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이 새벽 더 일찍 깨우시고,
‘성도의 기도’라는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성도의 기도란, 주님께서 제게 주신 말씀을 전하고 나눔으로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에 동참하는 것임을 듣습니다.
이 기도를 쉬지 않게 하옵소서.
주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게 하옵소서.
또한 시간 시간마다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 말씀이신 예수님에 대한 풍성한 나눔이 있게 하옵소서.
그래서 성도의 기도를 진정으로 실천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상황에 대한 이기적인 생각과 해석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의 뜻을 생각합니다.
주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준비된 마음에 말씀이 잘 담기게 하시어
오늘도 성령께서 추게 하시는 기쁨의 춤을 추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본문 주해)
17~19절 :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2㎞ 정도의 거리였으므로 많은 유대인들이 조문하러 올 수 있었다.
예수께서 베다니에 오신 것은 나사로를 죽은 지 나흘이 되던 날이었다.
20~27절 : 마르다가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한다.
사람을 보내도 오시지 않고 죽어서 장사를 다 지내고 무덤에 있은 지 나흘째 오신 예수님께 마르다는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안았겠습니다’라고 원망조로 말한다.
22절은 그렇게 말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지 이제라도 주님이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면 하나님이 들으실 것이라고 소망을 밝힌다.
마르다가 확실히 아는 것은 두 가지이다.
아들(예수)이 구하면 아버지(하나님)가 들으신다는 것과 마지막 부활의 날에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마르다는 표적을 행하시는 예수를 믿었다. 또한, 마지막 날에 일어나는 부활을 믿었다. 죽은 자가 마지막 날에 부활한다는 마르다의 앎은 전통적인 바리새파의 교리이다.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나는 이다’(에고 에이미)로 자기를 계시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새번역)
부활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교리가 아니다. 아들 자신이 부활이고 생명이다! 부활은 아들 자신의 현존이요 죽음을 초월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은 지금 죽음을 초월한 생명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이 생명은 죽음으로부터 일으켜진 것이며, 더 이상 죽음에 매이지 않는다. 예수가 부활이고 생명이고, 우리가 그의 부활과 생명을 공유하는 것은 자연적 생명의 연장이 아니라, 죽음으로부터 일으킴을 받은 새 생명이므로 죽음을 초월한다.
그러나 마르다는 예수님이 현재 부활과 생명임을 믿지 못한 것이다.
마르다는 예수에 대한 정확한 신앙고백-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27절)-을 하였으나, 그녀의 믿음은 아직 완전한 믿음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그녀는 여전히 영생을 마지막 날에 부활하는 생명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8~32절 : 마르다가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오셨다는 말을 알려주자 마리아가 급히 일어나 예수님을 맞으러 간다. 그때 함께 있던 조문객들이 다 따라나선다.
그리고 마리아 역시 예수님을 만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마르다와 똑같은 말을 한다.
마리아 역시 죽지 않고 사는 믿음을 말함으로, 믿음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33~36절 : 예수님께서, 마리아가 우는 것과 함께 따라온 유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마음이 비통하여 괴로워하셨다.
예수님이 비통하여 괴로워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은 눈물은 이들의 눈물과 다른 의미의 눈물이었다.
그것은 단지 사랑하는 자의 죽음에 대한 그들의 슬픔과 같은 것이 아니라,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그저 병들지 않고, 슬프지 않고, 손해 보지 않기를 바라는 이런 모습이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이유라는 것이 예수님의 비통함이셨던 것이다.
(나의 묵상)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을 사랑했어도 예수님을 잘 알지 못했다.
심지어 마르다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시라는 참 진리를 잘 고백했어도 주님을 몰랐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베드로도 이렇게 고백을 했었다.
이 고백을 하고 예수님께 고무적인 칭찬을 듣고 한껏 업 되었을 것이나 이내 곤두박질친다.
주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말씀하시자 곧 ‘안됩니다!’라고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신앙고백을 잘해 놓고도 바로 이어 ‘사탄’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예수님을 잘 알지 못했던 것이다.
베드로와 마르다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는 자기들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고락을 함께 하는 자로, 이제 곧 자기의 스승이 그 엄청난 능력으로 유대의 왕으로 등극하시면 자기가 한 자리 오를 것을 꿈꾸고 있는 마당인데, 얼토당토않게 죽는다는, 너무도 재수 없는 소리를 하시니까 바로 항변하며 말한 것이다.
마르다 역시다.
오빠가 숨이라도 붙어 있을 때 오셔서 살려주시지, 이미 죽어 나흘이나 된 마당에 부활 이야기를 하시니 너무도 맥이 빠지는 것이다. 그저 병들지 않고, 슬프지 않고, 손해 보지 않기를 바랐는데 집안의 기둥인 오빠가 그렇게 죽어버렸던 것이다.
이런 베드로와 마르다 그리고 마리아 앞에 선 예수님이 내 앞에도 서 계셨다.
복음을 알지 못했을 때 나도 그들과 똑같이 예수님을 생각했다.
하나님의 아들, 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은 했다.
그런데 그분에게 바라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당면한 현실적인 필요였다.
부활에 대한 이야기는, 먼 훗날 내가 죽고 나서도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막연한 사건이고, 이것에 대한 고백이 없으면 믿음 없는 자처럼 보일 테니, 그저 별 의미 없이 입에 달고 사는 그런 구절이었던 것이다.
이제 복음을 알고 매일 주님과 생명의 교제를 나눔으로, ‘부활’이 그 당시 베드로와 마르다 등 유대인의 교리를 넘어선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께서 바로 나의 현재의 부활과 생명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죽음을 초월한 생명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게 생물학적 죽음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새 생명을 얻은 자로서 죽음을 초월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영생을 누리는 일이다.
복음을 통해 얻은 영생은 그것을 얻은 즉시 시작되는 삶이다.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서 생을 다하여 주님께로 가면 주님과 대면하여 더욱 풍성히 누릴 것이며, 마지막 날에는 온전한 몸의 부활로 완성될 것을 믿는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나는, 사나 죽으나 부활과 생명 안에 있다.
현재적 부활 신앙, 이 놀라운 은혜를 알게 하시고 누리게 하신 성령님께 끝없는 감사를 드린다.
(묵상 기도)
주님,
고백을 잘 했어도 모르는 것투성이입니다.
오늘 제가 고백한 이 모든 것에도 제가 알지 못한 더 깊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진리라고 말해도 다 알지 못하고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주님 앞에 더욱 머리 조아리오니
더 깊이, 더 넓게, 더 높이 주님을 알게 하옵소서.
이것이 영생을 누리는 일이니 더욱 풍성하게 누리게 하옵소서.
현재적 부활 신앙을 가진 자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승리와 평강을 이 세상에 선포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주님 속히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립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