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주 소장은 육군사관학교 9기로 임관하여 대통령 경호차장, 특전 사령관을 거쳐 1979년까지 쭉 대한민국 특전사 사령관을 맡은 특전사의 아버지이다.
그는 12.12 사태 당시 전두환과 하나회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걸 막고자했으나 하나회에 반기를 든 부대는 자신의 부대와 장태완 소장의 부대 둘 뿐이었으며 자신이 사정사정하여 불명예 전역을 막아준 박희도 준장, 평소 친밀하게 지내던 최세창, 장기오 준장의 배신과 하나회에 의한 지휘 체계 마비로 손도 제대로 못 써보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납치되는 장면을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고, 육군 본부가 하나회의 손에 떨어지자 장태완 소장과 함께 전차부대로 하나회를 기습 공격할 작전을 세우나 대부분이 하나회에 포섭되어 있었고, 그들의 작전이 지휘 체계의 마비로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여 실패하고 결국 불법 체포되어 강제 예편 당한다.
강제 예편 된 후에도 12.12 사태의 부당성을 알리며 언론에 글을 투고하는 등 12.12 사태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나
1988년 10월 16일 밤 10시에 그는 행방불명 되었고 결국 실종 139일 만인 이듬해 3월 4일에 송추 인근 야산에서 목 매달아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 자살을 할 이유가 없었으며, 평소에도 12.12 사태의 진실을 알려야 하기에 민주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어떻게든 몸을 조심히 보존해야 한다고 말하여 자살을 택할 정황도, 사유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회의 방해로 그의 죽음은 증거 불충분으로 인한 의문사로 처리되고 만다.
현재 그는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고인의 무덤은 백비가 세워져 있다. 비석의 내용이 없이 그냥 이름만 적혀있다. 무명 용사들도 공적을 기리는 한 줄의 비문이 항상 적혀 있게 마련인 무덤에서 아무런 내용이 없는 것으로, 이는 유족들의 뜻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명령을 생명으로 여기는 군인들이 상관에게 총질을 하고도 버젓이 활보하는 세상에 고인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는 뜻이라고 한다.] (출처: 나무위키) 온빛중 정승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