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교신학-아시아 선교에 있어서 종교다원주의 문제에 관한 연구 2-2
작성자:jman
작성시간:2019.07.13 조회수:195
댓글0
아시아 宣敎에 있어서 宗敎多元主義 문제에 關한 硏究 2-2
종교 다원주의의 개념
A. 종교 다원주의(pluralism)의 배경
1. 다원주의의 개념
현대 사회를 흔히 다원화된 사회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사회와 가치의 규범 뿐 아니라 사회의 조직과 구조에 있어서도 다원화(pluralization)가 두드러진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다원화와 종교 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는 같은 기준으로 평가 할 수 없는 것이다.왜냐하면 다원화는 기술적이고 객관적인 문제이며,종교 다원주의는 타종교에 있어서 “구원”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신학적 가치 판단이기 때문이다. 원래 다원화란 사회적으로 볼 때 개개인이나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적,의식적 근원이 다양해 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종교 상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종교 다원주의란 “다른 종교 집단들이 경쟁적 상황에서 공존하고 있는 것”,혹은 “다양한 신조적,윤리적 강조들이 다양한 종교들에 의해 주어지며,행위에 대하여 다양한 종교적 통제가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 2. 종교 다원주의의 뿌리
▶ 종교 다원주의 뿌리를 고대근동의 신개념과 바알이즘에서 찾아 볼 것입니다.(연구 및 자료미진)
3. 현대 종교 다원주의 발생의 배경
종교 다원주의 문제는 세계 도처에서 오랜 역사를 두고 제기되어 왔다. 구약시대의 야웨 하나님과 다른신들과의 관계문제, 그리고 교부시대의 기독교와 고전 문화의 관계 문제가 그 좋은 예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독교는 특히 중세이후 다른 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기독교 절대 주의의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렇다면 현대에 들어와서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문제가 특별히 심각하게 대두되고 전통적인 기독교 절대주의에 대한 강한 도전과 반대가 일어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목창균 교수는 스미스(Wilfred Cantwell Smith)의 주장을 인용하여 “종교적 다원주의의 문제는 교회가 다른 신앙과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었던 선교지 최일선의 선교사들과 비교종교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고 주장한다. 18,19 세기의 기독교 선교 정책은 서구의 식민주의 정책과 발을 맞추어 이른바 “식민주의 선교정책”,“제국주의 선교정책”을 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정복민을 기독교도로 개종시키는 것이 전통적인 선교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식민지 정책이 종식되고, 정복식의 선교정책은 위기를 맞게 되었다. 실제로 1954년 인도정부는 개종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선교사들을 철수하도록 명령했으며,중국,앙고라,아랍세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렇게되자 타종교와 대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타종교를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선의 선교사들 사이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한편, 과학의 발전으로 종교 다원주의의 태동을 촉진하였다. 16세기 이후 유럽에 발견과 탐험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기독교 세계밖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으며, 동서양의 활발한 교류는 타종교에 관한 문헌을 쉽게 접하게 해주었고 이를 통해 기독교와 다른 종교와의 문제는 긴급한 것이 되었다.
특히 비교종교학의 발전과 함께 종교사 연구가와 비교종교학자들 사이에서 타종교에도 기독교와 동일한 요소가 많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19세기 종교사학파의 대표자 트뢸치(Ernest Troeltsch,1865 -1923)가 그 좋은 예이다. 그는 기독교 절대주의를 거부하고 종교의 ‘상대주의’를 주장했다. ‘종교적 상대주의’라는 것은 기독교가 기독교인들에게 훌륭한 종교인것 처럼 힌두교가 힌두교인들에게 훌륭한 종교라는 것이다. 즉 모든 종교는 상대적이고, 제각기의 진리요소를 가지고 있으므로 기독교를 절대적이고 우월한 종교하고 말할 수 없다고 보았다.
B. 종교다원주의의 이론들
1. 신중심적 접근 방법
a. 존 휙(John Hick)
존 휙은영국의 종교철학자 이자 신학자로서 본래 개혁교회의 복음주의적이고 그본주의 성향의 신학자였다. 그는 1973년에 God and the Universe of Faith를 발표하면서 종교적 사고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선언하기 시작했다. 그가말하는 혁명이란 기독교 혹은 예수 그리스도가 종교적 헌신의 중심이라는 전통적 견해로 부터 모든 종교적 신념과 실천의 중심에는 하나의 신적 실재(One Divine Reality)가 있으며, 모든 주요 종교들은 이 실재에 대해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제약된 인간의 반응이라는 다원론적 견해로의 변천을 말한다.
그는 바가드-기타<Bhagauad-Gita>의 “인간이 어떠한 길을 택하든지 그것은 나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라는 구절을 그의 표제로 택한다. 또한 “우리는 신앙의 우주가 신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지 기독교나 혹은 어떠한 다른 종교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만 한다. 그는 빛과 생명의 창조적 원천인 태양이며, 모든 종교는 그들 나름의 상이한 방식으로 그를 성찰한다.”
힉은 자신의 신학에 칸트적 배경을 담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 경험에 의해 구조화된 선험적인(a priori) 관념으로 본다. 그러므로 힉은 야웨, 알라, 순야다, 브라만, 니르바나는 모두 “실제의 원래적 현현”이라고 한다.
b. 폴 니터(Paul Knitter)
폴 니터는 그의 신중심적 모델을 “관계적 유일회성”(Relational Uniqueness)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특히 그는 과정적-관계적 실재관의 영향으로 세계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진화적이고 과정적이라는 실재솬을 말하고 있다. 즉, 우리는 존재(being)의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고 생성(becoming)의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결되지 않은 변화 과정속에서 종교를 보고 상대성을 허용한다. 특히 그는 생물의 진화를 말하는 다윈의 진화론과 아인쉬타인의 신물리학의 통찰을 가지고 실재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되는 과정으로 보았다. 이러한 영향으로 니터는 상호 관계성에 입각한 예수의 유일회성을 해석한다. 예수를 관계적 유일회성으로 해석한는 것은, 니터에 의하면, 예수를 ‘유일회적 이다’라고 기독교내에서 주장할 수 있지만 그 의미는 다른 종교적 인물들과 관계하는 경우에는 ‘한정된 유일회성’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신중심적 기독론을 예수에 대한 신약성서 복음의 본래적 의미에 대립되지 않는 비규범적 이해에서 전개려고 한다.
니터는 가다머의 해석학을 신약성서의 예수에 관한 교리적 본문들에 적용하면서 본문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그 본문의 역사적 상황에서 해석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한다. 그는 가다머가 설명하고 있는것 처럼 본문과 그 내용은 경험과 의미의 지평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한 지평이란 역사를 통해 확대되기 때문에 본문과 내용이 새로운 구조속에서 계속 들려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실로 본문의 의도하는 바를 듣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니터는 신약성서의 상황이나 예수에 관한 과거 교리적 진술과는 전혀 다른 인간경험의 ‘구조’(texture)에 있어서 새로운 진보가 있었음을 제시하려고 한다. 이러한 구조는 모든 문화 및 역사적 업적의 상대성에 대한 새로운 역사의식과 다원주의에 대한 새로운 의식 그리고 특별히 수 많은 사람 가운데서의 새로운 형태의 통일을 추구할 필요성에 대한 보다 분명한 인식등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2. 그리스도 중심의 접근 방법
a. 칼 라너(Karl Rahner)
칼라너(Karl Rahner)는 포괄적이면서 기도론적이 접근을 택하는 카톨릭 신학자이다. 그는 제 2바티칸공의회의 신학 자문위원이었으며, 교회밖에 구원이 없다는 전통적인 로마카톨릭 교리를 공식적으로 재해석하는데 중요한 역활을 하였다.
제 2바티칸공의회(1962-1965)가 열리기 수개월전, 라너는 바바리아에서 ‘가독교와 비기독교 종교’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그의 강의는 종교 다원주의가 기독교에는 가장 큰 치욕거리이며골치거리임이 틀림없다는 주장으로 시작됬다. 그 다음에 라너는 그의 신학에 있어 근본이되는 세가지 주제들을 설명해 나갔다.
첫번째 주제는, 기독교가 자기를 모든 인류를 위한 절대적인 종교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며,
두번째 주제는, 비기독교 종교들은 그리스도로 인해 값없이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흘러나온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번째 주제는, 기독교 이외의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익명의 크리스챤’(Anonymous Christians)으로 여겨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교회는 스스로를 구원에 대한 권리를 가진 배타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오히려 역사적인 선구자, 다른 종교에 숨어있는 신재로서 나타나 있는 기독교적 희망의 명백한 표현으로 여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라너의 입장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을 가해져왔다. 존 힉은 그것은 “바라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명예로운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묘사한다. 한스 큉 역시 비판적인 입장으로 두가지 주된 반대 이유를 제시한다. “익명의 크리스챤”이란 개념은 비기독교 인들에게는 불쾌한 말이며, 둘째로 세계 종교들의 도전에 직면함없이 대화를 선취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노만 앤더슨(Norman Anderson)경 역시 ‘익명의 크리스챤’이라는 라너의 개념을 거부한다. 비기도굑 종교인들에게도 모든 인류에 대한 일반 계시의 표현들과 “하나님의 의와 심판, 인간의 죄와 죄책, 그리고 모든 남녀에게 속죄와 용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어느 정도”증거한고 있는 요소들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파나카와 라너에 대해 가해야할 중요한 비판은 그들이 성경의 진리를 상대화 시키고 타협시켰다는 것이다.
b. 한스 큉(Hans Küng)
큉은 1960년 이래 튜빙겐에서 가르치고 있는 스위스의 로마카톨릭 신학자이다. 잘 알려진 그의 저서로는 칭의(Justification:1965), 교회(Church:1967),무오?(Infallible?:1971),크리스챤이 됨에 관하여(On Being a Christian:1967),그리고 영생?(Eternal Life?: 1984)이 있다.
크리스챤이 됨에 관하여에 명백히 나타나있듯이 큉의 신학은 근본적으로 기독론적이다. 다른 종교의 약점은 물론 장점도 인정한지만, 그는 한나님의 최고 계시는 그리스도안에 있다고 믿는다.
큉에게 있어서 두가지 두드러진 요소는, 비평학자들에 의해 구축된 역사적 예수, 즉 인간으로 하여금 올바른 인간다운 방식으로 살게끔 해준 참사람이다. 이것이 ‘아래로 부터의 기독론’(from the below)이다.
그는 세계 종교들 가운데 있는 ‘일반적인’ 구원의 방식과 교회내에 있는 ‘특별한 구원’의 방식을 구분한 것으로 유명하다. 큉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인간은 그의 역사적 상황에서 그에게 유용한 종교 내에서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찾는 것은 그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그 종교 내에서 감추어진 하나님은 이미 그에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가 실존적인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직면할 때까지는 모두 그러하다. 종교들은 ...보편적인 구원사에 있어서의 구원의 방식, 즉 세계 종교들을 믿는 사람들을 위한...일반적인 구원의 방식이다. 교회내에서 매우 특수하고 특별한 것으로 나타나는 구원의 방식과 대조되는 보다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구원의 방식인 것이다.
큉은 기독교와 세계종교라는 책에서 이슬람교와 힌두교, 불교와의 대화를 시작한다. 그는 이 대화에서 두가지 일을 시도하는데, 첫째는 타종교의 빛 가운데서 행하는 기독교의 자기 비판이고, 둘째는 복음의 빛 가운데 행하는 타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비판이다. 이를통해 그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란 창호를 사용한다는 것은 커져가는 헬라의영향하에 있던 교회들 뿐이었다고 주장하다. 그의 결론은 예수그리스도라는 역사적 인물은 하나님을 ‘대표하고’,‘나타내며’,‘명백히 한다’는 것이다.그러므로 그의 기독론은 예수가 참 인간이며, 참 하나님이라는 칼테돈의 신조를 부인하는 것이다.
3. 대화를 통한 접근 방법
a. 스텐리 사마르타(S.Samarta)
대화를 통한 접근방법을 주장하는데에 있어서 체계를 이룬 사람이 바로 스텐리 사마르타이다. 그는 힌두문화권에서 살면서 기독교인이 그리스도 중심적인 기반에서 벗어나 신중심적인 토대에서 대화에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마르타의 견해에 따르면, 오늘날의 기독교인의 의무는 종교로서의 기독교나 우리가 계승해온 기독교라는 문화 형태에 대한 것이 아니라,“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을 계시 함으로써 보다 넓은 공동체에서 우리의 이웃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우리의 굴레로 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하나님” 에 대한 것이라고 본다. 대화에 대해 카워드(H.Coward)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는 위험을 택했듯이, 기독교인도 종교 다원주의의 한 가운데서 사는 것을 두려워 해선 안된다. 필요한 것은 대화의 신학이 아니라 대화의 용기이다.”라고 말한다.
사마르타는 대화를 “우리자신의 유산에 입각해서가 아니라 이웃의 정신적 유산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표현하려는 시도”로서 정의한다. 그는 대화가 지속적인 기독교인의 관심이어야하는 신학적이유를 세 가지 든다.
⑴예수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은 모든 신앙과 모든 시대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으며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한다.
⑵복음에 내재해 있는 용서, 화해, 그리고 새로운 창조를 통한 진정한 공동체의 주어짐(offer)은 불가피하게 대화로 이어진다.
⑶그리고 예수는 성령이 우리 모두를 진리로 이끌 것이라고 약속했기 때문에, 또한 성서적 이해의 진리가 명제적(prorositional)인 것이 아니고 관계적(relational)인 것이기 때문에, 대화는 진리 추구의 수단 가운데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대화의 궁극적 결과에 대해서는 사마르타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사람들이 자유와 기대 가운데 만나는 곳에는 각 개인이 달고 있는 개별적인 꼬리표가 중요성을 잃어 버리고 그 배후에 그것을 넘어서 있는 어떤 것이 영적인 자유 속에서 나타남으로써 그들을 한데 묶어주는 궁극적인 비젼을 제시하는 순간이 있다.”고 말한다.
b. 라이문도 파니카(R.Palmer)
파니카는 1918년 힌도교도인 아버지와 로마카톨릭 교도인 스페인계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그는 로마 카톨릭의 사제가 되어 수년간 인도에서 사역했다. 후에 그는 켈리포니아대학의 종교학과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의 유명한 책 힌두교의 미지의 그리스도(The Unknown Christ of Hinduism)는 1968년에 출판되어 기독교계에 즉각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는 “만약 많은 결실이 있는 대화를 원할 경우 힌두교와 기독교는 어디에서 만날 것인가?” 이에 대해 양자 모두에서 개인은 완전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 벌거벗은 존재들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하나님과 브라만은 같으며, 만물이 그에게서 나오고 그가 만물을 유지하고 또 만물은 그에게로 되돌아간다고 본다. 브라만은 아바타(Avatar,신의 현현)의 현상으로 강림하여 자기를 계시한다고 한다. 이렇게 강림한 신이 로고스이며 그리스도 이다. “그리스도”는 “이세상이 낳은 그것, 이세상에 귀환하는 그것, 이세상이 유지하는 그것”이며, 곧 브라만 이라고 한다.
그리스도는 브라만 안에 있으며 범(Brahman)을 실현한 보통 사람이므로 여러 사람들이 다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유일하지만 여러 하나님의 아들들 가운데서 유일한 것은 아닌기 때문에 많은 익명의 그리스도가 힌두교 안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파니카는 비 인격적 존재원리인 브라만과 인격적인 창조자인 기도교 하나님을 혼융시키는 힌두교적 범신론 사상에 지배되고 있다. 또한 그는 삼위일체 제 2위의 성육신과 비역사적, 사회적 신의 현현을 혼동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들과의 본질적 차이를 알지 못하는 보편적 기독론적 범신론 사상에 지배되고 있다.
Ⅴ. 종교 다원주의 와 혼합주의
A. W.C.C 의 종교간 대화(Dialogue-Program)
1. 발생배경
세계교회 협의회(W.C.C) 內의 다원주의적 동향은 1928년 예루살렘에서 개최한 제 2차 세계선교 협의회(I.M.C)에서 이미 K.T.Paul 과 Chao에 의해서 나타났다. 이들은 기독교가 힌두교 지역과 유교지역의 (종교적인 ) 국민들과 함께 서구 세속주의에 저항해야 하는 공동적 사명을 위한 대화를 제시했다.그러나 이런 종교 다원주의적 관심은 1938년 탐바람에서 개최한 제 3차 I.M.C대회에서 H.Kraemer와 충돌을 겪은후 잠잠해 졌다가,1950년대에 타종교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짐과 때를 같이하여, 1961년에는 뉴델리대회에서 개최한 제 3차 WCC총회에서 종교 다원주의는 활기를 띄게 되었다. 이 대회의 제 1분과 토의 보고서에서는 “그리스도는 우리를 통해 말씀하시고 그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다원주의와 또 다원세계에 필요한 삶의 형태라는 대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다원주의적 대화(對話)는 1967년 캔디(Ceylon)회의 에서도 마찬가지로 추구되었고 아울러 맑스주의자들과의 대화도 모색되었다.
2. 힌두교적 혼합주의
1970년 WCC안에 종교간 대화가 아직 공식적으로 작성되기 전에 아잘토운(Ajaltoun),베이루트(Beirut)에서 먼저 힌두교,불교,이슬람교 지도자들과 함께 대화와 예배시간을 가졌다. 이때를 술회하여 인도의 아스카리(Askari)교수는 그때의 상황을 묘사하여 “새로운 영성”으로 이끌었다고 하였다. 함께 모인 여러 다른 신앙인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새로운 영성은 공동 기도 시간에 가장 강렬하게 느꼈다고 하였다. 이 종교 혼합공동체 안에서 느끼는 이른바 “새로운 영성” 을 가리켜 이동주 교수는 “아시아의 모든 범신론자들의 영성”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혼합주의적 대화는 그 다음해 WCC대회(大會)내에 “산 신앙인들과의 대화”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인도 신학자 S.J.Samartha에게 책임을 맡겼다. Samartha는 역사적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신격화하고 개인주의에 빠지는 위험에 처한 반면 만유의 주이신 하나님은 거의 강조하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주장은 힌두교적 배경에서 얻은 범(Brahman)사상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1973년 방콕에서 열린 제 2차 세계 선교와 복음화 대회(CWME=제8차 IMC)의 개회연설에서 세계 불교 연합회 회장인 Diskul Poon Prismai 여사가,불경과 성경은 “같은 영”에 의하여 서로 다른 용어로 쓰여진 것이라고 주장하고,열반 또는 영생을 얻기 위하여 세계 종교들은 연합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타종교 속에서 그리스도를 찾고,타종교에서 역사하는 성령을 발견하고자 하는 이러한 다원주의는 1968년에서 1975년 까지 WCC 중앙위원회 위원장이었던 M.M.Thomas에 의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미 1973년 방콕 대회에서,힌두교인이 새로운 종교 공동체로 이동할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문화 공동체 안에 있으면서 “기독교적 힌두”가 될것을 주장하던 그는, 2년 후 나이로비 총회에서 “그리스도 중심적인 혼합주의”를 촉구했다.
이러한 혼합주의는 1991년 2월 7일 호주 켄버라에서 열린 제 7차 WCC총회에서도 계속 추진 되었다. 특히 이화여대 정현경 교수는 이 총회에서,버림 받은 애굽인 하갈의 영으로 부터 시작해서 예수의 영과 더불어 18가지의 한맺힌 영들을 초청하고, 초혼문을 적은 종이를 불태워 하늘에 날려 버리면서 시작한 “성령이여 오소서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라는 제목의 강연은 성령과 사령을 구별하지 못한 무속신앙적 혼합주의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B. 아시아 종교의 범신론과 아시아 신학자들의 종교 다원주의
1.범신론(汎神論)
a.세계관과 신관
유교의 세계관은 유교 경전인 역경의 설명과 같이 음양합일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만물은 태극에서 生하고 이 생이란 개념은 “생산한다”,“출산”의 의미를 갖고 있다. 유가는 창조물을 절대자에게서 나온 “자녀들”로 생각한다. 이 동사는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 없이 진화론을 전제로한 인간관을 형성한다. 理氣論 철학으로 만물의 생성 원인을 설명하는 성리학자들도 만물이 비인격적 근원자의 진화와 조화에 의하여 생성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역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기독교 복음을 받아 들이면 창조주 하나님이 음양 조화에 의하여 생겨진 일종의 귀신 또는 비인격적인 자연원칙으로 받아들여 진다. 오늘날 신유교학자들이 “상제”를 “귀신”과 동일시 하거나 “상제”를 음양조화로 인해 발생한 존재로 보는 것은 이러한 주역적 세계관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도교의 세계관도 역시 역경의 유출설과 범신론적 사고에 의하여 발전된다. 노자에 의하여 새롭게 발전된 궁극자의 개념인 道는 “無名”이라는 감추인 근원자로서,만물을 생성한 어머니로 묘사 된다. 신과 인간이 모두 이 도의 생산물이다.
불교의 세계관도 유교와 도교와 같은 일원론이다. 주체와 대상,단수와 복수,참과 거짓의 모든 대립을 극복한 “포괄자”의 상태가 바로 열반이며, 無二의 경지이다. 이 無二를 空이라하고 원효나 중국의 황벽은 一心이라고 한다.
동학처럼 창조라는 개념을 사용한 때도 그 개념은 범신론적으로 왜곡된 개념일 뿐이다. 이러한 사상은 최제우의 신관과 인간관에서 더욱 명백히 나타난다. 그가 동학을 창건했을 때(1860)의 신비체험으로 얻었던 신관은 무속신앙과 병행된 것이다. 최제우가 “시천주”와 “인내천”을 주장한 바와 같이 그가 神 또는 귀신이라고 일컫는 “천주”내지 “한울님”은 초월자가 아니고 오직 내제적이며 범신론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b.구원관과 종말관
다원주의자들의 공통적인 구원관은 인간성의 회복이다. 고후 5:17의 새로운 피조물은 구원의 목표라 하며 변선환 박사는 이 “새인간성”회복은 불교에서도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유동식 박사도 역시 종교적인 목적을 “인간화”내지 “인간성의 회복”이라 하고, 구원은 서로 의존하고 서로의 괴로움을 없이하며 기쁨을 나누는 인간 사회를 형성하는데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화”를 구원의 목표로 말하는 유동식 박사는 유불선 3교에서도 같은 목표를 발견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과욕에 사로잡힌 자기를 극복하고 하늘이 내린 본성으로 돌아가 천성이 명하는 대로 따라 살때에 인간은 군자가 되는 것이며,남에게 덕을 베풀게 된다는 것이 공자님의 가르침”이며, “이기심에 가득한 인간의 좁다란 지혜에 의지하지 말고,대자연 법도를 따라 살때에 세상은 태평성대가 되리라는 것이 노자의 가르침”이라고 하면서, 유불선 종교는 다 같이 이기적 자아를 극복하고 천성으로 돌아가기를 가르치는 종교라고 말한다.
그는 또 “천성”이란,“하나님이 주신 인간 본성이며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설명하면서 이러한 것이 기독교와 같은 구원이라고 역설한다. 이러한 유동식 박사의 구원관은 현대 다원주의 신학자들의 거의 공통적인 견해이다.
2.아시아 신학자들의 종교 다원주의
보편 구제설(Universalism)과 종교적 다원성의 문제는 아시아 신학자들 간에도 많은 토의를 해온 부분이다. 인도의 토마스(M.M.Thomas)와 사마르타(Stanley Samartha),스리랑카의 나일스(D.T. Niles)와 그의 아들 프리멘 나일스(Preman Niles),린드 실바,웨슬리 아리아라자,일본의 고수케 고야마,대만의 송천성, 한국의 이종용,변선환,유동식 등의 신학자들은 아시아 신학과 종교 다원성에 대해 많은 책을 출판하였다.
아시아 교회협의회(EACC) 창설자의 한명이었던 D.T.나일스 목사는 신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를 믿든 안믿든 간에 전인류에게 해당되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인도의 토마스는 구원의 개념을 사회의 부정으로 일어나는 경제적 빈곤,정치적 탄압,인종차별로 부터 인간을 구출하여 참다운 인간성을 회복시키는 것으로 설명했다. 파니카(Raymond Panikkar)의 “힌두교의 알수 없는 그리스도”(1964)와 사마르타의 “메이지 않는 그리스도”(Undound Christ)의 명칭들은 인도의 힌두교와 결합시켜 그리스도의 영이 힌두교인에게도 잠재되어 있으므로 인도인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고 인도인으로 부터 그리스도를 발견하여 종교간의 협조를 발견하면서 지상 천국을 이룩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송천성 교수는 「자비로우신 하나님」(The Compassionate God)(1982)에서 정통적인 기독교의 배타적인 요소를 반대하면서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전인류를 그에게로 회복시키신다고 한다. 송 교수는 “아시아의 영성”을 강조하면서 아시아의 신학이 토착화의 신학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인 선교사로서 태국에서 신학교수로 오래 일하였던 고야마 교수는 태국 북쪽 농촌에서의 경험을 통하여 “물소신학”이라는 것을 소개하고 태국의 불교나 자연환경에서도 신을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불교를 믿는 태국인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중생의 경험을 갖지 않더라도 신을 찾을 수 있으며 구원의 경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국가에서 성행하고 있는 혼합주의와 보편구제설은 한국의 신학계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3. 한국에서의 종교 다원주의
한국에서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신학자들은 변선환 교수와 유동식 교수로 대변할 수 있을 것이다. 변선환 교수는 “우주적 그리스도론”을 중심으로한 혼합주의를 제시하고 있다. 변 교수의 “우주적 그리스도론”은 구세주가 우주적이고 전인류를 위한 것임으로 전인류를 구원하시는 “신의 보편적 구원의 경륜”으로서 “그리스도만이 보편적으로 유일한 구속자 이신 것이 아니라 저들의 종교도 저들 스스로의 구속과 구원의 길을 알고 있다”고 하는 다원적 보편주의론을 펴고 있다.
그가 의미하는 “그리스도의 보편성” 내지 “구원의 보편성”은 예수 그리스도가 온 인류를 위한 유일한 구세주가 된다는 말이 아니라,세계의 많은 종교들 속에 있는 예수 아닌 “그리스도”가 전인류의 구세주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에게서는 “기독교와 힌두교는 그리스도 안에서 만난다.그리스도는 양자의 결합이다”,“비록 무의식적이었다 해도 자기 자신의 종교를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에게 귀한 것” 이라는 힌두교적 신학을 수립하고 있다.
유동식 교수는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갈 필요가 없고,또 사후를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이며 종교라는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야만 할 필요도 없다.하나님은 지금 우리와 함께 도처에 계시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또 복음에 대한 신앙 여부와 관계 없이 모든 인간이 이미 이곳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자녀로서 하나된 것”이라고 하며, “만약에 구원된 인간을 불러 크리스챤이라고 한다면 이제 세상에는 크리스챤 아닌 사람이 없다.... 그리스도 계신곳이 교회라고 한다면 세계는 온통 교회로 변한다” 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오직 현세적이고 자동적인 유동식 교수의 ‘만인 구원관’은 세계 종교들이 모두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은총과 관계가 있다”는 성육신 신학을 기초로한 그리스도의 편재성을 주장한 것이며,이를 체계화 하여 그는 ‘범신론적 기독론’을 세운 것이다. 이것은 기독론적 만인구원론 즉 John Wesley의 입장과 같이 만인에게 기회가 주어졌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 가 아니라,신자나 불신자나 이미 다같이 구원을 받았다는 견해이다.
C.종교다원주의에 대항하는 선교 전략
1.종교 다원주의가 선교에 미친 영향
이러한 범신론적 보편주의와 다원주의적인 신학에 의한 선교관은 성경적인 선교관과 판이하게 달라진다. 다원주의적 선교의 목적은 인간화이며 세계 평화공동체의 형성이므로 우상숭배와 불신앙으로 부터의 회개는 요청하지 않는다. 유동식 교수가 주장하는 반(反)개종주의 내지 새로운 개종론은 다음과 같다.
즉 개종은 서구인의 제국주의적인 것이기 때문에 종교적인 침략과 지배욕의 종교로 부터 사랑과 봉사에의 종교로 개종해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타종교인에 대한 복음 선교 문제”라는 논문에서 복음화의 의미를 타종교인의 개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우리가 복음의 절대성을 믿는 것과 같이 모든 종교가 제각기 자기 종교와 신앙의 절대성을 믿고 주장함으로 기독교 만이 절대라는 우월감을 가지고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상대적 절대주의”가 바로 다원주의이다. 그러므로 개종을 목적으로 선교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로의 변화”를 요구할 것이라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2. 도전에 대한 응전 | 기독교의 절대성과 우위성
a.기독교와 타종교와의 관계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관계는 신학적 입장에 따라 다양하기 때문에 결코 단순하지 않다. 헨드릭 크레머는 마드라스 대회에서 네가지 가능한 방법을 제시 하였는데, 근본주의자들이 취하는 급진적 대치주의(radical displacement),상대적 혼합주의(relative syncretism),비연속성(discontinuity) 및 성취설이다. 물론 크레머가 제시한 기독교와 타종교의 관계는 성경적 실제주의와 타종교의 관계이지 엄밀히 말하면 기독교와 타종교의 관계는 아니다. 개혁주의 신학자 바빙크는 기독교와 타종교 사이의 가능한 모델로 극렬한 배타주의,동등주의,대화 주의로 설명하고 자신은 대화를 택한다. 그는 다른 종교를 우상이요 미신이라고 비웃는한 다른 종교인을 멸시하게 된다고 보고,교회는 정직하고 권위를 가지고 다른 종교의 사람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트리니티 신학교 교수 헤셀 그레이브 역시 “종교적인 다원화의 상황속에서 복음적인 증거와 전도와 가르침이 더욱 대화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대화는 타종교를 알고 이해하자는 차원에서는 필요 불가결한 것이지만,타종교의 구원 가능성을 인정하고,존중하며,전도를 중지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WCC가 가지는 공식적인 대화는 공동체나 국가를 위한 시민으로서,혹은 지역사회의 지도자로서 서로 협력하여 봉사하는데 필요하다. 그러나 타종교인과의 공식적인 대화로 전도가 되어진 일이 없고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대화란 상대방과 상호 대등한 입장에서 존중과 겸손이 요구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와 타종교의 관계는 배타적인 입장이지만 우리는 이것을 표면화하여 다른 종교를 공격하거나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고 개인적으로는 대화를 통하여 끊임없이 전도해야 하며, 이들의 종교적 용어와 사상으로 접촉점을 삼아야 한다.
b.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절대성
서구 철학과 신학이 동양 종교의 가치를 발견하고 상대적으로 비평주의에 근거하여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로 보는 비교종교학적 자세는 역사적 예수에 기초한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결과가 되었다. 기독교를 이렇게 상대화 할 때 교회는 스스로의 성장을 포기하는 것이다. 전호진 교수는 라토렛의 주장을 인용하여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강조하지 않는 어떠한 형태의 기독교도 수세기를 통하여 스스로 재생산하는 능력을 보지 못하였다”고 말한다.
종교다원주의에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자들은 성경도 기독교 밖의 계시가 가능하며(멜기세덱,욥,발람 등)예수님과 바울도 대화를 통해 전도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종교의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시긴 했어도 그들의 잘못된 신앙이나 사상에 대해서는 책망과 교정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결코 그의 확신을 주저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조용하면서도 가감없이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
바울 역시, 그가 루스드라에서 신으로 예배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서 그들의 자연종교를 찬양하기 보다는 분명하게 그들의 종교와 신관을 책망하면서 헛된일을 버리라고 권고하였다(행14:15 이하). 물론 여기서 바울이 인간숭배를 금지했지만 동시에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개종을 권고하였다. 성경은 이렇게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을 말하는 교훈도 많이 있다(요4:22,14:6, 행4:12, 고전 10:14,21;12:2,고후6:16, 갈5:20, 요일 5:19,21; 19:20,21 등)
로쟌 대회의 그리스도 유일성에 대한 성명서에서도 “....일반계시를 통한 하나님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고 못박아 말하고 있다.
c.그리스도 밖의 구원의 문제
다른 종교에 대한 그리스도 중심적 접근은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유일한 육화로 주장하는 기독론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나아가 종교신학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인류가 다 구원을 얻는다는 기독론을 포용적 기독론으로,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지 않는자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복음주의의 입장을 배타적 기독론이라 구분한다.
복음주의가 종교 다원화를 심각하게 논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교 다원화란 용어 자체는 우리에게 유쾌하게 들려지지는 않으나 다원화된 우리 사회에서 갈등과 대립을 피하고 상호 공존해야 하기 때문에 용어 자체 만으로 무조건 배격할 수 도 없는 것이다.
신학적으로 종교 다원화의 이면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사람이 믿고,안믿고의 상관 없이 구원을 얻는다는 기독교적 휴머니즘 사상이 깔려있다.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비교종교학은 기독교를 변증하는데 이바지 하기 보다는 오히려 기독교를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되었고, 100년 후에 등장한 종교신학은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한다. 모든 종교는 각기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바티칸 Ⅱ차 공의회,Karl Rahner :‘익명의 크리스챤’), 다른 종교에도 이미 그리스도가 숨어있다고 주장(M.M Thomas,Anglican Keneth Cragg 등),그리스도의 섭리는 성령의 활동으로 모든 종교 안에 수행되고 있다(동방정교회의 George Khodr),진리는 다양하며 모든 종교 안에서 구원의 보편성을 인식하나 최종형태가 그리스도이다(C.S.Song),종교적 복수성을 인정하며 그리스도가 중심인데 중심에 이르는 방법은 많다는 등의 주장으로 인하여 복음을 약화시키는 태도가 많다. 그러나 복음주의적 신앙고백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보편성을 천명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가 가져야할 중요한 확신 역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 구원의 길이라는 것이다.이 확신이 흔들리게 되면 선교는 불필요하거나 허망한 일이 되고 말며,우리의 신앙 자체도 무너지게 된다. 또한가지의 확신은 “그리스도의 복음은 구원의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바울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복음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고 했듯이 모든 세상 사람들이 이 복음을 통해 구원을 얻으며 복음은 이와 같은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할 것이다.
Ⅵ.결 론(結論)
다른 종교에 대한 기독도 태도는 반드시 성경적이어야 한다. 이 원칙을 벗어나면 기독도가 아니다. 따라서 다른 종교에 대한 태도는 성경관에 따라 달라진다.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된 무오한 말씀으로 믿는다면 선택의 폭은 좁다. 그 결론은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행4:12, 요14:6, 딤전2:5).
이러한 원칙에 비추어볼 때, 종교 다원주의는 성경의 진리와 일치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며 따라서 원칙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다.
반면 극단적인 배타주의는 다른 세계 종교들의 존재와 타종교 생활과 그들의 문화를 전적으로 무시하기를 요구하는 난점을 지닌다.
따라서 본 발제자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확신하는 동시에 타종교와의 폭넓은 개인적 대화를 통해서 그들의 종교와 문화를 알고 이를 접촉점으로 하여 적극적인 설득전도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마28:19-20 등)에 대한 충성스러운 실천이며, 다원화된 이 사회에서 오히려 꼭 필요한 복음전도 전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參考文獻
<단행본>
국문
. Glasser,A.F. and McGavran D.A.현대 선교신학,고한규譯.서울:성광문화사,1982.
. Johnston, A.{세계 복음화를 위한 투쟁},임흥빈譯(서울:성광문화사,1989),p.295.
. Song,C.S.아시아의 고난과 신학, 주재용,이정희 共譯(서울:대한기독교 출판사,1987) ,p.17.
. George F.Vicedom,{하나님의 선교},박근원 譯(서울:대한 기독교 출판사,1985),p.16.
. David Bosch, {선교신학}(서울:두란노 서원,1989),pp.71-73.
. H.C.Goerner,{이렇게 기록되었다},(서울:침례회 출판사,1968),p.132.
. H.카워드,한국 종교 연구회 옮김,{종교 다원주의와 세계종교},(서울:서광사,1990),p.83.
. Herbert J.Kane,{선교 신학의 성경적 기초},이재범 譯(서울:나단,1991),p.19.
. J.H.Bavinck,{선교의 성서적 기초},김명혁譯(서울:성광문화사,1983),p.43.
. J.H.바빙크,전호진譯,{선교학 개론}(서울:성광문화사,1991),
. J.R.W.Stott,{현대의 기독교 선교}, 서정운 譯(서울:대한기독교서회,1982),pp.20-21.
. J.Verukuyl,{선교의 성서적 기초},김명혁 譯,(서울:성광문화사,1983),p.180.
. P.Beyerhaus,Mission:Which,Why? 김남식譯,(서울:한국성서협회,1976),p.129.
. Paul Knitter,{오직 예수이름으로만?} 변선환 譯(서울:한국신학 연구소,1986),p.44.
. Paul Tillich,{문화와 종교},이계준 역(서울:전망사,1984),p.24.
. Peter Beyerhaus,{선교 정책론} 김남식 역,(서울:한국 성서 협회,1976),p.20.
. Peter L.Berger 이양구譯,{종교와 사회}(서울:종로서적,1981),
. 데이비드 J. 보쉬,{선교신학},전재옥 譯(서울:두란노 서원,1985),p.34.
. 박광철,{이렇게 선교하자}(서울:생명의 말씀사,1991),p.167.
. 박근원,"기독교와 전통 문화",{기독교 문화}(서울:한신대학 출판부,1988),p.323.
. 아더 죤스톤,임흥빈譯,{세계 복음화를 위한 투쟁}(서울:성광문화사,1989),pp.392-398.
. 유동식,"타종교에 대한 복음 선교 문제",{도와 로고스}(서울:대한 기독교 출판사,1978
. 김용욱,{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경기:통나무,1986),p.18.
. 장중열, {교회성장고 선교학}(서울:성광문화사,1988),P.20.
. 이원규,{종교 다원주의 상황과 한국 교회},(서울:한국 기독교 학회,1990),p.159.
. 죤 스토트,{현대 기독교 선교}(서울:성광문화사,1981),pp.35-36.
. 죤 웨슬레,"칼빈주의와의 논쟁",{웨슬레 총서9 논문},송흥국譯,(서울:신교출판사,1979),pp.323,329,346.
. 죤.M.L.영,{선교의 동기와 목적}, 김진홍 譯(서울:한국 개혁주의신행협회,1972),p.24.
. 전호진(편),{한국 교회와 선교}(서울:정남출판사,1983),pp.32-114.
. 전호진, {선교학}(서울:개혁주의 신행협회,1985).
. 한국복음주의 선교학회,{아세아 조감도}(서울:성광문화사,1986)
. 한상복, 이문용,김광억 共著,{문화인류학}(서울 :한신대학 출판부,1988),p.60.
. 헤셀 그레이브,"성경과 현대 관점에서 본 종교들 간의 대화",{신학과 선교},헤셀그레이브 편,전호진역,p.216.
영문
. C.E.Braten,The Flaming Cener(Philadelphia:Fortess,1977),p.112.
. C.S.Song, Third-Eye Theology (N.Y:Orbis Book,1982).
. Eugene Nida,Religion Across Cultures,(California:William Carey Library,1986).
. Gerhard Kittel and Frieckich Go,ed.,Theological Dictionary of new Testament, Vol. ,(Grand Ripids; William B. Eerdmans,Pu-blishing Co.,1964)
. H.H. Rowley, The Missionary Message of the Old Testament(London:The Carey Kingsgate Press,1955),p.150.
. H.T.Hoekstra,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Illinos:Tandal House,1979),pp.92-93.
. J.Bavink,The Church Between Temple and Mosque,pp.198.
. J.Verkuyl, Contemporary Mission,(Michigan:Eerdmans,1978),p.107.
. J.Verkuyl,Contemporary Missioiogy,(Mich:William Erdmans Pul.Co.1978),pp.163-175.
. John Hick, God Has Many Name,(Philadelphia:Westminster,1982),
. John Hick, Whatever Path Men Choose Is Mine,pp.171-190.
. M.M.Thomas,Salvation and Humanisation (madses:CLS,1971),p.40
. Peter BeyerHaus, Missions Which Way(Grand Raped:Zonder Van,1971),.p.69.
. Stanley J.Samarta, Courge for Dialogue(Maryknoll,N.Y:Orbis Books,1981),p.96.
. Stephen Neil, A History of Christian Missions (Baltmore:PenguinBook Inc.,1975),pp.13-15.
. W.B hlmann, The Coming of Third Church,(slough,1976),p.160.
<논문>
. 금장태,"동서 교섭과 근대 한국 사상 추이에 대한 연구",성균관대학교 대학원,1978,p.85.
. 김성수,"종교다원주의의 신중심적 모델"(석사학위논문:한신대학,1989.
. 박광철,"선교 전략과 사회정치의 관계성에 대한 연구"(부천:서울신학대학 석사학위 논문,1982),p.11.
. 서종표,"한국교회의 ASIA 선교 사역의 역사와 신학적 고찰에 관한비판 연구"(마닐라:유니온 신학대학 박사학위 논문,1991),p.16.
. 신연근,"선교와 교회 성장에 관한 개념 연구"(부천:서울신학대학석사학위 논문,1989),p.7.
. 조용찬,"현대 선교신학과 교회겅장에 관한 연구"(석사학위논문:서울신학대학원,1986),p.54.
<정기간행물>
. Samartha, S.J. "예수그리스도의 주권과 종교적 다원사회",{신학사상} 1982년 4월,pp.679-689.
. 김명혁,"서울선언의 의의와 현대 에큐메니칼 선교의 동향",{신학지남} 제 71호(1975.겨울),p.68.
. 김명혁,"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역사적 배경",{신학지남},제184호,1979년 여름,p.185.
. 김영한,"종교다원주의와 한국 토착화 신학",{목회와 신학}(서울:두란노서원,1992년 7월),p.62.
. 목창균,"종교다원주의와 카톨릭 교회",{목회와 신학},통권 26권,1991년 8월,p.89.
. 박광철,"토착종교와 기독교 선교",{목회와 신학},1991년 8월호,p.121.
. 박근원,"복음의 한국 문화적 전위",{기독교 사상} 통권 390호,1991.2.
. 변선환,"동양종교의 부흥과 토착 신학1", {기독교 사상},제299권,1983년 5월,p.161.
. 변선환,"불교와 기독교와의 대화",{기독교 사상},1982년 9월,p.176.
. 서울신학대학 선교문제 연구소,"아세아 선교를 위한 기초자료",{선교지}제4호(부천:서울신학대학,1972),p.6.
. 유동식,"한국 종교와 신학적 과제",{신앙과 신학} 제7집,대한기독교 서회1990,p.24.
. 유동식,{한국 종교와 기독교}(기독교 서회,1965),pp.176-178.
. 유승국,"한국의 유교",{교양국사 총서},세종대왕 기념사업회,1976,pp.272,294.
. 이동주,"종교 다원주의와 종교신학 수립에 관한 고찰",{세계선교},제10호(1991.5월),p.19.
. 장중열,"선교학에서 본 Cultual Mandated와 Evangelistic Mandate",{신학과 선교} pp.49-50.
. 전호진,"에큐메니칼 운동과 선교론 비판",{개혁신학} 제4집,1978,
. 전호진,"종교 다원주의와 그리스도의 유일성",{목회와 신학},(두란노서원1991년8월).
. 조종남, "세계 복음화 국제대회와 로쟌언약",{신학과 선교},제2집,(1974.),pp.243-247.
. 채은수,"성경에서 본 선교",{신학지남},1983가을호,p.95.
. 채은수,"성경에서 본 선교",{신학지남},83, 가을호,p.85.
<기타>
. Britanica,Book of The Year,1989.
. Eryl Davies,"미지의 그리스도",{목회와 신학},1992.8월호,p.51.
. South Asia Journal of Theology, Vol. (Autumn 1969).
. 국민일보 1991.3.15, 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