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회 “일제 국권 침탈이 무효라면, 김형석 임명 철회하라”
광복회는 ‘일제의 국권 침탈이 불법·무효인지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며 외교부에 보낸 공개서한에 대해 외교부가 “원천적 무효”라고 답하자, 이런 답변과 어긋나는 주장을 편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를 요구했다.
광복회는 지난 23일 입장문을 내어 “외교부의 ‘일제 지배 원천무효’ 입장을 환영하며 외교부 입장 확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독립기념관장 임명이 철회되고 ‘이승만 건국’을 둘러싼 ‘1948년 건국절’ 논란이 종식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광복회는 “그동안 정부는 건국절 논란에 대해 소극적이고 모호한 대응으로 일관했으나, 이번에 외교부가 일제 지배 원천무효를 국민 앞에 공식 확인함으로써 대한민국 정통성과 정체성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대통령실이 이에 상응하는 ‘국민이 신뢰할 만한 조치’를 취해주길 바란다”며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가 원천무효’였다고 외교부가 확인한 것은 일제 시기 한민족의 국적이 일본이 될 수 없고 한국이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해 주는 것이므로, ‘일제시기 우리 국적은 일본’이라며 외교부 입장과 배치된 주장을 한 김형석 독립기념관 관장의 임명은 지금이라도 철회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광복회는 “‘당시 나라가 없어 1948년에 대한민국을 건국했다’는 ‘1948년 건국절’ 주장은 당장 폐기되어야 한다”며 “‘이승만 건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이승만 건국대통령’ ‘이승만 건국대통령 기념관’에서 보듯 1948년을 건국으로 상정한 일체의 주장은 ‘일제 지배 원천무효’를 확인한 외교부의 입장에 정면 배치되므로,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요구했다.
지난 22일 광복회는 조태열 외교부 장관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국권 침탈이 불법·무효였는지 정부의 입장을 밝혀달라”라고 요구했다. 외교부는 지난 23일 “한·일 강제 병합조약은 우리 국민의 의사에 반하여 강압적으로 체결됐다”며 “정부는 조약이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입장을 그간 일관되게 유지해 왔으며,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이 내용이 담긴 답변 서한을 이날 광복회에 전달했다고 전했다
(광복회의 전문 내용이다)
위의 내용에서도 보았듯 정부는 광복회가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정부의 아킬레스건을 계속 물고 늘어지며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정부는 원론적인 입장으로 광복회의 주장에 동의한다는 모호한 입장을 전달했다.
그러나 일본의 지배를 놓고 무효다 하고 항변하고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은 할 수는 있겠지만 일본의 실효지배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 35년간 일본의 실효 지배를 받은 것은 엄연한 사실이 아닌가. 사실을 사실로 말하지 못하고 있는 속내는 무엇인가. 지금껏 무효다 하는 자조적인 항변으로 얼버무리고 인정할 수 없다는 말 또한 어린애 말장난이 아니고 무엇이냐. 부끄럽지도 않으냐.
일본의 지배에 대한 말 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반면교사 삼아 더욱 분발할 생각은 안 하고 언제까지 지난 일을 갖고 분란만 일으킬 것인가.
솔직히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나가면 될 것을 언제까지 말장난으로 국민 간 분열을 조장할 것인가. 정부가 나서서 모든 것을 소상히 정리하고 분쟁의 해결에 앞장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오히려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를 지탱하고 지킬 힘도 없었기 때문에 나라를 빼앗겼다고 말하고 1945년 미국에 의해 해방이 되기 전 35년간 일본의 실효 지배를 받으며 살고 있었다. 실제의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역사를 왜곡하지 말고 솔직히 당시 임금과 대신들은 지금처럼 정쟁으로 해가지는 줄 모르게 다투고 있었고 벼슬아치들은 백성들에게 가렴주구를 일삼는 것이 일상 인 시절이었다고 설명하면 될 것이다 지난 지금 우리들이 그 역사를 보고 있지 않느냐. 역사에 나와 있는 것처럼 말하면 될 것이다.
당시 조선이 망하기 전 조선은 민족끼리를 외치며 쇄국정치로 일관하다 보니 외국의 정세를 알지 못한 것은 당연하고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나라를 개방하여 무역의 활성화에 힘입어 국방의 개혁을 단행하여 재래식 무기인 칼과 화살을 버리고. 모두 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국방을 먼저 튼튼히 하던 시기였지만 조선은 쇄국정치로 일관하다 보니 이웃인 일본의 그런 모든 것들을 알지를 못하고 있었다. 지금도 분하고 원통 한 것은 정세를 읽지 못하고 있던 무능한 임금과 대신들의 방종이다. 나라가 망하기 직전 까지도 궁중에서는 권력의 암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독립후손을 기화로 대한민국의 온갖 권력을 섭렵하며 기회주의적 삶을 산 이종찬은 오늘까지 무려 80년 100년을 지금까지 친 일 항쟁을 우려먹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친 일 항쟁을 하고 있는 한 이종찬의 권력은 계속될 것이다.
나라가 망하는 줄도 모르고 근대 조선의 말기에까지 명성황후와 권력다툼을 벌였던 흥선대원군의 둘째 딸이 이종찬의 외 할머니이다 사회주의자인 전 노동당 대표 홍세화도 역시 그의 후손이다. 홍세화의 외증조부가 이종찬의 어머니와 남매관계이다.
이종찬을 비롯 흥선대원군의 가계도를 조명하는 것은 근대조선과 현세에 이르기까지 나라를 분란의 장으로 만들고 위태롭게 한 장 본인들이라는 공감 인물 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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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umn Leaves (고엽) -Andy Williams -추억의 Old Po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