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쥐똥나무들이
신혜진
사거리 중앙에 오토바이 하나 쓰러져 있다
오토바이와 한 몸이었던 남자가 부서져 있다
남자와 한 몸이었던 빨간 공구가방이 입을 벌린 채 공구들을 토해놓았다
그의 뼈들처럼
아래턱이 벌어진 아우디 앞에 선 빨간 원피스 하나
한쪽 팔로 허리를 짚고 비스듬이 남자를 지켜보고 있다
빨강 마네킹 같다
빨강의 표현법은 선명도 하다
빨강은 월세
빨강은 차압 딱지
빨강은 막다른 골목
빨강은 불꽃
빨강은 무중력으로 부풀어 오른 풍선
신호가 바뀌고
길게 늘어선 차들이 별것 아니라는 듯 달려간다
버스가 남자를 피해 길게 휘돌아 좌회전 한다
키를 맞춘 도로변 쥐똥나무들 하얀 꽃잎을 밀어올리고
피투성이 공구들이 빨갛게 번져나간다
- 2020년 <애지> 신인문학상 당선작
■ 신혜진 시인
- 경남 의령 출생
-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재학
◆ 애지신인문학상 심사평
- 신혜진 씨와 최병근 씨의 시에 대하여
인간의 권력은 누가 언어를 소유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주어지는 것이며, 따지고 보면 시인은 인간 중의 인간이며, 최고의 권력자라고 할 수가 있다. 태초에 시인이 있었고, 시인이 그의 언어로서 이 세계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시인은 브라만이었고, 시바였고, 시인은 알라였고, 하나님이었다. 시인은 부처였고, 예수였고, 시인은 제우스였고, 뮤즈였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쥐똥나무들이] 외 4편을 응모해온 신혜진 씨는 오랜 기간 동안 시를 쓰며 절차탁마의 비법을 터득한 것처럼 보인다. 꽉 짜인 구성과 시적 이야기를 끌고 가는 서사적 능력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극적인 효과가 그것을 증명해준다. ‘빨강의 현상학’을 통해 외제차와 공구가방의 오토바이의 충돌현장을 노래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쥐똥나무들이], 실직과 구직 사이에서 출구가 없는 길을 끌고 가는 구두([어느 봄 도서관의 오후 두시]), 마냥사냥의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던 여자의 한을 노래한 [죄], 나방 한 마리의 뒤집힘을 보고 “뒤집힌 날개 위에서 핑그르르 지구가 돈다”는 [절벽], “안개와 새와 꿈과 봄이” 몸무게를 불려도 안녕함이 없다는 [새소리와 봄안개 사이] 등은 신혜진 씨의 시적 능력과 그 미래를 보장해 준다고 할 수가 있다.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은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말의 활주로] 외 4편을 응모해온 최병근 씨는 이 ‘삶의 철학’을 통해 그의 행복을 연주해나간다. 문명을 거부하고 단순한 삶을 선택한 [행복한 아미쉬]는 전자에 맞닿아 있고, “따뜻한 말 가득 싣고/ 골디락스행성 항로를 따라”가다 추락한 [말의 활주로]는 후자에 맞닿아 있다. 이 삶의 철학은 그의 깨달음, 즉, [파리의 자궁], [수건의 배후], [모기 견인차]와도 같은 풍자와 해학의 시를 탄생시킨다. 풍자와 해학은 비판의 힘이 되고, 이 비판의 힘의 결정체가 “한 방울 피라도 먼저 빨아야 하기에/ 잠드는 순간인데도 윙윙거린다/ 극성스러운 소음을 내지르며/ 경찰이나 소방차보다 더 빨리 발진한다”(모기 견인차])라는 시구라고 할 수가 있다. 좀 더 깊이가 있고, 좀 더 세련된 절차탁마의 언어가 요청된다.
시인의 권력은 언어이며, 어느 누구도 사용할 수 없는 언어를 일도필살의 검객처럼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언어는 검이고, 이 검에서 빅뱅, 즉, 우주의 대폭발이 일어난다.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 애지신인문학상 심사위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