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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 (2022.10.16 개막), 중국 공산당 제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이 확정되었다. 지난 2013년 집권한 시진핑 주석은 정임 지도자들의 10년 임기의 관례를 깨고 2027년까지 최소 5년 더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자 자리에 머물게 됐다.
시진핑: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의 전면적 건설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전면 추진을 위해 단결해서 분투합시다.
내레이션: 국가 주석직의 임기 제한이 없는 상태에서 마오쩌둥 이후 종신 집권도 가능해진 시진핑은 타이완 통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시진핑: 우리는 평화와 통일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무력통일의 길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레이션: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진핑 집권 3기, 시주석은 대외적으로 더욱 공세적인 외교, 대내적으로는 강력한 사회통제에 나설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원정/KBS 아나운서: 382번째 역사저널 그날입니다. 오늘의 중국을 누가 만들었나? 마오쩌둥, 덩샤이핑에 이어서 오늘은 마지막 시진핑 국가주석에 대한 얘기를 나눠볼텐데요.
허준/방송인: 제가 시청자분들께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녹화일 기준으로는 2022.10.11일입니다. 그래서 그날을 예상하면서 얘기를 한다는 걸 조금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시원/배우: 미래에 계신 여러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연임에 성공했죠? 아~ 네~ 했답니다.
최태성/한국사 강사: 만일 안 되었으면 이거 통편집 다시 해야?
이시원: 오히려 안되면 그게 이변 아니에요?
김지훈/한양대학교 사학과 겸임교수: 아마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시진핑 주석이 5년 더 연임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이 되고요.
허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이라고 말씀하셨고요. 특별한 게 어느 정도인가? 나무가 벼락에 세번 연속으로 맞는다든가 하는 그런 게 아닐까?
최태성: 중국 공산당 대표 선출하는 당대회에 정확한 명칭은 전국대표대회인데 이걸 뭐라고 하냐면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연출되는 권력의 극장이다.
이시원: 한 마디로 이미 다 되어 있다는 거네요.
최태성: 제가 그랬다는 건 아니고~ 해외 언론에서 그렇게 얘기 하니까 오해는 금물~
이시원: 왜 떨고 계세요?
최태성: 얼굴 빨개지는 거야, 나 지금 떨고 있니~
최원정: 오늘 조금 떨리는 상황이긴 합니다. 마치 이게 외교문제로 비화되지는 않을까?
최태성: 에이~ 설마~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최원정: 시청률이 좋기 때문에~ 인기 프로그램의 숙명~ 어쨌든 우리는 중국과 계속 공존을 해 왔기 때문에 시진핑에 대해서 잘 알아야 되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이 편을 함께 해주실 특별한 분을 모셨습니다.
이욱연/서강대학교 중국문화학과 교수: 유익한 프로그램에 나오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허준: 저희 프로그램이 유익하게 전달이 되나요?
이욱연: 역사 덕후만 보는 게 아니라 저 같은 사람도 많이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웃 나라는 선택할 수 없고 이웃 집은 선택할 수 있다. 이웃 집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우리가 이사가면 되니까 선택할 수 있는 거구요. 그렇지만 이웃 나라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우리나라가 어디로 갈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웃 나라 하고는 잘 사는 게 제일 좋고 잘 살기 위해서는 잘 알아야 되는 거죠. 그 이웃이 바로 중국입니다.
최태성; 요즘 많은 분들이 중국 이야기를 하면 부정적 반응을 많이 보이시는데 정말 위험하거든요. 왜냐면 그들과 함께 할려면 그들을 정확히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최원정: 오늘 중국의 리더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시원: 저 정말로 궁금한 게 있는 게 시진핑 국가주석이라고 하잖아요. 근데 이번에 세번째 연임이 결정되는 데 총서기란 말이죠 그러면 직함이 여러 개인 건 가요? 아니면 이게 같은 건지 아닌건지 헷갈려요.
최태성: 제가 정리를 해드릴게요. 현재 시진핑의 공식직함은 3개입니다. 중국 공산당의 총서기(黨) 이건 당입니다. 그 다음에 중앙군사위원회(軍) 이건 군입니다. 마지막으로 중화인민 공화국 국가주석(政) 이건 정입니다. 이렇게 세가지가 있는 거에요. 黨軍政 각각의 대표직을 맡고 있는 건데 역사적으로 보면 연임과도 연결이 되어 있어요. 1921년에 중국 공산당이 창당이 되고 1927년에 중국 인민 해방군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당군이 손을 잡고 1949년에 중화인민 공화국을 탄생시키잖아요. 시간 순서대로 지금의 서열도 당, 군, 정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는 거죠.
허준: 총서기가 제일 센건가요?
이시원: 당군정이니까 총서기가 제일 센 거고 그 다음이 군주석, 국가주석 이 순서대로 파워가 있는 건 가요?
김지훈: 당의 총서기가 제일 위에 있는 거라고 할 수가 있구요. 권력서열 1위 그리고 중국공산당 밑에 중앙군사위원회가 있고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군통수권을 행사합니다. 군통수권 행사 그러면 국가주석은 뭐냐 중화인민 공화국은 군통수권이 없어요. 헌법상으로도 없어요. 그러니까 대외적으로 중화인민 공화국을 대표하긴 하는데 군통수권이 없는 우리나라 하고는 시스템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시원: 그냥 하나로 확 합쳐버리면 안 돼요? 복잡하게 왜 그래?
허준: 국가 주석은 바지 사장 느낌인데?
최원정: 근데 지금 시진핑 국가 주석은 3 직함을 다 갖고 있는 거지요?
최태성: 그렇죠,
최원정: 중국은 계속 그렇게 해오지 않았어요?
김지훈: 마오쩌둥(3직) 장쩌민 (3직) 후진타오 (3직) 시진핑 (3직) 주석까지는 모두 공산당 주석이라든가 당의 총서기를 했구요 그리고 중앙군사위원회 주석도 같이 했습니다. 그리고 국가위원회 주석도 했죠. 그렇지만 덩샤오핑 같은 경우에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유지했을 뿐이고 공산당 주석이나 국가주석은 하지 않았습니다. 근데 지금 저희들은 덩샤오핑 하게 되면 당대 최고 지도자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의 중화인민 공화국의 국가주석이 누구인지 당주석이 누구인지 이런 것들 은 기억하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중요한 자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 후진타오가 중국 공산당 총서기를 할 때 장쩌민 주석이 바로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넘기지 않았어요. 거의 2년 가까이 장쩌민이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가지고 있다가 그 다음에 넘겨주게 돼죠. 그래서 후진타오 주석은 집권 초기에 군사통솔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던 그런 상황이었죠.
최원정: 덩샤오핑이 군사위 주석이라는 이야기는 실질적으로 군권을 가진 사람이 실권자 라는 얘기인가요?
김지훈: 중요한 자리죠. 왜냐면 중앙군사위 주석이 중국 인민 해방군, 무장경찰, 그리고 중국에 민병이 있습니다. 3군을 다 통제하는 그런 자리이기 때문에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죠.
이시원: 힘을 가져야 권력을 갖는 거군요?
최원정: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구
최태성: 모택동이 얘기했죠.
김지훈: 1927년에 마오쩌둥이 총구에서 권력이 나온다고 얘기했는데 그 얘기의 핵심은 공산당이 무력을 통제해야 한다 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은 중국 공산당에서 하고 부주석은 인민 해방군 현역군인이 해요. 근데 주석 자리에는 현역군인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당이 군대를 통제하는 시스팀이죠.
허준: 그러면 장쩌민 주석이 후진타오에게 군통수권을 안 넘겨주었을 때 만약에 후진타오가 지금 위급상황입니다. 군을 움직이세요! 얘기 했는데 장쩌민 주석이 그건 안 움직일건데~ 이러면?
최원정: 어떻게 되지?
허준: 반란인 거예요?
이시원: 그렇게 되면 어떻게 돼요?
김지훈: 집단적인 상황인데 엄밀하게 얘기하면 중앙군사위 주석이 명령을 해야지만 군대가 움직이는 체제입니다.
최원정: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당권과 군권을 다 가져야 실질적인 권력자가 되는 거지요.
김지훈: 그렇죠,
이시원; 근데 지금 리스트를 쫙 보니까 우리나라 대통령은 10명 이상 바뀔 동안 중국 실권자는 5명 바뀌었단 말이죠. 왜 이랬을까요?
최태성: 1949년 이후부터 중국을 실질적으로 통치한 지도자를 꼽아봐라 한다면 5명인데 5명이 우리나라 지도자들과 재임기간과 겹치는 기간을 볼게요. 한중 지도자 재임기간~마오쩌둥(1949~1976)/이승만-윤보선-박정희, 덩샤오핑(1978~1989)/최규하-전두환, 장쩌민 (1989~2002)/노태우-김영삼-김대중, 후진타오 (2003~2012)/노무현-이명박, 시진핑(2013~ )/박근혜-문재인-윤석렬)
마오쩌둥이 박정희 시기, 덩샤오핑이 전두환 시기, 장쩌민이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시기, 후진타오가 노무현-이명박 시기, 그리고 시진핑은. 박근혜 정부 이후시기~
최원정: 중국 공산당의 구조, 지금 얘기들으면서도 잘 모르겠다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애요. 이광용 아나운서한테 자세하게 집고 넘어가 볼까요.
-----------이광용/아나운서: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 중국을 이해하려면 중국 공산당의 구조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이욱연: 우리나라 정당도 당원을 모집하잖아요. 개념은 조금 다른데 중국 공산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시원: 그래요, 저는 솔직히 중국인 대부분이 태어나면서 자동으로 공산당원인줄 알았어요
허준: 세례 받드시 태어 나자마자 공산당입니다.
최원정: 모태 공산당?
이욱연: 말씀대로 중국인들이 모두 중국 공산당이라는 일당의 지배를 받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 다 공산당원인 건 아닙니다. 지금 현재 중국 인구가 약14억 되거든요. 그렇다면 중국 공산당원은 얼마쯤 될까요?
이시원: 글쎄요 느껴지기에는 한 반?
김지훈: 5000만?
이욱연: 조금만 더~ 14억 인구 중에 중국 공산당원은 약9600만 명 정도입니다 (거의 1억명),
이광용: 14억 중에 9600만, 중국인 15명 중에 1명은 공산당원입니다. 당원수가 우리나라 인구의 두배입니다.
이욱연: 공산당원 9600만이 중국 공산당 피라미드 지배구조의 가장 밑바닥을 이룹니다.
최원정: 공산당에 가입한 권리당원 같은 사람들 말하는 거죠.
이욱연: 이 9600만명이 2300여명의 전국대표들을 선발하게 됩니다.
이광용: 여기서 또 추려지는 게 2300명~
이욱연: 이번에 열렸던 20차 전국대표대회가 바로 이 2300여 명이 모여서 5년 마다 회의를 하는 것이죠.
이광용: 여기 경쟁률이 엄청나네요.
이욱연: 2300여 명의 전국대표들은 직엽별로 또는 지역별로 선발이 됩니다. 그 다음에 투표를 거쳐서 중앙위원 200여 명을 선출하게 됩니다.
이시원: 출세할려면 힘들어요.
이욱연: 갈수록 피라미드가 적어지면서 다시 추려지게 되는데 이제 부터는 중국을 실질적으로 운영해 가는 사람들입니다. 정치국위원 25명을 선출하게 됩니다.
이광용: 옛날로 따지자면 大臣들~
이시원: 우리나라로 치면 장관급으로 보면 될까요?
이욱연: 그렇습니다. 통상적으로 중앙위원급 200여 명이 장관급이라고 얘기합니다. 정치국원 25명이 그렇다면 매일 모여서 일상적으로 국가정치를 결정하느냐 그건 아닙니다. 이 사람 중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이 있습니다.
이광용: 상무위원은 몇명일까요?
이욱연: 7명입니다. 정치국 상무위원은 늘 홀수로 합니다. 8명이 회의를 하면 4:4로 갈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원합의체로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투표를 해서 결정해야 될 때도 있거든요. 그래서 홀수로 합니다. 이게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최고권력기구고 이거는 일단 합의제입니다.
이광용: 여기서 피라미드의 가장 높은 단계, 여기에 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굴까요?
최태성: 공산당 총서기!
이욱연: 그렇습니다. 총서기도 상무위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국가를 대표하기도 하고 당을 대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총서기 1명이 바로 시진핑 주석입니다.
이시원: 이 단계가 어마 어마 하네요.
이욱연: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중국 공산당의 피라미드 구조를 회사에 적용하기도 합니다.
최원정: 우리 회사로 치면 저 한~ 죄송합니다.
이광용: 사실 조직도 면에서는 최원정 아나운서는 요정도 (25명 정치국위원) 하지만 저와 역사저널 그날 팬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총서기 최원정~
최원정: 총서기가 정말 대단한 게 9600만 명 중에 1명 뽑힌 거죠.
이욱연: 사실은 14억 중에 1명인 겁니다.
이시원: 근데 교수님 중국에서 흔히 출세를 하려면 당연히 공산당원이어야 된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외국인도 들어갈 수 있나요?
이욱연: 외국인은 자격이 없습니다.
이광용: 상식적으로 되겠습니까? .
최태성: 그러니까 지금 이 중에서 최원정 아나운서는 공산당원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네~
허준: 최태성 선생님도 그렇죠!
이광용: 아니~ 이 정도면 다 선진분자 아닙니까. 역사저널 그날에 출연할 정도면 다 선진분자(=방송계 엘리트)인 거예요.
이시원: 한 마디로 공산당에 속해 있다는 게 그 집단에 굉장한 엘리트 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이 엘리트들이 잘 먹고 잘 살 가능성이 높은데 공산당원이 되고 싶어 하는 건 얻는 게 따로 있나요?
이욱연: 공산당원이 되면 훨씬 권력의 위치에 갈 수 있는 기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아 지겠죠. 매년 한 2천만 명이 입당을 신청한다고 그래요. 그러면 2천만 명이 다 되느냐 그렇지는 않고 경쟁률이 10:1 많게는 20:1 까지도 된다고 합니다. 요즘 중국 청년들은 공산당원이 되고 싶어서 굉장히 열심히 활동한다고 그래요. 공산당원이 된다는 건 일단 인정을 받는 거예요.
이광용: 공산당에 대한 충성심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말씀을 드려야할텐데요. 공산당에 처음 입당할 때 어떤 선서문을 읽는지 아세요?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당에 충성하며 공산주의를 위해 죽을 때까지 분투하며 영원히 당을 배반하지 않는다.-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14억분의 1의 자리에 오른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그가 주어진 두번째 임기를 마치고 3번째 총서기연임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 기정 사실화된 것은 작년에 있었던 2021년 역사결의에서부터 였습니다.
내레이션: 지난해 2021년 11월, 중국 공산당 40년만에 제3차 역사결의를 채택했다. 공산당 100년의 역사를 정리하고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성취를 평가하는 대회였다.
시진핑: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건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선서인 시진핑
내레이션: 결의문 중 절반이 시진핑 집권 10년의 업적을 강조하는데 할애됐다. 이 역사결의를 통해 시진핑은 마오쩌둥, 덩샤이핑 같은 지도자의 반열에 올라섰다.
최원정: 우리가 도원결의는 잘 아는데~ 역사결의는 생소한 단어예요.
최태성: 역사결의가 뭐냐면 조지 오웰의 <1984> 소설에 의하면 이런 말이 있어요.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라는 말이 있는데 이게 어떻게 보면 현실판 이라고 볼 수 있어요 (歷史決議-중요한 역사적 변곡점 마다 역사를 정리 평가하는 문건), 역사결의 라고 하는 것은 중요한 역사의 변곡점 마다 자신들의 역사를 정리하고 평가하고 넘어가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나 사건들을 두고 이거는 이렇게 해석하고 평가하자 이런 식으로 딱 하나의 해석,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 주는 거예요.
이시원: 우리는 어떤 역사적인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좋게 평가하고 어떤 사람은 나쁘게 평가하고 이렇게 갈리잖아요.
최원정: 별사정이네요. 별 걸 다 정해 주는 당, 특이 하네~
이욱연: 중국 문명엔 유일신이 없습니다. 부처님이라든가 예수님이라든가 이런 신이 없는 문명이죠. 그래서 중국인들이 신앙처럼 받드는 것은 사람들이 살아오는 경험 즉 역사입니다. 그러니까 늘 지도자들은 역사에 비추어서 내가 할일 나갈 길 이걸 정하는 거죠.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합니다. 우리는 미래로 나가기 위해서 과거로 돌아간다.
최태성: 역사결의를 하는 사람은 유명해지는구나.
최원정: 역사결의 그날 첫번째 역사결의는 마오가 했을텐데 마오쩌둥은 누구를 비판하고 누구를 어떻게 했을까요?
김지훈: 당시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는 소련에 유학을 갔다 오고 전통적인 맑스-레닌 주의에 따라 중국혁명을 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프로레타리아 혁명운동이라든가 도시에서의 혁명을 중시하는 입장에 있었죠. 그렇지만은 실제 중국 혁명에서 성공하고 승리를 얻었던 쪽은 농촌에서 근거지를 만들고 토지개혁을 하고 그 세력들이 중국 공산당의 주류가 되었어요.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고 과거에 잘못된 노선이라고 하는 노선들을 비판하기 위해서 첫번째 역사결의를 하게 되었던 거죠.
최태성: 노선에 대한 어떻게 보면 중국식 사회주의 노선을 역사결의에서 보여준 것이죠.
김지훈: 결의를 한 거죠. 마오의 노선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죠.
최원정: 역사결의에는 앞선 지도자에 대한 비판이 어쩔 수 없이 가려져야 되는데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에 대해서 엄청나게 비판적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떤 얘기를 했어요?
김지훈: 마오를 전면으로 부정할 수는 없었어요. 왜냐하면 마오를 부정하면 중간에 중국 공산당의 혁명투쟁, 중국 공산당 자체를 부정 하게 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었기 때문에 마오의 긍정적인 면 실사구시라든가 군중노선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긍정적으로 평가를 했고 다만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시기에 대한 여러가지 문제점들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비판을 했죠. 그래서 마오의 공적이 功은 7이고 過는 3이다. 그 가이드 라인에 따라 가지고 과거의 역사를 평가를 하게 돼죠.
최태성: 저런 가이드 라인이 있기 때문에 지금 천안문 광장에 마오쩌둥의 사진이 걸려 있을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거네.
허준: 功七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게 수십년을 이어오고 있잖아요. 이건 뱉었다 하면 수십년 수백년을 가질 수 있으니까 정말 신중하게 결정을 해야 될 것 같애요.
이욱연: 정권이 저렇게 규정을 해버리면 그것이 공식적인 역사결정판이 되는 셈이죠. 그래서 인쇄로 해서 책자로 싹 뿌리는 거죠. 그러면 중국 공산당들은 당연히 달달달 외우듯이 해야 되고요. 그리고 학교에서도 저런 내용들로 학습하게 되는 거죠.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 중국인들의 역사를 보는 기본 시각을 규정해 버리는 거죠.
최원정: 시진핑 주석이 3차 역사결의에서는 역사의 흐름을 어느 쪽으로 잡은 건가요?
김지훈: 이 결의는 사실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뭐냐하면 역사적으로 아주 심각하거나 아주 중대한 사건의 전환 이런 것이 외부의 눈으로 볼 때는 별로 없었죠. 다만 중점을 뒀던 것은 시진핑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10년 정도의 성과를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최태성; 공산당이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수많은 난제를 해결했고 이루지 못한 수많은 대업을 이루었고 역사적인 변혁을 낳았다. 확실히 1,2차 결의와는 달라요.
이시원: 역사결의라는 게 어떻게 보면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고 했잖아요 역사결의를 했다는 건 내가 과거에 했으니 미래도 한번 새롭게 지배해 보겠다 그러니까 시주석이 3연임을 하겠구나 하고 예상을 하는 거구요.
이욱연: 중국인들이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마오쩌둥은 중국인을 일어서게 했고 (站起來) 중국이 제국주의에 압박 속에서 무릎꿇고 살았는데 이제 일어서게 되었다. 그 다음 덩샤오핑은 무슨 일을 했느냐 중국을 부자로 만들었다 (富起來) 그러면 시진핑은 중국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 중국을 강하게 만들 것이다 (强起來). 이게 바로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 중국은 이제 시진핑과 더불어서 새로운 시대로 간다. 강한 중국 위대한 중국 부흥의 시대로 가겠다. 이것을 역사결의를 통해서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시원: Make America great again 처럼 Make China great again 이걸 한번 보여 주는 거네요.
최원정: 사실 앞에 장쩌민도 있고 후진타오도 있고 한데 세명만 기억할 거 아니에요.
허준: 뒤가 없어! 마오쩌둥은 중국을 일어나게 했고 덩샤오핑은 중국을 활동하고 뛰게 만들었어, 시진핑 난 중국을 날아오르게 하겠다! 이러면 이제 뒤에 사람들은 뭐라고 말해야지요?
김지훈: 3차 결의를 보게 되면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것이 시진핑의 사상인데요.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내용의 골자는 사회주의 현대화를 이루겠다는 거예요. 이번 세기의 중간 정도 까지는 사회주의 현대화된 강국을 만들겠다는 거죠. 그런 강한 국가를 만드는 것이 중국인들의 꿈이고 중국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겠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최원정: 3차 역사결의에서 강한 중국은 본인의 강한 의지를 드러낸 건데 이런 권력의지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걸까요?
내레이션: 1966년, 실각했던 마오쩌둥이 다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주도한 문화대혁명, 중국 공산혁명을 이끈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도 반당분자로 몰려 고초를 겪는다. 한 순간에 반역자의 아들로 전락한 시진핑, 16세에 농촌으로 쫓겨가 토굴 속에서 7년을 보내야만 했다.
시진핑의 육성: 밤낮으로 일했다, 풀을 베고 가축을 기르는 등 무슨 일이든 다 했다.
내레이션: 그리고 지난 2013년 시진핑은 마침내 국가 주석이 된다
뉴스: 시진핑 동지가 중화인민 공화국 주석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내레이션: 혁명 원로의 아들이 14억 인구의 지도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최원정: 어린 시절에도 굴곡이 많았어요. 롤러 코스터 같은 삶을 산 사람이에요.
최태성: 시진핑은 완전 금수저 출신입니다. 아버지가 시중쉰 이란 분인데 이 사람이 국공내전 당시 마오쩌둥과 함께 했던 혁명동지 원로예요. 국무원 부총리까지 했던 인물의 아들입니다. 성골 중의 성골입니다. 그러니까 태자당 출신 이라고 얘기해요. 들어보셨어요?
허준: 태자면 왕의 아들?
이시원: 왕제의 아들?
최태성: 이게 뭐냐면 바로 공산당 1세대의 최고위층 자녀들 (太子黨-중국 공산당 혁명 1세대 최고위층 인사 자녀들의 집단), 그들이 모여 있는 것을 태자당이라고 말해요.
이시원: 럭셔리 하네요.
최태성: 너무 잘 나갔던 집안이었는데 9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반동분자로 몰립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16년동안 유배생활을 해요. 혁명 원로의 아들에서 반당분자의 아들로 급전직하, 그러다가 1966년 13살 때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이 발발했어요. 문화대혁명 시기, 지금의 중국 정치인, 지식인들이 고초를 겪었어요. 이때 홍위병들이 엄청 박해를 했어요. 시진핑의 이복 누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그래서 1969년 16살 때 농촌으로 쫓겨가게 됩니다.
김지훈: 문화대혁명이 일어났던 시기를 上山下鄕 운동 (上山下鄕 운동-도시의 학생, 지식인들을 농촌으로 내려 보낸 운동) 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당시에 마오쩌둥은 중국의 젊은 지식 청년들에게 농촌에 들어가서 인민 대중들에게서 배우라 고 합니다. 그래 가지고 1968년 하반기부터 천만명 이상의 많은 중국의 젊은이들이 중국의 농촌이나 험지로 가게 됩니다. 시진핑 같은 경우는 처음에는 잘 적응 못했지만 나중에는 잘 적응했어요. 현지에서 열심히 노력을 해가지고 점차 인정을 받게 됩니다.
허준: 황태자 출신인데 반동분자로 아버지가 몰리게 돼서 누나는 죽음까지 이르고 본인은 정말 힘든 시기를 겪었다면 공산당이 미워지고 더 나아가서 마오쩌둥에 대해서는 극렬한 분노를 가져야 정상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지 않나요?
이시원: 당연하죠.
최태성: 상산하향~ 이제 이걸 下放이라고 해요. 下放을 겪었던 사람들의 기억을 보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하방시절이었는데 그런데~ 시진핑은 회고록을 통해서 하방 7년이야 말로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라고 해요. 칼은 돌 위에서 날카로워지고 사람은 역경 속에서 단련이 된다 라는 진리를 배웠다 (시진핑 회고록 中), 그런 얘기를 해요.
최원정: 출연 전에 시진핑 위인전 읽으셨나 봐요~
최태성: (공부를 열심히 한 것 뿐~)
허준: 좋게 표현하고 싶으세요?
최태성: 사진이 있는데~ 下放 당시 시진핑의 표정이에요. 분노에 찬 표정으로 보이세요?
이시원: 생각보다 되게 평온 한데요?
허준: 지금 솔직히 말하면 느낌이 부처님 얼굴이 생각나요.
최태성: 하방을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중~
김지훈: 저 사진에서 보여 주듯이 下放 당해 가지고 제일 열심히 일하고 농민들에게 많이 배운 모범적인 학생이었던 거죠. 그래서 시진핑이 이제 중국에 최고 지도자가 될 때 많은 중국의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뭐라고 그랬느냐면 시진핑 주석이 사실은 마오쩌둥의 가장 모범학생이다 하면서 조금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던 거죠.
허준: 오죽하면 시진핑=제2의 마오쩌둥 이란 말이 있을 정도고 타임지 표지 화면에 보면은 (2016년 4월 시사주간지 타임표지) 시진핑의 가면을 벗기면 마오의 얼굴을 덮는 시진핑의 얼굴이 나오잖아요. 이게 제 생각에는 시진핑의 속은 마오와 같다. 하지만 한 꺼풀 더 씌워서 마오보다 위대한 사람이 되겠다는 포부가 있는 거 같다 라는 느낌이 들어요.
김지훈: 시진핑은 중화인민 공화국 수립~ 문화대혁명 시기와 유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때 당시의 교육은 모주석이 이끄는 중국혁명에 대한 교육을 쭉 받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내가 이런 속에서도 열심히 해가지고 중국 공산당에 입당을 하고 공산당원으로 성장을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했지 이렇게 힘드니까 중국 공산당 싫어 이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최원정: 아무튼 뼈 속까지 정말 마오이즘이 스며 들어있는 그런 사람이네요. 2013년 총서기로 선출이 되고 나서 그 이후에 강력한 통치를 하기 시작합니다.
내레이션: (동영상), 집권 이후 군사력 강화와 더불어 세계 패권국가로의 부상을 꿈꾸는 시진핑,
시진핑/천안문광장: 14억 중국인민들의 피와 살로 만든 강철 만리장성에 부딪쳐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릴 것이다.
내레이션: 대내적으로는 제로 코로나를 위해 도시를 봉쇄하는 등 강력한 사회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코로나 중국인민: 풀어 주세요! 제발 빌게요!!
내레이션: 치안 유지와 범죄자 추적 명목으로 곳곳에 CCTV를 설치한 중국정부, 안면인식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촘촘한 감시체계, 반체제인사를 감시통제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빅 브라더 사회를 연상시키는 중국의 강력한 사회통제, 이에 반발하는 일부 대학생들은 시위에 나서고 있다. (동영상), 타도 시진핑! 타도 시진핑! 타도 관료주의! 타도 관료주의! 타도 형식주의! 타도 형식주의!
------------이광용: 지난 2017년 이후 중국 SNS 에서는 이것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소리 소문없이 종적을 감춘 이것? 바로 짜~잔~ 곰돌이 푸 (Pooh)
이시원: 푸가 왜 여기서 나와?
허준: 푸가 소설 네트워크에서 왜 사라져요?
이광용: 심지어 지난 2018년에는 이 푸가 등장하는 영화가 중국에서 상영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허준; 애니메이션 안에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 있어서?
최원정; 아니 하의 실종이래서 그래요?
최태성: 푸가 풍기문란?
이광용: 때는 바로 지난 2013년 시진핑 주석이 미국을 방문해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시원: (푸와 시진핑 사진) 닮았어~ 너무 비슷한데요.
이광용: 당시 시진핑 주석을 곰돌이 푸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푸의 친구인 호랑이 티거로 묘사한 사진이 인터넷에 엄청나게 회자가 되었죠. 이때부터 인터넷에서는 곰돌이 푸를 시진핑을 회화한 소재로 활용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결국 중국의 SNS 에서는 푸를 담은 사진과 동영상을 볼 수 없게 된 거죠.
이시원: 왜요? 이렇게 친근한 이미지인데 오히려 활용하면 좋은 거 아니에요?
최원정: 푸근한 느낌인데~
허준: 아니 그러면 검색란에 푸를 검색하면 아무것도 검색되지 않았습니다 라고 떠요?
이광용: 바로 그거예요. 검색창에 푸의 이름을 치면 불법 콘텐츠 라는 메시지가 뜹니다. 중국은 세계 최고의 인터넷 겸열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걸 만리장성에 빗대 만리방화벽이라고 부르는데요. 다양한 해외 사이트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친숙한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얼굴책 너튜브 인별그램 중국에서 쓸 수 있어요? 없어요?
일동: 없어요.
최태성: 중국가서 제일 불편한 게 검색이 잘 안되더라고요. 우리 사이트도 잘 안돼요.
허준: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에 가서 핸드폰에 너튜브나 인별그램을 누르면 안들어가요?
최태성: 안들어가져요.
이광용: 이 검열시스템이 정말 잘 되어 있어서 예를 들어 SNS에 시진핑 주석에 대한 비판 글을 올렸다. 그러면 바로 계정 사용중지 삭제가 됩니다. 맞습니까, 교수님?
김지훈: 중국은 우리하고 다른 관념을 가지고 있는데요. 인터넷 환경과 이것을 어떤 사상 정치 투쟁의 공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정책이라든가 특정인물에 대한 비판이라든가 풍자라든가 이런 것들을 금지를 하고 있죠. 그래서 실제로 중국은 SNS뿐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부분에서 이런 것들을 통제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중국에서는 인터넷을 깨끗하게 관리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최원정; 눈 가리고 귀 가리고 다 하는 건 데 사실 천안문 사건도 위험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6.4 6월 4일에 일어났기 때문에 전혀 검색이 안 된다면서요? 우리는 그 사건 이러면 됐는데 지금은 그 마저도 안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허준: 계속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하면서도 금지를 시키고 있는 거네요.
이광용: 그런데 사실은 인터넷에서 검열보다 더 무서운 것이 뭔지 아세요? 오프 라인에서 검열입니다. 영상 하나 보실까요?
-------------(동영상), 중국의 한 교수가 생방송으로 뉴스를 전하는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시진핑 주석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얘기한 거예요.
쑨원광/산둥대 前 교수(VOA생방송): 공안들이 또 방해하러 왔네요. 뭐, 뭐요? 내가 틀린 말 했어요? 중국인들은 매우 가난해요. 우리는 아프리카에 돈을 뿌리지 말아야 합니다.
내레이션: 이후 공안들이 쑨 前 교수를 강제 연행하는 과정이 방송에 생중계됩니다.
쑨원광: 뭐야! 뭥야! 우리 집에 들어온 것은 불법이라고! 나에겐 언론의 자유가 있어!
이광용: 교수가 생방송 도중에 근처에 있던 공안에게 끌려가는 겁니다.
이시원: 마음대로 말을 하는 자유 조차 없는 거예요?
허준; 지금 여기서 김지훈 교수님이 얘기 하다가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얘기를 하니까 갑자기 공안이 들어와서 가시죠! 데리고 나간 거잖아요.
최원정; 우리 실수한 거 없죠?
이광용: 지금 가장 큰 실수는 제가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네, 뭐 어쨌거나 심지어 몇 년 전에는 이런 사건도 있습니다. (아파트 건물에 수백장의 시진핑 사진) 이게 지금 철거해야 하는 건물인데 시진핑 주석의 사진을 빼곡하고 촘촘하게 부쳐놨어요.
최태성: 선거철인가요?
이광용: 왜냐? 건물철거를 막기 위해서 입니다. 중국에서 시진핑 주석의 사진을 훼손하면 안 되거든요.
최원정: 절대 존엄의 사진이니까
허준: 그럼 어떡해요?
이광용; 공무원들이 와서 정말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훼손이 안 되게 떼고 나서야 건물을 철거했어요. 그리고 건물주는 결국 잡혀 갔대요.
이시원: 근데 이런 일이 중국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라 홍콩 시위 때도 대자보를 하도 공산당 출신들이 때니까 시진핑 주석 사진 위에 글씨를 써넣은 거예요. 그걸 훼손한다구?
허준: 이게 21세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에요?
최원정: 일반 시민들의 정서가 이런 통제 방식에 불만하고 저항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나요?
이욱연: 중국이 저렇게 언론을 통제하니까 억압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 삶이 있어요. 그런데 대다수 중국인들은 굉장히 지지를 보냅니다.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시진핑 체제가 들어온 후에 미중대결이 심화됐는데 중국의 국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자부심이 커집니다. 아~ 이제 중국이 미국과 견줄 정도로 대국이 됐구나. 그리고 경제도 계속 성장을 하고 있고 생활도 나아집니다. 그러니까 밖에서는 시진핑 체제의 문제를 얘기하지만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자부심도 높아졌고 우리나라가 좀 더 강해졌다. 부자가 됐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한 마디로 해서 중국인들이 지금 중국 공산당을 어떻게 보느냐 조사를 합니다. 그런데 지지율을 보면은 80~90%로 나옵니다.
허준: 중국 자체 조사가 아니고 美하버드 대학에서 조사한 거예요?
이욱연: 그렇습니다. 하버드 애쉬센터에서 조사를 하거든요. 또 하나 여지가 있는게 중국이 애국주의 교육을 천안문 사태 이후 엄청합니다. 그런 영향을 받아서 청소년들 MZ세대들이 굉장히 자부심이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중국 공산당 & 시진핑 정부체제를 가장 지지하는 연령층이 누구냐 하면 청소년과 청년세대입니다.
이시원: 너무 신기한 게 저 대학생 때 중국 교환학생들 오잖아요. 수업을 같이 들어서 각자 나라에 대해서 발표를 하는데 가장 자부심이 쎈 나라가 항상 중국인들이었어요. 저희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게 아니 저렇게 통제 당하며 살면서 어떻게 저렇게 지지할 수가 있지, 근데 그거에 대한 자부심이 건드릴 수 조차 없어요.
최태성; 결과가 좋으니까 과정에 조금 문제가 있어도 괜찮다 지금 이런 거죠.
-----------이광용: 중국내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까 심지어 지금 이런 노래까지 제작되었습니다. (동영상) 노래: “이왕 시집갈 거면 시진핑과 같은 사람에게 시집을 가자 시진핑은 모든 일을 맹렬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분 파리든, 호랑이든, 또는 요물이든 모두 무찌를 것이다. 절대로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이왕 시집갈 거면 시진핑과 같은 사람에게 시집을 가라 그는 호방하고 의지가 굳센 사람이다”
이시원: 저거 정말 가사만 보면 북한 노래 같아요.
허준: 그냥 인터넷에서 자기네들 끼리 조금 만들어서 부르는 정도죠? 진짜 유행가가 아니라?
이광용: 저는 아무 말도 않겠습니다. 그만큼 시진핑 주석의 인기가 독보적이다. 그러니까 3연임 까지 시진핑이 시도하고 결국은 성공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중국의 분위기와는 달리 외국 언론에서는 중국의 엄격한 통제 체제에 대해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아주 큰 상황입니다. 저는 오늘 피디랑 작가랑 시킨 대로 대본 대로 읽었을 뿐입니다. 푸와 나가자!
일동: 폭소! 웃음
내레이션: (동영상) 지난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반대시위를 강경 진압한 시진핑 정부, 최근 들어 타이완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타이완 해협 상공에서 중국군 전투기가 위협 비행을 하거나 사실상 타이완 침공을 염두에 둔 군사훈련을 하는 등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고 무력통일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시진핑: 타이완의 독립시도는 단호히 분쇄해야 한다.
내레이션: 시진핑이 내건 두 개의 백년 목표 중 하나는 공산당 100주년이 되는 2021년 까지 중산층 사회를 만드는 것,
시진핑: 2020년 전면적인 샤오캉 (小康) 사회건설은 위대한 역사적 성취이다.
내레이션: 또 하나는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 까지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사회주의 현대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시진핑이 꿈꾸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꿈 中國夢이다.
시진핑: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은 반드시 실현될 것이다.
최원정: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 그 단어 하나 하나가 굉장히 쎄잖아요.
최태성: 옛날에 사실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은 중국인민이란 표현을 썼는데 요즘 갑자기 중화민족이란 단어를 굉장히 많이 쓴단 말예요. 그런걸 들으면 주변국가에선 사실 불편해요. 왜냐면 중국이라는 나라가 벽을 친다는 그런 느낌이, 옛날에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고 이웃은 다 오랑캐다. 이런 느낌이 드는 거에요.
이욱연: 중국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고 한 건, 부흥이라는 말이 굉장히 중요하죠. 왜냐면 부흥이란 과거에 좋았었던 때가 있었다는 거거든요. 근데 이제 전에는 부흥이라는 단어를 쓴게 아니라 진흥, 발전이라는 단어를 썼어요. 시진핑 시대에 중국이 다시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고 싶어하는 거죠. 예전에 당나라 때에는 세계 GDP의 약40%가 중국에서 나왔다고 그러죠. 지금은 중국이 한18%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중국 입장에서 보면 위대한 부흥을 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최태성: 실크로드가 당나라 때도 있었던 거잖아요. 그 현대판 실크로드, 그 용어가 바로 일대일로(一帶一路), 一帶는 육상 실크로드를 얘기하는 거구요. 一路는 해상 실크로드를 얘기하는 겁니다.동남 아시아, 중앙 아시아, 서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까지 무역 금융 문화교류를 확대하고 일체화 하겠다 (一帶一路-내륙과 해상의 실크로드 경제벨트 60여 개 국가를 인프라로 중국과 연결하는 계획) 하는 어마어마한 계획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저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주변국에 돈 풀어가지고 항만-도로공사 중에 있잖아요.
이시원: 인프라를 건설해 주는 건 좋은데~ 사실 소유나 그런 건 중국이 다 갖고 있다 보니까 그걸 쓰면 쓸수록 중국한테 돈을 주는 거구 어떻게 보면 계속 국가적으로 빚을 지고 있는 상태가 다름 없거든요.
최원정: 부채 함정외교라고 언론에서 그렇게 얘기한다고요.
허준: 요 얘기를 하다가 중국 교수가 아까 끌려갔어요.
일동: 폭소!
이욱연: 저 지도를 보면 굉장히 중국답죠. 그러니까 옛날 역사상에 있었던 길을 다시 복원하는 것이고 지금 현실은 아프리카에서 그리고 동남아에서 과거 제국주의 같은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는 거죠. 일대일로를 문명사적으로 보면 거대한 큰 그림이었습니다. 서쪽에 있는 중앙 아시아 그 다음에 동남아, 아프리카는 미국이 실패한 곳입니다. 미국의 반감이 많고 실패한 빈 곳을 파고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 중심으로 세계의 축을 바꾸겠다는 거죠. 중국은 2049년까지 세계사의 중심국가가 되겠다. 이런 꿈을 꾸고 있는 거죠.
최원정: 사실 초강대국이 된 것도 순식간이잖아요. 中國夢 Pax Sinica 이게 설명 들어보니까 비현실적이고 허황된 얘기만은 아닌 것 같아요.
김지훈: 중국이 시진핑 정부가 들어와 가지고 이렇게 정책이 바뀌게 된 것은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과거의 덩샤오핑은 韜光養晦를 하라고 그랬죠. 그래서 강대국 미국에 대항하지 말고 조용히 힘을 키우라고 얘기를 했는데 (韜光養晦-자신의 재능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힘을 키운다는 뜻 1990년대 덩샤오핑의 외교방침), 2008년에 베이징 올림픽 그 시기에 미국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생기고 리먼 브라더즈 사태가 발발 생기면서 전 세계적인 금융 시스템에 큰 타격을 주게 돼죠. 그러면서 중국은 이런 생각을 하게 돼요. 더 이상 미국의 모델이라든가 서방의 시장경제의 모델은 그다지 쓸모가 없다 오히려 중국의 체제가 더 훌륭한 게 아니냐 이렇게 생각을 하게 돼죠. 그래서 그 이후 부터는 보다 공세적으로 미국을 상대로 한 서방 국가들과 경쟁을 하는 관계가 되게 됩니다.
최태성: 서방 세계가 주춤할 때 중국은 자신을 얻은 거군요.
이시원: 그렇다면 시진핑의 중국몽 일대일로 실현을 해서 정말 최종적으로 얻고자 하는 결과는 도대체 뭘까요?
김지훈: 중국은 두 개의 백년의 목표를 제시를 했었죠. 공산당 창당 100주년 2021년까지 샤오캉(小康) 사회,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다 충분히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 그리고 중화인민 공화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된 강대국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미국을 능가하는 명실상부한 전세계 No.1 국가가 되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구요. 그리고 통일에 대한 열망, 이런 것들을 실현하는 것이겠죠. 그러다 보니까 대만 문제에서도 보다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원정: 홍콩도 돌려받았고 이제 남은 건 대만이다.
이욱연; 중국은 지금 이렇게 얘기합니다. 교육에서도 나오는 구호가 물망국치(勿忘國恥) 나라가 망했던 치욕을 잊지 마라. 이 치욕은 아편전쟁 이후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된 1949년 까지 약100년을 이야기합니다. 이 치욕을 씻는 것 이게 중국 공산당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치욕을 씻기 위해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시키는 겁니다. 이게 중국 공산당의 메시지고 중국몽의 핵심인데 이 내용에 지금 중국인들이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이고 초등학교부터 이 구호를 자기들 가슴 속에 새기면서 애국주의 민족주의 의식을 갖게되는 거죠.
최원정: 얼마 전에 뉴스 보니까 美CIA에서 발표한 건데 시주석이 2027년까지 대만 침공준비를 마치라고 지시를 했다면서요. 근데 왜 하필 2027년 그 해인 가요?
김지훈: 왜냐면 2027년 이면 바로 중국인민 해방군 창군 100주년이 되는 해죠. 그리고 지금 현재 중국은 强軍夢, 강한 군대의 꿈을 계속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방개혁과 군비확충 1단계가 완성이 되는 해가 2027년 이기도 하죠.
최태성; 만약에 지금 말씀하신대로 5년 뒤에 중국 공산당이 내세웠던 대만 수복이란 목표를 달성한다면 또 한번 연임할 수 있는 역사적인 명분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죠.
최원정: 오늘 중국 근현대사를 쫙 돌아보고 마지막으로 시진핑 주석에 대한 얘기를 나눠봤는데 굉장히 정신이 번쩍 들지 않아요. 우리가 힘든 시대에 살고 있구나.
이욱연: 동아시아의 신흥강국이 부상하고 동아시아의 질서가 흔들리고 재편될 때 우리는 늘 위기를 맞았다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또 그런 위기시대가 온 거죠. 중국이 부상하면서 동아시아의 판이 많이 흔들리고 있죠. 역사적으로 보자면 대한민국이 정말 위기의 시대에 또 한번의 중요한 전환기에 서 있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70%됩니다. 그래서 듣기도 싫어하고 보기도 싫어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역사의 미래를 위해서 중국을 좀 더 열심히 공부했으면 좋겠습니다. 끝. (KBS 역사저널 그날 382회 누가 오늘의 중국을 만들었는가? 시진핑 에서 정리)
① 2022.10.16, 중국 공산당 제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이 확정되었다. 지난 2013년 집권한 시진핑 주석은 전임 지도자들의 10년 임기의 관례를 깨고 2027년까지 최소 5년 더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자 자리에 머물게 됐다. 국가 주석직의 임기 제한이 없는 상태에서 마오쩌둥 이후 종신 집권도 가능해진 시진핑은 타이완 통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시진핑 집권 3기, 대외적으로 공세적인 외교, 대내적으로는 강력한 사회통제에 나설 것이다.
② 중국 공산당 대표 선출하는 당대회(전국대표대회)는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연출되는 권력의 극장이다.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이웃 나라는 선택할 수 없고 이웃 집은 선택할 수 있다. 이웃 집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우리가 이사가면 되니까 선택할 수 있다. 이웃 나라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우리나라가 어디로 갈 수 없다. 이웃 나라 하고는 잘 사는 게 제일 좋고 잘 살기 위해서는 잘 알아야 된다. 그 이웃이 바로 중국이다. 이제 지금 대한민국에는 이승만과 박정희 같은 특출한 지도자가 출현해야 한다.
③ 현재 시진핑의 공식직함은 3개. 中國 共産黨의 총서기 이건 黨이다. 다음 中央軍事委員會 주석이건 軍이다. 마지막으로 中華人民 共和國 국가주석 이건 政이다. 黨軍政 각각의 대표직을 맡고 있다. 1921년에 중국 공산당이 창당이 되었고, 1927년에 중국 인민 해방군이 창군되었다. 그리고 당군이 손을 잡고 장제스 국민당과 내전을 치러서 승리 1949년에 중화인민 공화국을 탄생시켰다. 시간 순서대로 지금의 서열도 당, 군, 정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다. 당의 총서기가 권력서열 1위, 중국공산당 밑에 중앙군사위원회가 있고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군통수권을 행사한다. 중화인민 공화국 국가주석은 대외적으로 중화인민 공화국을 대표하긴 하는데 헌법상 군통수권이 없다. 우리나라 하고는 시스템이 다르다.
④ 마오쩌둥(3직) 장쩌민 (3직) 후진타오 (3직) 시진핑 (3직) 모두 공산당의 총서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중화인민 공화국 국가주석도 했다. 그렇지만 덩샤오핑은 중앙군사위원회 군주석 자리만 유지했을 뿐이고, 공산당 총서기나 국가주석은 하지 않았다. 덩샤오핑이 당대 최고 지도자라고 생각하지만 당시 중화인민 공화국의 국가주석이 누구인지 총서기가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중요한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실제 후진타오가 중국 공산당 총서기를 할 때 장쩌민 주석이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바로 넘기지 않았다. 거의 2년 가까이 장쩌민이 그 자리를 지켰다. 후진타오 주석은 집권 초기에 군사통솔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⑤ 중앙군사위 주석은 중국 인민 해방군, 무장경찰, 민병, 3군을 통제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가 매우 중요하다. 1927년에 마오쩌둥이 총구에서 권력이 나온다고 했는데, 그 얘기의 핵심은 공산당이 무력을 통제해야 한다라는 거였다. 중앙군사위원회 主席은 중국 공산당에서 하고 副主席은 인민 해방군 현역군인이 한다. 주석 자리는 현역군인이 맡지 않는다. 당이 군대를 통제하는 시스팀이다. 고로 당권과 군권을 다 가져야 실질적인 권력자가 된다. 1949년 이후 중국을 통치한 지도자는 5명인데 우리나라 대통령들과 재임기간이 겹치는 기간을 보자. 한중 지도자 재임기간~마오쩌둥(1949~1976)/이승만-윤보선-박정희, 덩샤오핑(1978~1989)/최규하-전두환, 장쩌민(1989~2002)/노태우-김영삼-김대중,후진타오 (2003~2012)/노무현-이명박, 시진핑(2013~ )/박근혜-문재인-윤석렬),
⑥ 중국을 이해하려면 중국 공산당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정당도 당원을 모집한다. 개념은 조금 다른데 중국 공산당도 마찬가지다. 중국인들이 중국 공산당 일당의 지배를 받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공산당원은 아니다. 현재 중국 인구는 약14억, 중국 공산당원은 약9600만 명 정, 14억 중에 9600만, 중국인 15명 중에 1명은 공산당원이다. 당원수가 우리나라 인구의 두배다. 공산당원 9600만이 중국 공산당 피라미드 지배구조의 가장 밑바닥에 있다. 9600만명이 2300여명의 전국대표를 선발한다. 이번에 열렸던 20차 전국대표대회에 2300여 명이 모였다. 2300여 명은 직업별 지역별로 선발이 된다. 그 다음에 투표를 거쳐서 중앙위원 200여 명을 선출한다. 이들이 실제로 중국을 운영해 가는 사람들이다. 정치국위원 25명을 선출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장관급이다. 통상적으로 중앙위원급 200여 명이 장관급이라고 한다. 정치국원 25명이 매일 모여서 일상적으로 국가정치를 결정하는 건 아니다. 이 사람들 중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이 있다. 상무위원은 늘 홀수로 한다. 전원합의체이지만 8명이 회의를 하면 4:4로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최고권력기구다. 여기서 피라미드의 가장 높은 단계에 한 사람, 공산당 총서기다. 총서기도 상무위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국가를 대표하기도 하고 당을 대표하기도 한다. 총서기 1명이 바로 시진핑 주석이다. 총서기는 14억 중에 1명이다.
⑦ 공산당원이 되면 권력의 위치에 갈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도 많아 진다. 매년 한 2천만 명이 입당을 신청한다. 2천만 명의 경쟁률이 10:1 많게는 20:1 까지도 된다. 요즘 중국 청년들은 공산당원이 되고 싶어한다. 공산당원이 된다는 건 일단 인정을 받는 거다. 공산당에 대한 충성심이 높을 수 밖에 없다. 공산당 입당 선서를 한다-당에 충성하며 공산주의를 위해 죽을 때까지 분투하며 영원히 당을 배반하지 않는다.-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14억분의 1의 자리에 오른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그가 두번째 임기를 마치고 3번째 총서기연임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 기정 사실화된 것은 작년에 있었던 2021년 역사결의에서부터였다. 지난해 2021년 11월, 중국 공산당 40년만에 제3차 역사결의를 채택했다. 공산당 100년의 역사를 정리하고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성취를 평가하는 대회였다. 결의문 중 절반이 시진핑 집권 10년의 업적을 강조하는데 할애됐다. 이 역사결의를 통해 시진핑은 마오쩌둥, 덩샤이핑 같은 지도자의 반열에 올라섰다. 역사결의는 한 마디로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라는 말이다.
⑧ 歷史決議는 중요한 역사의 변곡점 마다 자신들의 역사를 정리하고 평가하고 넘어가는 거다. 어떤 사람이나 사건을 두고 이거는 이렇게 해석하고 평가하자 이런 식으로 하나의 해석,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 주는 거다. 우리는 어떤 역사적인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좋게 평가하고 어떤 사람은 나쁘게 평가하고 있다. 중국 문명엔 유일신이 없다. 부처님이라든가 예수님이라든가 신이 없는 문명이다. 중국인들이 신앙처럼 받드는 것은 사람들이 살아오는 경험 즉 역사다. 그러니까 지도자들은 늘 역사에 비추어서 내가 할일 나갈 길 이걸 정하는 거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얘기한다. 우리는 미래로 나가기 위해서 과거로 돌아간다. 역사결의 그날 첫번째 역사결의는 마오가 했다. 마오쩌둥은 누구를 비판하고 누구를 어떻게 했을까. 당시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는 소련에 유학을 갔다 오고 전통적인 맑스-레닌 주의에 따라 중국혁명을 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프로레타리아 혁명운동이라든가 도시에서의 혁명을 중시하는 입장에 있었다. 그렇지만 실제 중국 혁명에서 성공하고 승리를 얻었던 쪽은 농촌에서 근거지를 만들고 토지개혁을 하고 그 세력들이 중국 공산당의 주류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고 과거에 잘못된 노선이라고 하는 노선들을 비판하기 위해서 첫번째 역사결의를 하게 되었다. 노선에 대한 중국식 사회주의 노선을 역사결의에서 보여준 것이다. 마오의 노선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⑨ 역사결의에는 앞선 지도자에 대한 비판이 어쩔 수 없이 가려져야 되는데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에 대해서 엄청나게 비판적이지 않았다. 덩샤오핑은 마오를 전면으로 부정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마오를 부정하면 중간에 중국 공산당의 혁명투쟁, 중국 공산당 자체를 부정 하게 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었기 때문에 마오의 긍정적인 면 實事求是라든가 군중노선 이런 것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다만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시기에 대한 많은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비판을 했다. 그래서 마오의 공적이 功은 7이고 過는 3이다라는 말이 나왔다. 그 가이드 라인에 따라 과거의 역사를 평가를 하게 됐다. 저런 가이드 라인이 있기 때문에 지금 천안문 광장에 마오쩌둥의 사진이 걸려 있을 수 있다.
⑩ 정권이 규정을 해버리면 그것이 공식적인 역사결정판이 된다. 그걸 인쇄해서 책자로 배포된다. 그러면 중국 공산당원들은 당연히 달달달 외우듯이 해야 되고, 학교에서도 저런 내용들로 학습하게 된다.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 중국인들의 역사를 보는 기본 시각을 규정해 버리는 거다. 시진핑 주석의 3차 역사결의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역사적으로 아주 심각하거나 아주 중대한 사건의 전환 이런 것이 외부의 눈으로 볼 때는 별로 없었다. 다만 중점을 뒀던 것은 시진핑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10년 정도의 성과를 강조하고 있다. 공산당이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수많은 난제를 해결했고 이루지 못한 수많은 대업을 이루었고 역사적인 변혁을 낳았다. 확실히 1,2차 결의와는 달랐다. 중국인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마오쩌둥은 중국인을 일어서게 했고 (站起來) 중국이 제국주의의 압박 속에서 무릎꿇고 살았는데 이제 일어서게 되었다. 그 다음 덩샤오핑은 중국을 부자로 만들었다 (富起來) 그러면 시진핑은 중국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 중국을 강하게 만들 것이다 (强起來). 이게 바로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 중국은 이제 시진핑과 더불어서 새로운 시대로 간다. 강한 중국 위대한 중국 부흥의 시대로 가겠다. 이것을 역사결의를 통해서 보여준 것이다.
⑪ 3차 결의를 보면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것이 시진핑의 사상이다.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라고 한다. 이 내용의 골자는 사회주의 현대화를 이루겠다. 이번 세기의 중간 정도 까지는 사회주의 현대화된 강국을 만들겠다. 그런 강한 국가를 만드는 것이 중국인들의 꿈이고 중국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겠다. 3차 역사결의에서 강한 중국은 본인의 강한 의지를 드러낸 건데 이런 권력의지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걸까. 1966년, 실각했던 마오쩌둥이 다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주도한 문화대혁명, 중국 공산혁명을 이끈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도 반당분자로 몰려 고초를 겪는다. 한 순간에 반역자의 아들로 전락한 시진핑, 16세에 농촌으로 쫓겨가 토굴 속에서 7년을 보내야만 했다. 시진핑은 완전 금수저 출신, 아버지는 국공내전 당시 마오쩌둥과 함께 했던 혁명동지원로, 국무원 부총리까지 지낸 인물의 아들이다. 성골 중의 성골, 太子黨 출신 이다.
⑫ 太子黨은 중국 공산당 혁명 1세대 최고위층 인사 자녀들의 집단이다, 너무 잘 나갔던 집안이었는데 9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반동분자로 몰린다. 그래서 아버지가 16년동안 유배생활을 한다. 혁명 원로의 아들에서 반당분자의 아들로 급전직하, 그러다가 1966년 13살 때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이 발발했다. 문화대혁명 시기, 지금의 중국 정치인, 지식인들이 고초를 겪었다. 이때 홍위병들이 엄청 박해를 했다. 시진핑의 이복 누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래서 1969년 16살 때 농촌으로 쫓겨가게 된다. 문화대혁명이 일어났던 시기를 上山下鄕 운동이라고 한다. 당시에 마오쩌둥은 중국의 젊은 지식 청년들에게 농촌에 들어가서 인민 대중들에게서 배우라고 했다. 1968년 하반기부터 천만명 이상의 많은 중국의 젊은이들이 중국의 농촌이나 험지로 가게 된다. 시진핑 같은 경우는 처음에는 잘 적응 못했지만 나중에는 잘 적응했다. 현지에서 열심히 노력을 해가지고 점차 인정을 받게 된다.
⑬ 시진핑은 下放 7년이야 말로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라고 회고한다. 칼은 돌 위에서 날카로워지고 사람은 역경 속에서 단련이 된다. 시진핑은 下放 당해 가지고 제일 열심히 일하고 농민들에게 많이 배운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그래서 시진핑이 이제 중국에 최고 지도자가 될 때 많은 중국의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뭐라고 그랬느냐면 시진핑 주석이 사실은 마오쩌둥의 최고 모범학생이다 하면서 조금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시진핑=제2의 마오쩌둥 이란 말이 있다. 시진핑은 중화인민 공화국 수립~문화대혁명 시기와 유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때 당시의 교육은 모주석이 이끄는 중국혁명에 대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내가 이런 속에서도 열심히 해가지고 중국 공산당에 입당을 하고 공산당원으로 성장을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했지 힘드니까 중국 공산당 싫다 라고 하지는 않았다.
⑭ 아무튼 뼈 속까지 마오이즘이다. 2013년 총서기로 선출이 되고 나서 그 이후에 강력한 통치를 하기 시작한다. 치안 유지와 범죄자 추적 명목으로 곳곳에 CCTV를 설치한 중국정부, 안면인식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촘촘한 감시체계, 반체제인사를 감시통제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빅 브라더 사회를 연상시키는 중국의 강력한 사회통제, 이에 반발하는 일부 대학생들은 시위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검열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SNS에 시진핑 주석에 대한 비판 글을 올라오면 바로 계정 사용중지 삭제가 된다. 더 무서운 것은 오프 라인에서 검열이다. 중국의 한 교수가 생방송으로 뉴스를 전하는 얘기를 한다. 거기서 시진핑 주석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얘기한 교수를 공안들이 강제 연행하였다. 시진핑 정권에서 마음대로 말을 하는 자유조차 없다.
⑮ 중국의 언론 통제와 억압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런데 대다수 중국인들은 굉장히 지지를 보낸다.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시진핑 체제가 들어온 후에 미중대결이 심화됐는데 중국의 국력이 그만큼 커졌다. 자부심이 커졌다. 중국이 미국과 견줄 정도로 대국이 됐다. 경제도 계속 성장을 하고 있고 생활도 나아졌다. 밖에서는 시진핑 체제의 문제를 얘기하지만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자부심도 높아졌고 우리나라가 좀 더 강해졌다. 부자가 됐다. 이렇게 생각한다. 한 마디로 중국인들의 중국 공산당 지지율은 80~90%다. 중국 자체 조사가 아니고 美하버드 대학에서 조사한 거다. 또 하나 중국은 천안문 사태 이후 애국주의 교육을 엄청한다. 그런 영향을 받아서 청소년들 MZ세대들이 자부심이 높아졌다. 현재 중국 공산당 & 시진핑 정부체제를 가장 지지하는 연령층이 누구냐 하면 청소년과 청년세대다. 결과가 좋으니까 과정에 조금 문제가 있어도 괜찮다.
ⓐ 지금 시진핑 주석의 인기는 독보적이다. 그러니까 3연임 까지 시도하고 성공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런 중국의 분위기와는 달리 외국 언론에서는 중국의 엄격한 통제 체제에 대해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아주 높다. 지난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반대시위를 강경 진압한 시진핑 정부, 최근 들어 타이완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타이완 해협 상공에서 중국군 전투기가 위협 비행을 하거나 타이완 침공을 염두에 둔 군사훈련을 하는 등 무력통일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시진핑이 내건 두 개의 백년 목표 중 하나는 공산당 100주년이 되는 2021년 까지 중산층 사회를 만드는 것, 또 하나는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 까지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사회주의 현대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시진핑이 꿈꾸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꿈 中國夢이다. 요즘 갑자기 중화민족이란 단어를 많이 쓴다. 그런걸 들으면 주변국가에선 사실 불편하다. 옛날에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고 이웃은 다 오랑캐다 이런 느낌이 든다.
ⓑ 예전 당나라 때 세계 GDP의 약40%가 중국에서 나왔다. 지금은 한18% 정도다. 그러니까 중국 입장에서 보면 위대한 부흥을 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실크로드가 당나라 때도 있었다. 현대판 실크로드, 바로 일대일로다, 一帶는 육상 실크로드를, 一路는 해상 실크로드를 얘기한다. 동남 아시아, 중앙 아시아, 서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까지 무역 금융 문화교류를 확대하고 일체화 하겠다. 저것이 실현되기 위해서 주변국에 돈 풀어가지고 항만-도로공사 중에 있다. 인프라를 건설해 주는 건 좋은데 중국이 소유권을 다 갖고 있다. 중국한테 돈을 주는 거고 국가적으로 빚을 지고 있는 상태다. 부채 함정외교라고 한다. 옛날 역사상에 있었던 길을 다시 복원하는 것이고 지금 현실은 아프리카에서 동남아에서 과거 제국주의 같은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일대일로를 문명사적으로 보면 거대한 큰 그림이었다. 서쪽에 있는 중앙 아시아 그 다음에 동남아, 아프리카는 미국이 실패한 곳이다. 미국의 반감이 많고 실패한 빈 곳을 파고드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 중심으로 세계의 축을 바꾸겠다. 중국은 2049년까지 세계사의 중심국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 중국이 초강대국이 된 것도 순식간이다. 中國夢 Pax Sinica 이게 비현실적이고 허황된 얘기만은 아니다. 중국 시진핑 정부가 들어와 가지고 이렇게 정책이 바뀌게 된 것은 몇가지 이유가 있다. 덩샤오핑은 韜光養晦를 하라고 했다. 강대국 미국에 대항하지 말고 조용히 힘을 키우라고 했는데 2008년에 베이징 올림픽 그 시기에 미국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생기고 리먼 브라더즈 사태가 발생하면서 전 세계적인 금융 시스템이 큰 타격을 주게 됐다. 그러면서 중국은 이런 생각을 한다. 미국의 모델이나 서방의 시장경제의 모델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 오히려 중국의 체제가 더 낫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 부터 보다 공세적으로 미국을 상대로 한 서방 국가들과 경쟁하는 관계가 되었다. 서방 세계가 주춤할 때 중국은 자신을 얻었다. 그렇다면 시진핑의 中國夢 일대일로 실현을 해서 최종적으로 얻고자 하는 결과는 뭘까. 중국은 두 개의 백년의 목표를 제시를 했다. 2021년까지 공산당 창당 100주년 샤오캉(小康) 사회,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다 충분히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 그리고 중화인민 공화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된 강대국을 만들겠다. 그래서 미국을 능가하는 명실상부한 전세계 No.1 국가가 되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통일에 대한 열망, 대만 문제도 보다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 중국은 지금 얘기한다. 교육에서 구호가 勿忘國恥 나라가 망했던 치욕을 잊지 마라. 이 치욕은 아편전쟁 이후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된 1949년 까지를 이야기한다. 이 치욕을 씻는 것 이게 중국 공산당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명이다. 치욕을 씻기 위해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성취되어야 한다. 이게 중국 공산당의 메시지고 중국몽의 핵심인데 이 내용에 지금 중국인들이 박수를 치고 있고 초등학교부터 이 구호를 자기들 가슴 속에 새기면서 애국주의 민족주의 의식을 갖고 있다. 美CIA에 의하면, 시주석이 2027년까지 대만 침공준비를 마치라고 지시를 했다. 2027년 이면 바로 중국인민 해방군 창군 100주년이 되는 해다. 그리고 지금 현재 중국은 强軍夢, 강한 군대의 꿈을 계속 얘기를 하고 있다. 국방개혁과 군비확충 1단계 완성이 2027년이다.
만약에 5년 뒤에 중국 공산당이 내세웠던 대만 수복이란 목표를 달성한다면 시진핑은 또 한번 연임할 수 있는 역사적인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신흥강국 중국이 부상하고 동아시아의 질서가 흔들리고 재편될 때 우리는 늘 위기를 맞았다. 지금 그런 위기시대가 왔다. 중국이 부상하면서 동아시아의 판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 대한민국이 위기의 시대에 또 한번 중요한 전환기에 서 있다. 우리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70%다. 듣기도 싫어하고 보기도 싫어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중국을 더 알고 안보와 경제적으로 잘 대처해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