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
by 존 던(JohnDonne)
어느 사람이든지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은 아닐 테니,
모든 인간이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또한 대륙의 한 부분이라.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간다면
유럽 땅은 또 그만큼 작아질 것이며,
모래 벌판이 그렇게 되더라도 마찬가지이고,
그대의 친구 혹은 영지가 그렇게 되더라도 마찬가지여라.
어느 누구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나를 감소시키나니,
나란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애써 사람을 보내지는 말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므로!
이 시는 영국 성공회 사제였던 존 던(John Donne·1572~1631)의 기도문(Meditation 17, Devotions upon Emergent Occasion)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 영국에서는 전염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의 마을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이 전염병으로 숨을 멈출 때마다 교회는 종을 울렸다. 이 시의 정확한 의미는 "오늘은 누가 또 죽었나?"이다.
존 던은 그 종이 울릴 때마다 궁금해했다.
“종이 울렸구나, 누군가가 죽었나 보다.”
어느 날 존던마저 전염병에 걸렸다. 병석에 누워 있던 중 종소리를 다시 듣게 되었다. 그의 참담한 심경은 위대한 시를 낳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전쟁 취재 특파원으로 활동하다 이 시에서 영감을 얻어 3박 4일의 스페인 내전 배경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다.
지난 2년, 모두 다 힘들었다. 각자 나름의 전쟁을 겪은 듯한 시간이었다. 마음이 집을 나갔다. 후조처럼 떠돌다 코로나 피해자 모임에 가입했다. 어머니를 갑자기 잃은 이십 대의 한 여자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아이디는 "엄마의 소중한 딸인 나 "였다. 젊은 그녀의 사모곡이 안타까워 그 모임에 계속 남았다. 남겨진 자의 슬픔이 잘 벼린 칼날처럼 애닲게 파고든다.
마음이 요동치며 떠돈다. 머릿속에 계속 빙빙 도는 생각들이 배고픈 들쥐처럼 나를 갉아먹는다. 길가에 놓인 종이컵, 담뱃갑, 우유팩 반드시 다시 가던 길 돌아가서도 꼭 밟아 주어야 한다. 세상을 다 짓밟아 버리고 싶었다. 지난 시간의 힘듦이 전두엽, 변연계, 세포 손상을 가져왔다. 결국 난 또라이였다. 원하지 않는 생각은 밀어낼수록 점점 더 강해진다. 나를 아는 자와 나를 모르는 자, 나를 알고자 하는 자, 다 피하고 싶다.
현란한 생각들이 꿈에서 맴돈다. 마치 신경성 대장염 걸린 사람이나 약물과다 남용으로 위 세척약을 먹은 정신병자처럼 아무 말이나 똥 싸듯 싸지른다. 어디로 가야 하나, 손은 씻었는지, 문은 잠겨 있는지, 계단 공포증 등등 온갖 망상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신께서 내 삶의 기록이 담긴 책을 우연히 던져 주신다면 난 어제까지만 읽을 것이다. 오늘은 내가 만들어가는 이야기이고 싶다. 신께조차 특급비밀로 하고 싶다.
초라하지만 위대한 화가 고흐가 그림 그리듯 고통에 고통을 덧칠한 삶이여! 바닥까지 내려가 고요하지만 요동치는 삶이여!
내가 원했지만 원하지 않았던 삶이여!
내게 삶을 가르쳐준 건 당신 나도 당신에게 깨우침을 주었을까?
왜 난 그렇게 당신의 위로를 원했을까? 달지도 않고 쓰디쓴 당신의 말들, 왜 난 수없이 많은 밤들을 오열했을까?
우리가 모르는 건 현재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과거이다. 백 년 후 미래는 예측가능이지만 만년 족장국 <석기시대>는 전혀 알지 못한다. 천 년 전 요동치는 요동성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마음이 요동치다 요동성으로 갔다. 하루 만에 모든 게 바뀌어 버렸다. 적에게 포로로 잡혀 "패장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어서 죽이시게"라고 말한 고려의 장군처럼 삶에서 이렇듯 당당하고 싶다. 승자건 패자건 결론은 같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자.
성을 지키던 고려 장수들 하나하나 그 이름을 불러본다. 최영, 윤관, 유필금, 박서, 김윤후..(개인적으로 김윤후가 가장 쎅쉬하고 멋있다.) 비련의 세월 속에서 슬픔이 묻어난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불타거나 화살을 맞거나 화차에 박살이 나거나 풀잎 1 풀잎 2처럼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사람들 그 이름 하나하나 상상해 본다. 은천, 란, 향, 유, 자, 실, 헌..(고려시대 이름들)
승리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말을 탄 병사! 평생 관리 하지 않은 칠흑빛의 긴 머리를 날리며 밤새 달리는 그의 터질듯한 심장 소리처럼 이 밤도 내 마음은 요동성 주변을 떠돈다. 몽골과의 전쟁에 소실된 정신적 지주 황룡사 목탑처럼 내 마음도 다 타들어 갔다.
특별할 것도 달라질 것도 없는 그냥 12월 끝자락이다. 아무렇지도 않고 슬플 것도 없는 한 해가 가고 있다. 끝을 바라보지 않겠다. 천하는 태산을 담고도 무겁다 아니하고 대양을 담고 돌아도 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슬픔과 힘듦을 과대 포장하지 말자. 현실만 바라보자. 시작만 생각하기에도 삶은 너무 벅차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생각해 보는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우리 모두 같은 대륙이기에!!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이야기가 되는 밤> 난 오늘도 공부를 한다.
진정한 학문이란 세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