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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The protective use of force> 보호를 위해 힘을 쓰기
When the use of force is unavoidable 힘을 사용해야 할 때
When two disputing parties have each had an opportunity to fully express what they are observing, feeling, needing, and requesting - and each has empathized with the other-a resolution can usually be reached that meets the needs of both sides. At the very least, tue two can agree, in goodwill, to disagree. In some situations, however, the opportunity for such dialogue may not exist, and the use of force may be necessary to protect life or individual rights. For instance, the other party may be unwilling to communicate, or imminent danger may not allow time for communication. In these situations, we may need to resort to resort to force. If we do, NVC requires us to differentiate between the protective and punitive uses of force 갈등을 겪고 있는 두 사람이 각자의 관찰과 느낌, 그리고 욕구와 부탁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고, 또 서로 공감하면 들어줄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면 대개 모두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해결방법을 찾아갈 수 있다. 아니면 적어도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기꺼이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이 같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거나 개인의 권리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상대가 대화할 의사가 없든가, 위험이 임박하여 대화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이다. 힘을 사용하기로 선택했을 때 NVC에서는 그것이 보호를 위한 것인지 처벌을 위한 것인지를 분명히 구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The thinking behind the use of force 힘을 사용할 때, 그 뒤에 있는 의도
The intention behind the protective use of force is to prevent injury and justice. The intention behind the punitive use of force is to cause individuals to suffer for their perceived misdeeds. When we grab a child who is running into the street to prevent the child from being injured, we are applying protective force. The punitive use of force, on the other hand, might involve physical or psychological attack, such as spanking the child or saying, "How could you be so stupid! You should be ashamed of yourself!" 보호를 위해 힘을 사용할 때, 그 의도는 사람이 다치거나 불법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반면에 처벌을 위해 힘을 쓸 때, 그 의도는 우리가 나쁘다고 보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려는 것이다. 차도로 뛰어드는 어린이를 다치지 않도록 얼른 잡아챘을 때 우리는 보호를 위한 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처벌을 위한 힘의 사용은 신체적 공격이나 심리적 비난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이 아이를 때린다거나, ‘너 왜 이렇게 바로 같아! 한심한 것! 과 같은 말로 질책을 하는 것이다.
The intention behind the protective use of force is only to protect, not to punish, blame, or condemn. 보호를 위해 힘을 사용하는 의도는 오직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비판하거나 처벌하거나 나무라기 위해서가 아니다.
When we exercise the protective use of force, we are focusing on the life or rights we want to protect, without passing, judgment on either the person or the behavior. We are not blaming or condemning the child who rushes into the street; our thinking is solely directed toward protecting the child from danger. (For application of this kind force in social and political conflicts, see Robert Irwin's book, Building a Peace System.) The assumption behind the protective use of force is that people behave in ways injurious to themselves and others due to some form of ignorance. The corrective process is therefore one of education, not punishment. 보호를 위해 힘을 쓸 때는 사람이나 그의 행동을 판단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보호하려는 생명이나 인권에 초점을 둔다. 차도에 뛰어든 아이를 야단치거나 벌하는 대신 아이를 보호하겠다는 의도에만 초점을 두는 것이다. (사회·정치적 갈등에서 이런 힘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로버트 어윈의 책 <비폭력적 사회방어>를 참조) 보호를 위해 힘을 사용할 때 그 뒤에 있는 생각은 사람들이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일종의 무지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처벌이 아니라 교육이다.
Ignorance includes (1) a lack of awareness of the consequences of our actions, (2) an inability to see how our needs may be met without injury to others, (3) the belief that we have the right to punish or hurt others because they "deserve" it, and (4) delusional thinking that involves, for example, hearing a voice that instructs us to kill someone. Punitive action, on the other hand, is based on the assumption that people commit offenses because they are bad or evil, and to correct the situation, they need to be made to repent. 무지의 형태를 다음과 같은 것들을 포함한다. (1) 우리 행동의 결과에 대한 인식 부족 (2)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우리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3) 다른 사람들이 벌을 받아야 ‘마땅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처벌하고 고통을 줄 ‘권리’가 있다는 신념 (4) 망상적인 생각(예를 들어 누군가를 죽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반면에 처벌을 위해 힘을 사용할 때 그 배경에는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그들이 나쁘거나 악하기 때문이므로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이 뉘우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Their "correction" is undertaken through punitive action designed to make them (1) suffer enough to see the error of their way, (2) repent, and (3) change. In practice, however, punitive action, rather than evoking repentance and learning, is just as likely to generate resentment and hostility and to reinforce resistance to the very behavior we are seeking. 따라서 처벌을 통해서 사람을 바로 잡으려 할 때는 다음과 같은 의도가 있다. (1)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만큼 고통을 받으면 (2) 뉘우치게 되어 (3) 사람이 변하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처벌을 위해 힘을 쓰는 것은 뉘우침이나 교훈보다 오히려 원한과 적의를 일으켜서 우리가 원하는 그 행동 자체에 대한 저항을 강화시킬 뿐이다.
Types of Punitive Force 처벌을 위한 사용하는 힘의 유형
Physical punishment, such as spanking, is one punitive use of force. 종아리를 때리는 것과 물리적 벌은 처벌을 위해 힘을 사용하는 한 유형이다.
I have found the subject of corporal punishment to provoke strong sentiments among parents. Some adamantly defend the practice, referring to the Bible: "Spare the rod, spoil the child. It's because parents don't spank that delinquency is now rampant." Fear of corporal punishment obscures children's awareness of the compassion underlying their parents' demands. Punishment also includes judgmental labeling and the withholding of privileges. 나는 아이를 체벌하는 문제가 부모들에게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안다. 어떤 이들은 매를 아껴라. 아이를 망친다. 라는 성서 구절을 인용하며 요즘 아이들 사이에 비행이 만연하게 된 것은 부모들이 매를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고 체벌을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아이들은 처벌 자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 이면에 있는 부모의 사랑을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판단하는 말로 꼬리표를 붙이거나 혜택을 거두는 것도 처벌에 해당된다.
They are persuaded that spanking our children shows that we love them by setting clear boundaries. their parents are equally insistent that spanking is unloving and ineffective because it teaches children that, when all else fails, we can always resort to physical violence. My personal concern is that children's fear of corporal punishment may obscure their awareness of the compassion that underlies parental demands. Parents often tell me they "have to" use punitive force because they see no other way to influence their children to do "what's good for them." 아이를 때리는 것은 행동의 한계를 분명히 정해줌으로써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또 다른 부모들은 아이를 때리는 것이 결코 사랑은 아니며, 효과를 거두기도 어렵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다른 방법을 모를 때를 폭력을 써도 된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우려하는 것은 아이들이 처벌 자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부모의 요구 뒤에 있는 사랑을 이해하기 어렵게 돤다는 점이다. 부모들은 종종 아이에게 처벌을 위한 힘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자신들에게 유익한 행동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만들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They support their opinion with anecdotes of children expressing appreciation for "seeing the light" after having been punished. Having raised four children, I empathize deeply with parents regarding the daily challenges they face in educating children and keeping them safe. This does not, however, lessen my concern about the use of physical punishment. 또 어떤 부모는 아이가 매를 맞은 뒤에 ‘깨우쳤다’며 고마워했다는 일화를 들어가면서 자신들의 생각이 맞다고 주장한다. 나도 네 명의 아이를 키워봐서 부모들이 매일 아이들을 가르치고 안전하게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깊이 공감한다. 그래도 체벌에 대한 나의 우려는 줄어들지 않는다.
First, I wonder whether people who proclaim the success of such punishment are aware of the countless instances of children who turn against what might be good for them simply because they choose to fight, rather than succumb, to coercion. Second, the apparent success of corporal punishment in influencing a child doesn't mean that other methods of influence wouldn't have worked equally well. 먼저, 나는 궁금하다.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을지에 대해, 그런 체벌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을지에 대해 궁금하다. 수많은 어린이들의 사례를. 그 어린이들은 반항하기로 선택한다. 반항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들에게 더 좋을지도 모르는 것들에 대해. 체벌로 위협 당했을 때 싸우기로 선택한다. 굴복하기 보다는. 둘째, 체벌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데 효과를 보였다고 해서 다른 방법이 효과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Finally I share the concerns of many parents about the social consequences of using physical punishment. When parents opt to use force, we may win the battle of getting children to do what we want, but, in the process, are we not perpetuating a social norm that justifies violence as a means of resolving differences? In addition to the physical, other uses of force also qualify as punishment. One is the use of blame to discredit another person; for example, a parent may label a child a "wrong," "selfish," or "immature" when a child doesn't behave in a certain way. Another form of punitive force is the withholding of some means of gratification, such as parents' curtailing allowances or driving privileges. In this vein, the withdrawal of caring or respect is one of the most powerful threats of all. 마지막으로 나는 체벌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는 많은 부모들과 같은 생각이다. 체벌을 썼을 때 부모가 원하는 대로 아이들이 행동하게 하는 전쟁은 이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부모는 차이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사회를 영속시키고 있는 것은 아니겠는가? 물리적인 것 말고도 다른 형태의 힘을 사용하는 처벌도 있다. 아이들이 부모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했을 때 부모가 아이들에게 ‘나쁘다’, ‘이기적이다’, 또는 ‘철이 덜 들었다’ 는 등의 꼬리표를 붙여 비난하거나 수치심을 갖게 하는 것도 처벌의 한 형태이다. 또 다른 처벌은 용돈을 줄인다든가 자동차 운전을 못 하게 하시는 식으로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이 중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위협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사랑이나 보살핌, 존중하는 자세를 거두는 것이다.
The Costs of Punishment 처벌의 대가
When we submit to doing something solely for the purpose of avoiding punishment, our attention is distracted from the value of the action itself. Instead, we are focusing upon the consequences, on what might happen if we fail to take that action. If a worker's performance is prompted by fear of punishment, the job gets done, but morale suffers; sooner or later, productivity will decrease. Self-esteem is also diminished when punitive force is used. f children brush their teeth because they fear shame and ridicule, their oral health may improve but their self-respect will develop cavities. Furthermore, as we all know, punishment is costly in terms of goodwill. The more we are seen agents of punishment, the harder it is for others to respond compassionately to our needs. I was visiting a friend, school principal, at his office when he noticed through the window a big child hitting a smaller one. "Excuse me," he said as he leapt up and rushed to the playground. 우리가 단지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감수한다면 우리 관심의 초점은 그 일 자체가 가진 가치에서 멀어진다. 대신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따를 것이냐에 더 큰 관심을 두게 된다. 만약 어떤 직원이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일을 한다면 밑은 일은 하겠지만 사기는 떨어지고 언젠가는 생산성도 떨어질 것이다. 처벌이 사용되는 곳에서는 자존감도 떨어진다. 만약 아이들이 창피를 당하고 놀림을 받을까 봐 두려워 이를 닦는다면, 치아 건강은 좋아질 수 있겠지만 아이들의 자존심에는 충치가 생길 것이다. 더욱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처벌은 좋은 인간관계에도 큰 대가를 치른다. 다른 사람들이 벌을 내리는 대리인으로 볼수록, 그들이 우리가 원하는 것에 연민으로 반응하기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친구가 교장으로 있는 초등학교를 방문했을 때 있었던 일이다. 운동장에서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때리는 모습이 교장실 창문 너머로 보였다. 교장은 잠깐만 하면 벌떡 일어나더니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Grabbing the larger child, he gave him a swat and scolded, "I'll teach you not to hit smaller people!" When the principal returned inside, I remarked, "I don't thing you taught that child what you thought you were teaching him. I suspect what he learned instead was not to hit people smaller than he is when somebody bigger-like the principal-might be watching! If anything, it seems to me that you have reinforced the notion that the way to get what you want from somebody else is to hit them." In such situation, I recommend first empathizing with the child who is behaving violently. For example, if I saw a child hit someone after being called a name, I might, "I'm sensing that you're feeling angry because you'd like to be treated with more respect." If I guessed correctly, and the child acknowledges this to be true, I would then continue by expressing my own feelings, needs, and requests in the situation without insinuating blame: "I'm feeling sad because I want us to find ways to get respect that don't turn people into enemies, I'd like you to tell me if you'd be willing to explore with me some other ways to get the respect you're wanting." 그는 큰 아이를 잡아서 ‘너보다 작은 아이를 때리면 어떻게 되는지 가르쳐 주마’ 하면서 그 아이의 엉덩이를 때렸다. 교장실로 돌아온 그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 그 아이는 자네가 가르치고자 한 것을 배운 것 같지가 않다. 대신 그 아이는 교장처럼 자기보다 큰 사람이 볼 것 같을 때는 작은 애를 때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운 것 같아.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서 뭔가를 원할 때에는 때려서 갖는다는 생각을 더욱 키워준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는 우선 폭력적으로 행동한 아이를 공감해주기를 권한다. 예들 들어 자기를 놀리는 아이를 때리는 아이를 봤다면, 나는 이렇게 공감하면 말할 것이다. 그 아이가 너를 좀 더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해주길 바랐기 때문에 화가 났어? 만약 내 추측이 맞아서 아이가 내 말에 수긍하면, 그 다음에는 아이를 비난하지 않으면서 이 상황에서 내가 느끼는 것, 바라는 것, 그리고 부탁하는 것을 이렇게 표현할 것이다. 나는 우리가 상대를 적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서로 존중하는 방법을 찾았으면 하기 때문에 실망했어. 네가 바라는 존중을 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나와 함께 찾아볼래?
Two questions that reveal the Limitations of Punishment. 처벌의 한계를 보여주는 두 가지 질문
Question 1 : What do I want this person to do? Question 2: What do I want this person's reasons to be for doing it?나는 이 사람이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가?
나는 이 사람이 그것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기를 바라는가?
Two questions help us see why we are unlikely to get what we want by using punishment to change people's behavior. The first question is: What do I want this person to do that's different from what he or she is currently doing? If we ask only this first question, punishment may seem effective, because the threat or exercise of punitive force may well influence someone's behavior. However, with the second question, It becomes evident that punishment isn't likely to work: what do I want this person's reason to be for doing what I'm asking? 다음 두 질문은 처벌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바꾸려 할 때 우리가 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첫 번째 질문은, ‘나는 이 사람이 지금 하는 있는 것과 다른 어떤 행동을 하기 원하는가? 이다. 만약 우리가 이 질문만 한다면 처벌이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일 수 있다. 처벌이나 위협은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으로 처벌이 효과가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내가 부탁하는 것을 이 사람이 하는 이유가 무엇이기를 바라는가?
We seldom address the latter question, but when we do, we soon realize that punishment and reward interfere with people's ability to do things motivated by the reasons we'd like them to have. I believe it is critical to be aware of the importance of people's reasons for behaving as we request. For example, blaming or punishing would obviously not be effective strategies, if we want children to clean their rooms out of either a desire for order or a desire to contribute to their parents' enjoyment of order. Often children clean their rooms motivated by obedience to authority ("Because my Mom said so", avoidance of punishment, or fear of upsetting or being rejected by parents. NVC, however, fosters a level of moral development based on autonomy and interdependence, whereby we acknowledge responsibility for our own actions and are aware that our own well-being and that of others are one and the same. I'd like to describe how some students and I used protective force to bring order into a chaotic situation at an alternative school. 우리는 두 번째 질문은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그것은 상과 벌이 우리가 원하는 동기에서 사람들이 행동하는 능력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우리가 부탁하는 대로 행동할 때 그 동기가 무엇인지 의식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비난이나 처벌은 분명히 효과적인 전략이 아닐 것이다. 만약 우리가 다음과 같이 원한다면, 아이들이 그들의 방을 깨끗이 청소하는 것은. 그 이유가 명령을 따르기를 원해서 라든가, 명령을 따르기를 원하는 부모에 대한 배려에서 <예를 들어 아이가 자기 방을 치울 때 그 행동이 스스로 깨끗한 방을 원해서거나, 그것을 원하는 부모에 대한 배려에서 나오기를 바란다면 비난이나 처벌은 효과적인 방법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종종 아이들이 방을 청소하는 이유는 권위에 대한 복종(엄마가 하라고 했으니까), 벌을 피하기 위해서, 또는 부모가 화를 낼까 봐, 아니면 부모의 미움을 사는 것이 겁이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NVC는 자율성과 동시에 상호 의존에 바탕을 둔 도덕관념이 자라도록 도와준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게 되고, 우리 자신의 행복과 다른 사람의 행복이 서로 같은 것이며 하나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다음 이야기는 한 대안학교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나와 몇몇 학생이 보호를 위한 힘을 사용하여 질서를 회복한 사례이다.
This school was designed for students who had dropped out or been expelled from conventional classrooms. The administration and I hoped to demonstrate that a school based on the principles of NVC would be able to reach these students. My job was to train the faculty in NVC and serve as consultant over the year. With only four days to prepare the faculty, I was unable to sufficiently clarify the difference between NVC and permissiveness. As a result, some teachers were ignoring, rather than intervening in, situations of conflict and disturbing behavior. Besieged by increasing pandemonium, the administrators were ready to shut down the school. When I requested to talk with the students who had contributed most to the turbulence, the principal selected eight boys, ages eleven to fourteen, to meet with me. The following are excerpts from the dialogue I had with the students. 이 학교는 일반 학교에서 자퇴했거나 퇴학당한 학생들을 위해 세워졌다. 학교 측과 나는 NVC 원리에 바탕을 둔 학교가 이런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맡은 일은 교직원들에게 NVC를 가르치고 1년간 상담사로 봉사하는 것이었다. 교직원을 훈련하는 데 주어진 시간이 단 나흘뿐이어서, 나는 교사들에게 학생들이 교칙을 어겼을 때 NVC로 대응하는 것과 묵인하는 것의 차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그 결과 어떤 선생님은 문제가 되는 행동이 벌어질 때에도 개입하지 않고 방관했다.
그러는 동안 문제가 점점 커져 거의 학교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 되었다. 내가 이 소란에 가장 많이 기여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요청을 하자, 교장은 열한 살부터 열네 살에 이르는 남학생 여덟 명을 데려왔다. 다음은 나와 이 학생들 사이에 오간 대화의 일부이다.
MBR: (expressing my feeling and needs without asking probing questions) I'm very upset about the teachers' reports that things are getting out of hand in many of the classes. I want very much for this school to be successful. I'm hopeful that you can help me understand what the problems are and what can be done about them. (상황을 알고자 하는 질문을 하지 않고 내 느낌과 욕구를 표현하면서) 나는 선생님들한테서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걱정이 됐어요. 나는 이 학교가 잘 자리 잡기를 진심으로 바라거든요. 그래서 무엇이 문제인지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분이 도와주기를 바라고, 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의견을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Will: The teachers in this school - they fools, man! 이 학교 선생님들은 그냥 다 바보들이에요!
MBR: Are you saying, Will, that you are disgusted with the teachers and you want them to change some things they do? 그러니까 윌, 너는 선생님들이 못마땅한거니? 그리고 선생님들이 좀 다르게 했으면 하고 바라는 거니?
Will: No, man, they is fools because they just stand around and don't do nothin'. 아니오,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에요. 제가 선생님들을 바보라고 한 것은요? 그저 멀뚱이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MBR: You mean you're disgusted because you want them to do more when problems happen.(This is a second attempt to receive the feelings and wants.) 그러니까 네 말은,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선생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못마땅하다는 거니? (이것은 윌의 느낌과 욕구를 이해하기 위한 나의 두 번째 시도였다.)
Will: That's right, man, No matter what anybody do they just stand there smilin' like fools. 맞아요. 선생님들은 애들이 무슨 짓을 해도 그냥 서서 바로처럼 웃기만 해요.
MBR: Would you be willing to give ma an example of how te teachers do nothing? 선생님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예를 하나 들어줄래?
Will: Easy, Just this morning a dude walks in wearin' a bottle of Wild Turkey on his hip pocket plain as day. Everybody seen it; the teacher, she seen it but sh'e lookin' the other way. 그거야 쉽죠. 오늘 아침, 한 놈이 위스키 한 병을 뻔히 보이게 뒷주머니에 넣고 교실에 들어왔는데, 모두 그걸 봤죠. 선생님도 봤고요. 그런데 그 선생님은 다른 쪽을 쳐다보더라구요.
MBR: It sounds to me, then, you don't have respect for the teachers when they stand around doing nothing. You'd like them to do something. (This is a continued attempt to fully understand.) 너는 행동을 취하지 않는 선생님을 존경하기가 힘들고 그래서 그럴 때 선생님이 단호하게 뭔가 행동해주기를 바라는 거니? (이것은 그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한 계속된 시도였다.)
Will: Yeah.
MBR: I feel disappointed because I want them to be able to work things out with students, but it sounds like I wasn't able to show them what I meant. 나는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해날 수 있기 바랐는데, 내가 그들에게 그걸 어떻게 하는 건지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쉽구나.
The discussion then turned to one particularly pressing problem: that of students who didn't want to work disturbing those who did. 거기서 이야기는 매우 시급한 문제로 넘어갔다. 그것은 공부하기 싫은 학생들이 공부하려는 학생들을 방해하고 있는 문제였다.
MBR: I'm anxious to try to solve this problem because the teachers tell me it's the one that bothers them the most. I would appreciate your sharing whatever ideas you have with me. 선생님들이 이 문제가 제일 힘들다고 내게 말했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꼭 해결하고 싶어요. 그래서 이 문제에 관해 여러분이 가진 생각을 나누어 주면 고맙겠어요.
Joe: The teacher got to get a rattan(a stick covered with leather that was carried by some principals in St. Louis to administer corporal punishment.). 선생님들을 매를 가지고 다녀야 해요.
MBR: So you're saying, Joe, that you want their teachers to hit students when they bother others. 조, 그러니까 너는 선생님들이 다른 학생들을 방해하는 아이들을 때려야 한다는 거니?
Joe: That's the only way students gonna stop playing the fool. 말썽을 일으키는 애들한테는 그 방법밖에 없어요.
MBR: (still trying to receive Joe's feelings) So you doubt that any other way would work. (조의 느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그렇다면 너는 다른 방법은 효과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니?
Joe: (nods agreement)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한다.)
MBR: I'm discouraged if that's the only way. I hate that way of settling things and want to learn other ways. 그 방법밖에 없다면 정말 실망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말 싫어서 다른 방법을 찾고 싶은 데.
Ed: Why?
MBR: Several reasons. Like if I get you to stop horsing around in school by using the rattan, I'd like you to tell me what happens if there or four of you that I've hit in class are out by my car when I go home. 이유가 몇 가지 있지. 매를 사용해서 너희들이 말썽을 일으키지 않게 되었다고 하자. 그런데 수업 중에 나에게 맞은 애들이 내가 퇴근할 때 주차장에서 기다린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겠니?
Ed: (smiling) The you better have a big stick, man! 더 큰 막대기를 가지고 다니면 되죠.
MBR: (Feeling certain I understood Ed's message and certain he knew I understood, I continue without paraphrasing it.) That's what I mean, I'd like you to see I'm bothered about that way settling things. I'm too absentminded to always remember to carry a big stick, and even if I remembered, I would hate to hit someone with it. (내가 애드의 말뜻을 이해했고 애드 또는 내 뜻을 이해했다고 확신하고) ‘바로 그거야’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런 식으로 문젱르 해결하는 걸 꺼리는 거야. 이 점을 네가 알아주었으며 좋겠다. 나는 또 잘 잊어버리는 사람이라서 그 몽둥이를 가지고 다니는 걸 자주 잊어버릴 것이고, 만약 기억한다 해도 그것을 누군가를 때리기는 정말 싫다.
Ed: You could kick the cat out of school. 그럼 그런 놈들을 학교에서 쫓아내면 되잖아요.
MBR: You're suggesting, Ed, that you would like us to suspend or expel kids from the school? 에드, 아이들을 정학이나 퇴학시키라는 말이니?
Ed: Yeah.
MBR: I'm discouraged with that idea, too. I want to show that there are other ways of solving differences in school without kicking people out. I'd feel like a failure if that was the best we could do. 그 생각도 마음에 안 드는데. 학생들을 쫓아내지 않으면서 서로의 차이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퇴학시키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면 정말 실망스러워.
Will: If a dude ain't doin' nothin', how come you can't put him in a do-nothin' room? 만약에 어떤 녀석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교실로 가게 하면 되잖아요.
MBR: Are you suggesting, Will, that you would like to have a room to send people to if they bother other students. 윌. 너는 제안하는 거니? 우리가 어떤 방을 만드는 것에 대해, 만약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을 보낼 수 있는 방.
Will: That's right. No use they bein' in class if they ain't doin' nothin'. 그렇죠.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아이가 교실에 있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MBR: I'm very interested in that idea. I'd like to hear how you think such a room might work. 흥미롭게 들리는데, 그런 방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묻고 싶은데.
Will: Sometimes you come to school and just feel evil: you don't want to do nothin'. So we just have a room students go to till they feel like doin' somethin'. 어떤 날은 학교에 왔는데; 그냥 기분이 나빠서 확 뒤집어버리고 싶은 날이 있잖아요. 그럴 때 아무 것도 하기 싫단 말이에요. 그러니깐 그럴 때는 거기에 가서 무엇인가 하고 싶을 때까지 있는 거예요.
MBR: I understand what you are saying, but I'm anticipating that the teacher will be concerned about whether the students will go willingly to the do-nothing room. 네가 말하는 건 이해하겠다만, 선생님들은 애들이 기꺼이 거기로 갈지 걱정할 것 같은데?
Will: (confidently) They'll go. (자신 있는 목소리로) 갈걸요.
I said I thought the plan might work if we could show that the purpose was not to punish, but to provide a place to go for those who werent ready to study, and simultaneously a chance to study for those who wanted to study. I also suggested that a do-nothing room would be more likely to succeed if it was known to be a product of student brainstorming rather than staff decree. 나는 이 교실의 목적이 처벌이 아니라 공부할 준비가 안 된 학생들에게는 갈 장소를 만들어 주고, 동시에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에게는 공부할 기회를 주기 위한 것임을 보일 수 있다면 잘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교실’ 을 두는 것이 선생님들이 결정한 일이 아니라 학생들에게서 나온 생각임을 알리면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으리라고 했다.
A do-nothing room was set up for students who were upset and didn't feel like doing schoolwork or whose behavior kept others from learning. sometimes students asked to go; sometimes teacher asked students to go. we placed the teacher who had best mastered NVC in the do-nothing room, where she had somke very productive talks with the children who came in. This set-up was an immense success in restoring order to the school because the students who devised it made its purpose clear to their peers: to protect the rights of students who wanted to learn. We used the dialogue with the students to demonstrate to the teachers that there were other means of resolving conflicts besides withdrawal from the conflict or using punitive force. 기분이 나빠서 수업을 들을 수 없는 학생이나 다른 학생들이 배우는 것을 방해하는 학생들이 갈 수 있도록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교실’이 만들어졌다. 때로는 학생들이 자진해서 가겠다고 했고, 또 때로는 선생님이 학생에게 가라고도 했다. 우리는 NVC를 가장 잘 배운 선생님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교실’에 배치했다. 그곳에서 선생님은 학생들과 유일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 방법은 학교의 질서를 회복하는 데 놀라운 효과가 있었다. 이 방법을 생각해 낸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에게 교실의 목적이 배우고 싶어하는 학생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사들에게 학생들과 대화함으로써 방관하거나 처벌을 위해 힘을 쓰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Summary
In situations where thee is no opportunity for communication, such as in instances of imminent danger, we may need to resort to the protective use of force. The intention behind the protective use of force is to prevent injury or injustice, never to punish or to cause individuals to suffer, repent, or change. The punitive use of force tends to generate hostility and to reinforce resistence to the ver behaviour we are seeking. Punishment damages goodwill and self-esteem, and shits our attention from the intrinsic value of an action to external consequences. Blaming and punishing fail to contribute to the motivations we would like to inspire in others. 급박한 위험 상황과 같이 대화할 시간이 없는 경우에는 보호를 위한 힘에 의존할 필요도 있다. 그럴 경우 그 의도는 누군가 다치거나 불법이 일어나는 걸 막기 위함이지,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벌을 주거나 고통스럽게 만들어 후회하게 하거나 변화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처벌을 하기 위해 힘을 사용하면 적대감을 일으키기 쉽고, 우리가 바라는 행동 그 자체에 대한 상대방의 거부감을 강화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 관심을 행동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가치에서 밖에서 오는 상과 벌로 돌려놓는다. 비난과 처벌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원하는 동기를 불러일으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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