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텃세 / 김석수
몇 달 동안 코로나로 수영장에 가지 못하다가 오늘 아침에 모처럼 갔다.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낮아져서 문을 열었다. 오랜만에 방생한 물고기처럼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다. 오리발을 차고 부드러운 물살을 가르니 기분이 상쾌하다. 이렇게 신나게 운동하고 나면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볍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에 일주일에 한두 번은 갔다. 한 주일 수영하지 못하면 몸이 찌뿌둥하고 근질근질하다. 오래간만이라 예전 생각이 났다.
나는 여러 군데 돌아가면서 간다. 왜냐하면 주말에만 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수영장 관리가 잘 되고 있고 물이 좋은지 알고 싶어서다. 수영 매너나 문화도 궁금하다. 그날도 시내에서 꽤 알려진 곳으로 갔다. 가볍게 몸을 씻고 준비 운동을 하고 사람이 많이 없는 레인으로 들어갔다. 자유형으로 힘차게 왔다갔다하는데 중년 여자가 갑자기 내 몸을 밀치며 다른 곳으로 나가라고 했다. 한 방 얻어맞은 것처럼 얼떨떨했다. 일단 멈추고 물안경을 벗었다. 레인 안내 표지판을 보니 ‘자유수영’이라고 적혀 있었다. 물안경을 다시 쓰고 하던 대로 계속했다.
갑자기 뒤로 감기는 내 발목을 잡아당겼다. 엉겁결에 물을 먹고 기침을 했다. 정신을 차리고 큰소리로 오늘은 일요일이라 자유 수영하는 날이 아니냐고 했다. 그녀는 막무가내로 이 레인은 회원들만 하는 곳이니 나가라고 했다. 다른 곳은 사람들이 많아 북적거리고 이곳은 고작 네 명뿐이다. 나는 못 간다고 계속 버텼다. 양보하고 싶었지만 그녀 행동이 무례하고 불쾌해서 화가 났다. 문제삼으려다 참기로 했다. 먼저 사과하고 정중하게 나오면 비켜 주어야지 하면서 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네 명의 여자가 두 명씩 양 옆으로 서서 내게 물장구쳐서 방해했다. 나는 아랑곳없이 숨을 몰아쉬며 계속 수영을 했다. 끝까지 버텨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들은 그 방법으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내 앞을 가로 막으며 다짜고짜로 덤벼들면서 욕을 퍼부었다. 말로 대적하면 못 이길 것 같아 대꾸하지 않았다. 큰소리가 나니까 안전요원이 다가왔다.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내 말이 맞지만 그 아줌마들이 터줏대감이니 양보하고 다른 레인으로 가라고 권했다. 나는 차별하면 안 된다며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자유 수영하는 날이고 모든 레인을 이용할 수 있는데 어느 특정인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들은 매주 주말에 모여 다른 사람은 못 들어오게 하고 네 명이 한 레인을 차지해서 여러 사람과 다툼이 종종 있어왔다. 시설 관리자에게 허락받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하는 것이다. 다른 곳은 사람들이 많아 발에 치이고 머리를 부딪치기도 한다. 대부분 수영장은 주말에 강습하지 않고 자유수영과 상급, 중급, 기초반 표지판을 세워 둔다. 하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상대방 불편은 무시하고 자기들만의 특권을 주장하면서 즐기고 있다. 마치 한여름에 시원한 계곡에 가면 좋은 곳을 먼저 차지하고 자리세를 내라고 하는 사람처럼 얼토당토않게 주장을 한다.
대응하지 않고 물세례를 받아가며 계속 헤엄치면서 물러나기를 기다렸다. 한참 지나니 물소리가 나지 않고 조용했다. 내 성미에 지쳐서 그들이 밖으로 나갔다. 샤워장에 갔더니 환갑이 넘게 보이는 남자가 내게 정말 대단하다고 했다. 그도 여러 번 말다툼을 했지만 이기지 못했다면서 주말에 수영장을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지만 계속 참아 왔다고 했다. 옆에 있던 중년 남자도 그 여자들 고집이 세서 수영장 관리하는 사람도 제지하지 못하더라고 했다.
우리 사회는 정치 의식은 높지만 생활 민주화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다른 사람 처지는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내세우기 십상이다. 수영장뿐만 아니라 직장과 가정에서도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 물론, 그들에게 했던 내 행동이 잘했던 것은 아니다. 양보하고 다른 레인으로 갔으면 수영하는 동안 조금 불편했지만 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게도 잘못이 있고 수영장 운영도 문제다. 수준별로 규칙을 정해서 엄격하게 했으면 그런 사람들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언젠가 그들을 다시 보면 서로 차별하지 말고 함께 하자며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