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정선이야기32
우리나라 최고령 뽕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
문화재 안에서 차를 마시는 기분은 남달랐습니다. 잠을 자는 기분은 또 다르겠지요. 600년이 넘은 뽕나무와 고택을 감상하면서 정선의 옛 정취를 느낍니다. 바로 천연기념물 ‘정선 봉양리 뽕나무’와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상유재’ 이야기입니다.
정선군수를 지냈던 오횡묵(1834~1906)의 『정선총쇄록』(1897)에도 나옵니다. 정선 곳곳에 뽕나무와 삼이 가득하고 잘 자란다고 했습니다. 예부터 정선읍내는 상마십리(桑麻十里)라 해서, 뽕나무와 대마가 십 리를 이어 있다고 했습니다. 누에를 길러 고치를 자아 명주실로 비단옷을 만들고, 삼을 길러 삼베를 해서 옷을 해 입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명주옷과 삼베옷을 말하면, 아주 오래전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1980년대까지도 우리나라에서는 일상이었지요. 곳곳에 명주실을 만드는 제사공장(製絲工場)이 있었습니다. 나일론이 일반화하면서 일상에서 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의생활(衣生活) 중심을 이루었던 명주와 삼베가 정선지역을 대표하는 작물이었습니다. 이 중에 비단옷을 만드는 원천인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장려했던 흔적이 정선읍내 중앙에 우뚝 남아 있습니다. 마치 정선군의 지리적 표상과 같은 상징을 띠고 있습니다. 이를 근거하는 문서가 있었습니다. 바로, 정선군 근대 행정문서입니다. 이곳에는 1909년 양잠 가구 수와 면적이 기록됐는데, ‘봉양리 뽕나무’는 정선의 양잠 문화를 알려주는 자료라 했습니다. 벌써 1900년대 초에도 봉양리 뽕나무에 관한 인식이 남달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봉양리 뽕나무’는 600년 전 조선조 단종 때 호조참판을 역임했던 고순창(高順昌) 형제가 심은 나무입니다. 왜 그들은 뽕나무를 집 앞에 심었을까요. 왜 오직 뽕나무를 생각한다는 뜻의 상유재(桑惟齋)라는 편액을 걸었을까요. 아마도 실리를 추구했던 유학(儒學)의 본뜻이 담겨 있지 않았을까요. 권력자를 위해 악용하던 변질된 유학이 아닌 백성이 바탕이 된 참 유학 말입니다. 선비의 고고한 기상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굶주림 없이 따뜻하게 사는 일이잖아요. 그것도 가족들과 단란하게요. 소나무, 대나무, 회화나무 등처럼 기상이나 인물이 나기를 바라던 나무가 아닌 생활에 꼭 필요한 뽕나무였습니다.
현재 정선에서는 ‘삼굿’이 매년 남면에서 치러집니다. 삼굿처럼 정선의 상징 뽕나무와 누에치기 및 비단에 관한 문화콘텐츠 부각이 절실합니다. 봉양리 뽕나무와 문헌 기록으로 본다면 경상남도 진주의 ‘실크박물관’보다 더 상징성을 띠고 있는 지역이 정선군입니다.
정선읍 십 리 벌판을 푸르게 꾸몄던 뽕밭에서 남녀노소 아라리 부르며 덩실덩실 춤춘 사연을 ‘봉양리 뽕나무’는 알겠지요.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실감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