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생의 아픔 / 한권종
30년간의 교직 생활 중에 보람을 느끼기도 하였지만 아프고 후회스러운 기억들도 많이 있다. 그중에 특성화고등학교에 근무하게 되었을 때는 그동안의 생활과는 아주 달랐다. 이 학교에 근무하면서 느낀 것은 지금까지 이런 곳에서 고생한 선생님들 덕분에 내 교직 생활이 편했다는 사실이었다. 학생들에 의해 역사 수업 자체가 어려웠다. 신규와 기간제교사가 많았던 학교에서 경력교사로서 해야 할 일도 있었지만, 기본적인 수업조차 힘들었다.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도 지금까지 근무한 학교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고, 자기 학과와 관련이 없으면 무관심하고 갈등만 일으키는 선생님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학급 담임은 전공 교과 선생님들로 배정되지 않았고, 일반교과 선생님들이 맡아야 하는 학급이 있었다. 나도 가장 착하다는 식품 관련 학과를 맡게 되었다. 한 학생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한 것이 ‘선취업, 후진학’이라는 취지에 따라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성적으로 밀려 어쩔 수 없이 진학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해온 대로 하다 보니 어려움이 나날이 늘어갔다. 교사의 진실한 이야기도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고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여 반발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어릴 때부터 경쟁 교육에 소외된 결과가 10년이 지난 후에 나타나는 아픔이 아닐까.
어떤 일이 있어도 담임 교사로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중학교에서부터 동료 학생들에게 금품을 갈취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학생이 이었다. 친구들은 수시로 괴롭히면서 교사들의 지시는 이유 없이 반발하고 분노 조절을 하지 못하였다. 아이들도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 학생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었다. 문제가 많아 상담도 했지만 공감하는 대화는 할 수 없이 시간만 흘렀다.
학생의 문제 행동으로 학생들의 피해가 커서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 발생했다. 실습동에서 3명의 동료에게 금품을 갈취하고 자신은 외부의 조폭들이 보호해주고 있어 학교에 신고하면 보복을 하겠다고 협박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다른 문제들도 드러나게 되었고 너무 화가 나서 감옥 갈 범죄행위라고 이야기했는데 흥분한 학생이 학교 운동장에서 온갖 욕설을 하면서 돌아다녔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다가 같이 어울리는 다른 학과 학생들에 의해 해결되었다.
학교폭력으로 처벌하려는데 다음 날 할머니 한 분이 찾아왔다. 학생의 할머니였다. 공공장소에서의 기본적 예의는 없는 분이었다. 아이가 할머니를 보고 자라서 그런가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소동을 피우고 난 후에 상담실에서 대화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학교에 대한 원망이 많았다. 착한 아이인데 자기를 무시하는 선생님들로 무척 힘들어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많다고 말씀드려도 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하였다. 들으면서 알게 된 것은 아버지는 공사 현장에서 다쳐서 거동이 불편하다고 했다. 학생에게 형이 있었는데 두 형제는 어릴 때 아버지에게 자주 폭행을 당했고, 성장해서는 형에게 고통을 많이 당한다고 했다. 할머니는 자신도 좋은 할머니가 되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울었다. 아들이 다치고 며느리가 가출한 후 두 손자를 키우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마음으로는 측은하고 사랑하지만 표현하면서 살지는 못했다고 후회했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마치고 담임 의견서를 쓰게 되었다. 불우한 환경에서 의지할 곳 없이 어린 날을 보낸 아이가 자기를 인정해주는 문제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폭력에 대한 죄책감이 무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동료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면 처벌의 수위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여러 차례 학생과 대화하게 되고 지금까지 무의미한 대화와는 달리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자신을 이해해주면서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담임에게 학생은 다른 친구들에게 아픔을 주는 행동을 많이 했다고 반성하였다. 처벌을 받은 후 무사히 학교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자기에게 우호적인 친구들의 모습에 행복해하면서 나머지 학교생활을 잘하고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정말 심성이 못된 학생도 있겠지만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어느 순간 자기 처지를 이해하는 담임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던 학생은 환경적인 요소가 큰 영향을 준 느낌이었다.
새로운 환경에서의 힘든 경험은 이후 4년간의 마지막 교사 생활을 보람있게 할 수 있었으니 의미 없는 아픔은 아니었다. 누군가 해야 할 특성화고등학교 국사 교사를 나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 챙김을 많이 했던 시기이면서 깨달음도 많았다.
첫댓글 선생님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늘 일상에서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 많네요. 선생님의 따뜻한 시선으로 한 아이가 힘든 시절을 잘 이겨내게 되어 다행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마음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터놓게 마련인데 아이가 참 안됐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의 정성이 아이 하나 살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