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댄스 / 김석수
홍콩에서 근무할 적에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를 자주 봤다. 영어 신문으로 진보 성향이다. 홍콩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의 이모저모를 자세히 알려 준다. 중국 ‘알리바바 그룹’에서 인수한 뒤로 친중 신문이 됐다고 하지만 반정부, 반중 성향의 기사를 가끔 볼 수 있다. 그 당시 나는 사회나 교육 관련 기사를 즐겨 읽었다. 귀국한 뒤 3년 동안 스크랩한 자료로 『홍콩의 교육과 국제학교』를 펴냈다. 하루는 사회면에 라틴 댄스 관련 소식이 머리기사로 큼지막하게 나와서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라틴 댄스에 빠진 에이치에스비시(HSBC) 최고 경영자가 사교춤 강사를 상대로 거액의 강습료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그녀의 이름은 모니카 윙으로 예순 살이며 아시아 지역 프라이빗 뱅킹(Private Banking) 담당자다. 그녀는 홍콩 사교계에서 ‘라틴 댄스의 왕’으로 불리는 마르코 사카니와 가이노 페어웨더 부부를 상대로 75억 원을 돌려 달라며 법원에 소장(訴狀)을 제출했다. 그녀는 2004년부터 8년간 무제한으로 라틴 댄스를 배우는 대가로 그들에게 150억 원을 주기로 계약한 뒤 선금으로 75억 원을 건넸다.
2004년 8월 한 레스토랑의 공개 댄스 경연 대회에서 그들 사이에 문제가 일어난다. 그날따라 평소보다 스텝이 느렸던 윙에게 사카니가 “게을러 터진 암소”라고 비난한 것이다. 사카니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계속 그렇게 춤을 추면 당신 머리를 벽에 짓이겨 버릴 거야.”라고 윙에게 퍼부었다. 윙은 사카니에게 "말을 함부로 한다. 열심히 하는데, 왜 무시하느냐? "라고 대들었다. 서로 간에 욕설이 오가고 둘 사이는 틀어졌다.
그녀는 법원에서 “남편을 일찍 여의고 악착같이 일해서 최고 자리에 오른 뒤 인생의 마지막 황금기를 찾고 싶어서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라고 털어놨다. 야심을 충족하려고 2000년 세계 볼룸댄스에서 열다섯 번 우승한 페어웨더를 찾아가 ‘차차차(Cha-Cha-Cha) , 룸바 (Rumba) , 삼바(Samba), 자이브(Jive), 파소도블레 (Paso Doble) ’ 를 배우기 시작한다. 그 뒤 그녀는 라틴 댄스 매력에 깊이 빠져든다. 2003년 사카니를 파트너로 삼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라틴 댄스 스포츠 대회’에 출전해 우승한다.
이듬해 '문제의 계약'을 한 뒤 석 달이 안 돼서 파기한 것이다. 사카니 부부는 춤을 계속 가르치겠다며 잔금 75억 원 마저 내라는 맞고소를 했다. 그녀는 아이비리그 중의 하나인 컬럼비아 대학 출신이다. 금융가에서 일 처리가 완벽하며 침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딸은 해운 업계에서 거물이다. 그녀와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 사람은 “침착하고 우아하며 승부 근성 강하다. 맹렬 여성이다.”라고 귀띔한다.
홍콩 법원은 59쪽에 걸친 결정문을 통해 ‘모니카 윙이 모욕당한 사실이 인정되기 때문에 이미 지급한 75억 원의 강사료를 반환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판결했다. 사카니 부부는 “원하는 만큼 댄스를 배운 뒤 돈을 돌려받으려는 수작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항소했지만 고등법원 재판부도 “윙이 춤을 못춘다고 구박당한 점이 분명하며 모욕당한 만큼 수업료를 돌려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결정했다.
이 사건으로 홍콩 사회가 한동안 떠들썩거렸다. ‘춤이 무엇이길래 150억 원을 주고 배운단 말인가? 수강생 좀 모욕했다고 75억 원을 되돌려 주어야 하는가?’ 이름조차 익숙하지 않던 라틴 댄스에 관심을 두게 됐다. ‘차차차(Cha-Cha-Cha)’는 밝고 시원하며 정확한 리듬으로 춤이 생기가 넘친다. ‘자이브(Jive)’는 지르박(jiterbug)이 원조로 약간 느린 박자에 맞는다. 흑인들이 재즈 음악에 맞춰 격렬하게 몸을 흔들기도 한다. '룸바(Rumba)'는 쿠바의 전통춤으로 쉽고 단순한 템포에 맞춰서 춘다. '삼바(Samba)'는 브라질에서 많이 추며 사교춤이다. 그 뿌리는 아프리카라고 한다. '파소도블레(Paso Doble)'는 스페인 춤으로 투우 경기하면서 춘다. 빠르고 강한 춤이다. 탱고(Tango), 살사(Salsa), 바차타(Bachata), 키좀바(Kizomba), 메렁게(Merengue), 주크(Zouk), 스윙(Swing) 등 라틴 댄스는 그 종류가 다양하다. 하나라도 배우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첫댓글 재밌는 기사거리네요.
춤 종류가 참 많군요. 저도 엄두가 나지 않네요.
네, 고맙습니다.
춤 좀 배우려고 그런 거액을 쓰다니 우리와는 다른 세계 사람이네요.
네, 그렇습니다. 고맙습니다.
너무 재밌는 기사네요. 저는 돌려받는 게 맞다에 한 표요. 다행이네요.
고맙습니다.
와, 춤 배우는데 150억?
아무리 훌륭한 선생에게서 배우지만 정말 많은 액수네요.
차차차, 자이브, 룸바, 삼바, 탱고, 살사까지는 구별은 못 해도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진짜 생소하네요.
고맙습니다.
모욕의 대가가 정말 크군요. 춤 배우는 비용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래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