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깊은 새벽, 충주의 지진 문자 알림으로 잠시 잠을 깼습니다.
순간적인 불안감이 일지만.....다시 한 번 세상 마지막 날을 생각합니다.
아등바등 지지고 볶으며 사는 인생사의 헛됨과
오직 선한 목자이신 주님만을 따르는 인생의 안전함을 생각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진리로 충만한 마음이 되어 주님만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3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39.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40. 다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41.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42.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본문 주해)
32~33절 : ‘나와 아버지는 하나’(30절)라는 말씀에 유대인들이 ‘또’ 돌을 들어 치려 한다.
그들은, 예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날에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는 말씀에도 똑같이 반응하였고, ‘아브라함 나기 전에 내가 있다’(요8:58)는 말씀에도 돌을 들어 치려 하였다.
예수께서 왜 이 선한 일에 대한 반응으로 돌을 드느냐고 하시자 유대인들은 선한 일 때문이 아니라 신성모독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이 선한 일임을 인정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겉으로 하는 말과 속마음이 다르다. 정말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다 선한 일이라면 그 일은 믿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돌로 치려고 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일을 선한 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은 모두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일이기에 선한 일이다.
34~36절 : 예수께서 그들의 말에 대하여 율법(시편 82:6)으로 말씀하신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시82:6)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신들이고,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들이지만,
너희도 사람처럼 죽을 것이고, 여느 군주처럼 쓰러질 것이다."
하나님, 일어나셔서, 이 세상을 재판하여 주십시오. 온 나라가 하나님의 것입니다.”(시82:6~8, 새번역)
(하나님은 율법을 집행하는 재판관들을 ‘신들’로 부르신다. 그러나 그들은 공정한 재판을 하지 않고 도리어 악인의 편을 들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신들로 불린 그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의 말씀이 주어졌던 그들을 ‘신’으로 지칭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신 로고스가 육신이 되어 오신 아들의 경우는 얼마나 더하겠는가? 율법을 받은 사람도 신들이라고 불렸는데, 그 율법이 궁극적으로 지시하는 아들이야말로 신들 이상의 신적 존재라는 말씀이다.
그런데도 유대인-율법대로 살고자 하는-들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몰고 하는 것이다.
37~39절 : 나무 전문가가 아니면 어린 묘목을 잘 구별할 수가 없다. 처음에는 무슨 나무인지 잘 모르지만 나중에 열매를 보면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듯이 예수님이라는 나무는 잘 믿지 못하겠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이 하신 그 모든 선한 일을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된다는 말씀이다. 즉 예수님 안에 아버지가 계시고 아버지 안에 예수님이 계신 것을 알리라고 하신 것이다.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지만, 유대인들이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하신 일들을 선한 일이라고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은 자들이었으니 다시 예수를 잡으려고 한다.
40~42절 : 예수님은 그들을 피하여 다시 요단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으로 가신다.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기를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고 하며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고 한다.
세례 요한은 예수의 역사적 계시자이다.
그는 어떤 표적도 일으키지 않았으나 예수에 대해 참된 계시를 하였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요3:33~34)
그러나 아직 이들은 믿음이란 온전한 믿음이 아니다. (그들은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쳤다.)
결국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모든 일들을 다 이루었다는 그 한 사건, 십자가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달린 것이다. 즉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가신 후 보내신 진리의 영으로 아들을 믿는 믿음이 참된 것이다.
(나의 묵상)
참으로 많은 선한 일을 하신 예수님이시다.
그 일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알게 하시는 표적들로서,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을 만나 생수의 말씀을 주시고,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말씀하시고, 간음한 여인에 대한 용서를 말씀하시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신 것 등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결코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말하기를 ‘선한 일의 문제가 아니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니 신성모독’이라고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선한 일’은 인정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애초에 예수님의 선한 일 자체도 인정하고 싶지 않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 일들을 통해서 잘 알지 못했던 예수님을 알아갈 수 있는데 그러고 싶지 않은 것이다. 처음에 묘목의 구분이 쉽지 않아도, 후에 열매로서 그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확실히 알게 되는 것처럼 예수님 나무를 알아갈 수 있는데 그것이 하기 싫은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계속 말씀하여 주신다.
유대인들이 계속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으르렁대는데도 말이다.
죄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치려고 돌을 들고 섰는데, 이 싹이 노란 자들에게 뭣하러 계속 말씀하실까?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아라.
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면, 나를 믿지는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37~38절, 새번역)
‘만약 이러이러하면 나를 안 믿어도 좋다’까지 씩이나 말씀하시니.....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예수님은 돌을 들고 선 자들에게 그렇게 말씀해 주실 뿐만 아니라, 드디어는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합당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늘 예수님이 계속 말씀하여 주시는 것이, 오늘날 나와 복음의 동역자들이 복음과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온갖 부정적이고 심드렁한 반응 앞에서 계속하여 전하여야 하는 것이다.
한두 번의 부정적인 반응을 보고 그만두었다면, 오늘날의 나도 존재할 수 없었으리라.
처음에는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계속 해서 말씀 앞으로 나아가면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열매를 맺게 하신다. 그 선한 열매를 보게 되면 고개를 들어 탄성 속에 예수님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열매를 맺으실 주님을 바라며 점점 더 주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말씀 앞에 나아가는 치열한 삶은 접어두고, 자기 나름대로 믿을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주로 봉사와 헌신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주님을 알지 못한 봉사와 헌신은 자기주장의지와 자기의만 키우는 것이 된다. 물론 겸손한 척 위장을 잘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자기 탐심으로 가득하다.(내가 그런 자 중의 한 사람이었기에 그 영적 상태를 잘 안다.)
예수님을 알아야 자기죄를 알고 탐심을 못 박는 십자가로 나아갈 수 있는데, 오히려 봉사와 헌신으로 탐심을 은밀히 키우고 있는 지경인 것이다.
그런 중에 참 아무나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여야 한다.
무한한 자기 체념이 이루어지고, 오직 성령의 역사만을 의지하는 자만이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심을 알게 된다.
그분은 이 땅에서 나를 형통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창세전 아버지와 아들이 계셨던 그 영원한 나라에 함께 거할 수 있는 영생을 주시는 분임을 확실히 알게 되고, 그것이 진짜 기뻐지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오늘 예수님을 향해 돌을 든 자 중에 장차 예수님께 눈이 떠지고 십자가로 달려갈 자가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꼭 그렇게 믿어야 되느냐고 반발하며 세모눈을 하는 자들 중에 날마다 말씀의 자리에 앉을 자들이 있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계속 복음을 전하고 또 전하는 자가 된다.
(묵상 기도)
주님,
말씀을 통해 주님을 알아가니
주님을 향한 믿음이 든든히 세워집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그 수난을 겪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니
늘 자신에 대해서만 말하는 이 죄인이 입을 다뭅니다.
다만 생명을 주시고 풍성히 주시는 주님의 음성에만 귀 기울입니다.
아무나 예수님을 믿을 수 없는데
이 죄인을 예수님을 믿는 자로 만들어 주시고
그 예수님을 전하는 자로 살게 하시니 은혜 위의 은혜입니다.
주님의 충성된 종으로 한결같이, 끝까지 살아가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