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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8일(토)
* 시작 기도
(창 41:57)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주님...
주는 과연 하나님이십니다.
창세전 언약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 요셉을 입애굽의 주인공으로 사용하셨습니다.
또한 그의 온 가족이 애굽에 들어와야 하므로 그들의 눈이 애굽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온 세상에 기근이 임하게 하시고 야곱으로 하여금 양식이 있는 애굽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는 아들들에게 양식이 있는 애굽에 가서 양식을 사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양식을 사러 애굽으로 갔고 또한 총리가 되어 있는 요셉에게 절을 함으로 언약적 꿈인 요셉의 꿈이 실현되었습니다.
한 인간의 인생도 주님께서 주장하시고 역사하시는데 하나님의 민족인 이스라엘을 넘어 영적 이스라엘을 주관하시는 것은 두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으로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기 원합니다.
눈에 보이는 높은 고층빌딩도 기초인 벽돌 한 장부터 시작됩니다.
나의 믿음과 신앙의 기초 역시 무너지지 않도록 든든히 세워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요 11:1-16
제목 :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 나의 묵상
수전절에 예수님께서 성전 뜰 안 솔로몬 행각을 거닐다가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대적으로 인하여 그들을 피해서 나가신다.
그 때 예수님과 제자들은 요한이 처음 세례를 베풀던 곳에 가서 머무셨다.
요한이 처음 세례를 베풀던 곳은 다름 아닌 요단 강 동편에 있는 베다니이다.
(요 1:28)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그런데 오늘 11장의 나사로가 살던 동네 이름도 동일한 베다니이다.
이는 같은 이름이지만 장소는 전혀 다른 곳이다.
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으로 오기 전 10장의 사건은 수전절에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11장과 12장의 내용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 마지막 3,4개월 정도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10장과 11장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 차이가 있다.
수전절에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피해서 가셨던 베다니는 요단강 동편에 위치한 곳이며 거기서 요한이 처음 세례를 베풀었다.
그러나 나사로가 살던 동네 베다니는 요단강을 중심으로 서편에 있으며 이는 예루살렘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
한편 나사로가 중병에 걸렸다.
그의 두 누이동생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라버니의 중병을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께 알렸다.
그 소식을 들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곧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말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사로와 그의 두 여동생을 사랑하심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나사로가 있는 베다니에 가시는 것이 아니라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머무셨다.
그리고 이틀 후에 제자들에게 유대로 가자고 하신다.
그 때 제자들이 의아해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조금 전에도 유대인들이 돌로 우리를 치려했는데 또 그리로 가려고 하십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면서 사람이 낮에 다니면 그 빛으로 인하여 걸려 넘어지지 않지만, 밤에 다니면 빛이 없기 때문에 걸려 넘어진다고 하신 후에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으니 내가 그를 깨우러 간다고 하셨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가 잠들었으면 낫겠네요, 라고 하였으나 예수님은 그가 죽었다고 말씀하신 것을 제자들은 잠이 들어서 쉬고 있는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를 밝히 말씀하여 나사로가 죽었다고 하셨다.
그러나 내가 거기에 있지 않은 것이 오히려 잘 된 일인 것은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제 그에게로 가자고 하셨다.
그 때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죽으러 가자고 하였다.
나사로의 집은 나사로의 중병으로 인하여 무거운 기운이 감돈다.
그의 두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그의 중병 소식을 알린다.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여기서 단순히 나사로가 병들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다고 말한다.
이는 그 두 누이의 마음이 다급하다는 것과 함께 예수님이 빨리 와주실 것을 당부하는 마음이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걸린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과 아들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병임을 시사하신다.
이를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마음이 다급한 마르다나 마리아와 상관없이 이틀을 그 계신 곳에 더 머무르시면서 나사로가 육신적으로 죽기를 기다리신다.
나사로가 죽은 것을 아신 예수님은 이제 그가 죽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에게로 가자고 하신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현재, 사람으로서 인간의 시간 안에서 일하신다.
그러나 인간의 시간인 크로노스에 매여계시지 않으며 카이로스의 시간 안에서 일하신다.
이는 나사로의 죽음은 크로노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그것을 거스르는 모든 사건은 카이로스 안에서 행하시는 것임을 증거하시는 것이다.
무엇보다 나사로의 죽음과 그가 다시 살아나는 사건은 단순히 나사로를 죽음에서 일으키는 기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과 아들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예표적인 사건으로 먼저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님의 깊은 뜻을 모르는 나사로의 두 누이와 사람들은 조급한 자기들의 마음을 몰라주는 예수님이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의 그런 마음에 아랑곳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일하시는데 그 뜻은 곧 저들이 얻을 영생이다.
그래서 나사로의 죽음이 오히려 제자들을 위하여 기쁜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제자들 역시 아직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오늘 본문 16절을 보면 정확히 알 수 있다.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한다.
이는 지금 나사로도 죽었고, 유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틀림없이 유대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예수님도 죽을 것이 뻔하다.
따라서 이제 자기들도 괜히 죽음이라는 그 두려움 앞에서 갈등하지 말고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죽자고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희생정신 그리고 죽음까지도 불사하겠다는 용기는 참으로 가상하다.
그러나 이는 아들이 계시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는 멀어도 한참 멀다.
아들이신 예수님이 계시하시는 아버지의 뜻은 당신의 메시야적 구속사건을 통하여 이를 믿는 자들이 영생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사로의 두 여동생과 거기에 모인 사람들 뿐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이런 주님의 뜻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저 인간적인 의협심을 불태우자고 의기투합하여, 지금 우리도 함께 죽으러 가자(Let’s go)고 한 것이다.
나는 아들이 계시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도 알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뜻도 모르고 무엇보다도 아버지와 아들을 위하여 나타내는 영광을 오해했던 자였다.
아버지와 아들을 위하여 나타내는 영광은 예수를 믿음으로 내가 이 땅에서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든지 인간적 육신적으로 잘 되기 위하여 애를 썼다.
그래서 고전 10:31절 말씀인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말씀을 크게 오해하여 매사에 내가 잘 되어야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이 하나님과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임을 말씀하신다.
그러시면서 이것은 단순히 그의 죽음과 다시 살아나는 육신적 기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장사됨 그리고 부활을 예표적으로 보여주시는 사건을 통하여 진정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심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계시는 것이다.
오늘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 원한다.
그러나 그 영광이 내가 잘 되었을 때 나타나는 영광이 아니다.
내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영생을 누리며 주님과 함께 기뻐하는 그 삶을 의미한다.
이것이야 말로 참된 영생이요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이 내 안에 있음으로 그 생명으로 주님과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토록 함께 동행하는 그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늘도 그런 삶이 내 안에서 드러나기를 소망하며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영생의 삶을 사는 자로 거하기 원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는 말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여 오해하던 자가 여기 있나이다.
그저 예수 믿고 내가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인 줄 알았던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땅에서는 육신적으로 잘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으나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내 안에 있는 아들의 생명으로 인하여 하늘의 기쁨을 잃지 않는 것, 그 기쁨이 나를 일으켜 항상 주님과 늘 교제와 사귐으로 연합하는 것이 진정한 영생이며 그 삶이 아버지와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임을 믿나이다.
우매하여 알지 못하였으나 주께서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어 그 사랑을 복음으로 주셨고 그 복음을 통하여 당신의 생명을 얻어 오늘도 그 생명으로 살게 하시오니 그저 감사 감격하나이다.
나를 생명으로 살리신 주님께 영광을 드리나이다.
나의 영광을 받으소서.
나 비록 광야의 한 가운데 있을지라도 처지를 비관하거나 우울해하지 않고 도리어 주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가장 가까이서 경험하며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오니 이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밤새 기온이 뚝 떨어져서 이불을 덮어도 많이 추웠습니다.
이곳이 그러할진대 대설이 내린 한국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나의 심령과 모든 삶 가운데도 오직 주님의 보혈로 덮여 흰 눈보다 더 희게 하사 주님과 더 가까이 할 수 있도록 나를 붙드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5년 2월 8일(토)
* 시작 기도
(창 41:57)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주님...
주는 과연 하나님이십니다.
창세전 언약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 요셉을 입애굽의 주인공으로 사용하셨습니다.
또한 그의 온 가족이 애굽에 들어와야 하므로 그들의 눈이 애굽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온 세상에 기근이 임하게 하시고 야곱으로 하여금 양식이 있는 애굽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는 아들들에게 양식이 있는 애굽에 가서 양식을 사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양식을 사러 애굽으로 갔고 또한 총리가 되어 있는 요셉에게 절을 함으로 언약적 꿈인 요셉의 꿈이 실현되었습니다.
한 인간의 인생도 주님께서 주장하시고 역사하시는데 하나님의 민족인 이스라엘을 넘어 영적 이스라엘을 주관하시는 것은 두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으로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기 원합니다.
눈에 보이는 높은 고층빌딩도 기초인 벽돌 한 장부터 시작됩니다.
나의 믿음과 신앙의 기초 역시 무너지지 않도록 든든히 세워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요 11:1-16
제목 :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 나의 묵상
수전절에 예수님께서 성전 뜰 안 솔로몬 행각을 거닐다가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대적으로 인하여 그들을 피해서 나가신다.
그 때 예수님과 제자들은 요한이 처음 세례를 베풀던 곳에 가서 머무셨다.
요한이 처음 세례를 베풀던 곳은 다름 아닌 요단 강 동편에 있는 베다니이다.
(요 1:28)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그런데 오늘 11장의 나사로가 살던 동네 이름도 동일한 베다니이다.
이는 같은 이름이지만 장소는 전혀 다른 곳이다.
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으로 오기 전 10장의 사건은 수전절에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11장과 12장의 내용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 마지막 3,4개월 정도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10장과 11장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 차이가 있다.
수전절에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피해서 가셨던 베다니는 요단강 동편에 위치한 곳이며 거기서 요한이 처음 세례를 베풀었다.
그러나 나사로가 살던 동네 베다니는 요단강을 중심으로 서편에 있으며 이는 예루살렘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
한편 나사로가 중병에 걸렸다.
그의 두 누이동생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라버니의 중병을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께 알렸다.
그 소식을 들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곧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말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사로와 그의 두 여동생을 사랑하심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나사로가 있는 베다니에 가시는 것이 아니라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머무셨다.
그리고 이틀 후에 제자들에게 유대로 가자고 하신다.
그 때 제자들이 의아해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조금 전에도 유대인들이 돌로 우리를 치려했는데 또 그리로 가려고 하십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면서 사람이 낮에 다니면 그 빛으로 인하여 걸려 넘어지지 않지만, 밤에 다니면 빛이 없기 때문에 걸려 넘어진다고 하신 후에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으니 내가 그를 깨우러 간다고 하셨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가 잠들었으면 낫겠네요, 라고 하였으나 예수님은 그가 죽었다고 말씀하신 것을 제자들은 잠이 들어서 쉬고 있는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를 밝히 말씀하여 나사로가 죽었다고 하셨다.
그러나 내가 거기에 있지 않은 것이 오히려 잘 된 일인 것은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제 그에게로 가자고 하셨다.
그 때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죽으러 가자고 하였다.
나사로의 집은 나사로의 중병으로 인하여 무거운 기운이 감돈다.
그의 두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그의 중병 소식을 알린다.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여기서 단순히 나사로가 병들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다고 말한다.
이는 그 두 누이의 마음이 다급하다는 것과 함께 예수님이 빨리 와주실 것을 당부하는 마음이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걸린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과 아들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병임을 시사하신다.
이를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마음이 다급한 마르다나 마리아와 상관없이 이틀을 그 계신 곳에 더 머무르시면서 나사로가 육신적으로 죽기를 기다리신다.
나사로가 죽은 것을 아신 예수님은 이제 그가 죽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에게로 가자고 하신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현재, 사람으로서 인간의 시간 안에서 일하신다.
그러나 인간의 시간인 크로노스에 매여계시지 않으며 카이로스의 시간 안에서 일하신다.
이는 나사로의 죽음은 크로노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그것을 거스르는 모든 사건은 카이로스 안에서 행하시는 것임을 증거하시는 것이다.
무엇보다 나사로의 죽음과 그가 다시 살아나는 사건은 단순히 나사로를 죽음에서 일으키는 기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과 아들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예표적인 사건으로 먼저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님의 깊은 뜻을 모르는 나사로의 두 누이와 사람들은 조급한 자기들의 마음을 몰라주는 예수님이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의 그런 마음에 아랑곳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일하시는데 그 뜻은 곧 저들이 얻을 영생이다.
그래서 나사로의 죽음이 오히려 제자들을 위하여 기쁜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제자들 역시 아직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오늘 본문 16절을 보면 정확히 알 수 있다.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한다.
이는 지금 나사로도 죽었고, 유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틀림없이 유대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예수님도 죽을 것이 뻔하다.
따라서 이제 자기들도 괜히 죽음이라는 그 두려움 앞에서 갈등하지 말고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죽자고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희생정신 그리고 죽음까지도 불사하겠다는 용기는 참으로 가상하다.
그러나 이는 아들이 계시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는 멀어도 한참 멀다.
아들이신 예수님이 계시하시는 아버지의 뜻은 당신의 메시야적 구속사건을 통하여 이를 믿는 자들이 영생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사로의 두 여동생과 거기에 모인 사람들 뿐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이런 주님의 뜻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저 인간적인 의협심을 불태우자고 의기투합하여, 지금 우리도 함께 죽으러 가자(Let’s go)고 한 것이다.
나는 아들이 계시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도 알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뜻도 모르고 무엇보다도 아버지와 아들을 위하여 나타내는 영광을 오해했던 자였다.
아버지와 아들을 위하여 나타내는 영광은 예수를 믿음으로 내가 이 땅에서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든지 인간적 육신적으로 잘 되기 위하여 애를 썼다.
그래서 고전 10:31절 말씀인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말씀을 크게 오해하여 매사에 내가 잘 되어야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이 하나님과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임을 말씀하신다.
그러시면서 이것은 단순히 그의 죽음과 다시 살아나는 육신적 기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장사됨 그리고 부활을 예표적으로 보여주시는 사건을 통하여 진정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심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계시는 것이다.
오늘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 원한다.
그러나 그 영광이 내가 잘 되었을 때 나타나는 영광이 아니다.
내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영생을 누리며 주님과 함께 기뻐하는 그 삶을 의미한다.
이것이야 말로 참된 영생이요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이 내 안에 있음으로 그 생명으로 주님과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토록 함께 동행하는 그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늘도 그런 삶이 내 안에서 드러나기를 소망하며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영생의 삶을 사는 자로 거하기 원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는 말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여 오해하던 자가 여기 있나이다.
그저 예수 믿고 내가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인 줄 알았던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땅에서는 육신적으로 잘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으나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내 안에 있는 아들의 생명으로 인하여 하늘의 기쁨을 잃지 않는 것, 그 기쁨이 나를 일으켜 항상 주님과 늘 교제와 사귐으로 연합하는 것이 진정한 영생이며 그 삶이 아버지와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임을 믿나이다.
우매하여 알지 못하였으나 주께서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어 그 사랑을 복음으로 주셨고 그 복음을 통하여 당신의 생명을 얻어 오늘도 그 생명으로 살게 하시오니 그저 감사 감격하나이다.
나를 생명으로 살리신 주님께 영광을 드리나이다.
나의 영광을 받으소서.
나 비록 광야의 한 가운데 있을지라도 처지를 비관하거나 우울해하지 않고 도리어 주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가장 가까이서 경험하며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오니 이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밤새 기온이 뚝 떨어져서 이불을 덮어도 많이 추웠습니다.
이곳이 그러할진대 대설이 내린 한국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나의 심령과 모든 삶 가운데도 오직 주님의 보혈로 덮여 흰 눈보다 더 희게 하사 주님과 더 가까이 할 수 있도록 나를 붙드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5년 2월 8일(토)
* 시작 기도
(창 41:57)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주님...
주는 과연 하나님이십니다.
창세전 언약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 요셉을 입애굽의 주인공으로 사용하셨습니다.
또한 그의 온 가족이 애굽에 들어와야 하므로 그들의 눈이 애굽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온 세상에 기근이 임하게 하시고 야곱으로 하여금 양식이 있는 애굽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는 아들들에게 양식이 있는 애굽에 가서 양식을 사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양식을 사러 애굽으로 갔고 또한 총리가 되어 있는 요셉에게 절을 함으로 언약적 꿈인 요셉의 꿈이 실현되었습니다.
한 인간의 인생도 주님께서 주장하시고 역사하시는데 하나님의 민족인 이스라엘을 넘어 영적 이스라엘을 주관하시는 것은 두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으로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기 원합니다.
눈에 보이는 높은 고층빌딩도 기초인 벽돌 한 장부터 시작됩니다.
나의 믿음과 신앙의 기초 역시 무너지지 않도록 든든히 세워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요 11:1-16
제목 :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 나의 묵상
수전절에 예수님께서 성전 뜰 안 솔로몬 행각을 거닐다가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대적으로 인하여 그들을 피해서 나가신다.
그 때 예수님과 제자들은 요한이 처음 세례를 베풀던 곳에 가서 머무셨다.
요한이 처음 세례를 베풀던 곳은 다름 아닌 요단 강 동편에 있는 베다니이다.
(요 1:28)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그런데 오늘 11장의 나사로가 살던 동네 이름도 동일한 베다니이다.
이는 같은 이름이지만 장소는 전혀 다른 곳이다.
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으로 오기 전 10장의 사건은 수전절에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11장과 12장의 내용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 마지막 3,4개월 정도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10장과 11장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 차이가 있다.
수전절에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피해서 가셨던 베다니는 요단강 동편에 위치한 곳이며 거기서 요한이 처음 세례를 베풀었다.
그러나 나사로가 살던 동네 베다니는 요단강을 중심으로 서편에 있으며 이는 예루살렘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
한편 나사로가 중병에 걸렸다.
그의 두 누이동생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라버니의 중병을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께 알렸다.
그 소식을 들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곧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말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사로와 그의 두 여동생을 사랑하심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나사로가 있는 베다니에 가시는 것이 아니라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머무셨다.
그리고 이틀 후에 제자들에게 유대로 가자고 하신다.
그 때 제자들이 의아해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조금 전에도 유대인들이 돌로 우리를 치려했는데 또 그리로 가려고 하십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면서 사람이 낮에 다니면 그 빛으로 인하여 걸려 넘어지지 않지만, 밤에 다니면 빛이 없기 때문에 걸려 넘어진다고 하신 후에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으니 내가 그를 깨우러 간다고 하셨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가 잠들었으면 낫겠네요, 라고 하였으나 예수님은 그가 죽었다고 말씀하신 것을 제자들은 잠이 들어서 쉬고 있는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를 밝히 말씀하여 나사로가 죽었다고 하셨다.
그러나 내가 거기에 있지 않은 것이 오히려 잘 된 일인 것은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제 그에게로 가자고 하셨다.
그 때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죽으러 가자고 하였다.
나사로의 집은 나사로의 중병으로 인하여 무거운 기운이 감돈다.
그의 두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그의 중병 소식을 알린다.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여기서 단순히 나사로가 병들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다고 말한다.
이는 그 두 누이의 마음이 다급하다는 것과 함께 예수님이 빨리 와주실 것을 당부하는 마음이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걸린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과 아들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병임을 시사하신다.
이를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마음이 다급한 마르다나 마리아와 상관없이 이틀을 그 계신 곳에 더 머무르시면서 나사로가 육신적으로 죽기를 기다리신다.
나사로가 죽은 것을 아신 예수님은 이제 그가 죽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에게로 가자고 하신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현재, 사람으로서 인간의 시간 안에서 일하신다.
그러나 인간의 시간인 크로노스에 매여계시지 않으며 카이로스의 시간 안에서 일하신다.
이는 나사로의 죽음은 크로노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그것을 거스르는 모든 사건은 카이로스 안에서 행하시는 것임을 증거하시는 것이다.
무엇보다 나사로의 죽음과 그가 다시 살아나는 사건은 단순히 나사로를 죽음에서 일으키는 기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과 아들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예표적인 사건으로 먼저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님의 깊은 뜻을 모르는 나사로의 두 누이와 사람들은 조급한 자기들의 마음을 몰라주는 예수님이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의 그런 마음에 아랑곳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일하시는데 그 뜻은 곧 저들이 얻을 영생이다.
그래서 나사로의 죽음이 오히려 제자들을 위하여 기쁜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제자들 역시 아직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오늘 본문 16절을 보면 정확히 알 수 있다.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한다.
이는 지금 나사로도 죽었고, 유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틀림없이 유대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예수님도 죽을 것이 뻔하다.
따라서 이제 자기들도 괜히 죽음이라는 그 두려움 앞에서 갈등하지 말고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죽자고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희생정신 그리고 죽음까지도 불사하겠다는 용기는 참으로 가상하다.
그러나 이는 아들이 계시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는 멀어도 한참 멀다.
아들이신 예수님이 계시하시는 아버지의 뜻은 당신의 메시야적 구속사건을 통하여 이를 믿는 자들이 영생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사로의 두 여동생과 거기에 모인 사람들 뿐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이런 주님의 뜻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저 인간적인 의협심을 불태우자고 의기투합하여, 지금 우리도 함께 죽으러 가자(Let’s go)고 한 것이다.
나는 아들이 계시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도 알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뜻도 모르고 무엇보다도 아버지와 아들을 위하여 나타내는 영광을 오해했던 자였다.
아버지와 아들을 위하여 나타내는 영광은 예수를 믿음으로 내가 이 땅에서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든지 인간적 육신적으로 잘 되기 위하여 애를 썼다.
그래서 고전 10:31절 말씀인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말씀을 크게 오해하여 매사에 내가 잘 되어야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이 하나님과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임을 말씀하신다.
그러시면서 이것은 단순히 그의 죽음과 다시 살아나는 육신적 기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장사됨 그리고 부활을 예표적으로 보여주시는 사건을 통하여 진정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심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계시는 것이다.
오늘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 원한다.
그러나 그 영광이 내가 잘 되었을 때 나타나는 영광이 아니다.
내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영생을 누리며 주님과 함께 기뻐하는 그 삶을 의미한다.
이것이야 말로 참된 영생이요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이 내 안에 있음으로 그 생명으로 주님과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토록 함께 동행하는 그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늘도 그런 삶이 내 안에서 드러나기를 소망하며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영생의 삶을 사는 자로 거하기 원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는 말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여 오해하던 자가 여기 있나이다.
그저 예수 믿고 내가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인 줄 알았던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땅에서는 육신적으로 잘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으나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내 안에 있는 아들의 생명으로 인하여 하늘의 기쁨을 잃지 않는 것, 그 기쁨이 나를 일으켜 항상 주님과 늘 교제와 사귐으로 연합하는 것이 진정한 영생이며 그 삶이 아버지와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임을 믿나이다.
우매하여 알지 못하였으나 주께서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어 그 사랑을 복음으로 주셨고 그 복음을 통하여 당신의 생명을 얻어 오늘도 그 생명으로 살게 하시오니 그저 감사 감격하나이다.
나를 생명으로 살리신 주님께 영광을 드리나이다.
나의 영광을 받으소서.
나 비록 광야의 한 가운데 있을지라도 처지를 비관하거나 우울해하지 않고 도리어 주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가장 가까이서 경험하며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오니 이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밤새 기온이 뚝 떨어져서 이불을 덮어도 많이 추웠습니다.
이곳이 그러할진대 대설이 내린 한국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나의 심령과 모든 삶 가운데도 오직 주님의 보혈로 덮여 흰 눈보다 더 희게 하사 주님과 더 가까이 할 수 있도록 나를 붙드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