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대홍수, 국토 3분의 1 잠겨… “구조헬기 내릴 땅도 없다”
6월부터 3개월 가까이 폭우 지속, 사망자 1100여명-이재민 570만명
“피해액 100억달러… 재건에 5년”… IMF, 파키스탄 구제금융 승인
이상고온-빨라진 우기가 원인 꼽혀… 열악한 기반시설-벌목도 피해 키워
폭우에 둥둥 뜬 마을… 역대 최대 피해 우려 29일 파키스탄 남서부 발루치스탄주 자파라바드의 주택가가 폭우로 완전히 잠겨 있다. 경제 악화로 배수 시설이 낙후된 파키스탄은 최악의 홍수로 인명, 재산 피해가 커지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는 이날 “국토의 3분의 1이 완전히 물에 잠겼다”며 현재까지 사망자가 최소 1100여 명, 이재민은 570만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자파라바드=AP 뉴시스
“하늘에서 지옥문이 열렸어요. 성서에서나 볼 법한 홍수입니다.”
유례없는 홍수가 덮친 파키스탄의 신드주(州) 관계자는 29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피해 상황을 전하며 “대비책이 없다”고 했다. 파키스탄에서는 6월부터 3개월 가까이 폭우가 지속되고 있다. 사망자는 1100명을 넘어섰으며 누적 이재민은 570만 명에 달한다. 파키스탄에 있는 세계 최대 사력댐(모래와 자갈로 쌓은 댐)의 수용량도 한계치에 임박했다. 댐이 붕괴할 경우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아산 익발 파키스탄 개발계획장관은 29일 로이터에 “피해액이 100억 달러(약 13조5000억 원)를 훨씬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재건에 최소 5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심각한 경제난으로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 처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처지인 파키스탄이 국가적 재앙에 처한 것이다. 이상기후가 이번 폭우의 원인으로 꼽히는 가운데 파키스탄의 열악한 기반시설과 무분별한 벌목 등이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 “국토 전체가 거대한 바다처럼 변했다”
셰리 레만 파키스탄 기후장관은 이날 BBC에 “파키스탄 국토의 3분의 1이 완전히 물에 잠겼다”며 “국토가 마치 거대한 바다처럼 변했다. 물을 퍼낼 수 있는 마른 땅조차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이번 홍수로 파키스탄 4개 주 전역이 피해를 입었다. 피해가 큰 신드주에는 이달에만 평년 대비 약 8배에 달하는 ‘물 폭탄’이 떨어졌다. 발루치스탄주 남부는 통상 우기 강우량의 5배 넘는 비가 쏟아졌다.
파키스탄 당국에 따르면 현재까지 집계된 사망자 1136명 가운데 최소 3분의 1이 어린이인 것으로 추정된다. 파키스탄 인구의 15%인 3300만 명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파키스탄 군 관계자는 AFP통신에 “대부분의 땅이 물에 잠겨 구조 헬기가 착륙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했다. 최근 비가 거세지면서 이번 홍수로 인한 피해가 2000명 넘게 사망했던 2010년 홍수 때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재산 피해도 막대하다. 전국적으로 가옥 약 100만 채가 부서졌고 다리 170여 개가 유실됐다. 가축 피해도 72만7144마리에 달한다. 파키스탄은 ‘앙숙 관계’인 인도에서 식량을 수입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양국은 카슈미르 영유권을 두고 수차례 전쟁까지 치르는 등 적대 관계를 이어왔다.
○ 경제난에 이상고온, 대홍수까지
이번 대홍수와 별도로 IMF는 경제난에 빠진 파키스탄에 11억7000만 달러(약 1조5765억 원)의 구제금융을 하기로 29일 승인했다. 경제난에 이상고온으로 신음한 데 이어 기록적인 ‘물 폭탄’까지 덮친 것이다.
이번 홍수의 원인은 평년보다 크게 높은 기온인 것으로 보인다. 파키스탄의 5월 최고기온은 평균 36도 수준이지만 올해엔 일부 지역에서 50도를 넘는 이상고온 현상이 관측됐다. 통상 기온이 1도 높아지면 대기 중의 수증기 양도 7%씩 늘어 비가 더 많이 내린다. 게다가 6월에 찾아오던 우기가 올해엔 5월부터 시작되며 더 많은 비를 뿌렸다.
이상고온으로 파키스탄 동북부 히말라야산맥의 빙하도 녹아내렸다.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50km 떨어진 세계 최대의 사력댐인 타르벨라댐은 연일 최고 수위를 기록하고 있다. 댐이 넘칠 경우 펀자브 등 하류 지역에 큰 피해가 예상된다.
카이로=강성휘 특파원, 홍정수 기자
홍수에 잠긴 파키스탄
“구조 활동을 위해 내륙에 처음으로 해군을 출동시켰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땅이 작은 바다처럼 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셰리 레만 파키스탄 기후변화부 장관이 외신 인터뷰에서 홍수의 심각성을 표현한 말이다. 파키스탄 국토의 3분의 1가량이 물에 잠겼고, 3300만 명이 수해를 입었다. 이에 주민들 사이에서는 “하늘에서 지옥문이 열렸다”는 절규마저 나오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올봄 최고 50도가 넘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더위가 끝나자 ‘괴물 몬순(장마)’이 찾아왔다. 강한 빗줄기가 이어졌고 피해가 집중된 신드주에서는 8월에 평년보다 8배 많은 비가 쏟아졌다. 전국적으로 1100명이 넘는 주민이 목숨을 잃었고 100만 채의 집이 부서졌다. 경제적 피해는 100억 달러로 추산된다. 파키스탄 국내총생산(GDP)의 4%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이미 물가 급등과 식량난으로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2억3000만 파키스탄 주민들의 주름이 더욱 깊어지게 됐다.
▷파키스탄은 1인당 GDP가 1500달러 정도에 불과한 빈국이어서 자연재해에 대한 대비가 충분하지 못하다. 부실하게 지어진 일부 댐과 제방들은 이번 홍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져버렸다. 파키스탄의 산들은 대부분 가파르고 나무도 적어서 빗물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한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홍수 피해가 커졌다고 영국 가디언은 진단했다. 파키스탄 적신월사(적십자사)는 “아직 최악의 상황이 아니다”라며 앞으로 수인성 질병이 창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파키스탄은 2010년에도 큰 홍수로 2000만 명의 수재민이 발생했다. 일부 학자들은 2010년과 올해 모두 라니냐(태평양 해수온 이상 현상)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라니냐와 홍수의 연관성에 주목한다. 하지만 지구온난화가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기온이 높아질수록 수증기가 많이 발생해 폭우가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지구의 기온이 1도 올라가면 남아시아 지역에서 우기에 내리는 비의 양이 5%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1959년 이후 전 세계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 가운데 파키스탄이 차지하는 몫은 0.4%에 불과하다. 미국(21.5%)이나 중국(16.4%) 등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독일 기후연구기관 저먼워치가 평가한 기후위험지수에서도 푸에르토리코, 미얀마, 아이티 등 가난한 국가들이 1∼3위를 차지했다. ‘선진국들이 내뿜은 온실가스에 정작 심각한 피해를 입는 것은 빈국들’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공업화의 혜택을 누려온 선진국들이 기후변화에 따른 개발도상국들의 고통을 마냥 외면해서는 안 된다.
장택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