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상수훈 팔복 구조
산상수훈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산에서 하였던 설교로 산상보훈, 산상설교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그 설교 중 팔복 설교는 산상수훈 제일 앞 부분에 위치한 설교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신앙새활의 전체 여정을 하나 하나씩 보여주는 매우 심오한 내용으로 되어 있어 깊이 묵상하면 할 수록 보석을 캐는 것처럼 더 광대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팔복 설교는 단순히 8가지 복을 나열하거나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인 구조로 8가지 복이 전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아울러 단계적, 점진적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2. 팔복의 네번 째 복
(1) 첫번 째 복 -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영적인 파산선고를 받은 사람으로서, 그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깊이 다가와 천국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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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번 째 복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영적파산 선고를 통해 심령이 가난한 경험을 하게 되면, 저절로 애통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와 같이 자신의 진정한 실체를 바라보며 애통하는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참된 위로를 주시는데, 그것은 바로 죄와 세상의 구속으로부터 진정한 자유와 해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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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번 째 복 -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영적파산 선고를 통해 심령이 가난한 경험 및 이로 인해 애통을 경험한 사람은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게 되는데, 그와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될 뿐만 아니라 천국에 들어갈 때 주님께서 주시는 유업과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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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심령이 가난한 자 → 애통한 자 → 온유한 자의 복을 모두 경험한 사람은 아래에서 살펴보는 바와 같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6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의미]
이처럼 (1) 심령이 가난한 자(영적 파산의 경험), (2) 애통한 자(영적 파산 및 이에 대한 방법이 없다는 점에 대한 깊은 애통), (3) 온유한 자(주님의 사랑을 깊이 알게 되어 주님의 말씀에 대한 온전한 순종)의 계단까지 올라온 사람들은,
더 이상 세상에서 누리고 즐기던 세상적인 기쁨과 쾌락들, 그리고 나아가 내 삶의 목적이었던 성공, 부요함 등은 모두 크게 의미가 없어지게 되고, 반대로 주님에 대해 깊은 관심이 생길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주님 한 분만 갈망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주님을 이 세상 무엇보다, 또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것이 자신의 영혼의 깊은 갈망이자 소원이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그리스도
즉, 팔복에서 4번째 복의 주인공인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라는 것은, 팔복의 1단계 복인 심령이 가난한 자, 2단계 복인 애통하는 자, 3단계 복인 온유한 자를 모두 경험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주님만 갈망하고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는데, 그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주님을 갈망하고 사랑하는 정도가 마치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른 것처럼 아주 간절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팔복의 4번째 복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경험을 하는 사람들은, 주님과 멀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데, 주님과 멀어지게 하는 실체가 바로 자신의 자아라는 것을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그들은 주님과 더 깊이 연합하고 만나기 위해 날마다 자신의 자아를 부인하게 되고, 그와 같은 길은 매우 좁은 길이고 협착한 길이지만, 그 길을 하루하루 믿음으로, 주님을 갈망하며 걸을 때 주님께서 친히 나를 위로하시고 안아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의 복 -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주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는 배부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가 배부르다고 하는 것은 육신이 배부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영혼이 배부르고 부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손내밀어 주시는 모습
영혼이 배부르고 부요하다는 것은 드디어 성경에서 이야기하던 성령의 열매가 내 삶에 맺히기 시작하고, 그 열매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님의 사랑을 흘려보내게 됩니다. 또한 그와 같은 사람들은 삶의 환경이 더 이상 나를 좌우하지 못하고, 오히려 삶의 환경이나 고통과 관계 없이 주님께서 주시는 부요함으로 인해 이 땅에서 세상이 알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위와 같이 주님을 마치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픈 것처럼 간절하게 갈망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주시는 영혼의 부요함으로 인해 다시는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며 그 영혼의 빈곤함과 허무함, 공허함을 맛보고 싶어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다름 아닌 주님의 임재를 상실하고, 그로 인해 영혼이 다시 가난해 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