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G1h5TcAHQVQ
김태흠 국회의원.
출생 1963년 1월 11일 (만 54세), 충남 보령시
소속 자유한국당
지역구 충남 보령시서천군
학력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사회복지정책학과 졸업(행정학 석사) 외 3건
경력 2016 제20대 국회의원 외 14건
사이트 공식사이트,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관계자 정보확인 (2016.11.03)도움말
이상은 다음 검색창에서 이름 석자로 쉽게 검색할 수가 있는 프로필이다.
웅천중학교와 공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 무역학과를 나왔고
2012년도에 이어 재선의원이다.
현재 내 고향 보령을 대표하는 지역구 국회의원의 프로필이다.
고향을 떠나온지 어언 40년을 넘었으니 어쩌면 타향 땅에 뼈를 묻을지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 말해서 욕 먹을지도 모르겠으나 심히 부끄럽다.
보령 서천 지역구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언론에 오르내릴 때마다 오물을 뒤집어 쓴 듯 창피하다.
물론 그는 현재 지역구에서 재선씩이나 한 인물이니 그런 그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유권자가 더 많을 것이다.
박근혜와 같은 동네 대구 경북 출신인 유승민 같은 이도 탄핵을 찬성하고 잘못을 준열히 꾸짖는데
도대체 김태흠 이 양반은 무슨 큰 은전을 입었다고 15%밖에 안되는 민심를 대변하겠다고 지랄 염병을 떠는지 모르겠다.
누구나 한 순간 잘못을 할 수 있다.
실수를 할 수 있다 사람이기에.
그러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바보이거나 실수가 아닌 신조일 뿐이다.
나도 평생 돌이킬 수가 없는 후회가 있다.
나이 50에는 귀향하여 부모님과 농사 지으며 여생을 보내리라는 내 자신과의 약속을 못 지킨 것이다.
나의 후회가 더 뼈 아픈 것은 돌이킬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와서 후회하고 돌이킨다 해도 돌아가신 분들이 다시 살아 돌아오실리 만무하다.
어머니 안 계신 곳에는 더 못가겠으니 그걸 깨달았을 때의 참담함은 표현할 길이 없다.
마음 한편에 항상 자리 잡고 있던 고향이라는 곳과 귀향이라는 단어와 부모님이라는 뿌리가 송두리 째 뽑혀나간 허전함이란....
그러나 김태흠은 잘못을 인정하고 지역구민들(탄핵찬성유권자분들)께 사죄하면 되돌릴 수가 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태도 변화가 없다.
국민 85%가 찬성하고 헌법 재판관 8명이 만장 일치로 찬성해서 선포한 탄핵 판결문 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자가 어찌 대의 민주주의의 꽃인 지역구 국회의원을 한단 말인가.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표변한다’고 했다.
그는 군자는 못되는 그릇인 모양이다.
김진태는 강원도 춘천이 지역구이다.
그의 광대짓을 보면 과연 이들이 무슨 이유로 박근혜 동네 사람들 보다도 더 난리인지 모르겠다.
지난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보령시 국회의원에 출마했던 엄승룡 친구는 중학교 동창이다.
선거 끝난 후에 밥 먹는 자리에서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하라 했던 말이 있다.
체력전과 돈전쟁에서 살아 남을 방법이 없다면 일찌감치 접으라고...
내가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김용환 류근찬 이후 같은 보수 계층을 대변하는 김태흠이가 되었는데
그의 행적을 보건대 당분간은 오래 갈 것 같다.
서천 출신임에도 대천을 포함하여 지역구 전체를 발로 뛰어 내집 안방처럼 만들었으며
온갖 경사는 물론이려니와 궂은 일 상사시에 빠지지 않고 봉투 들고 참석하여 내편이 되어주겠다고 나서니
누군들 그런 체력과 열정과 돈질에 그를 찍지 않겠는가?
그런 일들을 반드시 낮추어 평할 일은 아니다.
어느날 유명세 떠는 이름 석자 들고 금의환향 하엿다고 거드름 피우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리라.
그러나 그것도 정도가 있는 것이고 공과 사가 분명히 구분이 되어서 대외적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자리에서의 입장 표명은 지역구민의 얼굴에 먹칠하는 일은 삼가야 하는 것이다.
얼마전 들리는 말에 의하니 그 친구가 지역구를 내려 놓았다 한다.
보령 지역이 어떤 곳인가!
내 오랜 기억 속의 보령은 서산 당진과 함께 대표적으로 야성이 강한 곳이다.
충절을 중시하는 충청도에서 별난 곳이리라.
그만큼 내고향 보령은 산천 경개가 뛰어나고 물산이 풍족하며 인재가 많다보니
사람들이 누구에게 얽매이거나 기대지 않고 깨인 분들이 많다는 뜻이리라.
나는 아직도 여장부 김옥선이 옛날 대천역 앞 광장에서 꽉찬 대천 시민을 향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두 주먹을 불끈 쥐어 흔들며 정권을 비판하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김종필의 형과 김용환의 장기 집권 덕에 야성이 많이 약화되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언급한대로 헌법재판관 8대0 만장일치로 탄핵이 가결된 마당에도 그간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반성하기는 고사하고 끝까지 가보자는 막가파식 천둥벌거숭이꼴을 언제까지 보아주어야 하는가.
삼성동 자택 앞에 퍼질러 앉아 땅을 치며 대성 통곡하는 어느 아녀자의 “마마”란 외침에
나는 아직도 보수주의자연 하는 이의 일부는 북한 김정은 치하의 불쌍한 인민들과 같은
왕조시대의 천민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박정희 신을 받들며 자존감을 상실한 분들이란 생각에 몸서리가 쳐진다.
나를 버리고 누군가의 종으로 평생을 살겠다는 생각은 아무리 배가 고팠던 짐승의 시대를 살았다 해도 할 수가 없다.
해서도 안되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박정희의 공만을 집중해서 주입시켰던 조중동을 포함한 앵벌이 언론의 희생양일 뿐이다.
충절을 근본으로 알고 의리를 중시하는 지역구민들도 상당하리라 본다.
그러나 세상은 계속 앞을 보고 가야지 뒤로 돌아갈 수는 없다.
반드시 뒤를 돌아다 보아야 할 때가 있다.
정신 없이 앞만 보고 가다가 혹시 낙오된 사람은 없는지 앞만 보고 가느라 삐뚤 빼뚤 일관성 없이 가는지 돌아 보아야 한다.
세상 누구도 사는 곳과 부모를 선택하지 못한다.
태어난 그 곳에서 낳아준 그 분들께 충성하고 효도하며 사는 것이다.
사는 곳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바꿀 수는 있다.
오늘날 선진국들은 모두 그렇게 좋은 방향으로 선택하여 바꾸며 나아 갔던 것이다.
중세시대 이후 한 때는 우리 조선시대 보다도 한참 못 살았던 나라들이다.
세월호가 녹슬고 긁힌 채로 떠오른 모습을 보면서 울지 않은 부모는 없었으리라.
울기까지는 않았더라도 한숨 한번 안 내쉰 국민은 없었으리라.
그렇게 금방 올라 올 것을 3년씩이나 질질 끌었던 무능력과 어거지 부끄러움들...
이것이 세계 1등을 자랑하던 조선 강국의 면모이다.
그럼에도 오늘도 태극기를 들고 길가를 방황하는 넋 나간 박근혜 백성을 보면서
박정희 신격화의 결과가 알파고가 사람 잡는 오늘날 국민의 수준을 왕조시절 백성의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비극을 강남 땅 한 복판에서 마마란 절규를 통해 뼈아프게 목도한다.
보령 시민들은 냉철하게 생각하고 엄중하게 꾸짖어야 한다.
김태흠이 계속 보령의 얼굴로 남고자 한다면 지금까지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제대로 의원 노릇하라고.
더 이상 국정 농단 세력을 비호하고 대변하는 천박한 짓을 그만 둘 것을 명해야 한다.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관 없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정 전반에서 엄청난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정작 그들이 주장하던 ‘비정상의 정상화’가 일어날 것이다.
촛불시위의 고귀한 의미를 슬그머니 대통령 선거로 묻어버리는 천하에 고약한 일들이 현재의 언론과 지식인연하는 자들의 작태이다.
출세에 눈이 멀어 줄서기에 앞장서고 자기들 이익에만 눈이 먼 작태들...
지난번 mbc 토론에서 문재인이 ‘공영방송이 무너졌다..정권의 도구로 전락했다...옛날의 그 자랑스러운
엠비시는 어디 갔느냐‘고 일갈 했었다 한다.
그러자 당장 다음 날부터 그 엠비시에서 온갖 구실을 달아 문재인을 까대고 있다 한다.
이것이 지난 참여정부 시절 세계 40위이던 언론지수가 70위로떨어진 지금 언론의 현주소다.(국경없는 기자회)
호랑이 굴에 들어가서 호랑이 멱살을 잡은 데는 일단 박수를 보낸다.
촛불시위는 ‘혁명’이다.
혁명은 구제도(앙샹레짐)의 타파다.
낡은 것들과의 이별이다.
쿠테타는 일부 소수가 무력으로 정통성 없는 권력교체를 하는 것이다.
혁명은 필연적으로 권력계층이 바뀐다.
왕조시대는 성씨가 왕씨(고려)에서 이씨(조선)로 바뀐 것처럼 ‘역성혁명’이 필연이다.
연인원 1,600만명이 넘는 어마어마한 국민들이 시위에 참가했다.
거의 반년 가까이 주말마다 시내 중심가 거리를 점거하여 집회하고 행진하며 노래하고 구호를 외쳤지만
누구 하나 불편하다 항의 하지 않았으며 누구 하나 다치거나 죽은 사람이 없다.
길가의 유리창 하나 파손되지 않았으며 보도블럭 하나 깨뜨려 던진 적도 없었고
해산 뒤에 거리에 쓰레기조차 없었다니 이런 기가 막힐 일이 있을 수가 있는가.
세계 시위 문화사에 그 유례가 없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실제로 그러했다.
그러고도 그들은 그 시위의 목적을 달성했다.
참으로 위대하다.
너무 완벽하여 불안할 정도이다.
너무 완벽하다 보니 언론이나 일부 국민들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이 다 정상으로 돌아간 듯 대통령 선거로 몰려간걸까?
그러나 민주주의는 절대로 어느 순간에 완성되고 저절로 완성된 채로 흘러가지 않는다.
우리가 끊임없이 눈 부릅뜨고 지켜보며 참견하고 도와주지 않는 한,
끊임 없이 딴 길로 빠지려는 경향이 있다.
민주주의의 속성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로 인해 불편한 일부의 이기주의자들이 그렇게 이끄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감시 눈초리는 하루도 쉴 수가 없으나 워낙 복잡다난한 요즘 세상살이에
밥벌이도 벅차다 보니 우리를 대신해 줄 사람이나 제도를 두는 것이다.
피같은 많은 세금을 써가면서 말이다.
그 중의 한 명이 바로 김태흠이다.
그는 이 시점에서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지역구민에게 밝혀야 한다.
지역구민의 품으로 돌아올 것인지 박근혜의 가신으로 남아 누님의 치마폭에서 놀아날 것인지를.....
더 이상 보령 시민들과 보령을 고향으로 끌어 안고 사는 타향살이 인들을 욕 보이지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