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에게 배우기>가 맞을까?
아주 잠깐, 0.1초 정도 고민을 하고
<아리스토텔레스와 친구하기>라고 하였습니다.
쇠귀 신영복 선생님께서
"모든 시내가 바다를 배우는 까닭은 낮은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것도 같습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더군요.
갑자기 무슨 엉뚱한 소리냐구요?
그냥.. 아리스토텔레스 정도 되는 분이면,
스스로 낮추셨을 분 같아서요.
선생님~하고 부르고, 선생님으로 생각하면서도
친구먹고 싶은 그런 발칙한 마음씨라고나 할까요?
제가 울산 무룡중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갔던 것은
2000년도였습니다.
그때 떨리고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했는데
제가 너무나 존경하고 좋아하는 은사님께서
"걱정할 것 없어. 나가면 다~ 할 수 있도록 그렇게 되어 있어." 웃으시면서 그러셨어요.
용기를 북돋아주시는 그 말씀에는, 은사님 당신께서 가지고 계신 모든 경험과 지식을 우리에게 쏟아부으셨다는
강한 자부심도 함께 깃들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제자들에 대한 믿음도요.
연구수업을 위하여 교안을 짜고
표본이 될 만한 교안들을 구하여 여기저기 살펴보며 대체 어떻게 하는건가 하고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그때 참으로 다른 교안들에서 이것저것 따오려고 애썼던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얼마나 얼키고 설키던지요.
수업 중에 있었던 그 아이들은 저 선생님이 왜 저렇게 오락가락하나 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 틀림없이 그랬을 것 같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종종 교사의 권위에 도전을 즐깁니다.
저 역시도 고등학교 시절, 우리와 정서적 교감이 부족하면서 권위적으로 일제 수업을 하려는
어느 여자 독일어 선생님께 우리반 안필련이라는 선머슴같은 아이와 함께
그 선생님의 권위에 도전한 일이 있었으니까요.
무슨 성토대회장처럼 한 선생님을 앞에두고
그 선생님이 우리에게 하는 욕설(자주 '쌍코피를 터잤뿔라!'라는 말을 쓰셨거든요.)과 일방적인 수업진행방식에 대하여
일어서서 항거?를 하였더랬습니다.
독일어 선생님은 수업을 진행하지 못하시고 교무실로 가셨고,
앞으로 우리반에 수업 안하겠다고 시험은 알아서 하라고 하셔서...
일은 필련이와 제가 저지르고, 반 아이들 중에서 절반 정도가 교권 도전에 쾌감을 느끼고,
절반 정도가 옳지 않다고 생각했을런지...
암튼 그 뒷수습은 착한 실장이 교무실로 가서 독일어 선생님께 대신 죄송하다고 비는 것으로 끝나서
그 뒤 독일어 선생님께서 우리반에서는 욕설은 안하셨지만...
줄줄줄 본문 읽고, 해석 말씀하시는 것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저의 교생 실습때에 제가 맡은 반은 여학생 반이었습니다.
교생선생님에 대한 호기심과, 어설픈 교생선생님의 교권에 대한 도전적 시선도 있었지요.
국문과 복학생 동생중에 고등학교때부터 수업을 빼먹고 바다로 훌쩍 떠나기를 즐겼던
그런 녀석이 있습니다. 그 녀석이 복학하고 어쩌다보니 저랑 친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랑 거리가 먼 그 녀석과 임용에 안 붙으면 엄마한테 맞아죽을까봐 전전긍긍하면서
그 길 아니면 사회에서 갈 곳아 없다고 생각한 제가 좋아서 그랬는지 어쩔 수 없어 그랬는지
재미있어 그랬는지 알바와 학교 수업 외에 주로 도서관에서 살았던 제가 밥 먹을 때 같이 있고,
밥 먹고 학교 안을 산책할 때 함께 있었습니다.
둘은 주로 쏟아지는 햇살이나, 쏟아지는 비에, 간지럼태우는 봄바람이나, 우수를 몰고오는 가을바람에,
길가에 핀 들꽃에, 회화 전시에, 어떤 싯귀에, 학교 앞에 생긴 향 좋은 커피를 파는 예쁜 커피점에,
비오는 날 주점 안 분위기에 그런날에 풀어지고야마는 우리들의 감성에, 학술답사에서 만난 소쇄원과
남도의 공기와 경치에, 언양 석남사 계곡물 소리에, 시쓰는 놈 자취방의 낡은 책냄새와 우울한 분위기에
암튼 그런 것들에 환장을 하였더랬습니다.
2000년 5월의 교생실습 4주 기간, 저는 갑자기 입게된 정장과 '선생님' 역할에 정신이 없었고..
이 녀석은 같이 다니던 밥친구 정림언니를 상실한 기분에 빠져서
학교 안에서 꽃을 보다가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사진들을 옆서와 동봉하여 제게 부쳤습니다.
저는 그 편지를 받고 감동하여, 그날의 편지를 받게된 사연과 사진들을 교생실습을 맡은 반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고 함께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돌틈에 핀 민들레 사진을 보며 그 민들레가 얼마나 예쁜지에 대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
교생실습을 마치는 날에, 저는 아이들에게 엽서를 한 장씩 주었습니다.
손글씨로 모두 쓰지는 못하고 같은 내용을 워드쳐서 받는 이 이름과 쓰는 이 이름만 제 글씨로 적었습니다.
그때 너희들한테 보여준 돌틈에 핀 민들레와 같이
어떤 환경 속에서도 너희가 가진 씨앗대로 잘 피어나길 바란다
뭐 이런 내용들이 담겨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1, 25:1, 30:1
넘치는 공급과 부족한 수요 속의 암울한 교원임용고시 시장에서
비싼 임용학원비와 먼 거리의 학원, 매연에 약한 기관지를 달고 있는 나의 몸과,
잠은 하루에 3시간 자고 시험에는 무조건 붙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엄마를 가진 저는
울산에서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부산 서면으로 교육학과 전공을 두 달여 들으러 다녔습니다.
무거운 가방에 지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생실습때 우리반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그 때는 2001년이었습니다.
그 중에 교생의 교권에 도전적 눈빛을 보내었던, 제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여서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어떤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저를 보더니...
"선생님.."하고 다가와서 갑자기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아직 학교로 못 나간 것이 부끄럽고,
제가 열심히 못해서 아직도 이꼴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갑자기 그 아이가 저보고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눈물까지 흘리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주위의 아이들 둘도 놀라서 그 아이를 쳐다보았습니다.
저는 그때 그 아이의 눈물이 제가 준 엽서때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아이가 그렇다는 말은 안했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그 아이는 잘 피어나고 싶고, 잘 자라고 싶지만...
자기가 심겨 있는 땅은 햇빛도 잘 안들고 그늘진 땅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역아동센터에 파견 기초학습교사라는 이름으로 나가는 저는...
어제 야간보호선생님께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기간제하면 연봉 3000이던데, 기간제 하시죠? 왜 안하세요?"
전에도 그런 말씀을 몇 번 하셨는데... 왜 자꾸 그걸 물어보실까요?
아마도 그것은 그 선생님의 직업우선순위가 '돈의 액수'이기 때문이겠지요.
또한 파견 교사에 대한 파견지 담당자의 대우와 그곳에 일하시는 다른 선생님의 부당대우때문이겠지요.
약자에 쉽게 대하는 사람들의 옳지 않은 행태때문이겠지요.
그 행태가 당연한 것이 아닌 것을 알기에
이제 그런 경우에 대거리를 하는 제가 되었지만
(어제, 어떤 선생님께서 함부로 말씀하셔서 대거리를 했거든요..)
그런 대거리가 마음 편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대거리 후에 하나님편에서 옳음은 무엇일까를 곰곰히 생각하여 보는 저는
어제 별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 대거리 후에 교실로 돌아와
잠시 엎드려 있으니
할머니와 둘이 사는 고등학생 여자 아이가 음악을 틀고 춤을 추었습니다.
저를 웃게 해주겠다고요. 그래서 웃었어요.
무달이 여동생한테
"삶이 힘들다. 사는 게 힘들다."하니까,
그 녀석은 "저는 사는 게 재미있는데요."합니다.
사는 게 재미있다고 한 무달이 여동생이 어제 다른 여학생과 싸워서 상담을 하였습니다.
상담 중에 제가 너는 정말 장점이 많은데, 네가 성격도 좋고 의로운데
욕을 잘하니까 그 장점이 가리는게 안타깝다고 하니까
대답은 없고 가만히 있습니다.
너도 니가 장점 많은 것은 인정하지?하니까
끄덕끄덕합니다.
나는 너한테 참 많이 배운다고 하니까
의아스럽게 봅니다.
나는 아직도 엄마 아빠가 살아계셔서
엄마가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시는데도 삶이 힘들다고 하는데
너는 아빠랑만 살아도 삶이 재밌다고 하잖아
나는 온실 속에 화초같은가봐.. 그런데,
센터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더 힘든 상황인데도 참 씩씩하다
너한테 배울 수 있어서 고맙다고 하니까
좋은 얼굴 표정이 되었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어제 무달이 여동생이 야간에 안 놀고
자원봉사자 선생님이 오셨을 때 자진해서 공부하러 들어갔습니다.
둘이 함께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지만,
그 녀석은 공부를 하러가주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친구하기.
"세상의 모든 만물은 모두 자기다움을 가지고 있다."
첫댓글 영화, <늑대와 춤을>에서 주인공에게 인디언이 붙여준 인디언식 이름이 생각납니다. "너무 많이 말해(too much talk)".... 제 옆에 인디언이 없어서 천만다행이에요. ^-^ ㅋ
야간보호선생님이 저에게 말한 또 다른 경우의 수를 생각하였어요. 제 '생활의 안정'을 진실로 염려하시는 것. // 어제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 남자친구가 혼자 병중의 어머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시거든요.취직한 다음에 한 번도 못 가보고해서 치킨 한마리랑 pet에 넣어주는 생맥주를 사서 전화를 했는데... 제 친구가 약간 감동한 것 같았어요. 사실 아무 것도 아닌데..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제게 클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하는 친구의 눈빛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전에 문예지 편집위원하셨던 어떤 분이 사랑하는 사람이 그 사람을 바라볼때 고통스럽게 하면 안된다 머 이런 말씀하셨었어요. 그냥 어제 그 생각이 났어요. ^-^
ㅋㅋ 늑대와 춤을에서 붙여진 이름은 늑대와 춤을입니다.. <너무 많이 말해>는.. 류시화가 어느 인디언에게 들은 이름입니다. 아이들이랑 인디언식 숫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이게 떠올랐습니다. 이젠.. 머릿속의 이쪽 기억과 저쪽 기억이 서로 손을 잡는 시기가 되었나봅니다. 혹.. 치매의 조기 증상은 아니겠지요? ^^;;;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에서 등장한 이름중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매력적인 이름은 [머릿속의 바람]이었습니다...너무나 공허하고 고독한 존함이었거든요......본문과는 상관없는 댓글을.....^^
<공허하고 고독한> 존함을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친구님... 친구님은 왜 그런 것에 매력을 느끼시는 것일까 궁금하여집니다. ^^ 저는 <머릿 속의 바람>보다 <늑대와 함께 춤을>이 더 좋은데... ㅎ 혹시 자뻑을 즐기시는 친구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살짝 공허하고 고독한 매력남이라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추측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