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실 세계는 음과 양이라는 이원성으로 나뉘어 있지만 마치 남녀가
만나 특별한 희열을 느끼며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것처럼
두 상반된 에너지의 만남과 조화는 우주의 특별한 신비인 동시에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가 된다.
하지만 그러한 조화는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는 균형된 상태,
즉 제로 포인트가 유지 될 때에만 일어난다.
한쪽에 어느 쪽보다 과하거나 부족하다면 그것은 조화가 아니라 침범과 범람.
그리고 이 치우침 없음은 수학적인 개념이 아닌 균형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 0점 장, 제로 포인트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것은 하나의 게이트,
무한의 가능성에 평행 우주가 들어 있는 그 가능태일 공간.
즉 이 0점 장은 우리가 원하는 그 평행 우주의 가능태 공간에
접속하게 해 주는 특별한 역할을 한다.
영화 273.15도의 절대온도 0도.
*절대온도: 물리학에서 거시적으로 이론적인 온도의 최저점.
절대온도에서는 모든 입자들의 운동 에너지가 최소인 상태로 축퇴되어있음.(위키백과에서)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하면 우리의 의식을 그 0점 장에 접속시킬 수 있을까?
그러한 제로 상태에 0점 장에 정신 에너지를 동조 시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식 상태를 아무런 속성을 띄지 않는 제로의 존재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해 나, 에고를 버리고 우리의 의식을 텅 비워 제로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나,
나는 어떤 일정한 상태라기보다는 가변적인 속성들의 집합.
그리고 무아 라는 것은 어떠한 속성도 존재하지 않는
여여한 어떤 상태의, 다시 말해 어떠한 분별도 없는 그대로의 상태.>
<관찰자는 또 다른 어떤 존재가 아닌 제로 포인트,
그 0점의 장에서 만나게 되는 진정한 나.
에고의 거짓 나에 가려져 있던 참 나, 본래 나인 것이다.>
< 관찰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하라.
자신을 늘 관찰자로서 인식하라.
나라고 믿었던 그 모든 속성들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고 객관화시켜라.
우리는 지금껏 처해진 상황에 적응하는 데 급급한 그러한 수동적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관찰자가 됨으로써 삶을 바라보는 시야를 능동형으로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궁극적으로 우리를 관찰자의 의식 상태에 머물도록 도와준다.>
첫째, 본인의 이름을 다른 사람을 부르듯 풀러 본다
둘째, 본인의 이름과 현재 상황을 넣어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말해 본다
'ooo (자신의 이름)는 지금 나무를 보고 있다'
'ooo (자신의 이름) 는 지금 길을 걷고 있다'
'ooo (자신의 이름) 는 지금 집에 가기를 원한다'
이처럼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우리는 관찰하는 주체가 된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나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삶의 모든 측면을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금껏 나라고 믿어왔던 그 많은 것들이 떨어져 나가며
우리는 새로운 세계에 존재하게 된다
즉 제로 포인트 에 머무는 것이다.
끝까지 자신을 관찰하라.
내가 하는 말과 내가 할 말, 내가 하고 있는 행동과 앞으로 할 행동,
그렇게 의식적으로 나를 바라볼 때 관찰자는 깨어난다.
나를 버리리라.
나를 비우라.
그리고 고요해지라.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히 존재해 왔고 영원히 존재할 오직 그것만이 고요하게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