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웨일즈는 김산을 사랑했을까
오승호
비 오는 옌안(延安)
푸른 커튼이 젖혀지고
김산이 들어온다
님 웨일즈는
혁명가보다 먼저
한 사람을 본다
"민감한 지식인,
이상주의적인 시인."
총보다 먼저
그의 영혼을 기록했다
사랑했을까
모른다
그러나
죽을 사람의 이름을
끝내 지우지 않는 일
한 권의 책으로
한 사람을
역사에서 살려내는 일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지 못한다면
사랑은
도대체 무엇인가
상하이 와이탄의 밤을 걸으면
네온보다 먼저
김산과 의열단의 젊음이 떠오른다
혁명은 끝났어도
사랑은
기록으로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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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을 보다가
오승호
호박은 공기와 함께 산다
그런데 꽃은 햇빛을 향해 핀다
나는 한참 동안 노란 꽃만 바라보다가 비로소 뿌리를 생각한다
꽃은 제 뿌리를 자랑하지 않는다
사람만 꽃이 되겠다고 뿌리를 잊는다
나는 호박보다 나은 것이 없다
오히려 꽃 한 번 피우지 못하고도 꽃인 척 살아온 날이 더 부끄럽다
칠월의 감잎하나가 호박넝쿨로 굴러간다
죽은 잎이 산 꽃 곁으로 가는 일
그것은 우스운 일이 아니다
죽은것도 산것 흉내를 낸다
허리가 잘린 잎도
찢어진 심장도
바람만 불면 다시 생(生) 쪽으로 몸을 던진다
살고 싶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은 흉터를 먼저 감춘다
진초록 호박과 노란 꽃 사이에는 아무 울타리도 없는데
나는 끝내 들어가지 못한다
가랑비가 왔으면 좋겠다
生으로 달려가는 내 얼굴을 아무도 보지 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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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이
오승호
남들은 너를 상처라 한다
불쌍하다 한다
웃기는 소리다
자세히 보라
핏줄이 뭉쳐
나무가 제 몸으로 밀어 올린 성장통이다
가지나 뻗으며
햇빛이나 받아먹는
그런 평범한 생은 싫었다
또 하나의 기둥을 세우려 했다
제 몸을 찢어서라도
세상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나 바람은 막고
빗줄기는 식히고
세상은 모른 척 지나갔다
그래서 나는
안으로 안으로만 자랐다
반항은 굳어 옹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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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문예지 오승호시인님 시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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