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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로맨티스트의 고백
윤재천 수필집 『구름 위에 지은 집』 중 「청바지와 나」에서
수필 DJ 김숙영
시나브로 나들이하기 좋은 5월이다. 청바지가 잘 어울리고, 즐겨 입는 (윤재천) 작가의 글, 「청바지와 나」를 펼친다.
‘나는 청바지를 좋아한다.
다크 블루, 아이스 블루‧‧‧. 20여 년 동안 색의 농도에 따라, 바지의 모양에 따라 많이도 모았다.
특별한 모임에도 눈에 거슬리지만 않는다면 나는 청바지를 입는 것이 더 편하고 자신 있다.(중략)
젊음의 한끝을 놓치지 않으려고 나는 노력한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산을 오르고, 심부름하는 아이 도 없는 썰렁한 방이지만 출퇴근 시간을 정하고 방을 지키는 것은 스스로를 위해 마련한 규칙 중의 하나다.
청바지를 즐겨 입는 것도 그런 의도의 일환이다. 청바지를 내 고유의 옷으로 입기 시작한 지도 20년이 넘는다.
요즘은 시간의 빠름을 실감한다.
강의 시간에 늦지 않으려 마음을 조이고, 퇴근을 한 다음에 하루 동안 쌓인 피로를 씻기 위해 동료들과 어울려 목로주점에서 잘 못하는 술이지만, 분위기가 좋아 잔을 기울이는 사이에 나의 ‘시간 열차’는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 놓았다.’
- 윤재천 수필집 『구름 위에 지은 집』. 「청바지와 나」 중에서
그의 수필을 읽으며 70년대 초반 청바지를 처음 입고 뽐내던 시절의 추억을 떠 올린다. 집안 살림이 녹록히 않아 부모님의 눈치만 보던 때. 대학을 입학하며 아버지께 선물 받은 추억의 옷이다. 친구들에게 젊음을 상징하는 옷으로 부러움을 안겨준 옷이었다. 80년대 가수 변진섭의 곡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의 노랫말처럼, ‘멋 내지 않아도 멋이 나는 여자.’ ‘내가 돈이 없을 때도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여자.’ 청바지가 지닌 매력을 노래한다. 초등학교 교사시절 청바지를 입고, 학교소풍에 귀염둥이 들을 인솔하던 일과 잔디밭에 앉아 노래하며 기타 치던 일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청바지와의 추억이 작가의 글에 매료되게 한다. 내가 주인공인양, 마치 젊음이 다시 찾아온 기분이다. 작가가 청바지에 매력을 느꼈을 때는 중년기였다. 그 나이에는 대부분 외출 시 양복정장을 할 때다. 그 시절 그가 청바지를 즐겨 입었으니, 무슨 말이 필요하랴. 젊음을 추구하며 멋을 아는 예술인임에 틀림없다.
작가 윤재천은 1932년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하여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 한국수필 문학상을 시작으로 많은 수상을 하였다. 노산 문학상, 한국 문학상, 산귀래 문학상(제1회), 조경희 문학상 등 작가는 오직 수필의 길만 걸으며 정진했다. 지금도 수필전문지 『현대수필』이라는 잡지의 발행인이다. 또한 일년에 한 번씩 『수필학』이라는 전문이론서를 펴내고 있다.
지금은 상명대학으로 교명이 바뀌었지만, 1969년 당시 상명 여자 사범 대학에서 학보사 주간을 맡았다. 보직으로 국어교육과 학과장을 하며 교육과정에 ‘수필문학’을 처음으로 넣어 강의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수필이라는 장르가 문학의 길에 앞장서게 되었다. 또한 수필의 날을 제정하고, 수필의 날 선언문을 통해, 수필문학의 기틀을 정립해 놓았다.
수필집으로 『구름카페』 『청바지와 나』 『어느 로맨티스트의 고백』 『바람은 떠났다』 『윤재천 수필문학전집』 7권, 2018년 10월에 『구름위에 지은 집』이 출간되었다.
이외에도 문학이론서 『퓨전 수필은 말한다』 『수필 아포리즘』 등 다수의 수필집과 이론 서적이 있다. 필자는 『구름위에 지은 집』 겉표지부터 마음에 든다. 운정 수필집이 여러 권 있음에도 다시 구입했다. 파란하늘에 구름이 둥실 떠 있는 책을 펼치니, 내가 즐겨 읽는 「청바지와 나」 수필이 보인다. 겉표지를 사진으로 찍고 보니, 내 마음도 둥실 구름을 타고 있는 듯하다.
그는 21세기가 요구하는 수필은 퓨전수필, 메타수필이라고 한다. 퓨전음식이 있듯, 시 같은 수필 소설, 희곡 같은 수필을 쓰라고 강의 한다.
나는 시대의 변화를 젊은이들 속에서 느낀다. 그들은 진중함보다는 어느 분야건 빠르게 진행함이 우선이다. 이제 길고 무거운 수필을 내려놓고, 독자들에게 맞는 웰빙 수필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다. 운정 작가의 글은 평범하며 쉽게 독자가 다가갈 수 있다. 또한 미적 선율이 흘러 독자가 환희 속으로 빠져든다. 마치 곡의 절정을 찾는 오케스트라만 같다.
‘이제는 눈치 보는 일에서 벗어나 마음을 비우고 살고 싶다. 아무데나 주저앉아 하늘의 별을 헤아리고,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이 모여 사는 곳을 향해 힘껏 이름이라도 불러보기 위해서는 청바지가 제격이다.
넥타이를 매고 후줄근한 양복을 걸친 채 한강변을 거니는 초라한 형상보다는 청바지에 남방을 받쳐 입고 시선을 멀리 던지며 사색에 젖어 있는 모습이 더 여유롭다.
청바지는 나를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탈출의 동반자요, 동조자다.’
「청바지와 나」 중에서
작가는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청바지를 즐겨입는다. 교수의 직분에서의 어려움도 감내하는 옷이라 했다. ‘시선을 멀리 던지며 사색에 젖어 있는 모습이 더 여유롭다’는 작가처럼 청바지를 입고 사색에 잠기고 싶은 충동이 따를 듯하다. 누구든 이 책과 함께하면 한강변에 서 있는 여유로운 작가 운정 선생을 떠올리리라.
‘ 죽음은 나이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의지에 따라 젊게 살 수 있고 오래 살 수도 있다. 진짜 늙고 죽음의 길에 들어선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관념의 끈으로 묶어 놓고 그 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 끈으로 나를 포박한 채 노예 상태로 살아야 하는 시간을 몇 년이라도 단축할 수 있었던 용기에 감사한다.
명예니 권세니 하는 것은 한낱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장식품은 말 그대로 장식품일 뿐 본체는 아니다. 본체와 분리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것은 애착의 산물이다.
장식품은 진귀한 것이라고 해도 체온이 없는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
「청바지와 나」 중에서
절에 가보면 검은 리본으로 장식한 영정사진을 볼 수 있다. 사진 속 주인공들은 작은 소년 소녀부터 청년, 노년기를 맞아 자연사 한 고인까지 순서없이 놓여있다. 나 역시 노년기를 맞으며 마음을 비우며 살고 있다. 작가는 평범한 바지 속에서 스스로의 삶의 방법을 찾는다. 시간여행을 하며 불필요한 삶의 장식품을 버리라는 무소유의 표현이다. 내 주변을 돌아본다. 부질없는 장식품은 모두 버리리라.
‘청바지는 값나가는 고급 상품이 아니다. 서양 노동자들이 즐겨 입는 작업복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나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사회적 통념의 구속을 비교적 적게 받는 청바지에 간단한 남방차림을 일상복으로 애용하고 있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옷이 주는 고통을 감내하는 일을 반복할 필요를 느끼지 않아 오늘도 나는 청바지 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누구 앞에서도 어색하거나 부끄럽지 않다. 상대에게 결례를 범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심리적 부담을 덜게 하므로 피곤한 사람에게 청량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청바지와 나」 중에서
청바지의 특성과 장점이 문장화된 부분이다. 또한, 졸수(卒壽)를 바라보는 작가의 청바지 입은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 글을 읽은 후 칠십 중반 고개를 넘어선 남편에게 청바지를 사주었다. 젊을 때는 즐겨입던 옷이지만 그에게 어울릴까. 양복 정장 차림으로 중, 고등학생들을 이끌어 주던 사람이다. 남편 또한 작가의 표현처럼 어색하지 않았다. 이처럼 모든 이가 부담없이 입는 청량제 청바지이다. 세 살 귀염둥이가 입어도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더 예쁜 청바지, 먼 훗날까지 영원하리라.
이 글을 읽고 있으면, 순수한 문학적 향기가 배어나와 마음이 편해진다. 또한, 군더더기가 없는 간결한 문체에서, 나를 쉽게 돌아보게 된다. 운정 수필집에 담겨진 글이 내가 가는 인생의 길을 밝혀준다. 여러 갈래의 길을 찾아가며 그의 수필을 읽는다. 평범한 읽기 좋은 글이기에 마음에 저절로 녹아든다.
그의 호 운정(雲亭)이 알려주듯, 구름과 코발트 빛깔의 하늘을 좋아하는 윤재천 작가이다. 그의 퓨전수필이 구름을 타고 독자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지리라.
참고문헌:
『윤재천 수필론』
Naver blog 『21세기가 요구하는 수필』
김숙영 k103303@hanmail.net 2015년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수필작가회, 우암수필, 충북수필, 충북여성문협 회원. 우수 예술인상(충북예총) 좋은생각 문예대전 및 각종응모작 다수 입상. 수필집 『사박걸음으로 가오리다』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청바지와 나
윤 재 천
나는 청바지를 좋아한다.
다크 블루, 아이스 블루‧‧‧. 20여 년 동안 색의 농도에 따라, 바지의 모양에 따라 많이도 모았다.
특별한 모임에도 눈에 거슬리지만 않는다면 나는 청바지를 입는 것이 더 편하고 자신 있다.
요즘 들어 살아 온 연륜이 낯설게 느껴진다. 때로 내 몸을 휘감은 나이테가 6,70을 헤아리게 되었다는 사실 앞에서 묘한 감정에 빠져들곤 한다. 그러나 낯선 숫자가 만들어내는 감상에 휘말려 실제 나이보다 늙게 살고 싶지는 않다.
젊음의 한끝을 놓치지 않으려고 나는 노력한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산을 오르고, 심부름하는 아이도 없는 썰렁한 방이지만 출퇴근 시간을 정하고 방을 지키는 것은 스스로를 위해 마련한 규칙 중의 하나다.
청바지를 즐겨 입는 것도 그런 의도의 일환이다. 청바지를 내 고유의 옷으로 입기 시작한 지도 20년이 넘는다.
요즘은 시간의 빠름을 실감한다.
강의 시간에 늦지 않으려 마음을 조이고, 퇴근을 한 다음에 하루 동안 쌓인 피로를 씻기 위해 동료들과 어울려 목로주점에서 잘 못하는 술이지만, 분위기가 좋아 잔을 기울이는 사이에 나의 ‘시간 열차’는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 놓았다.
이것은 안타까운 일도 아니고, 누구에게 투정부릴 일도 아니다. 젊음이 투쟁에 의해 얻어진 노획물이 아니듯, 지금의 나이도 잘못의 대가로 받은 형량이 아니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내 모습은 사회가 요구하는 규격품의 모습이었다. 무수한 끈으로 포박당한 채 살아온 시간이었다.
몇십 년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강의이지만 늘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틀에 박힌 생활, 보직에 따라 주어지는 임무, 선생이라는 이유 때문에 무조건 참아야하는 이율배반의 처신‧‧‧.
청바지와 캐주얼을 즐겨 입게 된 것은 지나치리만큼 형식에 매달려 규격화된 채 살아 온 내 젊은 날에 대한 일종의 반란이거나 보상심리에 기인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눈치 보는 일에서 벗어나 마음을 비우고 살고 싶다. 아무데나 주저앉아 하늘의 별을 헤아리고,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이 모여 사는 곳을 향해 힘껏 이름이라도 불러보기 위해서는 청바지가 제격이다.
넥타이를 매고 후줄근한 양복을 걸친 채 한강변을 거니는 초라한 형상보다는 청바지에 남방을 받쳐 입고 시선을 멀리 던지며 사색에 젖어 있는 모습이 더 여유롭다.
청바지는 나를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탈출의 동반자요, 동조자다.
옷은 어느 면에서 보면 자신의 열등한 국면을 가리는 수단이며 방편이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살 수는 없지만, 지나치게 신경 쓰는 것은 소심(小心)함을 밖으로 나타내는 소치에 지나지 않는다. 그 외에는 일시적 가치를 지닌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언제나 벗어 던지고 나면 인연이 끊기고 마는 것이다.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는, 함께 해야 하도록 운명 지워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겉치레의 노예가 되는 일은 자존심을 스스로 손상시키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현재의 처지와 나이가 아니고, 진취적 자세로 자신의 삶을 주도하는 자세다.
죽음은 나이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의지에 따라 젊게 살 수 있고 오래 살 수도 있다. 진짜 늙고 죽음의 길에 들어선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관념의 끈으로 묶어 놓고 그 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 끈으로 나를 포박한 채 노예 상태로 살아야 하는 시간을 몇 년이라도 단축할 수 있었던 용기에 감사한다.
명예니 권세니 하는 것은 한낱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장식품은 말 그대로 장식품일 뿐 본체는 아니다. 본체와 분리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것은 애착의 산물이다.
장식품은 진귀한 것이라고 해도 체온이 없는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
청바지는 값나가는 고급 상품이 아니다. 서양 노동자들이 즐겨 입는 작업복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나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사회적 통념의 구속을 비교적 적게 받는 청바지에 간단한 남방차림을 일상복으로 애용하고 있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옷이 주는 고통을 감내하는 일을 반복할 필요를 느끼지 않아 오늘도 나는 청바지 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누구 앞에서도 어색하거나 부끄럽지 않다. 상대에게 결례를 범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심리적 부담을 덜게 하므로 피곤한 사람에게 청량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생각도 삶의 군더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벗어 던지고 나면 누구의 것인지도 알 수 없는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는 것이 허망한 일임을 깨닫게 된다.
황량한 벌판 끝에서 석양을 등진 채 말을 타고 언덕을 넘어 오던 사나이와, 누렇게 익은 곡식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흘리는 농부처럼 노년을 내 것으로 소유하고 싶어 오늘도‘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남자’를 꿈꾸며 내 길을 걸어가고 있다.
젊은 노년으로 늘 청바지처럼 질긴, 구김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출처 : 윤재천 수필집 『구름위에 지은 집』 「청바지와 나」 전문. 문학관 2018
첫댓글 요즘 나이 드신 분들도 청바지를 즐겨 입으시더라구요. 젊어 보이고 멋있어 보여서 보는 제가 다 흐뭇하던데요.~~(^_^) 잘 읽었습니다.
김순옥 작가님 늦은밤에 읽으셨네요 감사합니다
한국수필에서 새내기 작가에게 10페이지 정도 분량을 넣어주셨어요 과분할 뿐입니다. DJ는 음악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소개하듯
좋아하는 수필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6월은 이효석의
녹음의향기 수필을 준비했어요 참 아름답게 느껴지는 수필입니다
그렇군요. 김숙영 DJ선생님 멋지세요.~~^^
전 이제 막 입문해서 수필 DJ라는 말이 조금 생소했어요.
6월이 기대되네요. 이효석 선생님의 이야기는 어떻게 펼치실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2005년도 운정 선생을 충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에서 초빙해 수필강의를 들은 적이 있지요,
그때도 예외 없이 청바지차림이셨고 강의하는 목소리도 우렁찼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난 에세이포레 시상식에서 뵌 운정 선생은 많이 쇠약해 지셨더군요.
김숙영 선생님,<청바지와 나>의 작가 운정 선생을 잘 그려내셨습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많이 부족 한 사람이 수필 DJ 원고 청탁 받고 당황했어요 음악DJ생각하고 풀어 나갔습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청바지가 만인의 교복 같지만 어울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데 작가님은 자신 있게 입으신다니 멋지시네요.
청바지를 읽고 감상을 잘 쓰신 김숙영 선생님 역시 멋지십니다.
신금철 선배님 읽어주시고 멋지다는 칭찬 너무나 감사합니다 멋진 사람은 아닌데 청바지를 좋아하고 입는답니다. 그래서 이글을 선택 하여 소개 했어요
김숙영선생님, 한국수필 수필DJ 코너에서 선생님의 글을 보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음악인인 선생님과 참 어울린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예전에는 청바지가 젊은이만 입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에서 벗어난지 오래 되었지요. 나도 즐겨 입는답니다. 윤재천선생님처럼 젊은 노년으로 살고 싶나 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수필DJ 집필을 맡으신 것을 축하합니다.
김정옥 선배님 감사합니다 DJ라는 개념과 뜻이 통하나
모르겠어요 일단은 수필의날을 제정 수필인의 긍지를 높여주신분이기에 윤재천 선생님 글을 소개 했는데 윤재천 작가를 잘
그려 내었나 걱정 됩니다
김숙영선배님!
제가 청바지 입은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선배님은 그 누구보다도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윤재천 선생님을 잘 표현하신 글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이난영 작가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6월호 이효석의글을 선정 했는데
응원 해주셔서 아름답게 소개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