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모멘텀
‘SK 하이닉스’의 언더독 스토리를 6명의 작가가 쓴 쪽글 모음이다.
기업 성장사에서 삼성, 현대, 대우 등의 글을 읽었으나 SK의 내용은 지식이 없어 뭔! 소리인가 집어 든 책이다. 최태원이라는 기업가가 결정적 타이밍에 베팅하고 판을 바꾸는 전략의 리더쉽 기록이다. 기업의 성적표는 주가가 말하는 것이니 하이닉스 1,200원짜리 동전주를 100만 원을 넘게 만든 스토리다. 개인적으로 최태원 씨는 아내와 이혼하고, 경박스럽게 걷는 걸음걸이가 나의 눈에 차지 않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을 성공적으로 키운 분이니 기타의 것이 상쇄될 수 있다.
2002년, 하이닉스가 ‘마이크론’에 넘어갔다면.
2012년, SK가 하이닉스를 인수하지 않았다면.
2013년, 하이닉스와 AMD의 HBM 실험이 좌초했다면.
2020년, 엔비디아의 AI 칩에 HBM2E가 탑재하지 못했다면.
마지막으로, 한국 경제에 하이닉스가 없었다면. 한국 경제의 굴곡과 AI 시대라는 기술 패권 전환기를 관통하는 SK하이닉스의 서사를 압축한 5개의 질문이라며 얘기를 시작한다.
승부수, 판을 바꾸다. “위험, 위험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임무다! 그것이 이 우주선이 존재하는 이유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 승선해 있는 것이다.” ‘캡틴 커크’가 ‘크루’들에게 <스타트렉; 내일로의 귀환> 1968. 통신사 SK는 하이닉스를 인수하면서 점령군처럼 행세하지 않았다. 하이닉스는 2011년 3분기부터 반도체 가격의 하락으로 적자였다. 하이닉스 인수 대금을 완납한 다음 날인 2012년 2월 15일 이천으로 내려간 최태원은 작업복 차림으로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한솥밥 먹는 한식구 되자!”라는 의미를 보였다.
2002년 정부의 하이닉스 매각 방침은 변함이 없었다. 하이닉스 직원, 소액주주, 학계까지 가세한 하이닉스 매각 반대 운동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 애물단지 하이닉스는 외환위기, 반도체 빅딜, IT 버불 붕괴,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까지 겹친 내우외환의 여파로 현대전자도 부도 위기에 처했다. 현대전자는 그룹에서 분리, 하이닉스 반도체가 되어 채권단 관리에 들어갔다. 채권단은 매각을 압박했고, 미국의 ‘마이크론’이 뛰어들었다. 38억 달러라는 헐값에 반도체만 가져가겠다는 인수안을 하이닉스 이사진은 전원의 반대로 거부했다. 직원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한 ‘극기 행군’을 했고, 살아남기 위해 뭉쳤다. 하이닉스가 강조하는 ‘원팀 스피릿’의 원류다. 문제가 생기면 빨리 해결을 먼저 해야지 책임을 따질 시간이 없다. 그것이 고객 퍼스트가 되는 장점이다. SK텔레콤 사업개발실장이 입찰 마감 7분 전에 입찰 장소인 ‘크리데트스위스증권’ 서울 지점에 나타났다. 텔레콤과 반도체가 무슨 시너지를 내느냐? 하이닉스가 힘들어지면 텔레콤도 같이 망한다. “제2의 삼성자동차가 될 수 있다는 비판론이 잇따르고, SK 주가는 계속 급락했다.
최태원의 GO, “내가 밀고 가겠다.” 입찰에 참여했던 STX는 인수 리스크에 대한 고심 끝에 인수를 포기했다. SK그룹 수뇌부도 3일 꼬박 고심을 거듭했다. 사업자가 새 사업을 구상함은 확실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최태원은 2008년부터 관심을 가지고 ‘아시아 비즈니스 리더 모임’에서 알고 지낸 ‘모리스 창’ TSMC 회장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는 반도체에 대해 솔직하고 깊은 조언을 해줬다. 그가 강조한 것은 고객이고, 다운턴 (불황)일수록 고객 위에 군림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2010년 최 회장은 사내 실사단을 만들어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그 사이 하이닉스 매각은 2차례 무산됐다. 최 회장이 하이닉스에서 인수하고 싶었던 것은 유형의 반도체 사업뿐 아니라 무형의 가치였다. SK텔레콤은 SK의 확고한 ‘캐시카우’였지만 1등의 안정감은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2011년 13조였던 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은 2025년 10월 말 기준 400조 원으로, 수직으로 상승해 SK그룹 전체의 75%에 육박한다.
“천수답을 벗어나라.” 2011년 글로벌 D램 시장의 치킨 게임은 절정에 달했다. 금융위기 후 반도체 경기가 회복되면서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50% 넘게 폭락했다, 공격적 증설에 나섰던 일본의 ‘앨피다’는 이듬해 파산했다. 모두가 몸을 사리던 공포의 시기, 최 회장은 이때야말로 하이닉스가 선제적 투자에 나설 때라고 봤다. 다운턴에 투자를 하면 업턴이 왔을 때도 압도적으로 이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전략은 신주 인수였다. 신주 인수 자금이 하이닉스로 들어가야 하이닉스가 살 수 있다. 신주 인수 조건으로 내걸었다. 채권단은 SK가 신주를 인수하는 방식이 되면 지분이 희석되고 즉각 회수하는 자금이 줄어든다고 반대했다.
박 부회장은 임원들에게 오전 7시에 출근하라고 했다. 임원들에게 더 많은 책임감과 역할을 요구하는 의미다. 매주 토요일 오전에는 회의하지 말고 각자 이메일을 정리하면서 이번 주에 있었던 일, 다음 주에 해야 할 일을 점검할 것을 지시했다. 새로운 반도체 제품을 개발할 때 연구--> 개발---> 제조의 과정을 거치는데, 연구소에서 구현한 기술을 개발로 넘기면 개발은 대량 생산이 가능한 수준으로 완성도를 높여 제조에 넘긴다. 개발에서 제조로 넘어가는 수율이 높기 때문에 제조에서 최종 수율을 만드는 기간이 절반 이상 줄었다. 같은 엔지니어라고 해도 연구, 개발, 제조 영역은 달랐고 서로를 잘 몰랐다. 박 부회장은 사람을 뒤섞기 시작했다. 제조에서 연구로 보냈고, 개발에 있던 사람을 팹으로 보냈다. 윗사람, 타 부서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의견을 편하게 얘기하는 ‘왁자지껄’ 문화도 박 전 부회장부터 자리 잡았다.
다시 그린 반도체 지도. “게임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하이닉스 인수가 마무리된 지 두 달 만에, ‘투자 검토 보고서 회의’에 ”일본 반도체 기업 ‘엘피다’가 매물로 나왔습니다. “최 회장은 무릎을 쳤다. “이거 합시다.” 임원들은 대번에 안 됩니다. 반대했다. 왜 해보지도 않고 반대하는가? 기술이 다릅니다. 기술이 다른 것과 회사를 사는 것 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가? 마이크론도 회사를 인수하면서 컸잖아요? 인수할 돈이 있으면 우리 하이닉스에 쓰세요. 우리가 안 먹으면 다른 애들이 먹어요? 우리가 먹으면 배탈이 납니다. 결국 포기했다. 엘피다를 인수한 마이크론은 D램에서 살아났다. 게임 양상이 거기서 달라졌다. 이후 D램 시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3강 구도로 재편됐다. 마이크론은 하이닉스를 위협하는 최대 추격자로 컸다. 2012년 엘피다 건을 논의할 때와 비슷하다. 반대 논리도 그때와 같았다. “인수할 돈이 있으면 그 돈으로 하이닉스에 투자하시면 됩니다.“ ”게임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판을 따는 게 중요합니다. 원하는 판을 짜면 꼴찌는 안 해요. “최 회장은 이번에는 물러나지 않았다.
SK 그룹이 인수하기 직전 2011년 하이닉스의 시가총액 13조, 2025년 10월 31일 시가총액은 407조다. 14년 만에 기업 가치가 31배 불어났다. 주가도 55만 9천 원으로 상승해 한국 증시 4,000포인트라는 사상 첫 기록을 안겼다. SK 전체 시총은 518조 원으로 하이닉스 시총이 79%를 차지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던 메모리 시장 1등 자리에 올랐다. 하이닉스는 이제 제왕 엔비디아, 종합 반도체 공룡 삼성전자와 인텔에 이른 글로벌 톱4(매출액 기준) 반도체 기업이다. 오직 메모리만으로 이룬 성과다. 하이닉스를 인수하고 SK가 시총 100조 원을 넘어서는 데 약 10년(2021년 2월) 이 걸렸다. 그 후 3년 만에 150조, 다시 1년 만에 200조를 돌파하더니, 4개월 만에 300조와 400조를 연이어 뚫었다. 이는 엔비디아의 속도와 비견되는 속도다.
HBM이란 무엇인가? High Bandwidth Memory는 GPU 바로 옆에 적층해 붙이는 초고대역폭 D램이다. HBM이 ‘AI 혁명의 조용한 촉매제, AI의 이네이블러 Enabler’가 될 수 있었던 킬러 설류션은 이름 그대로 고대역폭이다. 첵GPT에서만 매일 약 25억 건 이상의 프롬프트가 처리되고 주간 활성 사용자 수만 8억 명이 넘는다. AI가속기의 GPU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데이터가 제때, 빠르게 도착해야 GPU가 일을 한다. HBM이 방대한 데이터를 GPU와 초고속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이유는 HBM과 GPU의 데이터 연결 통로가 극단적으로 ‘넓고 짧기’ 때문이다. 넓은 것은 광폭 입출력 설계를 말한다. 짧은 것은 수직관통전극 기술과 인터포저 덕분이다. HBM에는 데이터 전송 통로가 1,024개가 있다. 일반적인 D램은 8~32개다. 즉 HBM은 기존 8~32차선 도로를 1,024차선으로 늘린 것과 같다. 같은 시간에 한 줄로 버스를 탈 수 있는 사람은 많아야 수십 명이지만 10량짜리 전철 문이 열리면 승강장에 있던 수백 명이 한 번에 올라탈 수 있다.
HBM은 ‘언더독 동맹‘의 산물이다. CPU로는 거인 인텔에 치이고, GPU로는 엔비디아에 밀리던 AMD는 항상 승리가 배가 고팠다. 만년 2등 하이닉스는 늘 생존을 위해 분투하면서도 삼성전자 넘어서기를 열망했다. 두 2등의 의기투합은 2008년 말 시작됐다. 하이닉스가 그래픽 TSV 제품을 개발하면 이를 AMD가 쓸 테니 같이 시장을 개발해 보자는 것이다. AMD는 캐나다의 기업 ATI를 인수해 시장에 진출했다. 하이닉스는 ATI에 이어 AMD의 GPU에 탑재할 그래픽용 D램을 공급하면서 AMD와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두 회사를 단단히 묶은 끈은 ’한번 이겨보자’라는 강렬한 마음이었다. 충북 청주의 SK하이닉스 ‘M15 팹’은 HBM이 생산되는 핵심 거점이다. 축구장 8개 크기 면적에, 높이는 아파트 26층에 달한다, 이곳은 2018년 낸드플래시 생산을 위해 지어졌다. 그러나 2023년 HBM 수요가 폭증하면서 복층 구조의 2층 부분을 HBM 생산을 위한 TSV 및 패키징 라인으로 급히 전환했다. 바로 옆에 증설되는 ‘M15X’까지 완공되면 HBM의 D램 생산부터 TSV, 적층, 첨단 패키징까지 전체 공정을 HBM에 최적화해 설계한 최첨단 HBM 생산 허브가 된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2026.04.11.
슈퍼 포멘텀
이인숙 외 5명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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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려주신 글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