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통신 1보> - 지겨운 1주일
2010년 3월 1일(월) 흐리고 비, 3월 2일(화) 흐리고 비, 3월 3일(수) 흐리고 비, 3월 4일(목) 흐리고 비, 3월 5일(금) 비, 3월 6일(토) 비, 3월 7일(일) 흐림.
이건 지난 일주일간 중국에 첫발을 내딛고 처음으로 겪었던 상하이의 날씨다.
최근 며칠간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서는 영빈관 8층 숙소에서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계속해서 흐린 날씨 탓에다 상하이 도심 특유의 스모그로 인해 몇 백 미터 밖이 잘 보이지 않는다.
노안이 왔거나 백내장 걸린 사람 마냥 온통 시야가 흐릿하다.
어제와 다른 점은 일요일이라 그런지 빵빵 거리는 차량 소음이 좀 덜하고, 2층 고가도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밀려드는 차량행렬이 눈에 띄게 줄었고, 그리고 3층 고가도로의 경전철 지나가는 소리가 평일과 달리 조용하다는 것뿐이다.
밥솥에 아침쌀을 안치고 있는 벗씨에게 말을 걸었다.
“벗씨야, 오늘도 밖에 나가기는 글렀다. 그치?”
“어차피 방안에 갇혀 있기는 마찬가진데 날씨 탓을 하면 뭐하겠어?”
약간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3월 1일에 상하이시 북쪽에 위치한 이곳 상하이외국어대학에 발을 들여놓고는 말이 안 통한다는 핑계로 영빈관 숙소에 똬리를 트고 굼뜨게 행동하고 있는 남편인 나에게 불만이 있다는 표시다.
(영빈관에서 내려다본 상하이시 전경)
그러고 보니 일주일 동안 학교에서 등록절차를 밟는 것 빼고는 거의 외국인 전용 숙소인 영빈관 816에서 잘 움직이지를 않았다.
기껏해야 교내 식당 2회, 교문 옆 조선족 식당 1회, 1킬로미터 떨어진 까르푸(家樂福) 할인점 2회, 그 옆의 이마트(易買得) 할인점 1회 방문이 전부였다.
긴긴 일주일이란 시간을 단지 비 온다는 것과 말이 안 통한다는 핑계로 방안에만 박혀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올 때 오로지 중국어에만 집중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바람에 책 한 권 가지고 오지 않았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비행기 안에서 가지고 온 경제신문 한 부를 광고 면까지 종이에 구멍이 날 때까지 읽고 또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다.
그저께 이 인터넷마저 개설되지 않았다면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는, 왕왕 거리는 텔레비전 소리와 아주 친한 친구가 될 뻔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의 <날개>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누가 잡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갇힌 방을 자기가 만들어 놓고 스스로가 구속되었다고 생각하며 밖을 향해 날고 싶은 자유를 꿈꾸고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에서는 주인공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 끊임없이 갈등하며 자아를 찾아 나서지 않았는가?
그럼, 나는 뭔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의 주인공이 꿈을 찾아 사막으로 떠나가는 거창한 용기는 아닐지라도 비를 뚫고 숙소 문을 박차고 나서는 조그마한 용기라도 가지지 못 한단 말인가?
스스로 답답하다고 외치면서 몸은 꿈적이지 않고 불안해하고 있다.
(상하이외국어대학 영빈관 전경)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약간은 소설과 같은 허황한 꿈을 꾸곤 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어도 바다라는 거대한 단어에 정신이 팔려 정작 내용은 어디 간지 알 수가 없었고,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어도 주인공의 자유분방함에 매료되어 뭔가 나의 현실에 만족할 수가 없었으며, 또한 대학원 시절에 읽었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전기문>에선 진정한 자유의 의미에 대해 너무 푹 빠져버리기도 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자유, 세계, 바다, 꿈, 여행이란 단어만 듣거나 접하게 되면 가슴이 설렌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 읽은 미하일 일린의 <인간의 역사>에서 수백만 년에 걸친 우리 인류의 발걸음에 경외의 마음이 일어났으며, 토머스 프리드먼의 <코드 그린-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에서는 내용보다는 기자인 작가가 폭넓은 취재를 위해 온 세계를 두루 섭렵하는 모습에 감동했고, 그리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에서는 인류가 천 년에 걸쳐 멀고도 먼 우주여행을 떠나는 내용이 내 심장을 고동치게 하고 말았다.
또한 조찬일이란 초등학교 친구가 준 법륜 스님의 <금강경>, <반야심경>, <육조단경>의 강의는 해탈이나 무소유의 의미보다는 내게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중요한 의미에 확신을 가져다 줘 버렸다.
어디 그뿐이랴. 급기야는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그건 사랑이었네>가 나를 결정적으로 흔들고 말았다.
나이 50이 넘기 전에 내가 만든 환경이란 구속의 틀에서 빨리 떠나야 한다는 결심을 최종적으로 하게 만든 것이다.
이제 소원대로 내가 만들고 관계를 지어 왔던 가족, 직장, 대구, 한국이란 환경의 구속에서 벗어났다.
떠나는 용기는 책이란 남의 힘을 빌어서 낼 수가 있었다.
지금부터 새로운 구도자(?)의 길, 제2의 삶을 내 스스로가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숙소의 50룩스도 안 되는 침침한 형광등 불빛마저도 내게 용기를 북돋아주지 못 하고 상하이 날씨만큼이나 침침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도 모를 중국 생활이 감이 잡히질 않는다.
(영빈관 816호 내부 모습)
갑자기 조선족 식당의 젊은 사장이 한 말이 생각난다.
"1년 반만에 중국어 마스터하겠다고요? 글쎄요. 마스터가 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쉽게는 안 될 겁니다."
그 사장은 용기 있게 내게 말했지만 내게는 용기를 상실케 하는 말이었다.
다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는 말을 찾는다면 며칠 전에 대학생인 우리 맏아들 다래가 한 말이다.
"아부지요! 어린 나이에 용기 있게 이곳 중국까지 와서 공부하는 자식 같은 대학생들도 대단하지만, 아부지 같은 나이에 이렇게 직장 그만두고 부부가 같이 와서 중국어 공부하는 것도 대단한 용기이고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용기를 가지세요."
아들 하나는 참 잘 둔 것 같다.
뒤집어진 풍뎅이가 제 힘으로 일어나지 못 하고 제 자리에서 빙빙 돌기만 하듯 나도 침대위에서 뒹굴며 시간만 때우는 풍뎅이 같은 꼴을 해서야 되겠는가?
이제 뭔가 계기를 만들어 내 힘으로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행동반경을 넓혀야겠다.
지겨운 1주일이 지겨운 1년으로 이어지면 안 되지 않는가.
내 옆에서 오늘 날씨는 어떻게 될까 하고 물끄러미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는 벗씨에게 나는 소리쳤다.
"벗씨야, 학교하고 붙어 있는 홍구공원(紅口公園, 지금은 루쉰(魯迅)공원)이라도 산책하자. 거기서 윤봉길 의사의 힘이라도 빌려 내일부터 시작하는 중국어수업과 중국생활을 힘차게 시작해 보자. 볕이 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인공태양이라도 한 번 만들어 보자. 파이팅!"
2010년 3월 7일
멋진욱 서.
첫댓글 수업은 언제 시작인고, 주변 아는 사람들 연락해서 열심이 돌아 다니 시게, 털게가 지금 나올텐데.
회장님, 저희 보살펴 주시는 은혜 나중에 갚겠습니다. 히히.
어디에 가 있더라도 항상 멋진 욱 임을 믿습니다.
무주상보시의 대표이신 선배님, 존경합니다. 히히.
그냥 흐뭇. 큰먹이감을 기다리는 대범함이 보인다. 상핸얼래가그렇다카더라. 남경로도가보고, 황포강도 가보고, 상해미술관옥상에올라가 차도한잔하고.... 문만열고나가면, 모든게 다니끼다. 비는맞지마라,춥잔아. 삼월이가오고, 사월이가 오면 도 다른 모습의 상해가있겠지. 난, 밤샘하면서 인생을 즐기고있다. 밤샘하는거 이거 얼마나 더 할수있을려나. ..............그래도 아직 우린 젊잔아. 아랫배 힘한번주고, 중국을 품으려무나. 대구 성서공단에서 상경이가.
항상 힘을 불어 넣어 주어서 고맙대이... 니도 아프지 말고 돈 많이 벌어라. 히히.
건강 챙기시고 즐겁게 지내시다 오세요. 오시면 진짜 밥 한 그릇 합시다요~^^
젊은 후배들 많이 키워 주시용. 현재 대구흥사단의 최대 과제인 것 같습니다. 히히.
멋진 욱씨 힘내시고!!.. 인생은 하나의 드라마다 드라마중 가장 재밌는 파트는 "도전"이다..사는동안 누구에게나 다 기회가 온다 그 기회가 왔을때 준비되지 않으면 그 기회를 흘러 보낸다..욱씨, 윤자씨 화이팅!!!
항상 저희 부부를 잘 챙겨주신 선배 부부님이셨는데 훌쩍 떠나서 미안합니당. 건강하시와요. 히히.
중국 여행 두루두루 섭렵하고 얼릉 온나, 앞산에 올라가도 천지를 품을 수 있다.
선배님, 보약 잘 챙겨 먹고 있습니다. 작년엔 류중렬 선배가 또 그러시더니... 난 아프면 나쁜 놈이다. 히히.
바깥 풍경이 색다르네요.... 대구도 줄창 비오고 오늘은 눈까지 한바가지 쏟아져 차들이 엉금엉금 기었습니다...
고생 많으셨겠네요. 여기도 엄청스레 추웠습니다.
그렇게나 바쁜데도 공항까지 나오더니... 앞으로 환전할 때 더 싸게 안 해 줘도 된다. 하여튼 환전할 때 절약한 돈으로 밥 잘 챙겨 먹을게. 히히.
욱이 단우님 온가족이 중국에 가 있으시단 말이지요? 공부하는데 젊고 늙음이 있을까요? 하면 됀다 이 용기만 있으면.. 자 ~ 파이팅 ~
이 대학교 광고판에 이런 자막이 지나가고 있었어요. 인생유한, 공부무한. 그쪽 소식도 자주 올려 주시와요. 2년 뒤에는 영어연수하러 카나다로 가겠습니다. 히히.
안녕하시유
벙개 안 칩니까? 왜 이리 조용하지요? 히히.
반갑습니다. 히히
덕분에 홀가분하게 떠났습니다. 자알 부탁합니당. 사업도 번창하시고요. 책도 열심히 읽고 계시죠? 아이~, 책 읽고 싶어라. 히히.
대구도 한주일 내내 흐리고 비 그후 폭설... 어쩐지 상해에서 만남이 이루어 질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응원합니다. 화이팅
오시면 연락이라도...같이 여행다녀요~^^홍구공원의 윤봉길 의사 기념관은 아직 아껴두고 있습니다. 누구 오면 같이 가려고...바로 학교앞. 입장료 15원. 한국인들한테만 받더군요.ㅋㅋ
전 세계를 두루 섭렵하신 선배님, 많은 충고 부탁드립니다. 히히.
용기가 부럽네. 멋진 이야기가 쌓여 갈 것이라 믿는다. 멋진 욱을 믿고 너 또한 욱에게 믿음을 주고 ... 참 대단한 부부당.
아이들 빨리 키워 놓고 이곳으로 놀러 와요. 말 배우면 안내하겠습니다. 상경이는 벌써 상하이 마스터했더구먼유. 히히.
ㅋㅋㅋ 역시 김지욱 장윤자 부부가 대단하구만 ㅎㅎㅎ 댓글 달린것을 보니 ㅋㅋㅋ 날씨 탓하지 말고 많이 보고 배우고 우리에게도 나눠주세요.(자주 글 올리라는 압력임)
일부러 만들어 주신 찰밥 정말 잘 먹고 왔습니다. 저희들 때문에 우리 아파트로 오셨는데 이렇게 도망 나와서 어떡합니까? 건강하시와요.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