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1년을 앞두고, 귀농생의 고민
귀농을 앞두고 격려반 우려반을 표하는 주변사람들과 친구들의 관심을 뒤로하고 11년 3월 1일 제주시 아라동의 2,000평 과수원의 관리사에 임시거처를 마련한지 벌써 2번째의 겨울을 맞고있다. 사실 2번째의 겨울이라는 것은 앞뒤가 안맞는 얘기지만 작년 아라리에서 맞았던 3월이 제법 추웠기에 겨울을 여기서 두 번째 보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귀농을 생각한지는 제법 오래 되어, 창원에서 살면서 경남생태귀농학교에서 첫 귀동냥을 하여본 기억이 있고, “영업을 그만두고 난 후에 ”1~2년간 실컷 놀러 다니자” 라던 해에 마누라랑 “벤쳐농업대학”에 1년동안 같이 다녔고, 다음해에는 합숙을 하며 여주의 농업자영전문학교에서 “도시민 귀농귀촌” 교육을 3개월간 받았었다. 그전에 틈틈이 원예특작과학원에서 하는 on-line 강좌별 강의를 들으며 나름대로 기초이론을 익힌다고 노력을 하였고.
사회생활은 부산소재의 대성제강 무역부 수출과에 입사하여, 야간에 부산대 경영대학원에서 국제경제학석사과정을 수료하며, 내내 무역관련업무에 종사하다, 마지막으로 마누라와 함께하는 자영업의 과정을 겪었으니, 항상 농업과는 거리가 있는 생활을 한 셈이다.
귀농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제일 기억에 남고 유익했다고 느끼는 것은 농진청에서 하고있는 on-line 교육과 여주농전에서의 합숙과 헬스클럽에서 하였던 운동이다. on-line교육에서 약간의 이론을 공부하였다면, 여주농전의 과수반에서는 6월부터 9월까지 실제로 낙엽과수들을 대하며 처음으로 농사일을 접하고 약간의 실습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제주에 갖고있는 밀감나무는 아니지만, “모든 과수는 기본적으로 같다”라는 전제하에 공부할 수 있었다. 약 2년간의 시간동안 무릎의 고질병을 치유도 할겸 재미로 시작한 운동이 “체력을 길러두면 농사에 도움이 될 것 같다”라는 생각까지 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하였었다. 무릎만 멀쩡하다면 작목도 채소부터 과수까지 넓은 범위에서 선택을 할 수 있었을 테고, 제주로의 귀농에 마지못해 동의해 준 마누라를 설득하여 농가주택을 짓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라리의 땅을 팔고 외곽에 넓은 땅을 마련하여 시작을 할 수도 있었는데 무릎 때문에 포기하였다. 결국 “원룸과 주택을 같이 짓겠다”는 마누라의 뜻에 동의하였고, 나는 있는 밀감밭과 집짓다 남은 땅을 활용하기로 결정을 하였다. 원룸을 짓는 것이 나중에 귀농정착자금을 빌려쓰는데 장애가 되어버리지만.
그런데 왜 밀감이 아닌 포도인가?
첫째 서귀포에 대한 밀감 complex이다. 항상 제주의 밀감 값이 서귀포의 그것보다 관당 천원 안팍으로 싸다 하고, 질이 떨어진다는 점을 피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포도라면 서귀포보다 더 유리할 수도 있다고 여겨졌었다. 물론 당시에는 타이백재배+유라조생,일남일호라는 재배 패턴이 제주의 경우 유력하다는 점도 모르고 있었고.
둘째는 나름대로 포도의 다양함, 일반적인 캠밸이 아니라 다양한 유럽종과 혼합종의 모양과 맛을 접하면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고
셋째 Chile와의 FTA를 끄덕없이 견디어 냈을 뿐만 아니라 농가소득이 제일 높은 과수로 소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Chile와는 달리 출하기가 같은 미국과의 FTA도 견디어낼지는 의문이고, 특히 중국과의 FTA까지 이겨낼지는 더욱 예축 불허이다. 제주여고 바로 곁이라는 입지도 소규모재배 판매인 경우 별 문제가 없으리라 여겨지기도 했다.
넷째 밀감과 일정이 조금 차이가 나서 여유시간을 활용하기에 장점이 있으리라 여겨졌다. 올가을 밀감수확기에 일손을 못 구하여 애먹는 분들을 보니 잘한 선택이라 여겨졌지만 겹치는 시기에는 정신없이 바쁘겠지.
다섯째 육지에서는 밀감공부를 하고싶어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일단 포도를 택하여 공부를 하되 최종 결정은 제주에 가고 난 다음에 현실을 파악후 최종 결정을 하기로 마음 먹었었다.
육지에서 공부를 할 때도, 제주에서 알아본다고 할 때도 포도를 권유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재배기술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어야 초보자가 실패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재배하기가 쉬은 품종을 선택하여 하여보라고 육지에서는 권유를 받았다, 제주에서는 “제주에서 포도농사를 하여 성공한 사람이 없다”라는 것이 주된 얘기이다. “왜 제주에서는 안 되는지 논리적으로 나를 납득시켜달라. 그러면 포기하겠다”라는 나의 반론에 나를 설득시켜준 사람이 없어, 곧 250평 정도의 너무 작은 포도 무가온 하우스를 지어 포도농사를 밀감과 병행하여 시작할 예정이다. 행인지 불행인지 18년간 black olympia라는 포도를 성공적으로 재배한 적이 있는 기인을 서귀포에서 만나, “개량일문자는 너무 공간의 낭비가 심하니 triple H수형으로 재배하라. 그래야 평당 7~8kg이 아니라 평당 12~13kg의 수확을 본다. 그리고 포도나무의 원줄기도 길이 방향으로 키우지 말고 폭 방향으로 키워라” 라는 권유를 받고, 초보가 이를 실행할 수 있을지 지극히 걱정되기도 한다. 한국포도회에다가 triple H 수형에 대하여 질문을 하였더니, “보도 듣도 못했던 수형이다”라는 반응이고, 포도묘목을 공급하는 대경포도에서는 “double H 수형의 농가도 일문자로 바꾸고 있는데 riple H로 성공한다면 견학하러 와야겠다” 라는 반응을 보인다. 포도의 휴면문제로 고심하던 시절 유일하게 “제주가 육지보다 포도재배가 유리하다”던 포도연구소의 연구사도 결국 시간낭비로 끝날까봐 우려를 표한다. 욕심 또는 의욕으로 일이 많고 자신없는 수형을 선배의 권유와 조언을 받아가며 시도하여 볼 것인지, 일이 적고(그래도 밀감보다는 일이 훨씬 더 많을 것임) 수익도 덜한 수형을 시도하여 볼 것인지 하우스를 짓기 일주일 전인 지금도 고민이다.
제주에 오던 초기에는 30-40년된 노목이기는 하지만, 있는 노지밀감밭을 3~4년 운영하며 기초실력을 쌓고 그 후에 하우스밀감,월동밀감 또는 만감류중 하나를 선택하여 품종개량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밀감밭을 포도밭으로 개조 할 생각도 하였었다. 타이백감귤재배는 알지도 못 하였고 귀농초기에 본 앞집의 타이백재배감귤의 수세를 보아서는 시도하여서는 안 될 방식으로 인식이 되었다. “타이백이 얼마나 심한 낭비야?” 라던 얘기가 귀에 들어왔지, 타이백재배를 강조하던 농업기술센타의 의견은 동의할 수가 없었다.잘 만들어 논 센타의 타이백시범포를 보면서도 “인력을 마음껏 동원할 수 있는 센타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개인적으로는 쉽지 않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고, 무가온하우스보다 훨씬 더 일이 많을 것 같아서 쉽게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농협귀농귀촌반에서 자신만만하던 감사동회장의 강의와 “적절히 적과를 하여주면 수세가 약해지지도 않고 격년결과도 많이 줄어든다”라는 얘기를 듣고, 실제로 타이백밭 밀감과 EM센타의 밀감과 몇곳의 맛을 비교하여보고 이제는 타이백에도 관심을 갖는다. 보조금이 없다면 타이백도 하우스밀감도 다 힘들어 지겠지만 그때는 수년의 경험 후 친환경재배도 시도하여 볼 생각이다. 타이백대신 바닥에 은박지를 까는 것을 시도하여 볼 생각이고. 아직도 생각이 많이 흔들리지만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듣는다면 흔들림이 적어지리라고 믿어본다. 아라동에서 밀감을 노지재배하여 서귀포밀감보다 껍질이 두껍고 신맛이 강한 2등픔 귤생산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이런 문제의 주 원인은 적산온도의 부족이라던데 하우스재배가 유일한 대안인지, 품종교체를 포함하여 유기농재배도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이다.
귀농을 하여서 밭에 제초제를 전혀 하지 않고 예취기로 예초를 한다. 귀농하자마자 마침 추가간벌접수가 있기에 1/2간벌을 신청하여 독립수의 개념을 가지고 간벌은 하였다. 타이백을 염두에 두어 줄간벌을 하지 못한 것은 타이백을 몰랐던 시절의 실수였을까? 감귤에 대하여 몰랐고, 친구들은 “내 밭의 전정이 끝나면 가서 봐줄게” 라며 시간을 끌길래, 내 나름으로 복숭아나무, 배나무의 자연개심형 수형을 머리로 그려가며 정지.전정을 하였었고, 나중에 구경왔던 친구는 “초짜치고는 제법 잘 했다. 어데서 배웠냐?”고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말을 하였었다.
“일차전정만 하고 정밀전정은 전문가에게 맡길 생각이다”라던 나의 얘기에 “전문가도 정밀전정은 안해준다”라던 답이 제법 쇼킹하게도 들렸었다. 손가락이 펴지지 않을 정도로 한달 내내 전정에만 매달렸었는데, 친구는 “그런 과정을 서너 번 겪어야 전문가가 되는거여” 라며 태연하다.
센타에 토양분석을 의뢰하여 ph가 5.2가 나오길래 자비로 석회고토를 구입하여 뿌렸고, “퇴비 만드는 법을 제대로 좀 가르쳐달라” 라며 기술원의 강사 몇분을 따라다녔던 기억이 있다. 농진청의 on-line교육내용과 비슷하게 가르쳐주는 분은 아무도 없었고 결국 모아두었던 새를 다 밭에 뿌려 버리고 말았지만. 결국 퇴비는 작년에는 시간의 허비로 끝나 올해는 내방식으로 시도하여 볼 생각이다. 다행이 무항생제 젓소를 하는 동생이 있어 재료는 믿을만 할 것 같다.
2,000평의 노지밀감밭의 1/3정도에 새를 깔았다. 라보를 한 대 사서, 가을 벌초 후에는 공동묘지를 제법 누볐다 “신제주 지리는 몰라도 공동묘지 지리는 잘 안다”던 나의 농에 웃는 사랍들도 더러 있었다. 작년 11월의 장마와 올겨울의 추위. 장마로 얼어붙은 묘지와 재료의 부족으로 목표로 하였던 만큼 깔지 못하여 아쉽기는 하지만, 날씨가 풀리면 더 다녀볼 생각이다.
교육은 기회가 생기면 자주 다닐 생각이다. 교육내용도 중요하고, 사람을 사귀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좋고, 젊은 사람들과 함께하면 나도 젊어지는 착각이 좋다.
실수 이야기. 작년에는 수형을 잡아주고 열매는 포기한다고 하여 제법 강전정을 하였던 터라 봄순과 여름순이 많이 났다. IPM에도, 다른 책에도 진딧물에 대하여 강조를 한 것이 없어 “진딧물은 조금 피해만 주고 마는 모양이다”라는 정도로 생각하여 약치는 것을 소홀히 하였더니 나뭇잎이 많이 꼬부라졌다. 여름순에 귤굴나방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할 때 “하루 이틀만 지나고 한꺼번에 소독하자”며 늦추었더니 그 하루 이틀사이에 귤귤나방피해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렸고. 흑점병도 제법 다녀간 흔적이 있다. 수확기에 밭을 다녀간 친구는 “몽땅 파체”라고 선언한다. 올해는 실수를 적게 해야지. 그래서 귀농초기에 다짐하였던 “영원한 초짜농부라도 좋으니 농부라는 줄에서 낙오하지는 말자” 라고 다시 다짐하여본다. 그러면서도 “자식 한 십년만 일찍오지.너무 벌리지 말고 좀 편안하게 살라”던 친구의 말도 슬며시 마음에 와 닿는다. 고생만 시킨다던 마누라의 푸념에도 미안한 마음도 들고.
요즈음은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포도하우스를 하는 것이 맞는가? 밀감만 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하고 고민이다. 노지밀감밭에도 타이백과 파풍망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고심이다. 밭을 와서 본 센타직원이 “올해 수확을 많이 볼거면 절대로 타이백을 하고 파풍망을 하라”고 권하고 있고, 작년에 재미를 보았다는 이웃들을 보니 부럽기도 하였던 모양이다. 밭은 거의 평지이고 나무의 줄이 안맞아 타이백설치에 알맞아 보이지도 않는데, 그 직원은 “나의 밭도 비슷한 여건인데 타이백설치를 하였다”고 적극 권장이다. 안되는 경우 초심데로 몇 년간의 노지밀감을 경험하여도 괜찮아 보이긴 하지만.
작년 11월 FTA자금으로 지원되는 하우스와 파풍망을 신청하기는 하였지만, 우선순위가 맨 꼴지라 기대난이다. 파풍망 하나라도 할당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요행은 바라지 않느것이라 하던데. 올 2~3월에 타이백지원사업이 있다니 기다렸다 신청을 하여 볼 생각이다. FTA파고는 누구에게나 다 닥치는데 원하는 사람에게는 다 지원하여주면 안 되나?
2012년 2월
아라리에서
이희철
첫댓글 retirement 해서 그럭저럭 지낼여고 허던 나에겐 좋은 가르침이 됩니다.......
그때 참 건강허게 보여서 체력단련 으로 준비된 모습이였고 밀감밭 한쪽으로 시작 하면서 step by step 으로 .포도밭을 넓혀 가면 엇떨가...한국에서
그리고 제주에서 흔치안은 농사이니 시도할만 합니다. 힘을 내세요..화이팅....!!!!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시도하고 있는 일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화이팅!!! 화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