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린도전서 15장 50-58절. 부활의 신앙과 성도의 자세
1. 부활 신앙이란 오직 기독교에만 있는 특별한 신앙입니다.
(1) 옛날 애굽 사람들도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은 사람의 시신을 그냥 땅에 묻어버리지 않고, 방부제로 미이라를 만들어서, 습도가 없고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피라밋 속에 보관해두었습니다.
그러나, 애굽 사람들이 믿은 육체의 부활이란 기독교의 부활과는 다릅니다.
애굽 사람들의 부활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육체 그대로 부활할 것을 믿은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부활 신앙은 육체의 부활이지만, 다시는 병들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는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2) 헬라인들도 부활을 믿었습니다.
헬라인들은 사람이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기독교 신앙과 같습니다.
그런데, 헬라인들은 육체는 죽어서 썩어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가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헬라인들은 영혼은 불멸한 것으로, 육체를 벗어나서 새로운 삶을 산다고 믿었습니다.
이처럼 영혼의 부활을 믿은 헬라철학자 쏘크라테스는 용감하게 사약을 받아 마셨습니다.
그러나, 헬라인들의 부활 신앙은 영혼의 부활이지, 육체와 영혼의 부활이 아닙니다.
우리 기독교인이 믿는 부활 신앙은 영혼만이 아니라, 육체도 죽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사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3) 불교의 부활 신앙은 기독교 부활 신앙과 아주 다른 이상한 것입니다.
불교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과 육체가 없어지지 않고 살아남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착하게 살고, 남에게 자비를 많이 베푼 사람은 수억 만 년 후에 세상에 다시 태어날 때, 높은 사람으로 태어나고, 악하게 산 사람은 돼지나 벌레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이처럼 불교는 현세에서의 선행과 자비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내세의 불행한 부활과 윤회설을 말합니다.
그러나, 불교의 내세론은 거짓된 윤회설을 주입시켜서, 이기적인 선행을 조장할 뿐입니다.
기독교의 내세론은 예수님 같은 영광의 부활과 영원한 천국을 믿음으로써, 구원의 감격 속에서 아가페적인 사랑, 이타적인 사랑을 할 수 있게 만듭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1) 예수님이 이 세상에 사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 사실인 것처럼,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도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2) 불신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는 “로마의 황제 디베리우스 때에, 로마의 총독 중 한 사람인 본티우스 빌레투스의 손에 유대인 예수 그리스도가 처형당했다”고 그의 “연대기”(Annals. 15.44.)에 기록했습니다(The originator of this name (was) Christ, who, during the reign of Tiberius had been executed by sentence of the procurator Pontinus Pilate).
(3)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 수백 명이 직접 목격하고, 함께 식사하고, 만져보고, 보는 데서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4) 그러나,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바울의 회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원래 바울은 유대교의 전권을 가지고, 군사들을 이끌고 기독교인을 세상에서 박멸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 나오는 스데반을 죽였습니다.
예루살렘 교인들을 잡아다가 투옥시켰습니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폐쇄되고, 신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외국의 도성에까지 가서 기독교인을 체포하여 투옥시키려고 군사를 이끌고 갔습니다.
드디어 바울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성중의 하나인 다메섹 성으로 기독교인들을 잡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메섹 성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갑자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신 모습으로 하늘에서 바울을 부르셨습니다.
“사울(바울)아 사울(바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뉘시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이 때, 바울은 너무나 충격을 받아서 기절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유대교인들이 조상적부터 섬겨오던 여호와 종교를 살리기 위해서는, 혹세무민한 죄수로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을 박멸해야만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 주장하는 예수 부활을 혹세무민한 거짓말로만 생각했던 바울이 직접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해서 대화했고, 더구나 이 예수님이 조상적부터 섬겨온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 그만 기절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주의 종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소생함을 얻은 후, 평생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인이 되었고, 예수님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의 구주시라는 사실을 증언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이런 바울의 변화는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을 직접 목격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임에 틀림없습니다.
저는 바울 사도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이 바울의 회심이야말로 예수님의 부활의 목격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사실임을 확신했습니다.
(5) 류 웰리스((Lew Wallace: 1827–1905)라는 사람의 회심 체험에서도 부활의 역사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류 웰리스는 남북 전쟁의 영웅이었던 장군으로서 문학적인 자질이 뛰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는 당시 최고의 무신론자인 잉거솔(Robert Ingersoll) 대령이 그의 친구였습니다.
그는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 누군가 생각해볼 때, 예수님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세계 역사를 BC와 AD로 나눈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계 역사와 문화의 핵심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변천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자기가 꺾을 수만 있다면, 자기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의 핵심이 부활 사상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사람은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았다는 사실은 절대 있을 수 없는 거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독교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주장한 것은 그래야만, 내세 천국을 생각하면서, 기독교인이 선행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들을 선도하기 위한 허황된 종교적 교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류 웰리스는 자기의 전 재산을 드려서, 예수의 부활이 거짓이고, 종교적 필요를 위해서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을 증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전 재산을 팔아 돈으로 마련한 다음 일꾼들을 사서, 고고학적 자료들을 수집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땅으로 갔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땅에서 예수의 부활이 거짓임을 밝혀낼 수 있는 고고학적인 자료를 6년간 찾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세계의 유명한 박물관과 도서관을 찾아서, 예수의 부활이 꾸며낸 거짓임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5년간 모으기로 했습니다.
이런 원대한 꿈을 가지고 예수 부활이 거짓이라는 글을 써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6년간의 연구를 다 마치기도 전에, 류 웰리스는 그만 세계에서 가장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예수님의 부활임을 확인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다가 말고,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향해서 “참으로 부활하신 주님,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신앙고백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라는 글을 쓰려던 사람이 변해서, 예수님의 역사적인 실존과 부활의 역사적 사실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글을 썼습니다.
그 작품이 유명한 <벤허>입니다.
이 <벤허>라는 작품은 1959년에 영화로 만들어져서 전 세계에 대박을 터뜨린 성공적인 영화로 남아있습니다.
3. 오늘은 <부활의 신앙>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4. 오늘 본문의 내용은 3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50절. 이 썩을 육체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51-57절. 예수님의 재림 나팔이 울려 퍼질 때,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사실입니다.
58절. 그러므로,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주님의 일에 힘써 봉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5. 오늘 설교의 제목은 ‘부활 신앙과 성도의 자세’입니다.
50절. 이 세상의 썩을 육체로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50절.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I say this, brethren, that flesh and blood cannot inherit the kingdom of God; nor does the perishable inherit the imperishable.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Τοῦτο δέ φημι, ἀδελφοί,
this now I say, brothers
‘내가 말하노니’(φημι)는 현재형입니다(I say)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고
ὅτι σὰρξ καὶ αἷμα βασιλείαν Θεοῦ κληρονομῆσαι οὐ δύναται,
that flesh and blood kingdom of God to inherit not is able
‘이어받을 수 없고’에서 앞의 동사(κληρονομῆσ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inherit) 확실히 이어받는(기업으로 받는) 것을 뜻하고, 뒤의 동사(δύναται)는 현재형으로서(is able) ‘할 수 있다’는 뜻인데 앞의 부정사(οὐ: not)와 합하여 ‘이어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οὐδὲ ἡ φθορὰ, τὴν ἀφθαρσίαν κληρονομεῖ.
nor the decay, the immorality does inherit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에서 동사(κληρονομεῖ)는 현재형으로(does inherit) 앞의 부정사(οὐδὲ: nor)와 합하여 ‘유업으로 이어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형제들아 이제 내가 말하노니, 이 육체와 피는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수 없고, 썩을 것은 썩지 않을 것을 기업으로 받을 수 없도다. (Now I say this, brethren, that flesh and blood cannot inherit the kingdom of God; nor does the perishable inherit the imperishable)
1. 지금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체 그대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1) 물속에 기어 다니는 애벌레가 번데기 껍질을 벗고, 나비가 되어야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2) 마찬가지로 병들고 죄로 멍들어 죽을 몸 이대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살 수가 없습니다.
(3) 물속의 애벌레가 번데기 껍질을 벗고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 듯이, 죄로 병든 이 몸이 예수님처럼 부활의 몸을 가져야만,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4) 북극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추위에 몸을 단련해야 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초겨울이 되면, 얼음을 깨고, 얼음 물속에 들어가서 목욕으로써 추위에 단련된 몸을 가진답니다.
이것을 본따서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북극곰 수영대회라는 것을 합니다.
(5) 또, 적도 부근의 뜨거운 지방에서는 뜨거운 온도에 적응하기 위해서, 뜨거운 온천탕에서 몸을 달구거나, 불 속에 몸을 단련합니다.
이와같이 단련된 몸이라야, 환경에 적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것이 영원하고, 완전한 자유가 보장된 곳이기 때문에, 지금의 육체로는 들어가서 살 수가 없습니다.
예컨대,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을 보면, 엠마오로 가는 길에 계시다가 금방 또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나타나셨습니다.
이것은 부활의 몸으로만 가능합니다.
만일 지금 우리와 같은 몸으로 그런 빠른 속도로 공기 속을 이동해 다니면, 공기압에 못 이겨서 고혈압으로 코피가 터져서 죽어버릴 것입니다.
밤하늘에 별똥별을 보십시오.
별나라에서 떨어져 나온 운석이 대기권 안으로 들어오면서, 공기와의 마찰로 인해서 불타서 없어지는 것이 별똥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인공위성이 대기권을 뚫고, 달나라나 화성으로 다녀온 것은 대기권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가도 불타지 않는 특수한 금속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우리 육체도 하나님 나라에 가서 살려면, 지금의 육체로는 안 되고, 부활의 새로운 몸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51-57절.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죽은 성도들이 부활하여, 예수님과 함께 공중에서 만나서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51절.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ehold, I tell you a mystery; we will not all sleep, but we will all be changed,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ἰδοὺ, μυστήριον ὑμῖν λέγω·
behold, mystery to you I tell
‘보라’(ἰδοὺ)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hehold) 확실하게 보라는 뜻이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입니다.
‘내가 말하노니’(λέγω)는 현재형입니다(I tell).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πάντες οὐ κοιμηθησόμεθα,
all not we will be asleep
동사(κοιμηθησόμεθα)는 미래 수동태로서(we will be asleep) ‘우리가 장차 다 잠들어 있을 것이 아니요’란 뜻입니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πάντες δὲ ἀλλαγησόμεθα,
all but we will be changed
직역하면 ‘그러나 모두 우리가 변화될 것이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란 다음절에 나오는데, 미리 번역한 것입니다.
‘변화되리니’(ἀλλαγησόμεθα)도 미래 수동태입니다(we will be changed).
52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n a moment, in the twinkling of an eye, at the last trumpet; for the trumpet will sound, and the dead will be raised imperishable, and we will be changed.
(순식간에, 홀연히)
ἐν ἀτόμῳ, ἐν ῥιπῇ ὀφθαλμοῦ,
in moment, in twinkling of eye
직역하면 ‘순식간에, 눈 깜짝할 사이에’란 뜻입니다.
본 절에 기록된 것을 한글 번역에서는 앞 절에서 번역했습니다.
(마지막 나팔에)
ἐν τῇ ἐσχάτῃ σάλπιγγι·
at the last trumpet
본 절에 기록된 것을 한글 번역에서는 앞 절에서 번역했습니다.
나팔 소리가 나매
σαλπίσει γάρ,
The trumpet will sound for
직역하면 ‘왜냐하면 나팔 소리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란 뜻입니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καὶ οἱ νεκροὶ ἐγερθήσονται ἄφθαρτοι,
and the dead will be raised imperishable,
‘다시 살아나고’(ἐγερθήσονται)는 미래 수동태로서(will be raised)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란 뜻입니다.
우리도 변화되리라.
καὶ ἡμεῖς ἀλλαγησόμεθα.
and we we will be changed
‘우리도’(ἡμεῖς: we)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변화되리라’(ἀλλαγησόμεθα)는 미래 수동태입니다(we will be changed)
53절.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this perishable must put on the imperishable, and this mortal must put on immortality.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δεῖ γὰρ τὸ φθαρτὸν τοῦτο ἐνδύσασθαι ἀφθαρσίαν
it behooves for the perishable this to put on the imperishable
직역하면 ‘왜냐하면 이 죽을 것이 죽지 않을 것을 입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반드시’(δεῖ)는 원래 동사로서(it behooves) ‘(입는 것이) 마땅하다’는 뜻입니다.
‘입는 것이’(ἐνδύσασθ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put on) 틀림없이 입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καὶ τὸ θνητὸν τοῦτο, ἐνδύσασθαι ἀθανασίαν.
and the mortal this, to put on immortality.
직역하면 ‘그리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않을 것을 입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란 뜻입니다.
즉 여기 동사(ἐνδύσασθαι: to put on)는 ‘반드시 (마땅하다)’는 동사(δεῖ: it behooves)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54절.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When this corruptible is clothed with incorruptibility, and this mortal is clothed with immortality, then the saying that is written will take place: Death has been swallowed up in victory.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ὅταν δὲ τὸ φθαρτὸν τοῦτο ἐνδύσηται ἀφθαρσίαν,
when now the perishable this shall have put on imperishable,
직역하면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이란 뜻입니다.
즉, 맨 앞의 단어(ὅταν: when) ‘때에는’은 다음 소절까지 연결됩니다.
‘입고’(ἐνδύσηται)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shall have put on) 반드시 입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καὶ τὸ θνητὸν τοῦτο ἐνδύσηται ἀθανασίαν,
and the mortal this shall have put on immortality
‘입을 때에는’(ἐνδύσηται)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shall have put on) 반드시 입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τότε γενήσεται ὁ λόγος, ὁ γεγραμμένος
then will come to pass the word, that having been written
‘기록된’(γεγραμμένος)은 완료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written) 이미 기록되어 있는 것을 뜻합니다.
‘이루어지리라’(γενήσεται)는 미래형입니다(will come to pass).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Κατεπόθη ὁ θάνατος εἰς νῖκος.
was swallowed up the death into victory
직역하면 ‘사망이 승리에 삼켜졌다’란 뜻입니다.
즉 ‘사망’(ὁ θάνατος: the death)이 주어로 되어 있습니다.
한글 성경은 수동태를 능동탤고 바꾸어서 번역한 것입니다.
‘삼켜졌다’(Κατεπό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as swallowed up) 확실히 삼켜진 것을 가리킵니다.
1. 주님의 재림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질 때, 이 썩을 육신이 영원히 사는 부활의 몸으로 변화된다는 말씀입니다.
2. 주님이 재림하시면, 조용히 재림하시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이 다 알 수 있도록, 주님의 호령 소리와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재림하실 것입니다.
51-53절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Behold, I tell you a mystery; we will not all sleep, but we will all be changed, in a moment, in the twinkling of an eye, at the last trumpet; for the trumpet will sound, and the dead will be raised imperishable, and we will be changed. For this perishable must put on the imperishable, and this mortal must put on immortality)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과 마태복음 24장 31절 말씀과 상통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4:31.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27절)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 주님의 재림 나팔 소리가 날 때, 이 죽어서 썩을 몸이 순식간에 홀연히 부활의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52절, "우리가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in a moment, in the twinkling of an eye, at the last trumpet; for the trumpet will sound, and the dead will be raised imperishable, and we will be changed)고 했습니다.
죽은 자들은 살이 다 썩어서 진토가 되고, 백골이 있든 없든,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땅에 묻힌 지 수백 년이 되어서 뼈도 남지 않았어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입니다.
불에 타서 순교 당한 성도들도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바다에 빠져 고기밥이 되었더라도,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 것입니다.
임종 시에 암을 비롯하여 온갖 병으로 썩고 냄새나는 몸으로 돌아가셨더라도, 광채 나고 향내 나는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4.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썩는 것도 없고 죽는 것도 없습니다.
본문 53절에,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For this perishable must put on the imperishable, and this mortal must put on immortality)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생성과 변화와 성장이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영원함이 있습니다.
즉, 해와 같은 영광을 가진 분은 영원토록 해같이 빛날 것이고, 별과 같은 영광을 가진 분은 별같이 영원토록 빛날 것입니다.
별들도 큰 별과 작은 별의 차이가 많으므로, 각 사람이 받아 누리는 영광도 차이가 다양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오직 이 세상에서 기회 있을 때, 주님의 일에 충성하여,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큰 영광을 차지하시기 바랍니다!
군인들이 진급할 수 있는 기회는 현역으로 있을 때뿐입니다.
예편하면, 더 이상 진급이 없습니다.
학생들이 공부하여, 높은 직장을 얻는 기회도 학생 시절뿐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 나라에서 받아 누릴 영광의 상급도 이 세상에서 얼마나 주님께 충성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주님께 충성하고, 복음 전도하고, 서로 열심히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2장에는, 두 종류의 종이 나오는데, 충성하여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는 종과, 서로 싸우고 방탕하다가 심판받는 종이 나옵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의 말씀대로, 무엇보다도 서로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습니다.
55절.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Death, where is your victory? Death, where is your sting?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ποῦ σου, θάνατε, τὸ νῖκος;
where of you, death, the victory ?
동사가 없으나 옳은 번역입니다.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ποῦ σου, θάνατε, τὸ κέντρον;
where of you, death, the sting ?
동사가 없으나 옳은 번역입니다.
56절.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 sting of death is sin, and the power of sin is the law;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τὸ δὲ κέντρον τοῦ θανάτου ἡ ἁμαρτία,
the now sting of death the sin
동사가 없으나 옳은 번역입니다.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ἡ δὲ δύναμις τῆς ἁμαρτίας ὁ νόμος·
the now power of the sin the law
동사가 없으나 옳은 번역입니다.
1. 모든 사람은 죄 때문에 죽습니다. 죽은 다음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심판은 율법에 의해서 심판합니다.
사람은 일생 동안 죽음이 무서워서 종노릇 합니다.
왜 죽음이 무섭습니까?
그것은 죽음 다음에 죄에 대한 심판을 율법에 따라서 받기 때문입니다.
사망 다음에 죄에 대한 심판이 없다면, 사망이 무섭지 않습니다.
2. 사망에는 죄라는 쏘는 침이 달려 있습니다.
왕벌이 왜 무섭습니까?
쏘는 침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왜 전갈이 무섭습니까?
꼬리에 쏘는 침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사망이 무서운 것은 잠자는 것 같은 사망 자체보다도,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죄의 쏘는 것 때문에 무섭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죽음 뒤에 죄로 인한 무서운 심판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죽음을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모든 죄 용서를 받은 성도는 사자같이 담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죽음은 조용히 잠자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7:60, 살전 4:13)
편히 쉰다고도 했습니다. (이사야 57:2, 히브리서 4:10)
3.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망의 두려움에서 해방되고, 사망의 쏘는 죄와 심판에서 벗어났습니다.
히브리서 2:14-15.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모양으로 혈육을 가진 인간이 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라.
57절.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과 심판을 이김으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5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thanks be to God, who gives us the victory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τῷ δὲ Θεῷ χάρις, τῷ διδόντι ἡμῖν τὸ νῖκος,
to but God thanks, the (One) giving us the victory,
직역하면 ‘그러나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는 뜻입니다.
‘주시는’(διδόντι)은 현재분사로서(giving) 주고 계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διὰ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through the Lord of us Jesus Christ
1. 수 많은 성도들이 임종 시에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기쁘게 죽은 사례가 아주 많습니다.
바울 사도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했습니다.
(1) 무디는 별세하면서, 땅은 물러가고, 하늘이 열린다“고 했습니다.
성도의 죽음은 사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망>이란 죽음 후에 지옥으로 망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죽음 후에 오히려 하늘나라에 가기 때문에, <별세>라든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해서 <소천>이라고 합니다.
(2) 요한 웨슬레는 “가장 좋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이로다”
(3) 요한 낙스는 “사람들이여, 그리스도 안에서 사시오. 그러면 이렇게 죽음이 두렵지 않다오”
(4) 루터는 “우리 하나님에게서 구원이 오도다. 주님의 손에 내 영혼을 맡기나이다”
(5) 요한 번연은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를 위하여 울라.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노라. 나는 새 노래를 부르며 영원토록 살리라”.
(6) 김활란 박사는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장례식 때, 춤추고 장구치고, 하나님을 찬양하라”.
수없이 많은 분들의 간증이 있으나, 유명한 몇 분들의 말씀만 소개드렸습니다.
(7) 저도 목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성도님들의 장례를 치렀지만, 어떤 분은 내 품에 안겨서 찬송부르다가 웃음을 웃고 천사에게 들려 천국으로 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죽을 때 보면 압니다.
예수님을 정말 제대로 믿었는지, 아닌지.
예수님을 제대로 믿지 않는 분들은 죽음이 무서워서, 눈을 부라리고, 몸을 부들부들 떨고, 사지가 뻣뻣하게 굳어지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분들은 돌아가시면서도, 얼마나 웃음과 평안과 감동을 주시는지, 정말 은혜스럽습니다!
여러분들 돌아가실 때 한 번 봅시다!
58절. 그러므로, 성도님들은 부활의 확신을 가지고, 내세의 천국 생활과 상급을 위해서, 더욱 주의 일에 충성하시라는 말씀입니다.
58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refore, my beloved brethren, be steadfast, immovable, always abounding in the work of the Lord, knowing that your toil is not in vain in the Lord.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Ὥστε, ἀδελφοί μου ἀγαπητοί,
therefore brothers of me beloved,
견실하며
ἑδραῖοι γίνεσθε,
steadfast be
직역하면 ‘견실하게 되어라’는 뜻입니다.
즉 동사(γίνεσθε)는 현재 명령형입니다(be).
흔들리지 말고
ἀμετακίνητοι,
immovable
동사가 없으나 앞의 동사(되어라:γίνεσθε)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περισσεύοντες ἐν τῷ ἔργῳ τοῦ Κυρίου πάντοτε,
abounding in the work of the Lord always
직역하면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면서’란 뜻입니다.
즉 동사(περισσεύο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abounding: being over) ‘더욱 힘을 기울이면서’란 뜻입니다.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εἰδότες ὅτι ὁ κόπος ὑμῶν οὐκ ἔστιν κενὸς ἐν Κυρίῳ.
having known that the toil of you not is in vain in Lord
이것도 직역하면 ‘너희들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는 것을 알면서’란 뜻입니다.
즉 맨 앞의 동사(εἰδότες)는 완료 분사로서(having known) ‘이미 알고 있으면서’를 뜻합니다.
‘헛되지 않은 줄’에서 동사(ἔ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is).
1. 앞에서 설명드린대로, 예수 믿은 성도들은 천국 구원이 확실합니다.
2. 이 몸이 죽더라도, 번데기가 껍질을 벗듯이, 예수님 재림 때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습니다.
3. 그런데, 천국에서 상급과 영광이 차이가 납니다.
해와 별들의 영광이 차이가 많이 납니다.
4. 그러므로, 살아생전에 주님의 일에 더욱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1) 복음 전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2)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3) 무엇보다도 서로 사랑하며,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님들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활과 천국을 믿으시고,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살 동안에, 더욱 주님의 일에 충성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