가 흘러나온다. 대웅전 앞에 있는 1993년에 발굴된 고려 때의 탑으로 추정되는 운계사 3층석탑이 눈길을 끌었다. 범륜사 경내에서 후미 팀 중 뒤쳐진 일행 분들과 합류하였다.
<명상의 숲>
10:24 명상의 숲 경유
- 범륜사를 뒤로하고 계곡길로 3 ~4분 올라가면 진행방향 왼쪽으로 명상의 숲이 나온다. 잣나무 숲 속엔 쉬어가는 의자가 있었지만 그냥 지나쳤다. 곧이어 부도(덕이 높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넣고 쌓은 둥근 돌탑) 5기가 나란히 서있는 부도군을 지난다. 명상의 숲 앞 계곡 일원은 2011년도 큰 수해의 상흔이 역역하였다. 말끔히 복구되었지만 자연 복구되기까지는 수십 년 세월이 흘러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마천 계곡은 물 한 방울 없이 메말라있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였다.
<숯가마터>
- 10:35 숯가마터 경유
- 이 곳 쉼터에서 머무는 동안 후미 팀 일행 분들 모두가 합류하였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일행 분들 만난 김에 떡보따리 짐을 풀었다. 김 기 자님께서 간식으로 준비해 오신 떡보따리를 무겁다고 하시면서 본인에게 넘기시는 바람에 이곳까지 지고 왔다. 여기서 풀지 않으면 정상에서 풀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남의 숲>
- 10:49 만남의 숲, 임꺽정봉. 감악산비갈림길 경유
- 숯가마터에서 10여 분 정도 올라가면 1-4 묵은밭 구조신고 지점 첫 번째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왼쪽으로 샛길이 나있었지만 진행방향 안내표식이 없었다. 밭둑에는 꽃을 활짝 피운 복숭아나무 여러 그루가 일행 분들을 맞이하였다. 이 지점에 까치봉 1,0km, 정상(감악산비) 1,5km, 임꺽정봉 1,9km, 범륜사 0,8km, 버스승강장 1,4km를 안내하는 이정표와 119구급함이 있다.
- 묵은밭에서 2 ~ 3분 올라가면 만남의 숲 쉼터 갈림길에 이른다. 이곳에 마루. 의자 등 삼림욕시설과 임꺽정봉, 감악산비 지행방향안내표주, 법륜사 1,0km, 매표소 1,7km, 임꺽정봉 1,7km, 정상(감악산비) 1,5km, 약수터 0,8km를 안내하는 이정표, 만남의 숲과 1 - 5 구조신고 안내판이 있다. 이 지점에서 진행방향 오른쪽, 임꺽정봉 방향이 오늘 일정상 잡혀있는 코스였다.
<장군봉>
- 11:51 장군봉 경유
- 만남의 숲에서 임꺽정봉 방향으로 진로를 잡은 후 11:10 헬기장, 11:23 임꺽정봉 0,9km, 숯가마터 1,1km, 11:29 임꺽정봉 0,7km, 범륜사 1,9km, 4-1 길림길구조신고지점, 11:30 범바위 3,5km, 감악산주차장 4,4lkm, 장군봉 0,3km, 감악산정상 0,7km, 11:35 감악산약수터 1,5km, 감악산주차장 3,6km, 장군봉 0,2km, 감악산 정상 0,6km, 11:37 구멍바위, 11:44 감악산약수터 1,6km, 감악산주차장 3,7km, 장군봉 0,1km, 감악산정상 0,5km로 이어지면서 마지막 급경사 계단을 오르면 장군봉 정상이다. 정상에는 정상석은 없고 감악산등산안내도가 있다. 장군봉 0,2km 전방부터 임꺽정봉까지 0,6km 능선이 암릉으로 이어진다. 이 구간이 오늘의 백미이었다. 감악산에 큰 산 岳(악)자가 붙은 이유에 대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었다. 여기서 진행방향 왼쪽 0,4km 지점에 정상이 있고, 오른쪽 0,4km 지점에 임꺽정봉이 있다. 세 봉이 삼각으로 조화를 이뤄 경기 5악 중 하나인 감악을 빚어 놓았다. 연녹색으로 갈아입은 감악산하와 파주, 양주, 연천 일원이 한 눈에 시원하게 들어왔다.
<임꺽정봉 정상석>
- 12:00 임꺽정봉 경유
- 임꺽정봉은 양주의 진산인 불곡산에도 있다. 해발 676,3m로 감악산 정상 675m 보다 약간 높다. 정상에는 해발 676,3m를 새겨 넣은 정상석, 양주시 남면 임꺽정봉 동판, 임꺽정봉(매봉재)안내판, 국립지리원에서 세운 삼각점과 안내문 등이 있다. 상세한 내용은 아래 사진으로 갈음한다.
<임꺽정봉(매봉재)안내문>
<임꺽정 굴>
- 임꺽정 굴은 찾지 못하였지만 소개하고 넘어간다. 임꺽정봉을 내려서서 북릉으로 10여분 내려서면 우물처럼 내려다보이는 임꺽정굴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일명 설인귀굴(薛仁貴窟)이라고도 불리는 이 굴은 고구려를 치러온 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이곳에 진을 쳤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조선지리(朝鮮地理·1918년판)에는 봉암사를 소개하면서 ‘이 절이 바위로 이뤄진 굴속에 있는데 설인귀가 혈거(穴居)한 곳으로 전해진다’고 기록하고 있다. 굴 상단부 입구는 어른 몸통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다. 발부터 집어넣게 되는 구멍에서 6 - 7m 깊이에 매어진 밧줄을 잡고 내려가면 3 ~ 4평 넓이 굴속이다. 남동쪽 해 뜨는 방향으로 굴이 휑하니 뚫려 있다. 이 굴 안쪽으로 다섯 걸음을 들어가면 구덩이가 나오는데 깊이와 넓이를 추측할 수 없다고 한다. 이 굴은 적성현지(1842년판과 1871년판)에 등장하는데, 일설에서는 고려 말 충신 남을진 선생이 은거했던 남선굴이 바로 이 굴이라고도 한다.
- 임꺽정은 16세기 중반 몰락농민과 백정·천인들을 규합하여 지배층의 수탈정치에 저항, 정국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홍길동(洪吉童)·장길산(張吉山)과 함께 조선의 3대 도적으로 일컬어진다. 일명 임거정(林巨正)·임거질정(林居叱正)으로 불리기도 한다. 경기도 양주에서 백정 신분으로 태어나 황해도에서 생활했다. 뜻을 같이하는 비슷한 처지의 농민 수십 명과 그 가족으로 집단을 이루어 황해도의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도적활동을 시작했다. 날쌔고 용맹스러우며 지혜로웠던 그는 1559년경 황해도·경기도·평안도까지 활동영역을 넓혀 이 지역의 관청이나 양반·토호의 집을 습격, 이들이 백성에게서 거두어들인 재물을 빼앗았다. 또한 서울·평양 간 도로와 그밖의 주요교통로를 장악하여 정부가 농민들로부터 거두어들인 토지세·공물·진상물 등을 탈취했다. 이와 함께 관군의 방비와 토벌의 허점을 교묘히 찌르며 세를 확장하면서, 빼앗은 재물을 빈민들에게 나누어주어 의적으로서의 성가를 높이고 이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았다. 위기감을 느낀 정부 지배층이 여러 차례 관군을 동원하여 진압하려 했으나, 이를 번번이 물리치고 1559년에는 개성부 포도관 이억근(李億根)마저 잡아죽였다. 1560년 가을에는 봉산·개성을 거점으로 서울까지 진출했으나, 같은 해 11월 참모인 서림(徐林)이 체포되면서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정부는 서림에게서 활동의 계획과 비밀을 알아내고 선전관 정수익(鄭受益)과 봉산·평산의 관군으로 하여금 토벌하도록 했으나 뛰어난 전투력과 농민·이서(吏胥)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 세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 당시 이서와 농민의 도움은 임꺽정의 부대가 모이면 도적이 되고 흩어지면 백성이 되어 출몰을 예측할 수 없어 잡을 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1561년에 들어 황해도, 경기도 북부, 평안도, 강원도 지역에 출몰하여 활동했으나 관군의 대대적인 토벌이 이어져 형인 가도치(加都致)가 체포되는 등 세력이 점차 위축되었다. 토포사 남치근(南致勤)이 이끄는 관군의 끈질긴 추격으로부터 도망하던 중 마침내 1562년 1월 서흥에서 부상을 입고 체포당해, 15일 만에 죽음을 당했다. 임꺽정의 의적활동은 연산군 이후 명종대에 이르기까지 조선 전체에서 일어났던 농민봉기의 일환이며 그 집약점이었다. 이 시기 농민의 저항은, 당시의 사관이 "도적이 되는 것은 도적질하기 좋아서가 아니라 배고픔과 추위가 절박해서 부득이 그렇게 된 것이다. 백성을 도적으로 만드는 자가 누구인가"라고 기록한 바와 같이 사회경제적 모순이 격화됨에 따라서 지배층에 저항하여 전국 각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났다. 비록 실패로 끝났으나 임꺽정 집단의 치열하고 오랜 활동은 정부·지배층에게는 불안과 공포의 위기의식을 심어주었으며 피지배층 일반에게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이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도 상반되어 지배층은 그를 흉악무도한 도적이라고 했고 민중들은 의적으로 영웅시했다. 그뒤 그에 관한 많은 설화가 민간에 유포되었고, 그의 행적이 소설로 그려지기도 했다.
<감악산 정상석>
- 12:14 정상 도착
- 정상 직전 오른쪽 사각 양주감악정을 지나자마자 정상이다. 정상에서 장군봉과 임꺽정봉이 각각 0,4km이다. 정상 헬기장 주변에는 군부대 초소를 비롯하여 정상석, 감악산비. 감악산비 안내문, 양주 감악산 숲길. 등산로 안내도, 연천 고롱이. 미롱이 석물, 임꺽정봉 0,4km, 만남의 숲 1,5km, 팔각정사 0,1km, 까치봉 0,5km, 동광정사 1,7km, 초록지기마을 4,4km, 늘목리(1등산로)작(적)동분교 3,84km, 하늘아래첫동네(2등산로) 2,46km를 안내하는 이정표 등이 있다. 장군봉 능선, 임꺽정봉, 감악산 정상을 전. 후하여 등산로가 파주, 양주, 연천 방면 사방으로 널려있어 혼란스러웠지만 안내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진로 선도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 그러나 정상 주변 자료를 챙기며 방심한 사이에 밥자리를 잡는다고 먼저 내려가신 분들께서 하산지점인 까치봉 방향을 놓치고 늘목리와 하늘아래첫동네 반대방향으로 0,1km 내려가서 점심상을 차렸던 것이다. 다행이 그늘에 설치된 마루를 밥상삼아 안락하게 접심을 마칠 수 있었다.
- 감악산은 예부터 바위사이로 검은 빛과 푸른 빛이 동시에 쏟아져 나온다하여 감악(紺岳), 즉 감색 바위산이라 불렸다. 파주시 적성면에서는 어디서나 보이는데, 멀리서 보면 순해 보이지만 일단 정상에 올라 사방을 살펴보면 암봉과 낭떠러지가 도처에 널려 있다. 그래서 가평 화악산, 개성 송악산, 과천 관악산, 포천 운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의 하나로 손꼽혀 왔다. 감악산은 서울과 개성의 중간지점에 솟아 있으며 맑은 날에는 개성의 송악산과 서울의 북한산, 동두천의 소요산이 보인다. 이 산에는 감악사(紺岳寺), 신암사(神岩寺), 운계사(雲溪寺) 등이 있었고 정상에서 산신과 설인귀(薛仁貴)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파주에서 가장 높은 이 산은 붉고 거무룩한 암벽으로 길게 형성되었으며 주위 수목이 울창하여 단풍이 들 무렵에는 울긋불긋한 경관이 아름답다.
- 감악산은 한북정맥의 한강봉과 지맥을 이루고 있고 산세가 험하고, 폭포, 계곡, 암벽 등이 발달한 파주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감악산의 서쪽 능선 아래의 파주시 적성면에 속하는 지역은 임진강 본류의 공격사면에 해당하는 곳으로 과거 기후 조건 아래에서 하천의 침식작용이 활발하였던 곳이다. 사면이나 계곡 주변부에는 과거 주빙하 기후 하에서 형성된 암괴류나 암괴원이 넓게 발달하여 있다. 동쪽 능선 아래의 연천군 전곡읍에 해당하는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해발고도가 높은 고산지성의 산지가 남북 방향으로 발달하였다. 감악산의 동북 방향으로 정상부 바로 아래의 눌목동에는 고위평탄면과 유사한 지형이 나타나며 이곳에 취락이 형성되어 있다.
<감악산비>
- 감악산비(紺岳山碑)는 1986년 8월 17일 파주시의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되었다. 적성면 설마천로 감악산정상 (적성면 객현리 산 25)에 있다. 감악산(紺岳山) 정상에 우뚝 서 있는 고비(古碑)로 기단부, 비신, 개석을 갖춘 화강암석비로 높이170cm, 너비 70~79cm, 두께 15~19cm의 규모이며 허리부분은 약간 가늘다. 개석(蓋石)은 후대에 만들어 얹은 것이지만 비신 윗부분 중간이 볼록튀어나온 것으로 보아 건립 당시에도 개석이 있었던것 같다. 자연석을 직사각형으로 잘라 표면을 손질해 글자를 새겼으나 완전히 마멸되어 글자의 흔적을찾을 수 없다. 전혀 글자가 확인되지 않고 있어 ‘몰자비’라 부르기도 하고 ‘설인귀비’, ‘빗돌대왕비’ 등으로 구전되기도 한다. 또한 일부에서는 도교의 영향을 받아 원래부터 문자를 새기지 않고 세운 무자비(無字碑)라고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이 비에대한 실체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속전에 의한 기록만이 존재하고 있다.1982년 동국대학교 감악산 고비 조사단에서 2차례에 걸쳐 감악산비를 조사한 결과 비가 세워진 근처에 삼국시대의 기와조각이 출토되고 있으며 그 형태가 북한산의 진흥왕 순수비와 흡사하여 신라비로 추정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감악산은 신라시대부터 국가의 소사(小祀)가 있던 명산의 하나이며, 비가 있는 곳에서 북동쪽으로 4.5㎞ 정도 지점에 있는 칠중성(七重城)은 삼국시대 이후로 한반도의 지배권 장악을 위한 각축이 벌어지던 군사적 요충지였다. 또한 적성지역이 전략적 요지로서 진흥왕의 영토확장 정책에 따라 세력이 미쳤던 곳이라는 점을 들어 제5의 진흥왕 순수비의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그 역시 결론을 낼만한 확실한 증거는 발견되지 못했다.
<감악산에 얽힌 전설>
- 이 산은 옛날 경기 오악(松岳, 紺岳, 雲岳, 北岳, 冠岳)중에 하나로서 감악사(紺嶽寺), 신암사(神岩寺), 운계사(雲溪寺)등이 있었고 정상에 산신과 설인귀(薛仁貴)를 모시고 제사지냈다는 감악사(紺嶽祀)가 있었다 한다. 고려시인 임춘(林春)은 감악산의 형상을 잘 표현한 시를 소개하기로 한다. 조물소아진호배롱(造物小兒眞好弄) : 조물주는 어린아이처럼 장난을 좋아하였는지/ 박사희작천봉상(博沙戱作千峯象) : 모래를 모아다가 많은 산봉우리를 만들었네/ 자산수미강수주(玆山首尾羌數州) : 이 산머리에서 끝까지 몇 고을을 깔고 앉았는데/ 천외회상여무봉(天外廻翔如舞鳳) : 그 모습 하늘을 뚫고 나는 봉황과 같도다/ 감악사는 현재 폐사되었으나 적성면 객현리 배문리 마을에서 약 500미터 거리에 절터가 남아 있는데 이 절에서 고려때 황빈열이라는 사람이 과거를 보려고 이 절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무렵 동각태학사(東閣太學士) 김신윤(金莘尹)이 술을 거나하게 취하여 권세가 있는 송도 사람들을 욕을 하다가 미움을 받고 도망을 나와 감악산에 들어와 잠시 묵어가게 해달라는 요청을 하니 황빈연이 늙고 피곤한 모습을 가엾이 여겨 허락을 하였더니 하루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자고 나더니 한마디 말도 없이 화로에 부젓가락으로 재를 뒤적거리며 글자를 그리므로 좌중사람들이 늙은이가 글자를 안다고 힐난을 하였다. 아침이 되어 김신윤의 아들 온기가 과거에 급제하여 찾아와서 뜰아래에서 절을 하니 황빈연이 깜짝 놀라며 땅에 엎드려 사과를 하는지라 김신윤이 웃으며 말하기를 범주가 진나라의 재상이 된 것을 어찌 궁한 늙은이가 이미 알았으랴 하고 서로 북쪽 산봉우리에 올라 소나무 밑 돌 위에 앉아 술을 같이 마시고 즐기면서 송풍(松風)을 제목으로 연구(聯句)를 지었는데 학한난득수 승정독여롱 (鶴寒難得睡 僧定獨如聾)(金莘尹) 날씨가 추우니 학은 잠들기 어렵고 중이 좌선에 드니 벙어리와 같고나 단송현원용흔장백학충 (斷送玄猿傭欣場白鶴沖) (黃彬烈) 검은 원숭이 휘파람 불어보내고 백학은 하늘을 뚫고 날아가네 감악사는 신라에서 설인귀를 산신으로 삼았다고 내려오고 있으며 고려 현종 5년 글안군사가 장단에 이르렀을 때 감악산에서 정기(旌旗)와 군사가 있는 듯 함으로 크게 두려워하고 감히 전진을 못하였다 하며 고려 충렬왕은 원나라 황제를 도와 내안(乃顔)을 토벌하려 할 적에 설인귀를 제2신으로 봉해서 도만호(都萬戶)를 삼고 신의 음공(蔭功)을 빌었다 한다. 신라이당장설인귀위산신 본조명산재중사춘추(新羅以唐將薛仁貴爲山神 本朝名山載中祀春秋) 강향축이제 고려현종오년단병지장단감악사약(降香祝以祭 高麗顯宗五年丹兵至長湍紺岳祠若) 유정기사마단병구이부감전우충열왕장특여원조제(有旌旗士馬丹兵具以不敢前又忠烈王將特如元助帝) 토급안봉신제이위도만호익익음공야(討及顔封神第二爲都萬戶益翼蔭功也)(積城邑誌) 또한 선비와 서민 모두가 감악산의 산신을 숭상하고 공경해 친제를 올렸는데 당시 지중문하사(知中門下事) 민유(閔儒) 전소윤(前少尹) 김서지(金瑞芝)등이 감악산에 제사를 지내려고 장단진(두지진)을 건너다가 익사하게 되자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방우정(方于楨)이 제사를 금지할 것을 상소하여 일시 중단되었다 한다. 충선왕3년4월제감악산시유상귀공향토서개친제(忠宣王三年四月祭紺岳山時裕尙鬼公鄕土庶皆親祭)
<감악산 성모상>
- 점심식사 후 의외의 곳, 의외의 장소에서 성모상을 알현[(謁見) 찾아가 뵙다, 지체가 높고 귀한 사람을 찾아가 뵘]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바로 성모상 코앞에서 점심식사를 했던 것이다. 이 성모상은 김 숙 환(임마꿀라다)님께서 기증하셨고 보병 제25사단 비룡성당 교우 일동이 건립하였다. 산정에서 본 성모상은 처음이었다. 성모송과 함께 묵상하면서 요즘 본인이 처한 어려움에 대하여 지향하는 기도를 올렸다.
<까치봉 전망대>
13:08 까치봉 전망대 경유
- 정상에서 서릉 까치봉 방향으로 하산길에 올랐다. 등산길은 후미에 자리하였지만 하산길은 선발팀을 따라 잡기 위해 속도를 냈다. 정상에서 0,1km 지점에 8각정이 있다. 이곳이 선발 팀의 점심식사장소이었다. 여기서 정상 0,1km, 까치봉 0,4km, 객현리 2,2km이다. 운계능선을 타고 정면으로 개성 송악산 방향을 바라보며 9분 정도 내려가면 기암절벽 위에 노송들이 군락을 이룬 까치봉에 이른다. 전망대가 있어 조망을 즐길 수 있다. 하산 구간 중 유일한 조망 처인 셈이다. 여기서 앞서 출발 하신 일행 세 분을 만났다. 오늘 입산 후 처음 상봉한 분들이었다. 다행이 까치봉 전망대에서 기념을 남김 수 있었다. 까치봉 나무계단을 내려와 숲길로 접어들면서 부회장님 일행 일곱 분과 합류하여 동행하였다.
- 까치봉을 뒤로하고 아기자기한 바위지대를 내려서서 전형적인 육산 숲길로 12 ~ 13분 정도 내려오면 440m봉인 쌍소나무 쉼터에 이른다. 인근에 6 - 3 쌍소나무구조지점, 범륜사 1,1km, 휴게소 1,7km, 팔각정사 1,5km, 까치봉 1,1km, 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있다. 이 지점까지 정상에서 만난 흰둥이 개 한 마리가 우리 일행과 동행하였다. 이 쉼터를 지나자마자 이정표 없는 갈림길이 나왔다. 능선에서 직진하는 길로 진로를 선도하는 순간 뒤에 따라오시던 부회장님 일행 분들께서 왼쪽 사면길로 진로를 잡고 진입하는 것이었다. 방향으로 봐서는 어느 쪽이든 지방도 접근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 구간에서 잠시 우왕좌왕 하다가 다시 능선으로 되돌아 나와 직진코스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오늘 하산 구간 중 이 지점을 포함하여 애매모호한 곳 두 곳에 진행방향안내표식지를 깔았다.
- 13:39분이 넘어가면서 헬기장을 경유하였다. 이 지점에 객현리진행방향, 휴게소주차장 1,5km, 감악산비 2,3km, 범륜사 1,8km를 안내하는 이정표가 있다. 곧이어 임도 시작지점에 이르렀다. 여기서부터 지방도까지 이어졌다. 14:00 임박하여 지방도까지 내려왔으나 버스대기장소인 감악산휴게소가 보이지 않았다. 이지점 상류에 있는지 하류에 있는지 판단이 서지를 않았다. 그 무렵 먼저 하산하신 세 분께서 설마교 건너 충혼탑주차장에 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총무님으로부터 호출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대장님! 먼저 내려오신 분들께서 버스가 안 보인다고 난리라는 전갈이었다. 알았다. 오버! 로 상황을 종료와 동시에 충혼탑주차장으로 날머리를 조정하여 버스를 불렀다. 버스 대기 장소가 설마교 상류 감악산휴게소가 아니고 강원휴게소이었던 것이다.
<충혼탑주차장>
- 14:00 충혼탑주차장 도착
- 충혼탑주차장에는 화장실 등 편의시설과 충혼탑, 충혼사, 충혼탑안내판, 대한의열단감악산결사대추모비, 관리동 1동과 함께 주변 조경이 잘 정비되어 있다. 주차장 한편에 자리를 펴고 하산행사를 치룬 후 귀로에 올랐다.
Ⅳ. 특기사항
- 황 원 영(톰보이)님 얼름 과자, 김 선 식(나우)님 맥주, 산악대장 포천막걸리 협찬
Ⅴ. 산행을 마치고
- 경기 5악 중 한 곳, 산림청선정 100대 명산, 한국의 산하 선정 인기명산 100 중 44위, 파주시에서 제일 높은 산, 경기 최북단에 있는 산, 임꺽정의 얼이 서려있는 산 등 수식어가 많이 붙어 다니는 명산 또 하나를 섭렵하였다는 자부심을 갖기에 부족함이 없는 일상으로 치부하고자 한다. 감악산은 오늘로서 우리 모두산악회 두 번째 정기산행이었다. 그러나 총무님을 제외한 나머지 분들 모두가 처음인 듯 싶었다. 산행환경, 코스 난이도, 소요시간면에서 모두가 만족한 일상이었다고 자평해 보았다. 운영시간 4시간30분/14:30 전에 일상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시고 각 제대별로 진로선도에 도움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