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역사상 최고의 위기 대응… 보스턴 테러 처리 4가지 비결
하버드 케네디스쿨, 1년 연구 끝에 백서 발간
2013년 4월 1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보스턴시(市) 중심가 코플리 광장. 이날은 세계 4대 마라톤 대회 중 하나인 보스턴 마라톤이 열리는 날이었다. 결승선에서는 수많은 시민이 선수들을 격려하며 축제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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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오후 2시 49분 시민들이 밀집해 있는 보도에서 첫 폭발음이 울렸고, 12초 후엔 170m 떨어진 지점에서 또 다른 폭탄이 터졌다. 미국이 이슬람 국가들과 벌이고 있는 전쟁에 반대하는 체첸계 미국인 형제가 놔두고 간 급조 폭발물(IED)이 터지면서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테러로 3명이 사망했고, 260명이 부상을 입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발생한 가장 규모가 큰 테러 사건이었다. '외로운 늑대(lone wolf)'라는 자생적 테러리스트의 소행이란 점에서 미국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이 있었다. 폭발로 목숨을 잃은 3명은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사망했다. 하지만 다리가 절단되는 등 중상자들이 많았는데도 병원에 도착해 치료를 받은 부상자 중에선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2013년 4월 15일 보스턴 마라톤 결승선 부근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한 뒤 응급구조요원들이 부상자들을 후송하고 있다. / 블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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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테러 대응이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이유
첫째, 부상자는 모두 22분 안에 병원으로 이송됐다. 폭탄 테러 현장으로 몰려드는 경찰차가 구급차 통행을 막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훈련을 받았던 경찰관들이 구급차 위주의 차량 통제를 재빠르게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둘째, 마라톤 대회를 위해 이미 현장에 나와 있던 의료진은 선수뿐 아니라 구경 나온 일반 시민들에 대한 의료 지원까지 충분히 준비하고 있었다. 의료진은 일사병, 탈수 또는 근육통뿐 아니라 화상이나 절단과 같은 여러 유형의 참사에 대응할 수 있도록 훈련된 인력이었다.
셋째, 사고 현장과 병원에 있는 의료진은 모두 대량 사상자 발생 시 참사 현장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수년에 걸친 훈련을 통해 몸으로 익혀왔다. 응급처치법을 알고 있었던 경찰관과 일반 시민들도 추가 폭발 위험성이 남아있던 사고 현장을 떠나지 않고 부상자 응급처치에 힘을 보탰다.
보스턴 테러 사건은 이후 미국과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위기 대응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위기관리를 연구하는 허먼 레너드(Leonard) 교수와 아널드 호윗 (Howitt)교수 등이 1년 동안 연구한 끝에 내놓은 '보스턴 스트롱은 어떻게 가능했나(Why was Boston Strong)'라는 보고서의 결론도 마찬가지였다. 필자들은 케네디 스쿨과 협조해 보고서의 한국어판을 발간하게 됐으며, 주요 내용을 위클리비즈에 요약해 소개한다.
‘보스턴 스트롱(Boston Strong)’이란 문구를 적은 시내버스가 테러 이후 보스턴 시내를 주행하고 있다. / 플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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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시민들의 불굴 정신 나타낸 슬로건 '보스턴 스트롱'
하버드 보고서가 제목에 쓴 '보스턴 스트롱'이란 용어는 보스턴 마라톤 테러 이후 시민들이 트위터에서 '보스턴 스트롱'이란 해시태그(SNS에서 # 뒤에 특정 단어를 붙여 관련 글을 모아볼 수 있게 한 것)를 사용한 데서 유래했다. 이후 보스턴 테러 피해자를 돕고자 판 티셔츠와 각종 기념물에 널리 쓰이면서 '위기에 굴하지 않는 강력한 보스턴 정신'을 나타내는 슬로건이 됐다.
하버드 보고서는 신속한 응급 의료 체계 외에도 통합적 지휘 체계, 시민사회와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등을 보스턴 스트롱의 비결로 제시했다.
통합적이고 자치적인 지휘 체계
테러와 재난의 특성은 복잡성으로 요약된다. 관리해야 할 사안이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어느 한 조직이나 전문가가 홀로 관리하기 어렵다. 보스턴 테러 발생 후 위기관리 과정에서는 전략적 차원에선 통합적 의사 결정을 했지만, 각 현장에서는 위의 지시만 바라보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치적으로(decentralized) 대응할 수 있었다.
효율적인 위기관리 대응 시스템은 2001년 9월11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건물과 미국 국방부 등에 대한 비행기 납치 자살 테러 당시의 교훈에서 비롯됐다. 이 9·11 동시다발 테러 사건 이후 미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평소 함께 일하지 않는 여러 기관과 전문가들이 위기 상황에서 일관성 있게 대응하고,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 국가 사고 관리 시스템(NIMS)을 발표했다. 이 시스템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해를 겪으면서 더욱 견고해졌다. 레너드 교수는 미 하원 국토안전위원회 청문회에서 "국가 사고 관리 시스템이 보스턴 테러 대처에서 확실한 효과를 거뒀다"고 증언했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통합 지휘권(unified command)이다. 통합 지휘권이 중요한 이유는 사건 관련 주요 의사 결정권자들이 공동 목표 수립과 계획 마련은 물론 대응에서도 서로 전문성을 나누는 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통합 지휘권이 있었기에 경찰과 의료진, 보스턴 시 등이 협력하여 환자를 보스턴 시내 1급 외상 치료 전문 센터 8곳으로 빠르게 분산 수용해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 통합 지휘권이 있었기에 용의자 확인도 빠르게 이뤄질 수 있었다. FBI와 매사추세츠주와 보스턴시 경찰 등이 협력하여 사고 현장 근처의 공공 및 사설 CCTV, 현장에서 시민들이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 등을 빠르게 분석해서 용의자를 추려낼 수 있었다.
통합 지휘권을 잘 보여준 것이 테러 직후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보스턴 경찰, FBI 등이 참여한 공동 브리핑이었다. 이들은 여러 기관의 협력을 바탕으로 정리해 완성된 한 메시지를 전달했고, 당시까지 밝혀진 내용과 사고 현장 통제 상황, FBI의 수사 총괄 사항 및 취해진 조치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지역 주민의 협조와 도움에도 감사 인사를 전했다. 시민들은 각 분야의 책임자와 전문가들이 협업하여 위기를 통제하고 있는 모습에 안심할 수 있었고, 일관된 정보를 받을 수 있었다.
제도만 갖춰진다고 위기 대응이 저절로 이뤄지진 않는다. 실제 보스턴시는 9·11 이후 프로 스포츠 게임, 신년맞이 행사, 독립기념일 콘서트 및 월드 시리즈, 수퍼볼, 민주당 전당대회 등 각종 행사가 있을 때마다 위기관리 대응 훈련을 꾸준히 해왔다. 서로 다른 부서에 있는 담당 공무원들이나 전문가들이 만약의 상황에 어떻게 협업할 수 있으며, 국가 사고 관리 시스템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연습과 훈련을 거듭해왔던 것이다.
시민사회와 커뮤니케이션
보스턴 테러 3일 후인 4월 18일 밤 용의자 체포를 알린 것은 지역 유력지인 보스턴 글로브가 아니었다. 현장에서 확인된 최신 정보를 보유한 보스턴 경찰서의 트위터 계정이 전 세계에 이를 알렸다. 에드 데이비스 보스턴 경찰서장은 2006년부터 경찰과 시민이 쌍방향으로 정보를 공유해 지역의 범죄율을 낮추는 협력 프로그램을 가동해왔다. 데이비스 서장은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를 영입, 6명으로 구성된 소셜미디어팀에 전권을 주고 시민과 소통할 수 있게 했다. 보스턴 테러 직후 비공개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경찰과 시민이 의사소통하는 채널은 열려 있었다. 평소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시민들과 밀접한 신뢰 관계를 구축해놓았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경찰을 신뢰할 수 있었고, 이는 테러 직후의 혼란을 최소화하고 신속하게 범인을 체포하는 데 큰 힘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 보스턴 테러
체첸공화국에서 온 이민 가정 출신 차르나예프 형제가 2013년 4월 15일 보스턴마라톤 대회 당일 결승선 부근에서 압력솥 안에 쇠구슬 등을 넣어 만든 급조폭발물(IED)을 폭발시켜 260여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 범인 검거 과정에서 형 타메르란은 총격전 중 사망했으며 동생 조하르는 중상을 입고 체포됐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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