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오성산(五聖山) 전설 과 오선위기(五仙圍碁) 바둑판
들어가는 말
상제님(上帝任)의 공사(公事)는 세운공사(世運公事)와 교운공사(敎運公事)의 2대 축(軸)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은 상제님(上帝任)을 믿으시는 도생(道生)님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상제님 세운공사(世運公事)의 핵심(核心)은 바둑판, 오선위기(五仙圍碁) 도수(度數)의 단주수명(丹朱受命)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후비님 또한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보셨는데, 지금까지 우리는 후비(后妃)님의 교운공사(敎運公事)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오성산(五聖山)에 오기 전에는 후비(后妃)님의 교운공사(敎運公事)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후비(后妃)님의 교운공사(敎運公事)는 상제(上帝)님 세운공사(世運公事)의 오선위기(五仙圍碁) 바둑판과 관련(關聯)이 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자신이 속한 교파를 초월해서, 오성산(五聖山)의 의미와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고 보입니다.
<선도신전경>에서,
이곳이 오성산(五聖山)이니 오선위기(五仙圍碁) 도수(度數)를 끌어다가 이곳에 붙여 쓰니라.
후비님의 교운공사의 결론은 상제님 세운공사의 결론과 같은 방향성(方向性)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상제님(上帝任)의 오성산(五聖山)에는 다섯 사람이자, 다섯 성인(聖人)인 오성(五聖), 또 다섯 노인(老人)인 오노(五老)가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아래는 이에 대한 상제님의 말씀을 소개하고,
또 이해를 돕고자 오성산(五聖山) 전설(傳說)에 대한 자료 소개(紹介)하고자 합니다.
#1 상제님의 다섯 사람, 다섯 성인(聖人), 다섯 노인(老人)에 관한 말씀
<대순전경>
8.하루는 임피 오성산(五聖山)에 가셔서 세상이 칭찬 할만한 곳이라하시니라
<대순전경>에서,
내가 출세할 때에는 대두목이라도 다섯 사람 데리고 따르기가 어려우리니 희귀하다는 희(稀) 자가 ‘드물 희’ 자니라.
{ 대두목은 후비님이고, 다섯 사람은 오성인(五聖人)을 말씀하신 것이고, 따르기 어렵다는 것은 아무리 의리 있는 사람이라도 죽음까지 함께하지 못하는 법으로 선화(仙化)하시게 됨을 말씀한 것이고, 희귀(稀貴)란 드물지만 매우 귀(貴)한다는 뜻이다.}
<대순전경>에서,
경석을 데리고 물방앗집을 떠나 정읍으로 가실 때 원평에 이르사 군중을 향하여 가라사대 이 길은 남조선(南朝鮮) 뱃길이니 짐을 채워야 떠나리라 하시고 술을 나누어 주시며 또 가라사대 이 길은 성인 다섯을 낳는 길이로다 하시니 모든 사람은 그 뜻을 알지 못하더라
{ 상제님은 이종사촌인 차경석 종도님을 통하여 정읍에서, 후비님을 소개받게 됩니다 }
<대순전경>에서,
하루는 종도들에게 옛글 한수를 외워 주시며 잘 기억하여 두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三人同行七十里(삼인동행칠십리)
五老峰前二十一(오로봉전이십일)
七月七夕三五夜(칠월칠석삼오야)
冬至寒食百五除(동지한식백오제)"
#2 오성산 전설
<디지털군산문화대전>에서,
『오성산 전설』은 1989년 8월 20일 군산시 성산면 성덕리의 고재준에게서 채록되었다.
2000년에 간행된 『군산 시사』에 채록된 내용이 전하고 있다.
[내용]
당나라 소정방이 신라 김유신 장군과 연합해서 30만 군대를 이끌고 백제군을 치기 위해 군산 앞바다 천방산 기슭에 이르자 갑자기 안개가 끼어 지척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상륙하여 천방산 계곡에 이르니 천방사라는 사찰이 있어서 찾아가니 한 도승이 있었다.
소정방이 칼을 뽑아들고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도승더러 네가 우리를 방해하기 위해서 도술을 부려 안개가 끼게 한 게 아니냐면서 목을 치려고 하자 안개가 그치게 하는 비법을 알려주었다.
소정방은 다시 군대를 이끌고 금강을 거슬러 오르자 다시 안개가 끼어서 한 치 앞도 헤쳐 나갈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배를 연안에 정박해두고 산에 올라가 보니, 다섯 사람의 신선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소정방은 선인들에게 달려들어 너희들이 도술을 부려서 안개를 끼게 한 게 아니냐면서 칼을 뽑아들고 목을 치기 전에 안개를 걷히게 하는 비법을 알려달라고 호통을 쳤지만 끝내는 묵묵부답으로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이때 괘씸하게 여긴 소정방은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내려치자 다섯 성인은 장렬하게 죽고 말았다.
인근 성산 주민들은 시신을 거두어 묘를 써주고 그 넋을 위로해 주는 뜻에서 추모비를 세우고 춘추로 제사를 지내고 있으니 그 이름을 일러서 오성묘라고 한다.
#3 오성(五聖)과 오선위기(五仙圍碁) 에 대한 후비님 말씀
<선도신정경>에서,
9. 또 어느날 공사(公事) 후(後) 에 고후비(高后妃)께서 말씀하시니 이러하니라.
오성산(五聖山)에는 오성(五聖)이 있고
오성산(五聖山)에는 서요동(西堯洞)이 있고
오성산(五聖山)에는 사옥(士玉)재가 있지 아니하더냐 이 곳이 오성산(五聖山)에는 사옥(士玉)재가 있지 아니하더냐
이곳이 오성산(五聖山)이니 오선위기(五仙圍碁) 도수(度數)를 끌어다가 이곳에 붙여 쓰니라.
# 4 오성인(五聖人)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