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0일 묵상 본문 : 요한복음 11장 36절 - 44절 - 복음으로 주와 연합되어 참 믿음을 세움으로써 생명을 얻고 증거 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오늘도 깨워주시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번 주는 날이 좀 풀린다고 했는데 아직은 매우 추운 아침을 맞이합니다.
비록 추운 날씨지만 마음만은 주의 말씀에 뜨겁게 반응하는 자로 서길 원합니다.
주의 은혜와 능력의 손길을 경험하게 하시고 주 안에서 생명의 풍요함을 누리게 하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오늘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해야 할 일을 지혜롭게 감당하게 하시고 실수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사랑으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나사로의 죽음 앞에 무기력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고 이것을 본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나사로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물은 자신의 한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흘리는 눈물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고 죄와 죽음으로 나아가는 자들을 향한 탄식의 눈물이었다.
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그리고 유대인들 중에는 맹인의 눈은 뜨게 한 예수님이 왜 나사로를 치유하지 못하고 죽게 하는 무능함을 보이고 있냐며 조롱과 의심의 말을 내뱉는다.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비통히 여기셨다는 것은 깊이 탄식하셨다는 표현이다. 이는 맹인은 치유했지만 나사로는 살리지 못해서 무능하다고 말한 자들의 불신앙에 대한 반응으로 볼 수 있다. 이어 예수님은 그들의 평가와 말을 뒤로하고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 무덤으로 향하셨고 그 무덤은 돌로 막혀 있었다.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님은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을 옮겨 놓을 것을 명령하시는데 이는 하나님의 역사에 사람들을 동참시키신 것이었으며 부활의 기적에 참여하도록 만드시는 배려였다. 이때 나사로의 동생인 마르다는 나사로의 시신이 부패하여 냄새가 나는 상황임을 이야기한다. 이는 마르다가 예수님의 능력에 대해 무지했음을 보여주며 부활의 능력은 티끌로 변해버린 자들도 다시 일으키는 능력임을 알지 못했기에 나타난 반응이었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말씀하신 선포(25,26절)를 상기 시키시면서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세우도록 독려하신다. 사람이 예수님을 향한 바른 믿음을 세우고 순종할 때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영광에 참여하는 은혜를 누리며 생명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무덤의 돌을 옮겨 놓았고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께 기도하심으로써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감당하신다. 그 일은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는 일이었으며 그 뜻대로 순종하는 일이었다. 예수님은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바르게 선포하셨으며 자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죽어서 시신이 부패한 나사로를 살리시는 일을 진행하신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온전한 연합의 관계 가운데 있음을 선포하신다. 이 선포의 목적은 자신을 둘러선 무리들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심을 믿도록 하기 위함이었음을 보여준다. 사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기에 기도가 필요한 분이 아니셨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심을 통해 나사로가 살아나는 기적이 드러나야 많은 자들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세상의 그 누구도 죽어서 부패한 시신을 향해 무덤에서 나오라는 선언은 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선언을 예수님이 하셨고 이로써 예수님은 죽음도 이기시는 분이심을 보여준다.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명령에 죽어서 부패한 나사로는 생명을 얻게 되었고 육신의 부활을 경험한다. 이때 나사로는 죽었을 때 장례 예식을 따라 몸을 베로 감싸 묶여 있었고 그 상태로 걸어 나오는 경악할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다. 수족이 베로 묶여 있었기에 잘 걸을 수 없음을 아시고 예수님은 묶은 베를 풀어 주도록 명령하신다. 그리고 스스로 걸어다니도록 말씀하셨는데 이는 나사로가 온전한 상태 가운데 부활했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다.
나의 묵상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 앞에 울음을 터뜨리는 자들을 향한 연민의 마음을 보이셨다.
그 마음은 눈물로 드러나게 되었지만 예수님을 거부하는 자들은 이 눈물을 보며 예수님의 능력을 조롱하고 한계를 이야기하며 의심의 말을 내뱉는다.
이에 예수님은 비통한 마음으로 죽은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 무덤으로 향하신다.
조롱과 의심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일에 더 중심을 두고 행하시는 모습을 통해 진정한 능력이 무엇인지를 드러내셨던 것이다.
작금의 한국 사회를 보면 보수와 진보가 나뉘어서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며 조롱하고 비난하는 모습이 극에 달해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것에 불과하며 그 결과는 함께 망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예수님은 세상의 조롱과 멸시에 대해 세상의 방식으로 반응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일에 집중하시면서 생명의 능력으로 참 믿음을 가지게 하시는 일에 힘을 기울이신다.
결국 세상의 시험과 핍박 속에서 성도가 힘써야 할 일은 세상의 방식으로 반응하여 싸우고 세력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일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친히 보여주신 모습으로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조롱과 멸시를 뒤로하고 곧바로 무덤으로 가서 돌을 옮기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써 믿음과 능력을 드러내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목적은 단순히 죽은 자를 살리는 것에 있지 않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것처럼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그로 인해 생명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에 있었다.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41-43절)
예수님이 치유와 기적의 사건을 일으키신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에 있지 않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하신 예수님의 기도에서도 보는 것처럼 주님은 하나님과 연합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그 열매로 사람들이 견고한 믿음을 세우도록 이끄셨음을 보게 된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생명의 능력을 베풀고 계시며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들에게 영생의 기쁨을 주시는 분이시다.
이는 성도가 무엇을 기도해야 하며 주님과 연합된 삶의 결과로써 나타나야 할 열매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예수님은 주님과 제자들의 연합에 대해 다름과 같이 가르치셨다.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15:7,8)
성도의 기도는 주님과 연합됨에서 나타나야 하며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과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 즉 주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배우고 증거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는 믿음의 견고함을 의미하며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향한 절대적 신뢰관계를 세우는 것이다.
이러한 주님과의 바른 관계는 죽음도 이기게 만드는 능력이 되며 온전한 회복의 역사를 가져오는 힘이 된다.
나사로는 죽음에서 생명을 얻은 사건 이후로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다.
초대 교회에서도 상당히 큰 영향력을 드러내었을 인물이었겠지만 그에게 허락된 상황은 종교지도자들의 위협에서 벗어나 은둔의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으로 추정한다.(요12:10)
그러나 이러한 은둔의 삶이었지만 나사로는 그러한 삶을 불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향한 온전한 믿음을 세웠기 때문이며 영생에 대한 이해가 그 누구보다 깊어졌기 때문이다.
바른 믿음 가운데 살아가는 자는 상황과 환경에 지배당하는 자가 아니라 온전한 믿음을 통해 생명의 능력을 경험하고 다른 이들도 믿음에 이르게 만드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 때문이다.
나의 모습을 돌아보면 여전히 온전한 믿음 가운데 살지 못하는 모습이 많지만 주님은 늘 바른 관계, 바른 믿음을 통해 생명의 은혜를 누리도록 이끌어 주신다.
그 은혜를 나의 삶과 지체들의 삶에서 풍성하게 누리고 다른 이들도 믿음에 이르도록 돕는 일에 참여하는 자 되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주님은 하나님과의 연합된 모습을 통해 사람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세우는 일을 하셨으며 진정한 믿음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도 동일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며 그 모습을 위해 힘써야 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나 인생의 어리석음과 욕심은 주님의 모습을 따르기보다 자기 욕심을 따라 살아갑니다.
주와 연합되기를 힘쓰지 않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가지도록 도와주기보다는 오히려 주를 거부하고 멀리하도록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욕심과 죄악으로 가득 찬 모습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주와 연합되기를 힘쓰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주와 연합된 모습은 그리스도를 향한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세상의 시험과 환난을 이기는 모습임을 기억하고 차 믿음의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의 은혜로 살아가기를 소망하오니 마음과 생각을 이끄시고 주와 연합되게 하옵소서.
함께 하시고 날마다 생명의 양식을 채우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