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옮겨 온 글 ㅡ
한국의 근대적인 역사 서술은 일본 학자들의 손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이 가슴 아픈 일이다. 조선이 어떻게 이렇게 무기력하게 망할 수 있었을까, 이런 느낌을 누구나 한 번쯤 가져봤을 것이다.
황태연은 그 점을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누락시켰고 해방 이후 한국 학자들도 눈치 채지 못했던 두 개의 사건을 복원해냈다.
1894년의 갑오왜란과 1904년의 갑진왜란이다.
한문ㆍ영어ㆍ독일어ㆍ불어ㆍ러시아어 등 외국어에 능한 장기를 살렸다.
“조선은 1894년의 갑오왜란으로 멸망했고, 대한제국은 1904년의 갑진왜란으로 멸망했습니다. 이 두 왜란이 그동안의 역사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러는 사이 두 번의 멸망만 눈에 들어올 뿐이고, 의병전쟁과 광복전쟁을 통해 치열하게 항거하며 승리한 두 번의 부활은 보지 못했습니다.”
1894년 6월 갑오왜란 때 침입했다가 명성황후 시해에 분노한 백성들의 무장봉기와 고종의 아관망명으로 일시 퇴각했던 일본군은 1904년(갑진년) 2월 다시 침입해 한반도 전역을 점령했다. 일제의 전면 침공에 국군과 민군(의병)이 힘을 합쳐 전국 각지에서 6년간 처절한 ‘국민전쟁’을 벌이며 저항했다. 그때 패배했다고 대한제국 국군을 오합지졸로 깔보지 말라고 저자는
말한다.
1901년 이미 한국군은 일제 외에 아시아 어떤 나라도 갖지 못한 3만 대군의 ‘신식 군대’였고, 을사늑약(1905년) 이후 3만 국군과 민군이 합쳐 조직된 국민군은 14만1815명에 달했다.
청군과 러시아군을 이긴 일본군에 맞서 싸움을 싸움답게 해본 군대는 훗날 미군을 제외하고 대한제국의 국민군밖에 없었는데 이런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있다.
황 교수의 책은 지적 희열과 도덕적 의미와 함께 우리 근사의 은폐된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대한제국은 무기력하기는 커녕 오히려 당대 아시아 2위의 경제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었음을 국내외 기록과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입증한다.
또 구본신참(舊本新參)의 개혁노선으로 독자적인 근대화(광무개혁)에 성공하면서 근대적 신분해방의 ‘민국(民國ㆍ백성의 나라)’이었음도 흥미진진하게 확인시켜준다. 올해가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해 보인다.
[출처: 중앙일보] 대한제국은 무기력하게 망하지 않았다
대한제국과 고종이 정말로 부끄러운 역사, 부끄러운 군주였는지 돌아보게 하는군요.
많은 사실을 잘못 알고 잘못 해석해서 선조들을 노력을 폄훼하고 부끄러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당하게 선조들을 욕한 우리 자신들을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요?
결국엔 망한 왕조이기 때문에 과정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우리 선조들을 욕하고 부끄러워합니다
그리고 일본은 그런 허점을 이용해 조선은 어짜피 망할 왕조였고 한민족은 형편없는 민족이었다고
끊임없이 일제 식민사관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망했던 왕조라도 과정이 중요합니다. 망하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그럼에도 망한 역사와 처음부터 부패, 무능해서 망한 역사와는 역사에 대한 태도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망한 조선, 대한제국이라도 역사의 운명을 개척하려고 했던 우리 선조의 노력을
제대로 알고, 평가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후손이 선조와 우리 역사에 대한 올바른 자세이며 태도입니다
" 조선은 내부에서 썩어 문드러져 망했다는 친일파 후손
정진석 용산 대통령비서실장의 말과는 대비되는 자료다.
일본에 비행기를 헌납한 친일파 할아버지의 손자 정진석은 지금도 조선을 비하하고 있다. 그렇게 밀해 친일 행적을 정당화시키려 하고 있다.
1905년 필립핀은 미국이 먹고 일본은 조선을 먹는다는 미일의 가스라 테프트 비밀계약에 의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에 힘을 얻은 일본의 강탈로 조선은 수치를 안고 무너졌다.
이런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