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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방을 쓴다. 해방을 쓰는 나의 글 중에는 자본 권력, 국가 권력, 정치 권력, 사법 권력, 언론 미디어 권력, 지식 권력과 같은 ‘권력’을 비판하는 것처럼 읽힐 수 있는 글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권력‘을 비판하지 않는다. 단지 나의 해방을 위해서 그들이 야기 하는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경계할 뿐이다. ‘권력’ 일반에 대한 경계이지 그들 권력자 개인에 대한 것은 아니다. 그들 권력자들 개인을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그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경계하는 것이다. 권력은 권위주의적인 성격을 통해 부정부패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사회를 그렇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경계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과 권위를 통해서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를 바라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 권력에 대한 나의 글은 애초에 비판이 될 수도 없다. 권력에 대한 비판은 그만한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 효력이 발생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권력에 대한 비판은 대부분의 사회에서 지식인들이 사회적 책임과 양심의 이름으로 주로 해오기도 했다. 언론 미디어는 권력을 비판한다기 보다 권력의 부정부패를 폭로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비판’을 ‘자기반성’과 동의어로 여긴다. 비판을 한다는 것은 자신은 그와 같은 비판 받을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반성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도 나는 그들 권력을 비판한다기 보다 나의 해방을 위해서 그들 권력뿐만 아니라 일상의 주변 권력, 내 안의 권력성에 관심을 가지고 ‘권력’을 경계하는 글을 쓰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경제 양극화와 소외를 넘을 소유 방식, 현재의 상태를 지양하는 변증법적 인식, 대중을 사로잡을 이론적 무기,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의 단결.
해방을 쓰기 위해 나는 위의 주제들을 염두에 두면서 ‘사람, 자연, 책, 여행, 문학, 예술’과의 만남 속에서 현실을 읽고 바라는 현실을 쓴다. 나는 그렇게 해방을 써나간다. 글과 함께 나의 해방을 짓는다.
ㅣ권위주의적 성격
차이의 인식이, 혹은 차이의 인식이 아니라 오히려 차이 자체가 일종의 유토피아를 나타낸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즉 상이한 것이 나란히 존속하며 서로를 말살하지 않는다는 것, 또 상이한 것이 다른 것에다 발전의 여지를 허용한다는 것, 그리고- 이 점을 덧붙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상이한 것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 이는 본래 어떤 화해된 세계의 꿈일 것입니다.([변증법 입문] 번역본 132쪽)
아도르노가 1940년대에 미국에서 경험주의자들과 연구했던 권위주의적 성격의 내용을 보면 권위주의자들의 특징, 파시스트들 특징 중 하나가 차이 나는 것들, 새로운 것들에 대한 경험을 다 거부한다는 것이다. 습관적인 것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자기가 정한 틀 안에서만 움직이려고 한다는 것. 그러니까 차이들에 대해 존중을 못 하는 것. 이건 아주 중요한 권위주의의 특징이라고 본다.
하나 더 추가하면 거대한 것, 위대한 것, 큰 것, 막강한 힘에 대한 자신의 동일시가 있다. 자신을 강력한 힘과 동일시하는 태도. OOO을 자기가 만들었다. 내가 OOO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OOO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OOO이 우리 편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권위주의의 중요한 특징이다. 거기에는 좌파, 우파가 없다고 본다.
이처럼 권력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도 중요한 특징인데 권위주의적 성격에 대한 얘기가 변증법에든 미학에든 상당히 스며 들어가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그런 걸 많이 갖고 있다. 국회에 한 번 갔다 온 사람은 또 나간다.
윗사람에 대한 절대복종, 아랫사람에 대한 가차 없는 무시, 경멸, 냉소, 그다음에 반민주주의 그다음에 반평등주의. 아도르노 논리는 반권위주의다.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걸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게 어떻게 보면 오늘날 신좌파 문화의 기저다. 무시할 수 없는 것이고 평등사회를 추구한다면 당연히 존중해야 하는 부분이다. 문제는 그게 사회 구조 때문에 생기기 때문에 그 사회 구조를 바꾸지 않고 말로만 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상이한 것을 참아주지 못하는 것, 자기하고 다른 얘기 나오면 못 견딘다는 것이다. 상이한 것에 대한 이 비관용이 몇 가지로 연결된다. 상이한 것을 접촉하는 것에 대해서 불안해하는 것이다. 접촉 불안은 “모든 전체주의적인 상황의 표시”([변증법 입문] 번역본 132쪽)다.
이때 ‘전체주의적’이라는 말은 매우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변증법(sie)은 실로 모순이, 그러니까 자체에 근거해, 자체의 원칙에 근거해 그 자체의 말살을 추구하는 상태가 차이의 행복을 실제로 대신하고 있는 현실에 자신을 맞추는 사유입니다.(번역본 132쪽-133쪽) ‘차이의 행복’을 용납하지 않고 경쟁과 이윤 추구라는 자체의 원칙에 따라서 자체를 말살해 가는 자본주의 사회. 돈 돈 돈 하면서 인간을 파괴하는 사회, 나아가서는 전 지구를 초토화하려는 사회. 이게 자본주의 사회다. 이것에 맞춰서 사용한 것이다. 맞춰서란 말은 그걸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 제대로 지적한다. 제대로 반영한다. 그 모순을 밝힌다. 이런 의미다.
리카르도를 놓고 부르주아 이론가들이 비난할 때 리카르도는 쓸데없이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모순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노동자와 자본가 간에 화해로운 관계를 깨버렸다. 모순을 들고 나와서 적대관계를 조성했다고 한다. 리카르도는 실제로 존재하는 노동과 자본 간의 적대관계를 이론적으로 밝힌 것뿐이다. 근데 유럽 부르주아 쪽에서는 거꾸로 리카르도가 그런 모순 관계를 만든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국가보안법부터 해서 우파 이론들은 맑스주의가 사회 갈등을 부추긴다 이렇게 얘기한다. 맑스주의는 사회적 갈등 모순들을 밝혀야 그걸 극복한다고 얘기한다. 그걸 명확하게 의식하지 않고는 우리가 그걸 극복할 방법이 없다. 누가 맞는 건가. 변증법은 그걸 밝히는 이론이다. 현실의 모순에 적합해지려는 이론이다. 적합하다는 것은 그것을 부추기거나 그것을 보존하자는 게 아니라 은폐하는 게 아니라 이론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이 점을 이미 아주 단순하게 변증법은 본질적으로 또 필연적으로 비판적이다. 그것은 일종의 실증 철학 혹은 이른바 세계관 실증 철학 또는 세계관으로서 스스로 정립하여 내세우고 직접 어떤 진리 자체의 현상이라고 주장하며 등장하는 순간 허위가 된다.([변증법 입문] 번역본 133쪽)
철학을 할 때 아도르노에게는 두 가지 중요한 기준이 있다. 하나는 philosophy다. 필로소피에서 philo는 사랑, 욕구, 뭔가 하고 싶어 하는 그 무엇이다. 그것 없으면 철학이 안 된다. 그건 생생한 주체의 살아있는 무엇이다. sophy는 지, 지혜 이것은 그냥 제멋대로 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남들이 봐도 일정한 구성력, 설득력이 있어야, 객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야만 철학이 된다는 관점이다.
그런데 세계관이라는 건 뭘 하나 정해놓으면 그 틀로 자꾸 본다. 그걸 벗어나는 것을 생각하려고 하거나 추가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스피노자주의자야 하면 스피노자적으로만 보려고 그런다. 나는 맑스주의자야 그러면 맑스주의적으로만 보려고 그런다.
아도르노는 그런 걸 넘어서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자유주의자 아니냐 하면서 자유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다른 맑스주의자들이 보기에는 전형적인 자유주의네. 이렇게 생각할 것 같다. 그런 면도 있다. 아도르노는 사고에서 어떤 틀에 박히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문제 제기하는데 그렇다고 제멋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받아들인다.
변증법이 옳기 때문에 가겠다가 아니라 생각을 해보니 변증법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게 옳아! 이렇게 가야 돼! 이런 생각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니라 옳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그게 변증법인 것이다. 그런 전통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하는 활발하게 굴렀던 전통이 바로 헤겔주의라고 보는 것이다.
헤겔에게 그런 면만 있는 게 아니지만 어쨌든 헤겔에 의해서 그런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자유주의자라고 딱 분류해서 서랍에다 넣어버리면 그런 것에 대해서 아도르노는 ‘행정적 사유’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분류하고 끝내면 서로 이야기를 들을 이유가 없다. 아니야 나랑 상관없는 거야. 이렇게 된다. 그러니까 자기 성찰도 하고 현실을, 전체 상황들을 가변적으로 생각하면서 그 속에서 뭔가 핵심을 짚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ㅣ몰락
1945년 4월 독일 베를린을 배경으로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제국의 최후를 다룬 영화 '몰락-히틀러와 제3제국의 종말'(Der Untergang / The Downfall·독일·2004).
2004년 가을 독일 개봉 당시 독일은 물론이고 프랑스와 영국 및 전 세계인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으며 논란을 일으킨 영화다. 논란의 이유는 히틀러에 대한 대다수 영화들이 그를 전쟁광이나 미치광이로만 보여주는 데 반해 영화 ‘몰락’은 히틀러의 인간적인 면모를 집중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부터 나치역사에 대해 비판적으로 교육하며 과거사 청산 문제에 대해 엄격하기로 알려진 독일에서의 반향은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네오나치즘과 역사 왜곡, 영화가 가져올 파급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장미의 이름>, <특전 U보트>의 제작자이자 이 영화의 제작과 시나리오를 쓴 베언트 아이힝거는 히틀러의 이면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전형적인 폭로에 기여할 수 있다고 밝힌다. 이런 논란에 힘입어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였고 아카데미영화제에도 초청되는 성과까지 올린다.
ㅣ히틀러 정권의 최후와 그의 권총자살까지 12일간의 회고
1945년 4월 베를린이 소련군에 의해 함락되고 거리에는 게릴라전이 한창이다. 영화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지하 벙커로 피신한 히틀러와 나치 지도자들의 행적, 그리고 히틀러 정권의 최후와 그의 권총 자살이 있기까지 12일간의 일들을 여비서 트라우들 융에의 회고와 함께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장장 두 시간여 동안 유대인 학살의 기획자, 전쟁광, 나치 원흉으로 알려진 히틀러가 아닌 인간 히틀러, 그리고 히틀러에 의해 자만과 폭력, 절대복종과 권력에 길들여진 나치 지도자들이 얼마나 미쳐있었는지 그들 집단광기의 현장을 영화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 인간 히틀러는 수전증이 있는 노쇠한 늙은이, 공포에 떨기도 하고 측근들과 농담을 즐기며 자신의 약점을 숨기려 애쓰는 인간, 부인 에바와 여비서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작은 보답에 감격해하거나 눈물짓는 인간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종말로 치닫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며 지하 벙커에서 술과 권력에 취해있는 나치 지도자들. 자신의 아이들에게 독약을 먹여 죽이는 선전부 장관 괴벨스와 그의 부인, 패배 앞에서 히틀러 만세를 외치며 자살하는 군인들을 만날 수 있다.
영화는 히틀러를 짝사랑했던 여비서 트라우들 융에의 회고로 시작해서 그녀의 회고와 함께 끝난다. 그녀는 영화 마지막에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단지 호기심으로 히틀러의 개인비서를 자원했고, 전쟁이 끝난 후 전쟁범죄인을 처벌하기 위해 독일의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재판을 보면서도 이 거대한 범죄와 자신의 과거를 연관 짓지 않았다. 그 범죄에 개인적인 범죄는 없었다고 자신을 안심시키며.
하지만 어느 날 길을 지나던 중 소피 숄이라는 여인의 기념비를 보게 되고 자신이 히틀러 편에 섰던 그 해에 여인이 처형당했음을 알고 깨닫게 됐다고. 젊음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 진실을 찾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ㅣ집단광기의 중심인 '히틀러'는 어디에?... 국가주의를 경계하라
제작자 베언트 아이힝거의 말처럼 영화에서 보이는 히틀러는 미치광이가 아니라 불쌍하고 초라해 보이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런 평범한 인간인 그가 야수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권력을 가진 누가 언제 그런 야수로 돌변하게 될지 모른다는 경각심을 갖게 해주었다.
누구나 히틀러와 같은 야수가 될 수 있으며 나치 지도자들처럼 권력에 의해 파괴와 파멸로 치닫는 집단광기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 제작자의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비판했듯이 위험한 의도였을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권력과 절대복종에 길들여진 나치 지도자들의 집단광기가 파멸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 광기의 중심에는 히틀러가 있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제작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상당히 유감스러웠다.
ㅣ답습하지 않는
‘답습踏襲’이라는 말은 ‘전부터 해 내려오거나 있던 방식이나 수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따르는 것'을 말한다.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고’라는 의미로 답습이라는 말을 기억해 둘 것이다.
헤로도토스가 ‘역사歷史’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여 역사가 된 history라는 말의 그리스어 어원 historiai에는 ‘탐구探究’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조사해서 배우거나 아는 것’, ‘진리나 학문 따위를 깊이 파고들어 연구하는 것’이 탐구의 의미다.
‘의미’는 부여하기 나름이지만 헤로도토스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조사’하거나 ‘연구’한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역사 기술記述이 ‘조사’나 ‘연구’ 일 수밖에 없어 보이는 것은 ‘있는 그대로’를 제멋대로 해석하지 않을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 ‘조사’나 ‘연구’ 일 것이기 때문이리라.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네 글자로 말해야 한다면 ‘권력투쟁’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지만 ‘흥망성쇠興亡盛衰’라고 말하고 싶다. 권력을 둘러싼 음모와 배반과 복수와 전쟁을 끝없이 반복하는 역사를 돌아보며 헤로도토스가 말하는 것이 ‘흥망성쇠’다.
‘흥망성쇠’의 과정에서 ‘권력투쟁’은 필연이었다. 역사에서 ‘권력투쟁’이 필연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탐구한 결과 역사가 권력투쟁에 따른 흥망성쇠의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지금 ‘쇠’를 말하고 있다. 인류 역사의 현 단계는 자본독점 권력이 성 할 대로 성해 이제 쇠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만일 자본권력이 쇠한다면 그것은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결과여야 한다.
적어도 헤로도토스의 역사적 탐구에 따르면 역사의 과정은 그러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역사 과정을 봤을 때 자본권력과 권력투쟁을 벌여 승리할 세력은 노동계급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권력을 위한 전쟁의 역사가 멈추는 날을 헤로도토스는 말하지 않았다. 아니, 그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인 역사를. 결과를 말해주는 과정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역사를. 과정으로서의 역사는 권력투쟁의 역사이지만, 해방을 위한 투쟁의 역사로도 보인다.
억압적인 권력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역사, 자연과 인류 자신에 대한 앎이라는, 미지未知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역사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이성적이고 지혜로운 인류는 권력투쟁의 전쟁이 멈춘 해방된 공존의 상태를 기획하기도 했을 것이다. 역사에서 권력투쟁이 필연이라면 미지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투쟁은 필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 밖에서 벌어질 소행성과의 충돌이라는 미지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기후재앙과 독점 자본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풍요롭고 평등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다. ‘풍요롭고 평등한 삶’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은 중요해 보인다. 과정이 곧 결과라서, 과거가 담긴 지금이 곧 다가올 미래라서 '지금, 여기'에 충실해야 하는 것일 테다.
'풍요롭고 평등한 삶'은 아주 새로운 가치가 아니다. 이미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존재했고 존재하는 미래이다. 하지만 과거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미래로 답습한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 우禹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성공했거나, 실패했거나, 잘못했거나, 어쨌거나 소중한 과거를 답습하지 않는 길은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 연구하는’ 탐구의 자세를 갖는 것이다. 인류 역사의 방향에 미약하나마 영향을 미치기 위한 기본자세로서 말이다.
하영진(작가, 현대사상연구소 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