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선교(실버선교) / 홍속렬
일정한 곳에 안착을 못 하고 이리 저리 떠다니는 걸 부평초 인생이라 한다.
내 아버지 시대에 어린 나이였지만 “ 부평초 인생” 이란 유행가도 있었다. 어른들이 부르면 왠지? 서글프고 마음이 아팠다
어른이 되어 가정을 갖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군인이었기 때문에 이사를 열 번 이상 했고 출동이니 훈련 기타 합숙 생활 원정경기 등으로 집을 비우는 기회가 집에 있는 시간보다도 도 길었다.
그렇게 떠돌아다니는 시간이 이제는 먼 이국에 까지 발이 뻗혀 이국에서도 한 자리에 진득하게 있는 게 아니라 여기서도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
온드라스, 엘 살도르, 과테말라, 과테말라에서도 수도에서 네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치카카오에서 3주를 지내고 오늘 올라간다.
현지주민 집이 비교적 상류층 이었지만 물도 잘 않나오고 이층에서 자다가 화장실을 가려면 일층으로 내려와야 돼 잠을 다 쫓아 버리고 나머지 시간을 날 밤을 새워야하는? 어려움 때문에 힘들었다. 밥도 삼시 세끼 다 해먹어야 하는 어려움 과 식재료가 없어 곤란을 겪은 점 모기가 많아 여기 모기는 물면 따가운 게 아니라 통증을 유발 하는 아픔이 있고 피부가 벌겋게 피를 동반한 상처가 된다.
3주간을 아이들 가르치는 재미에 그런대로 잘 참고 이겨 나왔다 더 있어 주기를 원하지만 이제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에 다른 계획이 있다 하고 오늘 올라가려고 짐을 챙기는데 어린아이 같이 좋아진다. 이렇게 좋은 걸 참고 견디어 왔단 말인가? 과연 선교라는 게 이렇게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며 나를 버리고 오로지 하나님의 복음이 전해지기를 원해 자신을 희생 하는 거란 걸 몸으로 체험한다.
사도행전을 읽으며 사도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몸소 체험 한다는? 생각으로 이모저모 그때 그 당시의 상황을 머리에 그려 보며 나 자신이 그때 그 사도들과의 차별화된 것이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며 그 당시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전도 여행을 했지만 시방은 그렇지 않고 교통도 발달 했고 이미 문이 개방된 나라에서 안전하게 선교를 한다는 차이점과 지금은 선교가 낮 설지 안 아 쉽게 받아드리는 좋은 점도 있다는 것 등이 그때 그 당시의 사도들과의 차이점이라 생각 한다
특히 축구를 가르치며 느낀 것이 이곳 축구는 앞으로 내 차는 것만 하고 다른 기술이나 스킬 그리고 아기자기 한 묘기를 통해 자기 발전과 관중을 위한 어떤 써비스 ? 정신 같은 걸 찾아볼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 장비나 현재 세계축구의 흐름 같은 건 아랑곳 안 하고 자기들이 이제 까지 해온 방법들 그대로 해 가는데 새롭게 이들의 의식을 바꿔줄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계속 해 가다가는 변두리 시대착오적인 축구 언제고 제 자리에서 제 자리 걸음만 하는 그런 축구만을 할 수 밖에 없다 과테말라 대표선수를 했다는 60대 한 목사를 만나 봤는데 온드라스에 언제든 덜미를 잡혀 세계대회는 꿈도 못 꾼다는 말을 해서 아연 했다 우리도 한 번 해 볼 수 있고 그만한 자신감과 꿈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길 기대 했었는데
만일 나에게 과테말라 대표 팀의 전권을 맡겨준다면 어느 정도는 해소 시키고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며 제도작인 것 장비의 문제 유소년 축구의 발전 방향등을 설정 장기 계획으로 발전한 나라의 도움을 받아 얼마든지 이루어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 한다
여긴 오로지 스포츠 하면 축구밖에 없어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볼만 차고 논다
방학이 두 달이나 되어 매일 리그를 하는데 심판의 전횡 등은 생각지도 않은 모양 이다. 이들은 매일 리그를 하는데 운동장 규격 등 경기력 향상이나 발전 단계에서 아이들의 생리적인 면 등은 전혀 고려치 않고 어른 싸이즈 운동장에서 어른용 볼로 경기를 한다 하도 안타까워 갖고 있던 돈이 모자라 딸라를 바꾸려고 여러 은행을 다니다가 어렵게 겨우 바꿔 4호볼 좋은 놈을 사다가 주었더니 결승이나 참피 온 전에 쓴다고 내가 보고 있는 동안 사용을 안 해 더 안타까웠다.
그리고 자질 있는 아이들 많이 발견 할 수 있다 신도 없어 맨발로 볼을 차는데 아주 잘 찬다. 온드라스에서 한국 수녀 회에서 운영하는 여자고등학교에서 가르쳐 달라 해서 몇 주 가르쳐 우승을 시켰다 축구를 했던 현지인 코치가 있었는데 그냥 시간만 때우는 형식이어서 선수들에게 기초기술도 안 가르치고 내 차는 것으로 축구를 해서 기초부터 뜯어 고치고 축구의 개념부터 가르쳤다 우선키가 큰 흑인 아이로 골(볼로테) 키퍼를 세우고 연습을 시켜 제대로 볼을 처리 하도록 해 놓았고 다른 풀레이어들도 몸으로 볼이 오면 처리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 했다 몸 쪽으로 볼이 오면 무조건 발을 들어 처리 하려하니 축구가 제대로 될 수 있겠는가?
이번 미국에서 온 실버 선교 팀에서 받은 교육이 있었다. 전문 직종에서 은퇴한 분들이 저 개발 국가에서 선교를 통해 그 분야의 낙후된 것들을 도와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 일이다 김명현 선교사님은 서울 대 수의대를 나오셔서 미국에서 학자로 교수로 봉직 하시다가 정년을 하시고 과테말라에서 국립 대와 연계 젖 염소 보급 운동을 벌려 성공한 사례이다 산골 원주민 가난과 질병이 만년한 곳에 젖 염소를 사육하여 아기와 산모의 건강을 지켜 나가며 분양을 시켜 마을을 잘 살게 하는 운동을 십 여 년 전부터 시행하여 성공한 한 예이다 젖 염소의 치즈는 비싸게 팔린 단다. 그래서 마을의 자립도 이루고 건강이 안 좋아 심장 수술을 하셨는데도 스코필드 장학금으로 공부를 해서 그 값을 값는 다는 생각으로 이 일을 하신다고 말씀 하신다 벌써 십 여 년 째 부인과 함께 국립 대에서 강의 뿐 아니라 부인은 영어성경을 가르치며 후학들을 길러 우수한 자원은 미국으로 유학길도 열어주며 선교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 하시고 계신다. 이와 같이 전문 직종에 일 하시던 분들이 이런 곳에 와 그 분야의 발전을 이루는 일을 돕는 것은 인류발전에 기여 하는 일이다 나는 1월에 엘살바도르로 가 그곳 축구발전을 이루는데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아울러 선교의 큰 틀도 이루고
하나님이 허락 하시는 건강 까지는 이곳에서 복음을 위해 축구의 발전을 위해 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