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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조>
정완영 편
석야 신웅순
‘정(情)’이 아니면 인간은 얼마나 삭막하고 ‘재(才)’ 또한 없으면 세상은 얼마나 적막할까. 백수 정완영 선생은 정과 재를 겸비하신 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적중화가 되지 않은 시조는 시조라 말할 수 없다. 시조는 역시 단수가 제맛이다. 우리 민족이 배가 아파 난 옥동자가 단수가 아니더냐.
조금은 수척해 있어야 겨울새가 앉는거래
조금은 비워 두어야 눈발이 와 닿는거래
아니래 가득히 있어야 동풍이 와 우는 거래
- 「겨울나무 3」
시조는 글자수를 넘어서야한다. 얽매어서는 안된다. 우리말은 첨가어라 조사나 어미가 절로 따라 붙는다. 한 두 글자가 늘고 주는 것은 이 때문이고 이로 인해 읽는 맛을 더해주기도 하는 것이 우리말이다. 백수의 시조를 읽어보라. 몇 글자 더해도 걸리는 구석이 있는가.
조금은 수척해져 있어야 겨울새가 앉고 조금은 비워두어야 눈발이 와 닿는 거래. 아니래. 가득히 있어야 동풍이 와 우는 거래. 아득히 들어가는 구름 속이요, 길고 긴 강물의 흐름이요, 기러기 사뿐 내려앉는 모랫벌이 아닌가.
네가 아니더면 빈 하늘을 누가 그리랴
네가 아니더면 저 세상을 누가 뵈 주랴
흰 눈발 막막한 소식을 심고 섰는 겨울 나무
-「겨울나무 6」
네가 아니더면 빈 하늘을 누가 그리고 네가 아니더면 저 세상을 누가 뵈주랴. 흰 눈발 막막한 소식을 심고 섰는 겨울나무라 했다. 읽고 나면 할 말을 잃는다. 산에 떠오르는 한가한 구름이요, 창공을 선회하는 솔개요, 아득한 동정호에 떠오르는 달이 아닌가.
선생님의 시조는 시요, 글씨요, 그림이다. 시·서·화가 따로 없음이다. 누가 경계를 지워 시 따로 글씨 따로 그림 따로라고 말하는가. 경계를 지우지 말라. 여기에 금(琴) 하나 덧붙이면 시조는 시이며 글씨요, 그림이며 음악이다. 이것이 시와는 또 다른 우리 고유의 시조이다.
선생님 시편이야 다 그러하지만 읽을수록 맛이 나는 내겐 눈물이라도 날 것 같은 시조가 있다.
한 잔 술 등불 아래 못 달랠 건 정일레라
세월이란 푸섶 속에 팔베게로 지쳐 누운
당신은 귀뚜리던가 내 가슴에 울어쌓네
저 몸에 목숨 있으면 얼마나를 남았으랴
내 눈길 가다 멎은 갈잎 같은 손을 두고
생각이 시름에 미쳐 길피 못 잡겠고나
젊음은 아예 무거워 형기처럼 마쳤느니
이제는 풀어 인 회포 용서 같은 백발 앞에
아내여 남은 날들을 서로 비쳐 보잔다
고쳐보니 임자가 늙어 어머님을 닮았구려
가난도 눈물에 실으면 비파일시 분명한데
둥글어 허전한 달이 이 밤 홀로 떠간다
- 「가을아내」전문
인생의 저녁 쯤 가을 아내에게 쓴 시조이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마음이 이리도 극진한가. 시인의 마음은 이런 것이다. 인생은 저녁 때쯤 되어야 아내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젊음은 아예 형기처럼 마쳤다고 한다. 젊어서야 혈기가 차라리 형기인 것을. 아내가 귀뚜리인가 남편의 가슴에서 울어 쌓는다. 생각이 시름에 미쳐 갈피를 못 잡는 노시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남은 날들은 서로 비쳐 보잔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비쳐보잔다. 고쳐보니 아내는 어머니를 닮았고 눈물 실린 가난은 비파 소리 분명한데 둥근 달은 이 밤 홀로 구만장천을 떠난다.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사랑은 이런 것인지 하 많은 생각도 모자란다. 절실한 마음 아니면 쓸 수가 없는, 정과 재가 빚어낸 빛나는 명편이다.
법망경에서 부부의 인연은 칠천겁의 인연이 쌓여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불교의 시간 단위로 일겁이 일천년에 한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로 집채만한 바위를 뚫는 시간이라니 칠천겁이 어떤 시간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또한 부부의 인연은 일백년에 한번씩 내려와 스쳐가는 선녀의 치맛자락으로 그 바위가 닳아서 사라지는 시간이라니 부부의 인연이 얼마나 깊고 소중한 것이기에 이런 경구까지 나왔을까. 죽을 때까지 사랑해도 모자라는 시간,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사랑하지 못한다면 벌 같은 죄가 얼마나 큰 것이냐. 이도 상상할 수 없는 양이다.
백수 정완영 선생님만큼 고향을 사랑하신 분도 흔치 않다.
쓰르라미 매운 울음이 다 흘러간 극락산 위
내 고향 하늘빛은 열무김치 서러운 맛
지금도 등 뒤에 걸려 사윌 줄을 모르네.
동구 밖 키 큰 장승 십리 벌을 다스리고
풀수풀 깊은 골에 시절 잊은 물레방아
추풍령 드리운 낙조에 한 폭 그림이던 곳.
소년은 풀빛을 끌고 세월 속을 갔건마는
버들피리 언덕 위에 두고 온 마음 하나
올해도 차마 못 잊어 봄을 울고 갔더란다.
오솔길 갑사댕기 서러워도 달은 뜨데
꽃가마 울고 넘은 서낭당 제 철이면
생각다 생각다 못해 물이 들던 도라지꽃.
가난도 길이 들면 양처럼 어질더라
어머님 곱게 나순 물레 줄에 피가 감겨
청산 속 감감히 묻혀 등불처럼 가신 사랑.
뿌리고 거두어도 가시잖은 억만 시름
고래등 같은 집도 다락같은 소도 없이
아버님 탄식을 위해 먼 들녘은 비었어라.
빙그르 돌고 보면 인생은 회전목마
한 목청 뻐꾸기에 고개 돌린 외 사슴아
내 죽어 내 묻힐 땅이 구름 밖에 저문다.
- 「고향 생각」전문
꽃뜰 이미경 서, 정완영 시조
김천시 남산공원에 백수의「고향 생각」시비가 병풍처럼 둘러 서 있다. 오래 전 거기에서 필자는 백수 선생님과 「고향 생각」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세세히 기억은 할 수는 없으나 시비를 손으로 가리키며 흥에 겨워 「고향 생각」에 대해 이런 저런 말씀을 하셨다.
물론「고향생각」은 고향의 추억과 향수를 노래한 시조이다. 고대가요 「황조가」나 고려가요의「서경별곡」,「가시리」로부터 조선의 허난설헌, 이매창으로 이어지는 전통적 정서와 한은 현대에 와 김소월, 한용운을 거쳐 선생님의 시조「고향 생각」에까지 면면 닿아 있다. 세상에는 변하는 것이 있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변하지 않는 DNA, 그것이 우리 민족의 정서요 한이 아닌가.
백수의 시조는 글씨로는 아정한 궁체요, 그림으로는 아늑한 수묵화요 음악으로는 천상의 정가이다.
꽃뜰 이미경 선생님이 76세에 쓰신 정완영 선생의 시조「고향 생각」6,7수이다. 꽃뜰의 글씨는 우리 궁체 최고의 전범이다. 격조 높은 시조에 격조 높은 글씨가 만난 것이다. 백수 선생님은 꽃뜰 선생님께 ‘붓을 놓고난 먼 훗날에도 묵향은 만리에 들릴 것’이라고 하셨으니. 읽어야만 시가 아닌 것이 써야만 시가 아닌 것이 시조이다. 때로는 글씨로, 때로는 그림으로, 때로는 음악으로,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것이 시조이다. 이럴 때 시조는 더욱 풍성해지고 풍요로워진다. 이것이 시조가 타고난 애초의 본성이다.
고향에 내려가니
고향은 거기 없고
고향에서 돌아오니
고향은 거기 있고……
흑염소
울음소리만
내가 몰고 왔네요
-「고향은 없고」
고향에 내려가니 고향은 거기 없고 고향에서 돌아오니 고향이 거기 있다. 역설은 우리를 긴 사색과 생각으로 끝까지 몰아넣는다. 그 긴 미로 끝 산 속 물길에 다다르면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무릉도원이 있다. 선생님의 고향은 그런 곳이 아닐까 싶다. 고향은 멀리 있을 때 그립고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현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물론 그리울 일도 아름다울 리도 없는 게 고향이다. 그래서 거기엔 고향이 있고 그래서 거기엔 고향이 없다. 흑염소 울음소리만 몰고왔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름다운 이상향이 아름다운 허상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낳고 자란 고향은 죽을 때까지 우리에게는 안쓰럽고도 눈물겨운 것이다.
내 고향은 경부선 K역에서 북으로 20리, 추풍령 높은 영마루에 흰구름 한 자락을 얹어놓고 걷 노라면 절로 은은하게 거문고 소리 들려 올 듯한 상념의 하늘 아래, 금가고 땟국도 묻은 이조백자 처럼 말없이 앉아 있는 마을이다.
- 「고향과 분묘」에서
내 고향은 언제나 황학산에서부터 소나기가 쏟아져 내려왔습니다.그 소리는 흡사 천병만마가 말 발굽을 굽놓으며 달려오는 시늉을 했고, 이 소나기가 지나가고나면 덩그렇게 쌍무지개 걸린 동녘 하늘 아래 금릉 30리 내달이벌에 7월 벼 오르는 소리가 물씬 물씬 들려왔던 것입니다.
-「시가 있는 여름」에서
고향은 백수시의 모태이다. 금이 가고 때국도 묻은 이조 백자처럼 앉아있는 마을이라니, 소나기가 지나가면 7월 벼 물오르는 소리가 물씬물씬 들려오는 고향이라니. 고향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이나 애틋한 앓음이 유난히도 고향에 대한 많은 명편을 만들어 냈다.
선생님은 앓는 것도 많다. 하기사 앓지 않으면 시를 쓸 수 없지 않은가. 선생님의 시조를 흔히 선비 의식이라고 말한다. 오래 전에 필자도 ‘기개 의식, 청렴·청빈의식, 절제와 검약의식, 국토애’ 등으로 나누어 정리한「정완영 시조의 선비의식」에 대해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 중 하나 「가을 앓이」를 거론했다.
진실로 외로운 자에겐 병도 또한 정일러뇨
세상살이 시들한 날은 자질 자질 몸이 아프다
매화도 한 그루 곡조, 봄을 두고 앓는 걸까.
가진 것 하나 없어도 다 잃은 것만 같은
허랑이 보낸 세월이 돌아 돌아 뵈는 밤은
어디메 비에 젖어서 내 낙엽은 춥겠고나.
그 누가 주어 준데도 영화는 힘에 겨워
시인이면 족한 영위의 또 내일을 소망하여
한 밤 내 적막한 꿈이 먼 들녘을 헤맨다
-「가을 앓이」전문
오상고절의 국화와 더불어 매화는 선비들에게 오랜 사랑을 받아왔다. 매화는 고결한 선비를 상징한다. 아담한 운치와 높은 절조 때문이다. 선비인들 매화도 한 그루 곡조 봄을 두고 앓는다고 했으니 선생님은 서민적인 선비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시대에 따라 추구하는 방법이 다를 뿐 인류의 보편적인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가진 것 하나 없어도 다 잃은 것만 같다고 했으니 영화나 바라면서 세상을 살아온 것은 아니다. 허랑하게 보낸 세월이 돌아돌아 뵈어 가을 앓이를 하고 있으니 뉘 선비인들 앓지 않는 이가 있으랴. 세월이나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비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일상적인 우리 삶의 모습이다.
시인이면 족하지 그 누가 주어 준데도 영화는 힘에 겹다고 했으니 가진 것도 없고 재물을 욕심낼 일도 없다. 영화가 힘에 겨워 시인이면 족하다 했으니 가난하지만 궁색하거나 옹색하지 않다. 현대인의 청빈한 선비 모습을 여기에서 본다.
내 서실은 관악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집이랬자 가마 메다 놓은 것만한 것이지 그래도 명색이 서재인지라 당호가 있을 수 없어 臥雲山房이라고 현판을 해 걸었습니다. 구름이 누워있 는 산방, 무어 그런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당호보다 더 오래 가슴 속에 간직한 당호 아닌 心號가 있으니 그것은 望黃岳詩室입니다.
- 「고향이라는 등불」에서
집이 가마 메다 놓을 정도이니 집은 화려하지는 않다. 그게 서재인지라 당호까지 지어 놓은 것을 보니 천상의 조촐한 선비이다.
나는 얼마 전 황간역의 초청으로 ‘황간역의 가을’이라는 시·서전을 연 적이 있다. 김천이 선생의 고향이요 외갓집이라 반수 정도를 정완영 선생의 동시조로 부채전을 꾸몄다. 역을 오가는 사람들이 선생님의 시조를 선생님을 생각하며 한 달 간 많이도 읽었으리라. 내 졸렬한 글씨로 선생님의 시조를 썼으니 나로서도 무량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 석야 신웅순 서. 정완영 선생의 「엄마 목소리」
보리밭 건너오는 봄바람이 더 환하냐
징검다리 건너오는 시냇물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그 소리가 더 환하다
혼자 핀 살구나무 꽃그늘이 더 환하냐
눈 감고도 찾아드는 골목길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그 목소리가 더 환하다
- 정완영의「엄마 목소리」 전문
석야 신웅순의 서
서예로 썼으니 동시집 『엄마 목소리』 선생님의 머리말로 소회를 대신한다.
아무리 별빛이 빛난다해도 엄마 목소리만큼 찬란할 수 없고 아무리 꽃이 아름답다해도 엄마 목 소리만큼 사무칠 수 없다. 엄마 목소리는 구원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엄마 목소리는 실상 저 별빛에도, 꽃에도, 흐르는 구름결에도, 아니 이 하늘과 땅 사이 만물 속에 다 숨어 있는 것이다. 이 숨어 있는 목소리들을 불러 모아 한자리에 앉혀 놓은 것이 이 동시조집이다.
겨울 한파가 두어 차례 몰려 왔다가 갔다. 그도 힘드는지 쉼표 하나 찍고가나, 겨울도 막 중반을 넘어간다.
선생님의 보석 같은 시조들을 대할 때마다 필자의 붓질이 참으로 짧다는 것을 느낀다. 재미있게 잘 썼으면 좋겠는데 재주가 그뿐이니 그러나 그런 날이 오리라 생각하며 선생님에 대한 얘기를 한차례 더 미뤄야겠다.
- 서예문인화,2018.2.103-107쪽.
[출처] 정완영 편 -석야 신웅순|작성자 석야
정완영 편
석야 신웅순
‘정(情)’이 아니면 인간은 얼마나 삭막하고 ‘재(才)’ 또한 없으면 세상은 얼마나 적막할까. 백수 정완영 선생은 정과 재를 겸비하신 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적중화가 되지 않은 시조는 시조라 말할 수 없다. 시조는 역시 단수가 제맛이다. 우리 민족이 배가 아파 난 옥동자가 단수가 아니더냐.
조금은 수척해 있어야 겨울새가 앉는거래
조금은 비워 두어야 눈발이 와 닿는거래
아니래 가득히 있어야 동풍이 와 우는 거래
- 「겨울나무 3」
시조는 글자수를 넘어서야한다. 얽매어서는 안된다. 우리말은 첨가어라 조사나 어미가 절로 따라 붙는다. 한 두 글자가 늘고 주는 것은 이 때문이고 이로 인해 읽는 맛을 더해주기도 하는 것이 우리말이다. 백수의 시조를 읽어보라. 몇 글자 더해도 걸리는 구석이 있는가.
조금은 수척해져 있어야 겨울새가 앉고 조금은 비워두어야 눈발이 와 닿는 거래. 아니래. 가득히 있어야 동풍이 와 우는 거래. 아득히 들어가는 구름 속이요, 길고 긴 강물의 흐름이요, 기러기 사뿐 내려앉는 모랫벌이 아닌가.
네가 아니더면 빈 하늘을 누가 그리랴
네가 아니더면 저 세상을 누가 뵈 주랴
흰 눈발 막막한 소식을 심고 섰는 겨울 나무
-「겨울나무 6」
네가 아니더면 빈 하늘을 누가 그리고 네가 아니더면 저 세상을 누가 뵈주랴. 흰 눈발 막막한 소식을 심고 섰는 겨울나무라 했다. 읽고 나면 할 말을 잃는다. 산에 떠오르는 한가한 구름이요, 창공을 선회하는 솔개요, 아득한 동정호에 떠오르는 달이 아닌가.
선생님의 시조는 시요, 글씨요, 그림이다. 시·서·화가 따로 없음이다. 누가 경계를 지워 시 따로 글씨 따로 그림 따로라고 말하는가. 경계를 지우지 말라. 여기에 금(琴) 하나 덧붙이면 시조는 시이며 글씨요, 그림이며 음악이다. 이것이 시와는 또 다른 우리 고유의 시조이다.
선생님 시편이야 다 그러하지만 읽을수록 맛이 나는 내겐 눈물이라도 날 것 같은 시조가 있다.
한 잔 술 등불 아래 못 달랠 건 정일레라
세월이란 푸섶 속에 팔베게로 지쳐 누운
당신은 귀뚜리던가 내 가슴에 울어쌓네
저 몸에 목숨 있으면 얼마나를 남았으랴
내 눈길 가다 멎은 갈잎 같은 손을 두고
생각이 시름에 미쳐 길피 못 잡겠고나
젊음은 아예 무거워 형기처럼 마쳤느니
이제는 풀어 인 회포 용서 같은 백발 앞에
아내여 남은 날들을 서로 비쳐 보잔다
고쳐보니 임자가 늙어 어머님을 닮았구려
가난도 눈물에 실으면 비파일시 분명한데
둥글어 허전한 달이 이 밤 홀로 떠간다
- 「가을아내」전문
인생의 저녁 쯤 가을 아내에게 쓴 시조이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마음이 이리도 극진한가. 시인의 마음은 이런 것이다. 인생은 저녁 때쯤 되어야 아내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젊음은 아예 형기처럼 마쳤다고 한다. 젊어서야 혈기가 차라리 형기인 것을. 아내가 귀뚜리인가 남편의 가슴에서 울어 쌓는다. 생각이 시름에 미쳐 갈피를 못 잡는 노시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남은 날들은 서로 비쳐 보잔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비쳐보잔다. 고쳐보니 아내는 어머니를 닮았고 눈물 실린 가난은 비파 소리 분명한데 둥근 달은 이 밤 홀로 구만장천을 떠난다.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사랑은 이런 것인지 하 많은 생각도 모자란다. 절실한 마음 아니면 쓸 수가 없는, 정과 재가 빚어낸 빛나는 명편이다.
법망경에서 부부의 인연은 칠천겁의 인연이 쌓여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불교의 시간 단위로 일겁이 일천년에 한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로 집채만한 바위를 뚫는 시간이라니 칠천겁이 어떤 시간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또한 부부의 인연은 일백년에 한번씩 내려와 스쳐가는 선녀의 치맛자락으로 그 바위가 닳아서 사라지는 시간이라니 부부의 인연이 얼마나 깊고 소중한 것이기에 이런 경구까지 나왔을까. 죽을 때까지 사랑해도 모자라는 시간,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사랑하지 못한다면 벌 같은 죄가 얼마나 큰 것이냐. 이도 상상할 수 없는 양이다.
백수 정완영 선생님만큼 고향을 사랑하신 분도 흔치 않다.
쓰르라미 매운 울음이 다 흘러간 극락산 위
내 고향 하늘빛은 열무김치 서러운 맛
지금도 등 뒤에 걸려 사윌 줄을 모르네.
동구 밖 키 큰 장승 십리 벌을 다스리고
풀수풀 깊은 골에 시절 잊은 물레방아
추풍령 드리운 낙조에 한 폭 그림이던 곳.
소년은 풀빛을 끌고 세월 속을 갔건마는
버들피리 언덕 위에 두고 온 마음 하나
올해도 차마 못 잊어 봄을 울고 갔더란다.
오솔길 갑사댕기 서러워도 달은 뜨데
꽃가마 울고 넘은 서낭당 제 철이면
생각다 생각다 못해 물이 들던 도라지꽃.
가난도 길이 들면 양처럼 어질더라
어머님 곱게 나순 물레 줄에 피가 감겨
청산 속 감감히 묻혀 등불처럼 가신 사랑.
뿌리고 거두어도 가시잖은 억만 시름
고래등 같은 집도 다락같은 소도 없이
아버님 탄식을 위해 먼 들녘은 비었어라.
빙그르 돌고 보면 인생은 회전목마
한 목청 뻐꾸기에 고개 돌린 외 사슴아
내 죽어 내 묻힐 땅이 구름 밖에 저문다.
- 「고향 생각」전문
꽃뜰 이미경 서, 정완영 시조
김천시 남산공원에 백수의「고향 생각」시비가 병풍처럼 둘러 서 있다. 오래 전 거기에서 필자는 백수 선생님과 「고향 생각」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세세히 기억은 할 수는 없으나 시비를 손으로 가리키며 흥에 겨워 「고향 생각」에 대해 이런 저런 말씀을 하셨다.
물론「고향생각」은 고향의 추억과 향수를 노래한 시조이다. 고대가요 「황조가」나 고려가요의「서경별곡」,「가시리」로부터 조선의 허난설헌, 이매창으로 이어지는 전통적 정서와 한은 현대에 와 김소월, 한용운을 거쳐 선생님의 시조「고향 생각」에까지 면면 닿아 있다. 세상에는 변하는 것이 있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변하지 않는 DNA, 그것이 우리 민족의 정서요 한이 아닌가.
백수의 시조는 글씨로는 아정한 궁체요, 그림으로는 아늑한 수묵화요 음악으로는 천상의 정가이다.
꽃뜰 이미경 선생님이 76세에 쓰신 정완영 선생의 시조「고향 생각」6,7수이다. 꽃뜰의 글씨는 우리 궁체 최고의 전범이다. 격조 높은 시조에 격조 높은 글씨가 만난 것이다. 백수 선생님은 꽃뜰 선생님께 ‘붓을 놓고난 먼 훗날에도 묵향은 만리에 들릴 것’이라고 하셨으니. 읽어야만 시가 아닌 것이 써야만 시가 아닌 것이 시조이다. 때로는 글씨로, 때로는 그림으로, 때로는 음악으로,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것이 시조이다. 이럴 때 시조는 더욱 풍성해지고 풍요로워진다. 이것이 시조가 타고난 애초의 본성이다.
고향에 내려가니
고향은 거기 없고
고향에서 돌아오니
고향은 거기 있고……
흑염소
울음소리만
내가 몰고 왔네요
-「고향은 없고」
고향에 내려가니 고향은 거기 없고 고향에서 돌아오니 고향이 거기 있다. 역설은 우리를 긴 사색과 생각으로 끝까지 몰아넣는다. 그 긴 미로 끝 산 속 물길에 다다르면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무릉도원이 있다. 선생님의 고향은 그런 곳이 아닐까 싶다. 고향은 멀리 있을 때 그립고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현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물론 그리울 일도 아름다울 리도 없는 게 고향이다. 그래서 거기엔 고향이 있고 그래서 거기엔 고향이 없다. 흑염소 울음소리만 몰고왔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름다운 이상향이 아름다운 허상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낳고 자란 고향은 죽을 때까지 우리에게는 안쓰럽고도 눈물겨운 것이다.
내 고향은 경부선 K역에서 북으로 20리, 추풍령 높은 영마루에 흰구름 한 자락을 얹어놓고 걷 노라면 절로 은은하게 거문고 소리 들려 올 듯한 상념의 하늘 아래, 금가고 땟국도 묻은 이조백자 처럼 말없이 앉아 있는 마을이다.
- 「고향과 분묘」에서
내 고향은 언제나 황학산에서부터 소나기가 쏟아져 내려왔습니다.그 소리는 흡사 천병만마가 말 발굽을 굽놓으며 달려오는 시늉을 했고, 이 소나기가 지나가고나면 덩그렇게 쌍무지개 걸린 동녘 하늘 아래 금릉 30리 내달이벌에 7월 벼 오르는 소리가 물씬 물씬 들려왔던 것입니다.
-「시가 있는 여름」에서
고향은 백수시의 모태이다. 금이 가고 때국도 묻은 이조 백자처럼 앉아있는 마을이라니, 소나기가 지나가면 7월 벼 물오르는 소리가 물씬물씬 들려오는 고향이라니. 고향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이나 애틋한 앓음이 유난히도 고향에 대한 많은 명편을 만들어 냈다.
선생님은 앓는 것도 많다. 하기사 앓지 않으면 시를 쓸 수 없지 않은가. 선생님의 시조를 흔히 선비 의식이라고 말한다. 오래 전에 필자도 ‘기개 의식, 청렴·청빈의식, 절제와 검약의식, 국토애’ 등으로 나누어 정리한「정완영 시조의 선비의식」에 대해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 중 하나 「가을 앓이」를 거론했다.
진실로 외로운 자에겐 병도 또한 정일러뇨
세상살이 시들한 날은 자질 자질 몸이 아프다
매화도 한 그루 곡조, 봄을 두고 앓는 걸까.
가진 것 하나 없어도 다 잃은 것만 같은
허랑이 보낸 세월이 돌아 돌아 뵈는 밤은
어디메 비에 젖어서 내 낙엽은 춥겠고나.
그 누가 주어 준데도 영화는 힘에 겨워
시인이면 족한 영위의 또 내일을 소망하여
한 밤 내 적막한 꿈이 먼 들녘을 헤맨다
-「가을 앓이」전문
오상고절의 국화와 더불어 매화는 선비들에게 오랜 사랑을 받아왔다. 매화는 고결한 선비를 상징한다. 아담한 운치와 높은 절조 때문이다. 선비인들 매화도 한 그루 곡조 봄을 두고 앓는다고 했으니 선생님은 서민적인 선비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시대에 따라 추구하는 방법이 다를 뿐 인류의 보편적인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가진 것 하나 없어도 다 잃은 것만 같다고 했으니 영화나 바라면서 세상을 살아온 것은 아니다. 허랑하게 보낸 세월이 돌아돌아 뵈어 가을 앓이를 하고 있으니 뉘 선비인들 앓지 않는 이가 있으랴. 세월이나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비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일상적인 우리 삶의 모습이다.
시인이면 족하지 그 누가 주어 준데도 영화는 힘에 겹다고 했으니 가진 것도 없고 재물을 욕심낼 일도 없다. 영화가 힘에 겨워 시인이면 족하다 했으니 가난하지만 궁색하거나 옹색하지 않다. 현대인의 청빈한 선비 모습을 여기에서 본다.
내 서실은 관악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집이랬자 가마 메다 놓은 것만한 것이지 그래도 명색이 서재인지라 당호가 있을 수 없어 臥雲山房이라고 현판을 해 걸었습니다. 구름이 누워있 는 산방, 무어 그런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당호보다 더 오래 가슴 속에 간직한 당호 아닌 心號가 있으니 그것은 望黃岳詩室입니다.
- 「고향이라는 등불」에서
집이 가마 메다 놓을 정도이니 집은 화려하지는 않다. 그게 서재인지라 당호까지 지어 놓은 것을 보니 천상의 조촐한 선비이다.
나는 얼마 전 황간역의 초청으로 ‘황간역의 가을’이라는 시·서전을 연 적이 있다. 김천이 선생의 고향이요 외갓집이라 반수 정도를 정완영 선생의 동시조로 부채전을 꾸몄다. 역을 오가는 사람들이 선생님의 시조를 선생님을 생각하며 한 달 간 많이도 읽었으리라. 내 졸렬한 글씨로 선생님의 시조를 썼으니 나로서도 무량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 석야 신웅순 서. 정완영 선생의 「엄마 목소리」
보리밭 건너오는 봄바람이 더 환하냐
징검다리 건너오는 시냇물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그 소리가 더 환하다
혼자 핀 살구나무 꽃그늘이 더 환하냐
눈 감고도 찾아드는 골목길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그 목소리가 더 환하다
- 정완영의「엄마 목소리」 전문
서예로 썼으니 동시집 『엄마 목소리』 선생님의 머리말로 소회를 대신한다.
아무리 별빛이 빛난다해도 엄마 목소리만큼 찬란할 수 없고 아무리 꽃이 아름답다해도 엄마 목 소리만큼 사무칠 수 없다. 엄마 목소리는 구원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엄마 목소리는 실상 저 별빛에도, 꽃에도, 흐르는 구름결에도, 아니 이 하늘과 땅 사이 만물 속에 다 숨어 있는 것이다. 이 숨어 있는 목소리들을 불러 모아 한자리에 앉혀 놓은 것이 이 동시조집이다.
겨울 한파가 두어 차례 몰려 왔다가 갔다. 그도 힘드는지 쉼표 하나 찍고가나, 겨울도 막 중반을 넘어간다.
선생님의 보석 같은 시조들을 대할 때마다 필자의 붓질이 참으로 짧다는 것을 느낀다. 재미있게 잘 썼으면 좋겠는데 재주가 그뿐이니 그러나 그런 날이 오리라 생각하며 선생님에 대한 얘기를 한차례 더 미뤄야겠다.
- 서예문인화,2018.2.103-107쪽.
[출처] 정완영 편 -석야 신웅순|작성자 석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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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조의 매력에 빠지다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너무 고맙습니다.
오늘도 무더위 피서 잘 하시고
건필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