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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안전 위협하는 불법현수막, 대책은?
● 교통사고 유발하는 불법현수막 철거 10년... 한국교통장애인 부산광역시협회 최정헌 회장
일요일 오후, 대천공원 앞에서 누군가 불법현수막을 철거하고 있었다. 일요일, 그것도 오후 5시가 넘어서까지 불법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는 공무원은 없을테고…. 그는 바로 무려 10년 동안 불법현수막과 싸우고 있는 한국교통장애인 부산광역시협회 최정헌 회장이었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한국교통장애인협회는 1990년에 설립된 비영리 장애인복지단체이다. 1995년에 교통사고 피해 당사자로 구성된 단체로는 처음으로 국토교통부에서 설립 허가를 받았다.
최 회장이 이 일에 매달리게 된 것은 교통사고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02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고관절을 다쳐 지금도 걸음걸이가 불편하다. 게다가 지난 2006년 최 회장 막내 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해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까지 벌어졌다. 그때부터 최 회장은 교통사고를 근절하는 데 남은 일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불법현수막과 전단지 제거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최 회장은 지난 2008년부터 차를 직접 몰고 다니며 불법현수막을 떼기 시작했다. 주로 해운대구에서 활동하는 탓에 주민들에게도 익숙해진 존재다. 하루에 적게는 수십 장씩, 많게는 100장이 넘는 불법현수막을 직접 뗀다고 한다. 최 회장이 지난 10년간 뜯어낸 불법현수막은 무려 10만 장에 달한다.
최 회장을 만난 날도 그가 운행하는 봉고차 뒤 칸에 이날 철거한 현수막이 100여 개 이상 있었다. 최 회장은 이날 새벽 3시부터 활동을 시작했는데, 식사도 봉고차 안에서 집에서 준비한 김밥과 물로 때웠다고.
한편, 최 회장은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불법현수막 제거 등의 활동을 위해 부산시에 예산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활동에 공감하는 지인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돈으로 비용을 조달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불법현수막 철거 등은 원래 지자체 소관이다. 때문에 불법현수막을 뗄 수 있는 권한이 없어 철거 중 자칫 광고주와 시비가 발생할 여지도 있다. 최 회장은 “지자체에서 불법현수막 제거에 지원금을 지급한다면 지금 자신들이 힘겹게 벌이고 있는 교통 캠페인이 더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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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현수막 수거보상제
사실 최 회장이 언급한 제도는 여러 지자체에서 이미 ‘불법현수막 주민수거보상제’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다. 불법현수막 주민수거보상제는 길거리에 무분별하게 내걸려 있는 불법현수막을 주민들이 수거해 오면 그에 따른 보상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도시 곳곳을 도배하다시피 뒤덮고 있는 불법현수막을 근절하기 위해 서울시를 비롯한 여러 자치단체에서 특별히 도입한 제도이다. 특히 단속이 어려운 주말이나 야간을 이용해 게릴라식으로 설치하는 불법현수막을 단속하는 데 아주 효율적이라고 한다.
현재 해운대구에서도 불법현수막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불법현수막이 주민들이 자주 왕래하는 길을 막고 안전을 위협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찢어진 불법현수막이 도로를 통행하는 차량들의 운행에도 지장을 주는 일이 빈번하다.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주말에는 더욱 심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운대구청은 획기적인 대책은 내놓지 못하면서도 단속인력이 부족하다는 말만 수년째 반복하고 있다.
해운대구청에서는 공무원 외에도 기간제, 자활근로, 아름다운부산가꾸기 회원 등 15여 명이 주말에 하루 3번씩 불법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불법현수막 설치에 대해 연간 2~3억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지만 실제로 납부되는 것은 50~70% 정도라고 한다. 과거 해운대구에서도 불법전단지를 수거해 오는 주민들에게 장당 20원씩 보상해 주었으나 예산이 소진되어 3년 전부터 시행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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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운대구청, 설치·철거 둘러싼 주민갈등 및 예산부족으로 부정적 반응
불법현수막을 주민들이 직접 철거하는 불법현수막 주민수거보상제에 대해 해운대구청 관계자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불법현수막을 단속할 권한은 구청에 있으므로 구청에 고발해야지, 괜히 주민이 철거·손괴·멸실·변형하였을 경우 원상복구 또는 손실에 대한 책임이 따를 수 있으므로 주민들은 손대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불법현수막이 인도나 도로를 막고 미관을 해치더라도 보고만 있으라는 이야기다.
과거 해운대구청 담당 부서 공무원과 불법현수막 주민수거보상제에 대해 의견을 나눈 적이 있었다. 구청관계자는 다른 도시에서 시행중인 주민수거보상제도는 “도시의 아름다운 환경 조성과 일자리 창출에는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고 공감했다. 그러나 “주민 개인별로 수거보상을 하게 되면 현수막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다칠 경우 보상 문제가 있고, 설치 및 철거를 둘러싼 주민들 간에 갈등이 생길 소지가 있다”며 개인보다는 책임감이 강한 단체와 협약을 맺는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구청관계자가 염려하는 안전상의 문제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주민수거보상제를 시행하고 있는 서울 종로구청에 의하면 인원을 선별하여 안전교육을 한 후 시행하므로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또 주민들 간에 일어날 수 있는 갈등 문제 역시 불법적인 행위를 단속하는 것이라 갈등을 걱정하는 것 자체가 아주 궁색한 변명으로 들린다.
사실 구청에서 제시하는 이런 문제는 불법현수막 철거에 대한 구청장의 강력한 의지만 있다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사소한 것들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가 정 고민이 된다면 현재 시행중인 서울을 비롯한 광주시, 구미시, 청주시, 포항시 등에 자문을 구해보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상에 앉아 주민안전과 주민갈등을 운운하는 것은 불법현수막에 대한 심각성을 아직도 인지하지 못하고 단속의지가 부족한 것으로 보일 뿐이다.
단속 인력이 턱없이 모자라 불법현수막이 난무하면 적극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 옳다. 자체적으로 적당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다른 지자체의 제도를 벤치마킹하는 것도 필요하다. 주민수거보상제는 위에서 열거한 많은 지자체에서 이미 성공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불법현수막 근절 대책이다. 게다가 소외계층이나 경제적 약자들을 지원할 수도 있는 그야말로 일거양득의 정책이다. 주민들의 안전을 염려하는 해운대구청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해운대가 부산에서 가장 지저분한 광고판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해운대구청의 적극적인 행정을 기대한다.
● 불법현수막 수거보상제 시행 사례
◆광주광역시 남구
먼저 광주광역시 남구에서 시행하고 있는 주민수거보상제도를 살펴보자. 광주광역시 남구의 경우, 보상금을 받기 위해서는 ‘수거 보상 주민참여자’로 반드시 등록을 해야만 받을 수 있다. ‘수거 보상 주민참여자’ 모집은 관내 16개 동(洞) 주민센터에서 진행되며, 모집 인원은 각 동별로 5명 이내 선착순이다. 지원 자격은 주민등록상 남구에 거주하는 만 20세 이상인 주민이면 누구나 가능하다.
다만 남구는 사회적 약자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각 동별 모집 인원의 40% 가량을 노인 및 저소득층 인력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수거 보상 주민참여자’로 선발된 인원들은 주요 도로변과 주택 밀집지역, 가로수 및 가로등 주변, 신호등 등 공공시설물에 설치된 불법현수막과 벽보, 전단 등을 수거해 오면 보상금이 지급된다.
보상금은 현수막의 경우 일반형(가로 형태로 길게 내걸린 현수막) 1장당 1,000원을, 전신주 등에 앨범 형태로 세로로 내걸린 족자형은 1장당 500원이 지급된다. 하루에 지급되는 보상금은 1인당 최대 2만 원이며, 한 달 기준으로는 최대 20만원이 지원된다.
◆경기도 성남시
경기도 성남시의 경우 불법현수막을 떼어 가져오거나 거리에 뿌려진 광고전단물을 주워 오는 시민에게 보상금을 준다. 올해로 5년째 시행 중이다. 성남시는 보상금 명목으로 1억 5000만 원의 예산을 책정했으며 자금 소진 때까지 불법 광고물 수거보상제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수거 대상은 전신주·가로수·가로등·신호등·건물 외벽에 무단으로 붙인 벽보, 도로·주택가·차량에 무단 살포한 전단·명함, 성남시가 지정한 게시대 외의 장소에 설치한 현수막(족자형 포함)이다.
보상금액은 광고물의 종류와 크기에 따라 다른데, 벽보의 경우 A4 용지 초과 크기일 경우 100장당 4,000원, 그 이하는 2,000원이다. 전단은 A4 용지 초과 크기일 경우 100장당 2,000원, 그 이하는 1,000원을 지급한다. 현수막은 규격 제한 없이 1매에 1,000원, 족자형은 1매당 500원이다.
다만 민원 발생 소지를 없애기 위해 불법현수막의 경우 50개 동별로 5명 이내의 참여자를 선발해 사전교육 후 수거하도록 한다. 참여자는 1인당 하루 3만원, 월 20만원까지 지급한다.
만 20세 이상 성남시민은 누구든지 보상제에 참여할 수 있다. 100장 단위로 묶은 벽보나 전단 또는 현수막을 본인의 신분증, 통장사본과 함께 각 동 주민센터로 가지고 가 보상금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된다.
성남시에 따르면 수거보상제 사업으로 지난해에만 686만여 장의 불법광고물을 수거했다고 한다. 1754명의 성남 시민이 참여했고 총 1억 2762만 원을 보상금으로 지급했다.
◆충남 천안시
충남 천안시도 불법현수막 주민수거보상제를 3년째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사업 참여대상자는 읍·면·동별 만 20세 이상 주민으로, 참여희망자 중 저소득층을 우선으로 총 82명(서북구 42명, 동남구 40명) 이내로 선정하게 되며, 보상비는 1인당 일 3만원, 월 60만 원까지 지급될 계획이다.
천안시는 지난해 약 110만 개(서북구 약 60만, 동남구 약 50만)에 달하는 불법광고물을 정비했다. 이에 약 22억 3,000만 원(서북구 약 14억 6,000만 원, 동남구 약 7억 7,0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이중 약 13억 4,000만 원(서북구 약 8억 원, 동남구 약 5억 4000만 원)을 징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