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장로의 모 교회 사랑행전
입춘과 우수가 들어 있는 2월은 절기 상 봄을 말한다지만 날씨는 여전히 한 겨울이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 무색할 정도로 설산에서 눈 폭탄이 터지고 온 누리는 북풍한설에 영어의 몸이 되어 한껏 움츠려야 했다. 그런 시절의 바통을 받은 3월이 열리니 경칩과 춘분에는 남녘 하늘에서부터 불어올 완연한 봄바람이 마음 가득하게 기대된다. 그런데 그 기대를 꺾듯이 3월이 열리자 봄을 시샘하는 녀석이 최후 발악한다. 전국적으로 특히 강원도 산간지방에 최고 70cm의 눈 폭탄을 터트리고 수은주를 영하로 주저앉혔으니 봄을 기대하는 상춘객은 깊은 상실감에 한숨짓는다. 지난번에 내린 눈은 아직도 추위에 갇혀서 곳곳에 포로처럼 내동댕이쳐 있는데 다시 그 위를 뒤덮은 눈이라 설상가상(雪上加霜)의 진면목을 보는듯하다. 다리 다친 환자처럼 얼어붙은 거리를 엉금엉금 기어가며 무사고를 소망한다. 휴! 두껍게 쌓인 저 눈 더미를 제거할 일이 아득하여 또 한숨만 나온다. 이번 제설 작업은 봄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방금 보았던 눈밭이 사라지고 교회 마당이 깨끗해졌다. 요란하게 들리는 장비의 엔진 소리, 그 장단에 맞춰 눈 긁는 소리는 행정 기관에서의 분주한 제설 움직임이었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누군가의 선행에 내심 감사하면서 당사자의 정체가 궁금했다. 이 소리의 연주자는 바로 덕거교회 주태환(朱泰煥) 장로였다.
주 장로의 봉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말경에 영서지방을 덮쳤던 폭설 때도 그랬다. 그는 눈 내리는 날이면 분주하다. 덕거교회와 마을의 입구 등 제설이 필요한 곳에 언제나 달려가서 사고와 거동의 불편함을 덜어주었다. 그날은 굳이 3km 떨어진 봉평교회까지 장비를 몰고 와서 아무도 모르게 제설하고 갔다. 나중에 그의 선행을 확인하니까 그는 멋쩍어하며 머리를 긁는다. 그리고 이번에 또 꽃샘추위 눈 폭탄이 터지자 역시 전선으로 향하는 탱크 조종사와 같이 장비를 몰고 와서 눈과의 치열한 한판 전투를 치르고 홀연히 사라졌다. 덕분에 한낮에만 잠깐 비치는 햇살에 남아 있던 잔설마저 모두 쉽게 소탕했고 교회 마당에서 일어날 미끈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그저 하나님께 충성하는 일꾼의 심정으로 제설작업을 했다고 하지만 덕거교회 말고도 굳이 봉평교회까지 달려와 이런 봉사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의 대답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봉평교회는 내 모(母) 교회잖아요.”
주태환 장로는 2023년 제51회 평창지방회에서 은퇴하고 지금은 원로장로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젊은 날 가정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예수님을 영접하여 1982년 봉평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고 1983년 11월 27일에 한정호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즈음 덕거리에서 봉평교회까지 자전거로 혹은 걸어서 매일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던 최선명과 주태환은 덕거리에 교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교회와 상의했다. 이에 봉평교회는 덕거리 속회를 중심으로 교회 개척을 결정했다. 1985년 10월 27일 초대 담임자로 임명된 석운경(昔雲景) 전도사의 인도로 봉평교회 덕거리 기도처로 첫 예배로 모였고 이듬해 1986년 12월 27일에 평창지방회 권오현 감리사의 집례로 창립예배를 개최함으로써 덕거리교회가 정식으로 설립되었다. 1995년에 유성룡 목사가 2대 담임자로, 1996년 원창연(元昌淵) 목사가 3대 담임자로 부임하고 현재까지 담임하고 있다. 그 후 덕거교회 40년 역사에서 최선명 장로와 주태환 장로는 남다른 헌신의 본을 보였다. 1988년 12월에 권사로 임명된 주 권사는 2000년 2월 22일 진부교회에서 개최된 제28회 평창지방회(고문석 감리사)에서 신천장로 파송을 받았고 2023년 2월 18일 평창중앙교회에서 개최된 제51회 평창지방회(최승화 감리사)에서 23년 동안의 장로의 직임을 마치고 은퇴했다. 2025년 2월 22일에 봉평교회에서 개최된 제53회 평창지방회(원창연 감리사)에서 아들 주현식 권사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장로로 파송받았다. 그의 모 교회에서 아들이 장로의 직분을 받게 됨은 그 의미가 특별했다. 그에게 봉평교회는 이렇게 자신을 신앙으로 이끌어준 어머니였다. 지근거리에 있어도 방문이 쉽지 않은데 이렇게라도 모 교회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음이 그에게는 기쁨이었다. 눈이 오면 또 치우겠다는 약속은 여전히 모 교회에 대한 그만의 사랑 표현이 아닐까 싶다.
누구에게나 처음에 예수님을 믿고 출석한 교회가 있다. 그 교회가 바로 믿음의 고향교회이고 모(母) 교회다. 고향은 언제나 그리운 곳이다. 자주 찾을 수 없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는 특별히 생각난다. 일상의 분주함은 고향 방문의 걸림돌이 되지만 그럴수록 고향의 그리움은 마음 깊이 사무친다. 그 그리움이 타향의 피곤함을 해결하고 다시 삶의 힘을 얻게 한다. 고향이 주는 신비요 어머니가 주는 은혜다. 누구나 이런 교회가 있음은 행복한 성도다. 문득 고향교회에서의 부교역자 시절이 생각났다. 그 교회의 성도는 모두가 내게 부모님이고 선생님, 형님이고 누님이자 동생이다. 내가 부족해도 덮어주고 격려해 주는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천국 같은 곳이다. 거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며 목양의 발걸음을 내딛을 때가 행복했다. 그 이후 목회 여정에서 고달팠던 순간은 고향교회를 떠올리며 헤쳐 나갈 힘을 얻었다. 어쩌다가 찾아가도 고향교회는 여전히 따뜻하고 푸근했다. 모교회 사랑은 주님 사랑을 경험하는 신비가 있는 듯하다. 그 사랑이 믿음의 승리를 안겨 준다. 주 장로의 모교회 사랑 또한 그러했으리라 생각하며 주님 사랑함을 점검해 본다. “요한의 아들 시몬에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한복음 21:15).
주태환 장로와 서순복 권사
2025 3월 2일에 강원 산간 지방에 최고 70cm 내린 꽃샘 추위 폭설
모교회 사랑의 마음으로 주 장로가 트랙터를 동원하여 열심히 제설작업하고 있다.
말끔하게 치워 깨끗해진 교회 마당
꽃샘추위 폭설로 다시 변한 눈 세상 대관령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