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비빔밥/고진하
흔한 것이 귀하다.
그대들이 잡초라 깔보는 풀들을 뜯어
오늘도 풋풋한 자연의 성찬을 즐겼느니.
흔치 않은 걸 귀하에 여기는 그대들은
미각을 만족시키기 위해
숱한 맛집을 순례하듯 찾아다니지만,
나는 논밭두렁이나 길가에 핀
흔하디흔한 풀들을 뜯어
거룩한 한 끼 식사를 했느니.
신이 값없는 선물로 준
풀들을 뜯어 밥에 비벼 꼭꼭 씹어 먹었느니.
흔치 않은 걸 귀하에 여기는 그대들이
개망초 민들레 질경이 돌미나리 쇠비름
토끼풀 돌콩 왕고들빼기 우슬초 비름나물 등
그 흔한 맛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너무 흔해서 사람 발에 마구 짓밟힌
초록의 혼들, 하지만 짓밟혀도 다시 일어나
바람결에 하늘하늘 흔들리나니,
그렇게 흔들리는 풋풋한 것들을 내 몸에 모시며
나 또한 싱싱한 초록으로 지구 위에 나부끼나니.
《명랑의 둘레》, 문학동네
<시 읽기> 잡초 비빔밥/고진하
잡초는 잡초입니다. 그런데 잡초라는 이름을 탈탈 떨어내고 식탁에 오르니 약이 되고 생명을 살리는 약초가 됩니다. 우리 인생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평범한 내가 나보다 아프고 힘든 사람들에게 약이 되고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아, 생각만으로도 감동입니다.
글 쓰는 사람이어서 감사했던 일이 있습니다. 자바초인 내가 약이 된 것같다는 생각을 갖게 한 일입니다. 배우 정애리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EBS와 월드비젼이 함께하는 공익광고 캠페인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한 달에 두 번, 당장 도움이 필요한, 위기의 가정을 찾아가서 취재를 한 후에 공익광고 캠페인에 글을 쓰는 일이었습니다.
불의의 사고나 질환, 가난 등등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습니다. 가끔은 마주 보고 울기도 합니다. 가슴에 담고 있던 상처와 절망을 다 토해내도록 끄덕이며 들어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목포, 부산, 동해, 군산, 원주, 부안 등 도움이 필요한 분이 계신 곳으로 찾아가서 만나야 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듣고도 도움을 드리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속이 상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의 절박한 상황을 글로 옮겨 라디오 청취자들에게 들려주는 일은 보람이었습니다. 처음 취재를 갔던 수연이네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만난 많은 가정의 사연이 정애리 선생님 목소리를 통해 청취자들은 만났습니다. 그 공익광고 캠페인을 듣고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신 많은 분들, 함께 마음 아파하고 직접 도움을 주셨던 분들이 모두 귀합니다.
‘개망초 민들레 질경이 돌미나리 쇠비름 토끼풀 돌콩 왕고들빼기 우슬초 비름나무’처럼 힘들고 아픈 이웃에게 꼭 필요한 약이 되었습니다.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
―정진아 엮음, 『맛있는 시』, 나무생각,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