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종 황석지 베드로(1787?〜1833)
o 양반
o 1787(?) : 충청도 홍주에서 출생. 이후 경기도 수원으로 이주
o 1833년 : 전옥서에서 병사로 순교
“베드로가 세상을 떠날 때 옥 전체에 환한 빛이 비쳤습니다. 무슨 일인가 보러 갔더니,그의 감방에 찬란한 광채가 비치고 있었고, 비 둘기 한 마리가 방안을 돌고 있었습니다. 그 후 몇 분이 안 되어 그 가 숨을 거두었습니다.”255)
황석지(黃石之) 베드로의 선종 소식을 듣고 친척들이 옥으로 찾아갔 을 때, 옥에 있던 한 비신자가 자신이 본 사실을 그 친척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베드로는 충청도 홍주 당산리(堂山里)256)의 양반 출신으로, 경기도 수 원 샘골257>에서 살았으며 , ‘사윤’ 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본래 성격이 점잖고 엄격하였던 그는 모든 친척과 이웃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는 데,39세 때 이웃에 살던 김취득(金就得, 1816년의 순교자)의 권유로 천주 교리를 배워 온 가족과 함께 입교하였다.
천주교에 입교한 뒤 베드로는 좋아하던 술을 끊고,자신의 결점을 고 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던 중 1821년에 아내와 네 아이들을 차례로 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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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A. Daveluy, Notes pour l'Histoire des Martyrs de Cor슨e(전시•본),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p. 356.
256)옛 홍주 지역에는 여러 곳에 당산리가 있었다.
257)수원 샘골은 현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기산리의 샘골〔泉谷〕혹은 화성시 양감면 신왕리의 샘골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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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으나, 그는 조금도 슬픔을 드러내지 않았고,오히려 처자가 선종(善 終)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천주께서 불러 가신 데 대해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기도를 하고, 덕을 닦는 데 노력하였다.
이후 의지할 데가 없게 된 베드로는 종종 서울 아현에 사는 조카 황 안 드레아의 집에 가서 생활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이웃에 사는 김작은아기(金小阿H)를 입교시키는 등 선교 활동을 하였다. 한편 그의 조카 안드레아는 오래 전부터 교회를 위해 북경을 왕래하거나 교우들을 돕는 일을 해 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1833년 10월경에 황 안드레아의 행적을 추적해 오던 좌포도청 의 포교들이 그를 체포하기 위 해 아현의 집을 습격하 였다. 그러나 안드레아는 마침 집에 없었고, 그 대신 황석지 베드로가 체포되었다.
좌포도청으로 압송된 베드로는 문초와 형벌 가운데서도 굳게 신앙을 증거하였다. 또 포도대장이 배교하면 살려주겠다고 제의하자, “천주교를 오랫동안 믿어왔으므로 갑자기 마음을 바꿀 수 없다.”259>고 하면서 이를 거절하였다. 그러고 나서 함께 투옥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그들 에게 ‘압수당한 책자와 성물은 모두 베드로의 것’ 이라고 자백하도록 시켰다.
황석지 베드로는 이후 형조로 이송되었으며 , 그곳에서도 “천주 신앙을 독실하게 믿어왔으므로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는다.”260>고 하면서 거듭 신앙을 증거하였다. 그런 다음 사형 선고를 받고 전옥서(典M署)에 투옥 되었다. 그때 옥중에 있는 한 비신자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베드로 의 행동에 놀라 그 이 유를 묻자,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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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일성록』, 순조 33년(1833년) 11월 8일 : A. Daveluy. Notes pour rHistoire des Martyrs de Coree, pp. 353〜354 : A. Daveluy, Notices des Principaux martyrs de CO셨e(전사본) ,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p. 69.
259)『일성 록』,순조 33년 10월 27일.
260)『일성록』, 순조 33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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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섬기는 천주는 천지의 큰 임금〔大君〕이시며,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배반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만 번 죽기를 원한다오.”26u
그러자 옥에 있던 죄수들은 베드로에게 천주 교리에 대해 듣기를 원하 였고, 베드로는 이때부터 그들에게 교리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러 던 1833년 11월(음력) 이후의 어느 날,베드로는 갑자기 병을 얻어 선 종하였으니 , 당시 그의 나이는 65세 혹은 66세였다.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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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A. Daveluy, Notes pour THistoire des Maityrs de Coree, p. 355. 262) 『일성록』. 순조 33년 11 월 9일. 다블뤼 주교는 황석지 베드로가 1832년
9월 20일에 체포되었고, 이듬해 5월(음력)에 순교한 것으로 기록하였다 (A. Daveluy, Notices des Principaux martyrs de Coree, pp. 69 〜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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