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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서 1강 세상속에서 아파하는 교회 조병수 교수
합동신학대학원 대학교
26.06.27(토)
안녕하세요. 합동신학대학원 대학교의 조병수 교수입니다.
이번에는 빌레몬서 강의를 여러분들에게 드리려고 합니다. 빌레몬서는 한 장으로 된 짧은 성경이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교회가 어떤 고통을 당하는가? 하는 점을 보여주면서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서 필요한 요건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성경입니다.
오늘 함께 빌레몬서를 공부하면서 여러분들에게 많은 유익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강의에 어떤 중요한 점이 들어있는가 하는 포인트부터 몇 가지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먼저 바울은 빌레몬과 오네시모를 각각 어떻게 생각했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겠고요.
두번째로는 빌레몬서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빌레몬의 문제점은 무엇이라는 것과 또 하나는 빌레몬서에 두 번째로 중요하게 등장하는 오네시모 오네시모가 보여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하는 이러한 내용들을 주로 전개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빌레몬서가 어떤 성경인가 하는 것을 서론적으로 말씀을 드리게 되겠는데요.
빌레몬서는 바울이 쓴 편지입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쓰면서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는가 하는 것을 말해주게 되는데 먼저 자신은 로마 감옥에 투옥돼 있다. 하는 것을 지금 얘기를 해요.
그래서 바울이 편하고 또 좋은 환경에서 이 편지를 쓴 게 아니라 감옥이라는 이 좋지 않은 환경에서 편지를 쓰고 있다는 점을 기억을 해야 되겠고 또 바울이 친필로 기록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성경들은 바울이 직접 쓴 게 아니고 이제 구술하면 옆에 있는 어떤 대서자가 동료겠죠. 대서를 해줬는데 빌레몬서는 워낙 짧은 성경이기 때문에 바울이 친필로 기록한 그런 성경이 됩니다.
이때 바울 곁에는 디모데가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늘 그렇듯이 바울은 혼자 활동하는 게 아니라 동역자들과 함께 활동하는데 이제 디모데가 함께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를 가리켜서 이제 나이가 많은 사람이다. 이렇게 소개함으로써 이 편지를 쓸 때는 사도 바울이 말년 나이가 많은 시점에 기록하고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죠.
바울은 감옥에서 언젠가는 나오게 될 터인데 그렇게 되면 다시 빌레몬에게 가서 한동안 머물면서 빌레몬을 만나보기를 원하는 그런 희망을 우리에게 주고있습니다.
또 이 성경 말미를 보게 되면 디모데외에도 여러 동역자들 에바브라 마가 아리스타고 대마 누가 뭐 이런 여러 동역자들이 함께 편지를 쓰고 있는데, 그 가운데는 에바브라라는 사람은 아예 그 옥중에 같이 들어있어서 바울을 섬긴 그런 인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편지를 보내면서 빌로몬에게 중요한 내용을 간청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는 다르게 말하면 간청 서신이다. 이렇게 볼 수 있겠는데
왜냐하면 주로 오네시모를 빌레몬이 다시 받아들이면 좋겠다는 내용을 적고 있기 때문에 간청이 주로 이제 주종을 이루고 있고요.
간청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간청이다. 보니까 언어가 굉장히 감정이 들어있는 그런 언어들을 많이 사용을 합니다.
어떤 단어들을 사용하냐면 감동적인 언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부사를 많이 쓰죠 이야기를 뒤집어엎는 도리어 뭐 이런 표현 뭔가를 강조하기 위해서 특별히 이런 말을 쓰거나 점층적으로 말하기 위해서 이것도 이렇다면 하물며 이건 어떻겠냐는 이런 표현들을 많이 쓰면서 이 말을 듣는 빌레몬이 사도바울의 말을 듣고 마음에 감동을 일으키도록 그렇게 감동적인 언어들을 많이 쓰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중에 바울이 특이하게도 이 성경에는 심장 또는 마음이라는 말을 같은 말인데 심장 마음이 같은 말을 세 번이나 반복했었어요.
사실 바울린이 쓴 큰 성경들 고린도 전서나 후서 로마서 이런 성경들을 봐도 심장이라는 말을 이렇게 반복했습니다. 쓰지 않거든요.
이제 빌립보서 같은 경우는 한두 번 나오는데 이 짧은 성경에 심장 마음 이렇게 쓴 것은 그만큼 바울이 오네시모와 관련된 이 사건에 굉장히 불타는 듯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쉽게 알 수 있겠죠.
그래서 1장 7절에 보면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다
1장 12절을 보면
그는 내 심복이라 이렇게 우리말 성경은 심복이라고 번역했는데 내가 너에게 돌려보내는 오늘의 심은 나에게 내 심장과 같은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고요.
또 내 마음이 바로 또 마음이란 말을 쓰는데 빌레몬을 통해서 바울의 마음이 평안함을 얻기를 바란다 이런 그래서 부사어적인 표현과 함께 감동의 근원이 되는 심장과 마음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쓰고 있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죠.
또 바울의 성경을 보게되면 또 특이한 건 뭐냐하면 바울이 자신의 이름을 여러 번 말하고 있다는 거예요.
처음에 이제 편지를 시작하면서 바울이 편지를 쓴다 이렇게 말했지만, 중간에도 두 번이나 바울이 자기의 이름을 말합니다.
그래서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이렇게 또 말하고요.
1장 9절에
또 나 바울이 친필로 편지를 쓴다 마지막 부분에 또 말하는데 자기 이름을 말하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처음에 편지 시작할 때 그리스도의 뭐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다 나 바울 뭐 이렇게 나오지만 바울이 빌레몬에게 좀 강조하고 또 간청의 효과를 얻어내려는 그런 마음이 들어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을 해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바울은 간청하기 위해서 빌레몬을 가리켜 여러 번 형제 이렇게 부릅니다. 형제야 형제라고 부르면 거절하기 어렵잖아요. 그러니까 간절한 표현을 말하기 위해서 형제야 이렇게 말을 하고요.
그 외에도 바울은 평안하게 하다라는 표현을 두 번이나 쓰고 있는데 이 표현은 처음에 도입부가 끝나는 부분에서 한번 말하고 또 한 번 본론이 끝나는 부분에서 또 다시 한번 나옵니다.
그래서 바울이 편지를 한 묶음으로 이렇게 묶어서 끝날 때 평안 또 한 묶음 묶어서 평안 이렇게 함으로써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간청하면서 결국은 이 간청이 잘 이루어지면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평안하냐? 이렇게 말하니까 빌레몬이 이 편지를 받았을 때 바울의 마음에 평안을 주기 위해서라도 이 편지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내용이 형성이 되겠죠.
자 빌레몬서 우리 본격적으로 빌레몬서의 내용을 좀 보겠는데
먼저 빌레몬서는 어떤 구조를 갖고 있는가 하면 도입부로 편지를 보내는 바울 편지를 받는 빌레몬 도입부가 나오고
그 다음에 빌레몬의 가정을 위한 바울의 감사와 기도가 나온 다음에 주로 내용이 관청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간청할 때 어떤 심정으로 간청하는가? 그렇죠. 간절한 마음으로 간청을 하죠.
그리고는 자기 자신이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 간청한다. 라는 설명을 하고 간청의 대상이 빌레몬이 되겠는데 빌레몬에게 형제라 부르면서 이 간청을 받아들이게 하고 간청의 내용은 결국 뭐냐하면 오네시모에 대한 내용입니다.
오네시모 오네시모를 다시 받아들이면 좋겠다. 그래서 우네시모가 어떤 사람이냐는 것을 설명하고 그 다음에 오네시모가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오네시모에 대한 계획과 또 오네시모를 다시 받아주라 하는 이런 간청의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바울은 마지막에 빌레몬이 자기의 간청을 받아줄 것이다. 라는 그런 확신을 말해주고 있죠. 그래서 이 편지는 전반적으로 간청과 관련된 내용이다. 이렇게 우리가 보면 되겠습니다.
1~2강
자 빌레몬서가 어떻게 어떤 상황에서 기록이 됐는가? 먼저 이 편지를 받는 빌레몬에 대하여 조금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는데 근데 빌레몬은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아내 이름이 나오는데 압비야 그 다음에 아들 이름이 나오는데 아키포라는 세 명의 자녀로 구성원으로 된 그런 가정이었죠.
심지어 아키포는 바울과 함께 영적 전투를 벌이는 함께 병사된 자다 이렇게 말할 정도로 훌륭한 그런 아들이 있었습니다.
근데 중요한 건 뭐냐하면 바로 이 빌레몬의 가정이 자기 집을 교회로 내줬다는 거예요. 아마 이 교회는 골로세에 있는 교회 가운데 하나였을 거예요.
골로세에 당시에 여러 개 가옥교회가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아마 이 빌레몬의 집을 사용할 교회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결국은 빌레몬서는 골로세서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골로세서를 읽어보면 여기 나오는 이 아키포 이름이 나오면서 바울의 동역자들이 그대로 반복이 됩니다.
그래서 골로세서와 빌레몬서는 짝을 이루는 성경이다. 이렇게 볼 수 있는데, 아무튼 빌레몬의 그 집이 골로세의 여러 개 가정교회 가운데 하나였다.
이렇게 우리가 짐작을 하게 되는데 이 가정교회 또는 가옥교회를 중심으로 빌레몬이 믿음을 사랑과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들어오는 사람들이 다 감동을 받았어요. 빌레몬이 보여주는 사랑 또 빌레몬이 갖고 있는 믿음을 볼 때 굉장한 감동을 받았는데 빌레몬의 사랑과 믿음은 한편으로는 예수님에 대한 것이었고 한편으로는 성도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도 성도들에 대하여도 아주 균형 잡힌 믿음과 사랑을 보여준 그러한 사람이 바로 이 빌레몬이었고 또 빌레몬의 가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레몬을 만날 때 성도들의 마음이 평안함을 얻었어요. 이 교회에 들어오기만 하면 마음이 다 녹아지고 사회에서 좀 속상한 것도 있고 또 안 되는 것도 있고 불쾌한 것이 있어서 빌레몬의 가정에 들어오면 믿음과 사랑을 볼 때 거기에 녹아져서 마음의 평안함을 얻었다 굉장히 훌륭한 그런 교회였죠
빌레몬의 헌신과 그 사랑 믿음에 의해서 성도들이 마음의 살롬 평안을 얻게 됐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효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 빌레몬의 가정교회는 내적으로 충실한 믿음의 교제를 나누는 교회였습니다. 아주 잘 결속된 또 서로 성도들 간에 서로 하나가 되어 있는 단합된 그런 아름다운 교제가 그런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바울 자신도 이 빌레몬의 가정을 귀하게 생각한다. 아주 귀하게 생각했습니다. 빌레몬 그 부인 압비야 그 아들 아키포를 보면 마음이 흐뭇해질 정도로 그렇게 그래서 바울은 이 빌레몬을 가리켜서 세 가지 중요한 용어를 썼는데 사랑받는 자의 빌레몬 또 하나는 동역자 빌레몬 그리고 마지막에 형제라 이렇게 부르면서 이 빌레몬을 굉장히 귀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빌레몬을 볼 때 사랑받는 자다 또는 동역자다 형제다 말하는 이렇게 좋은 내용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아주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했어요.
그게 뭐냐하면 그 집에서 노예로 살던 노예로 종살이 하던 오네시모라는 사람이 그 집에서 도망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어요.
이건 뭐 노예가 한 명 도망쳤는데 뭐가 그렇게 문제가 되냐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빌레몬과 빌레몬의 가정과 빌레몬의 교회에 정말 너무나 놀라운 치명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만 거예요.
어떤 사건이었는지 좀 이따 설명을 더 드리기로 하고 오네시모가 도망을 했는데 도망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결국은 다시 체포가 됐습니다.
체포됐고 체포됐는데 공교롭게도 바울이 갇혀있던 그 감옥에 투옥이 됐어요. 바울의 감옥에 투옥이 됐습니다. 아주 공교롭죠 하나님의 섭리겠죠.
하나님께서 오네시모를 변화시키기 위한 오네시모를 변화시켜서 빌레몬도 변화시키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일어났다 이렇게 볼 수 있죠.
그래서 오네시모가 바울이 갇혀있는 감옥에 들어갔는데 이때 바울이 오네시모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함으로써 오네시모가 그리스도인으로 변신하는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어요.
그래서 바울은 우네시모를 가리켜서 가친 중에 낳은 아들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갇힌 중에 낳은 아들 디모데 전서나 디모데 후서 디도서 이런 데를 보면 바울이 디모데를 가리켜 또는 디도를 가리켜 아들 이렇게 불러요 그 외에도 몇 사람에게 더 아들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똑같이 디모데와 디도에게 아들이라고 쓴 것처럼 바울이 이 노예인 노예인 오네시모를 가리켜도 아들이라 이렇게 부르면서 뭐라고 말했냐면 내가 낳은 아들이다.
그래요. 내가 낳은 아들이 낳았다는 표현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사용한 적이 없어요. 디도에게도 사용한 적이 없어요. 그 외에 어떤 동역자에게도 내가 너를 낳았다. 이렇게 말한 적이 없어요.
오직 이 오네시모에게만 바울이 내가 낳았다. 내가 낳은 아들이다. 이렇게 말해요. 그러니까 이 말은 얼마나 바울이 오네시모를 아꼈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단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표현이 되겠죠.
오네시모가 도망에서 바울의 감옥에 갇혔을 때 바울의 복음을 받고는 오네시모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냐하면 노예가 아니라 형제가 됐다.
그래서 바울에게 바울이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보내면서 얘기하는 거죠. 이제는 이 오네시모를 노예로 생각하지 말고 형제로 생각해라 형제가 됐다. 그렇게 말하죠.
또 하나는 바울이 친필 보증서를 써요 그래서 만일에 이 오네시모가 너에게 무슨 부채를 졌거나 아니면 빚을 진 것이 있으면 내가 직접 이 빚을 갚아주겠다고 하는 자기 손으로 쓴 편지 친필 서신을 보내서 빚진 것을 갚아주겠다.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빌레몬이 이 편지를 받았을 때 순종할 것이라는 그런 확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편지를 보냈을 때 빌레몬은 이 편지를 받으면 오네시모를 받을 뿐만 아니라 오네시모의 모든 지위를 변화시켜주는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죠.
물론 바울이 이런 편지를 썼을 때는 바울과 빌레몬 사이에 신앙적인 신뢰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가 됐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죠.
이렇게 우리는 바울의 심정을 보면서 바울이 오네시모 에 대해 어떻게 귀중하게 생각했냐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빌레몬에게 볼 때는 걷잡을 수 없는 하나의 중요한 문제점이 되었습니다.
우선 빌레몬의 가정에 있던 빌레몬이 크리스천이잖아요.
또 가정을 자기 집을 교회로 내줬죠 많은 신자들이 들어오면 마음의 평안을 얻었는데 어떻게 교회에서 노예가 탈출할 수 있는가 굉장히 심각한 문제죠
이 문제와 함께 바울은 빌레몬의 또 한 가지 문제점을 은근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뭐냐하면 이 빌레몬이 바울의 선교를 협조하는 일에 그만 태만하게 됐다. 그런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모여서 성도들이 와서 믿음과 사랑을 보고 평안함을 얻으면서 내적 교제가 잘 되다 보니까 그만 교회의 내실에 너무 충실하다가 밖에 바울이 선교하는 일을 잠깐 잊어버리는 거예요.
그러므로 바울은 말하기를 마땅한 일로 명할 수 있으나 이런 표현을 써요 마땅한 일로 병할 수 있으나 이 말은 뭐냐하면 오네시모를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오네시모를 받아들이는 것은 한편의 일이고 지금까지 빌레몬이 바울의 설계를 열심히 열심히 협조해 왔는데 이 일도 마땅한 일이다. 이것도 당연히 해야 된다라는 의미의 예 마땅한 일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만일에 빌레몬이 정말로 이렇게 바울을 협조하는 일을 제대로 안 하게 되면 차라리 오네시모를 통해서 빌레몬의 섬김을 대신하게 하겠다. 이런 마음까지 가졌어요.
오네시모에게 빌레몬을 대신하는 일을 하겠다. 그래서 빌레몬서 1장 13조를 보게 되면 전체 내용은 간청의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빌레몬에게는 상당히 압박이 되는 그런 말이 들어있는 것이죠.
네가 정말로 내가 하는 이 선교에 그렇게 열심히 협조를 안 하면 그러면 좋다. 그러면 내가 감옥에서 낳은 이 아들 오네시모를 너희 대신 선교하겠다. 이렇게 말하는 거니까 상당히 압박이 됐겠죠.
바울은 이 편지를 썼을 때 한편으로 오네시모의 문제를 해결해 줄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선교사업에 빌레몬이 더욱 열심히 참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어요.
그래서 선교사업을 위한 더 큰 이해와 지원을 기대하면서 바울이 이렇게 말하죠.
내가 너에게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 아나니
더 행할 줄 안다 더라는 말이 더 행할 줄 안다는 말은 오네시모를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결국은 바울의 선교도 도와줄 것을 믿는다 이렇게 본 것이죠.
왜 빌레몬이 이렇게 바울의 선교를 돕는데 태만이 하게 됐냐 하면 내적으로 너무 충실한 믿음의 교제를 나누다 보니까 그만 내적 안정과 부흥을 도모했지만 외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잠깐 그만 도외시하는 일이 벌어졌고 이런 거죠.
그래서 결국 바울이 바라볼 때는 빌레몬이 교회라는 이 구조를 이 안에만 들어있을 것이 아니라 이 밖으로 뛰쳐나와서 세상 세상으로 뛰쳐나와서 이 세상에 들어있는 문제들 그 문제 가운데 대표적인 문제가 뭐냐하면 노예 제도라는 문제인데 복음을 안에서 교회 안에서 이렇게 내적 교재로 잘 갈무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복음을 밖으로 끌어내서 세상으로 끌고 나가서 세상은 지금 노예 제도라는 병에 앓고 있는데,
그 아파하는 현장에 들어가서 이 노예 제도 문제에 같이 공감을 해줘야 되는데 그걸 이제 바울이 볼 때는 답답하게 느껴지는 거죠.
그래서 노예 제도를 정당화하고 있는 왜곡된 사회 현실에 그만 들어가지 않고 교회 안에만 들어와 있는 것을 볼 때 바울은 너무 안일하다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요구하는 것은 뭐냐 결국은 외면적으로는 오네시모를 받아서 오네시모가 다시 좋은 신자로 살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지만
좀 내면으로 들어가면 첫째 내면은 선교에 동참해라 하는 것과 더 내면으로 들어가면 결국은 선교에 동참하므로 세계를 복음으로 변화시켜서 이런 노예제도와 같은 구조학 사회학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사회 현실의 개혁을 이룰 것을 요구하는 이런 내용들이 빌레몬의 한 실책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자 그리고 이제 우리가 이 오네시모에 대해서 잠깐 생각을 해보는데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노예였습니다. 아마 지금 빌레몬쇼의 내용으로 보면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노예가 되었을 것으로 그렇게 추측이 돼요.
왜냐하면, 여기에 보면 주로 빚에 대한 얘기가 나와요.
빚진 것 또 갚는다 또 빚진 것 이렇게 이런 내용들을 볼 때 대체적으로 빌레몬에게 오네시모가 노예가 된 그 이유는 경제적인 부채 때문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겠죠.
오네시모는 본래 빌레몬에게 무익한 자였어요. 왜냐하면, 부채를 진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유익한 자가 됐다. 이렇게 말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부채 때문에 노예가 된 이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그 가정에서 가정교회를 볼 때 자기들은 살롬을 이루면서 평안이요. 마음의 즐거움을 누리면서 믿음 생활을 한다고 하고 있는데, 노예인 자기는 부채와 불의의 문제 때문에 멸시를 당하는 걸 볼 때 뭔가 어떤 이율배반적인 그런 마음을 가지면서 빌레몬의 집에서부터 탈출했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을 해볼 수가 있겠죠.
근데 감옥에서 바울을 만나면서 빌레몬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빌레몬이 오네시모가 변하고 나니까 그때 오네시모가 가지고 있던 그 속에 들어있는 놀라운 재능들이 드러나기 시작을 했어요.
숨은 재능과 성품이 드러나게 되는데 종 이상의 성품을 갖고 있었던 거야. 사실은 종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바울이 오네시모를 인정을 해주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종이 아니다. 종이 아니라 이제는 형제로 부과해야 된다. 이렇게 말하면서 빌레몬에게 오네시모의 그 모습을 설명을 해주고 있죠. 복음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증거를 바울은 두 가지로 표현해 주고 있는데,
오늘의 신분은 이제부터 뭐냐 호칭이 달라졌다 호칭 노예가 아니다. 그러면은 아들이다. 또 심장이다. 또 형제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빌레몬과 오네시모가 동급이 됐다.
이렇게 호칭을 말해주고 또 하나 오네시모가 맡게 된 역할이 이제는 굉장한 역할이 됐어요. 전에는 무익했지만, 이제는 유익한 자가 됐다.
그리고는 섬기는 자가 됐는데 특별히 섬기는 일 가운데 뭐냐하면 이제 바울이 골로세 교회에 두기고를 파송을 하는데 두기고를 파송할 때 두기고와 함께 오네시모를 같이 짝으로 보냈어요.
두기고는 골로세 교회에 가서 바울의 신상을 얘기를 해주고 바울의 신상 오네시모는 바울의 주변적인 상황을 얘기해줌으로써 결국 오네시모가 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된 것이죠.
두기고와 오네시모가 같이 감으로써 신모에게 여태까지 해보자는 놀라운 사명과 역할이 주어지게 되면서 빌레몬을 대신할 만한 그런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을 해주게 되었습니다.
자 우리는 이제 빌레몬서의 전체 내용을 보면서 빌레몬서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신학이 뭐냐 하는 것을 간단히 정리를 해보겠는데요.
사도바울이 빌레몬서에서 보여주는 신학은 세상에 대하여 교회가 어떤 아픔을 갖는가에 대한 신학입니다. 세상은 왜곡된 사회 구조를 갖고 있어요.
뭐냐하면 인간이 동등하지 않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귀족이 있고 태어날 때부터 노예가 있다. 이런 생각인데 이런 동등하지 않은 사회 인간이 동등하지 않다고 믿는 이런 왜곡된 사회에서 하나님의 교회는 인간은 하나님 앞에 동등하다고 있기 때문에 그러면 이 사회 구조 속에서 어떻게 교회가 나가야 될 것이냐는 중요한 신학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먼저 바울은 성도들이 성도들이 이 세상에 대해서 아픔을 느껴야 된다. 그렇게 생각을 해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빌레몬이 한 것 같이 교회의 내실을 다지고 교회 안에서 믿음과 사랑의 교재를 나눔으로 끝나면 세상은 돌볼 수가 없어요. 신앙 돌볼 수가 없죠
그러니까 교회에서 신앙의 교제를 나누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중요하지만 그러나 교회 밖으로 나와서 세상에 이 왜곡된 구조에 대한 아픔을 가져야 된다. 이게 바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첫 번째 내용입니다.
두 번째는 도망친 노예 이 오네시모를 그리스도로 변화시킨 바울의 정신 바울이 감옥 안에서 오네시모를 만났을 때 이 오네시모를 놓치지 않고 그에게도 복음을 전해서 변화시킨 그 정신을 본받아라 그걸 우리에게 말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노예 제도라는 것은 노예제도라는 것은 결코 혁명에 의해서 변화되지 않는다. 사회 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변화되는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주인인 빌레몬에게 네 집에 있는 모든 노예를 놓아줘라 그런 말을 하지 않아요.
그러면 굉장히 속 시원해 보이죠. 또는 오네시모와 같은 이런 노예들에게 야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 동등해 너희 노예들은 항거해 저항해 그래서 사회를 바꿔 이런 말을 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의 변화는 사회 시스템의 변화로 오는 게 아니라 혁명이나 무력에 의해서 되는 게 아니라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의 복음이 들어가서 그들을 변화시킬 때만 그리스도 사랑에 의해서 변화될 때만 사회가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의 문제는 사회적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는 이 빌레몬서를 공부하면서 몇 가지 우리 삶에 적용해야 될 점들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우리에게도 교회를 향한 열심이 있는가 빌레몬은 굉장히 열심을 가졌어요. 그죠 우리도 그런 열심이 있는가 빌레몬의 열심과 우리의 열심을 한번 비교해 보자 이런 생각을 가져보고요.
또 나에게도 은혜신문 같은 그런 변화가 정말 있는가 한번 생각해보겠죠. 무익한 자였는데 유익한 자가 됐다. 이런 낮은 자였는데 이런 귀중한 자가 됐다는 변화가 있는가
세 번째는 우리는 세상에 사는 동안에 세상에 불의한 구조에 대하여 정말 통증을 느끼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은 어차피 멸망할 거니까 아무렇게나 돼도 뭐 할 수 없어 우리는 우리 믿음만 지킬 거야. 하고는 세상과 괴리된 세상과 소외된 우리만의 공동체를 만들고 세상은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없다. 하는 이러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통증 세상에 대한 통증을 한번 생각해보자 이렇게 오늘 적용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저와 함께 보면서 서도바울이 갖고 있던 여러 마음과 태도를 배웠는데 앞으로 여러분 모두가 바울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복음으로 힘차게 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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