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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에 산다
원전 제로를 향하는 사람들
지은이 《신문 아카하타》 사회부 / 옮긴이 홍상현
펴낸곳 나름북스
판형 128*188 / 면수 399쪽 / ISBN 979-11-86036-08-2 03300
발행일 2015년 12월 22일 / 정가 15,000원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국제사회비평/칼럼
국내도서 > 역사 > 일본사 > 일본근현대사
국내도서 > 사회과학 > 환경/생태문제 > 환경문제
주제어 : 핵발전소/원자력/핵문제/원전/동일본대지진/원전사고/르포르타주/3.11/도쿄전력/방사능
저자 소개
《신문 아카하타》 사회부
일본공산당이 발행하는《신문 아카하타》는 1928년 창간 이후 일본 군부가 폭주하던 1931년과 1932년 삼일절, 식민지에서의 즉각 철군 및 조선독립투쟁에 대한 연대를 호소하는 ‘3․1 기념일’, ‘조선민족해방 기념일을 맞아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 등의 논설을 전면에 게재한 것을 시작으로 태평양전쟁 종전까지 이어진 반제국주의 투쟁의 선두에 섰으며, 전후戰後 혼란기에는 패권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소련 공산당, 중국공산당, 그리고 북한 조선노동당 등을 정면에서 비판하며 논쟁을 주도했다.
최근에는 ‘살아갈 힘과 희망을 나르는 신문’을 표방하며, 정부와 재계의 눈치를 보는 거대언론사가 손대지 못하는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성역 없이 보도, ‘참언론’의 사명을 다하는 한편, 일명 ‘야스쿠니파’로 불리는 일본 극우세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신문으로도 자리매김해 있다. 베이징, 하노이, 뉴델리, 카이로, 파리, 워싱턴DC 등 세계 주요도시에 지국을 두고 있으며, 32만여 명의 일본공산당 당원 외에도 일본 전역에 130만 명에 달하는 구독자가 있다.
《신문 아카하타》 사회부는 《증언 특별고등경찰》(1981), 《나는 세뇌되었다》(1989), 《일본군 출신이 말하는 ‘대동아전쟁’의 진상》(2006), 《통째로 생각하는 일본헌법》(편집국 공저, 2005), 《원전 마피아: 이권과 종속의 구조》(편집국 공저, 2012: 한국어판 나름북스, 2014) 등 불굴의 저널리즘 정신을 발휘한 심층취재의 결과물들을 꾸준히 책으로 발간해 독자들의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역자 소개
홍상현 洪相鉉
저널리스트.
한양대학교에서 정치학을(정치외교학 석사), 중앙대학교에서 연극․영화학을(영상예술학 석사) 공부했다.
광고회사와 언론사 생활을 거쳐 2007년부터 다양한 방송다큐멘터리의 해외취재(미주․유럽․오세아니아지역 및 일본)와 번역(영어․일본어) 등을 담당했으며, 2008년 프로듀서를 맡은 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For The Islanders〉가 제주영화제 개막작으로 공개되었다.
2011년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일본공산당 중앙위원회를 방문, 시이 가즈오 일본공산당 위원장과 만나 인터뷰한 것을 인연으로 《지금, 일본 공산당》, 《새로운 약진의 시대를 지향하며》, 《전쟁이냐 평화냐》등의 저서를 번역․출판했으며, 2015년 건국대학교 방문 당시 특보로서 수행하기도 했다. 그밖에도 《원전마피아: 이권과 종속의 구조》, 《이지메 해결의 정치학》, 《블랙기업을 쏴라》등 민감한 사회현안을 다룬《신문 아카하타》와 신일본출판사의 논쟁적인 책들을 한국 사회에 활발히 소개하고 있다.
현재 도쿄대학 객원연구원으로 국제관계와 언론보도의 상호작용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신일본출판사의 경제월간지 《게이자이経済》필진이자, 일본저널리스트회의(JCJ) 회원이기도 하다. 일본 치바千葉현에 살고 있다.
책 소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지금도 12만 명 이상이 피난민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사고 수습은커녕 원인 규명조차 되지 않았다. 3.11 사고 당시의 공포, ‘원전 사고’라는 대재앙이 파괴한 일상, 몸과 마음의 고통이 점점 더 극심해지는 현실이 피해 당사자들의 증언으로 세세히 드러나 있다. 후쿠시마 현 주민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일상을 돌려달라”, “원전을 없애고 속죄하라” - 국가와 도쿄전력을 상대로 외치며 여전히 끈끈히 연대하고 있는 후쿠시마 사람들,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희망을 품고 4천여 명이 원고가 된 집단 소송을 통해 ‘탈원전’을 이루려는 피난민들, 그 3년 8개월의 기록. 연재중인 〈신문 아카하타〉의 후쿠시마 주민 인터뷰 중 94명의 목소리를 묶었다.
추천글
후쿠시마는 여전히 끝을 알 수 없는 재난으로 ‘존재’하지만, 후쿠시마를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기 위한 저들의 노력 또한 필사적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읽으며 우리는 깊고 넓은 행간을 의식하게 된다. 언어로 담아내기에는 언어가 초라해지는 그들의 슬픔, 분노, 고통의 연대기, 그것이 후쿠시마의 ‘실존’이다. 그들은 인내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 끔찍한 시간을 통해 얻었던 각성, 죽지 않기 위해 품어야만 했을 가냘픈 희망에 우리는 얼마나 주의집중하고 있는 것일까?
- 이계삼(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
《후쿠시마에 산다》는 방사능과 핵발전소 같은 ‘무생물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고 이후에도 그곳에서 살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핵발전소 사고로 모든 주민들이 피난했을 것 같지만, 오히려 다수의 주민들은 ‘삶의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 책은 막연한 공포나 뻔한 재난극복 스토리가 아니라, 후쿠시마 주민들의 처절한 ‘진짜 목소리’를 담고 있다.
-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대표)
목차
한국어판 서문
들어가며
1장 _ 치유되지 않은 마음의 상처 (2012년 10월 8일 자 ~ 2013년 8월 15일 자)
•어구를 손질하며_나미에마치의 어부 사쿠라이 오사무 씨
•후쿠시마의 오늘, 다음 세대에 전하고파_고교생 요시노 사야카 씨
•함께 걸어가자 나미에마치에서 후쿠시마 시에 피난 중인 스도 카노 씨
•원전 사고의 참극 전하겠다_전직 개호시설 물리치료사 사토 츠토무 씨
•벼농사 ‘포기하지 않겠다’_미나미소마 시 구 경계지역 네모토 코이치 씨
•덤으로 얻은 목숨, 다음 세대를 위해_미나미소마 시 아이하라 마나부 씨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피난민에게 제철 채소를_낙농인 사사키 토모코 씨
•전쟁과 원전, 고난을 넘어_후타바마치에서 후쿠시마 시로 피난한 다카다 구니오 씨
•료젠에 방사능이 웬 말인가_향토사가 칸노 이에히로 씨
•‘무농약’을 시작한 참이었는데_한평생 벼농사로 살아온 이도가와 칸 씨
•가설주택에서 이어진 ‘천잠의 꿈’_나미에마치에서 피난해 온 스즈키 시즈코 씨
•동료들을 만나 길이 열렸다_후쿠시마 금요행동에 참가한 오하시 사오리 씨
•완전한 폐로가 이뤄지기 전까지는_전직 원전 노동자 후쿠다 카즈마사 씨
•‘부자선’을 꿈꾸었건만_후쿠시마·미나미소마 시 어부 마키타 토요미 씨
•피난생활이 아내의 명 재촉했다_후쿠시마 시내 가설주택에 거주하는 구마가와 카오루 씨
•도원향에 원전이 웬 말인가?_하나미야마공원 원예농가 칸노 타다시 씨
•그리운 목초지_가와마타마치의 3세 낙농인 사이토 히사시 씨
•마음의 꽃_미하루 타키사쿠라 자손목을 보급하는 콘나이 고이치 씨
•시민의 입장에서 기록하고 전한다_원전 피해를 고발하는 오부치 마리 씨
•도쿄전력과 싸워 승리할 때까지_피해의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가네이 나오코 씨
•음악으로 힘을 주다_알토색소폰 연주자 카와세 미카 씨
•승소로 에너지정책 전환을_‘생업을 돌려줘, 지역을 돌려줘!’ 후쿠시마 원전 소송 원고단장 나카지마 타카시 씨
•공산당의 승리로 원전 제로_나미에마치를 떠나 가설주택에 살고 있는 마쓰모토 스미이 씨
2장 _ 포기하지 않겠다 (2013년 8월 19일 자 ~ 2013년 12월 30일 자)
•이 소송은 ‘피해자 단결’의 상징 생업 소송 원고 변호단 스즈키 마사키 씨
•사랑의 열매, 열정을 담아_안심·안전에 대한 노력으로 JGAP 인증 취득, 과수원 경영자 사토 유키에 씨
•벼농사를 포기할 수 없어_나미에마치 출신 사토 교이치 씨
•내일이라도 바다에 나가고 싶지만_소마 시의 어부 아다치 토시로 씨
•모든 것을 원상태로 되돌려야_무화과 생산자 다카하시 이사오 씨
•완전한 수습이 이루어질 때까지_후쿠시마 금요행동에 매번 참가 중인 후쿠치 카즈아키 씨
•태양열 발전으로 원전 제로를_복숭아·사과 생산농가 하시모토 미츠코 씨
•미나미소마에서 ‘농업 지키기’_최초로 쌀을 시험 재배한 스기 카즈마사 씨·농사 2년째 요코야마 신지 씨
•피난민의 고독사를 막고 싶다_후타바마치 가설주택 자치회장 코가와 타카히사 씨
•부흥이 요원해진 600년 고찰_원전 피난민 소송 원고단장 하야카와 토쿠오 씨
•구니미마치 산 곶감에도 타격_원전 사고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하타 후미오 씨
•총리의 폭언을 막는다_후쿠시마 금요행동에 매번 참가 중인 아베 유지 씨
•원전 건설에 반대로 일관_소마·후타바 어업협동조합 우케도호시키회 회장 시가 카츠아키 씨
•원전도 전쟁도 생활을 파괴한다_후쿠시마 원전 소송 원고 가네마루 미치코 씨·남동생 지카마사 씨
•원전 사고 증언록의 완성_전 NHK 디렉터 네모토 히토시 씨
•다시 가게 문을 열 때까지_라멘집 주인 다카기 미츠오 씨
•비밀보호법은 원전도 은폐할 것_미나미소마 시 금요행동에 참가한 가와구치 료이치 씨
•청년기의 경험을 되살려_낙농인 사사키 겐조 씨
•자연과 생활을 되돌린다_이와키 시민 소송 원고 하세베 이쿠코 씨
•폐로는 당연한 일_소프트볼 클럽 감독 우지이에 마사요시 씨
3장 _ 쉼 없이 목소리를 높이며 (2014년 1월 6일 자 ~ 2014년 6월 14일 자)
•정부와 도쿄전력은 산에도 제염을 실시하라_채소 농가 와타나베 사카에 씨
•원상회복은 필요불가결_복숭아 재배농가 아이하라 토요지 씨·쿄코 씨
•손자 생각에 피난을 고민_미나미소마 시 칸노 츠네오 씨
•할애비로서의 할 일_다테 시 오츠키 젠조 씨
•인기척이 사라진 거리를 보며_가이드북 편집자 오우치 히데오 씨
•흙조차 오염됐다_배 농가 아베 테츠야 씨
•문제를 아는 사람이 먼저 목소리를 높여야_원고단 사무국장에 취임한 핫토리 히로유키 씨
•이다테규의 부활과 재건을 위해_이다테무라 나가도로 구역장 시기하라 요시토모 씨
•‘맛있다’는 격려에 마음을 다잡으며_딸기 농가 가모 세이이치 씨
•과일의 고장, 잊을 수 없는 자부심_과수 농가 시부야 세츠오 씨
•SPEEDI의 공표는 없었다_생활보호수급자 야마키 사치코 씨
•의사로서의 첫발을 이곳에서_의료생활협동조합 와타리병원 쿠니이 료 씨
•그래도 농사를 포기할 수 없다_산직조합 고리야마 대표이사 하시모토 세이이치 씨
•제자들로부터 전해진 서명_생업 소송 원고 와타나베 야스코 씨
•머나먼 봄날_치바 현 원전 소송 엔도 유키오 씨
•행동의 원점은 국민주권_‘원전 즉시 제로’ 서명을 받고 있는 와고 슈이치 씨
•‘원전 제로’를 향한 마음을 노래에 담아_포크밴드 ‘이와키 피라미 학원’ 구보키 츠토무 씨
•피난민의 건강 악화가 걱정_간호사 야시로 아키코 씨
•원전의 상흔을 기록하다_고리마치 향토사 연구회 회장 스즈키 후미오 씨
•손자 세대에 불안을 남기고 싶지 않아_후쿠시마 금요행동 참가자 다카하시 히사코 씨
•농토를 잃은 분노_나미에마치에서 피난을 나온 사토 토미코 씨
•원전이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_생업 소송 원고단 아이즈 지부 대표 다카이 마사오 씨
•생업 소송, 인생의 마지막에_두 번의 지진재해를 경험한 엔도 마사요시 씨
4장 _ 내일을 향해, 앞만 보고 간다 (2014년 6월 17일 자 ~ 2014년 11월 5일 자)
•끊임없이 찍어 ‘후세에 남긴다’_아마추어 사진가 와타나베 코이치 씨
•총리는 아무 말도 듣지 않아_다테·니이야공원을 지키는 모임 오노 카즈코 씨
•환자와 지역에 보은_이시카와마치에 정체원을 개업한 콘나이 유키오 씨
•전시나 다름없는 ‘소개자’_후쿠시마 시 이이노마치 거주 아베 료이치 씨
•멈춰버린 봉제공장, 도쿄전력은 ‘생활보호 받으라’ 폭언_생업 소송 원고 기쿠치 야스히로 씨·어머니 하츠에 씨
•용기를 전해주는 노래 한 곡_노래하는 케어매니저 아베 준 씨
•정부와 도쿄전력의 책임을 묻는다_현 근로자 산악연맹 이사장 무라마쓰 코이치 씨
•후회 없는 삶을 위해 건강운동지도사_이케우치 야요이 씨
•직접 듣고, 보아주기를_완전배상을 요구하는 후쿠시마 현 북부 지역 모임 사무국장 칸노 히데오 씨
•미래는 바뀔 수 있다_오키나와로 피난한 구보타 미나호 씨
•원전이냐 생명이냐_가타히라 저지 자연목장 목장주 가타히라 요시오 씨
•원전과의 싸움 생업 소송 원고단 부대표 콘노 시게아키 씨
•바다를 돌려 달라_소마시·전직 저인망 어선 어부 난부 코이치 씨
•풍요롭던 자연은 어디로 갔나_엽우회 히가시시라카와지부 회원 스즈키 다쓰오 씨
•시로 남긴 사고의 기록_니혼마쓰 시· 《아다타라의 푸른 하늘》을 출판한 아라오 슌스케 씨
•피해자의 시선으로_이와키 시민 소송 원고단 사무국장 칸케 아라타 씨
•자식들과의 약속_생업 소송을 통해 도쿄전력과 재판을 진행 중인 임업인 치쿠이 마코토 씨·유리코 씨 부부
•불철주야 주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_전 나미에마치 진료소 간호사 곤노 치요 씨
•피해보상법 제정을 향해_이와키 시민 소송 원고단 부단장 사토 미츠오 씨
•젊은이들의 꿈이 이루어지도록_이와키 시민 소송 원고 아베 세츠코 씨
•원전 사고의 참혹함을 묘사_후쿠시마전 입선 화가 니시 케이타로 씨
•장애인은 어디로 도망쳐야 하나_생업 소송 원고 기쿠치 유미코 씨
•유기농업에 인생을 걸고_이와키 시민 소송 원고 히가시야마 히로유키 씨
맺음말
옮긴이의 말
책 속으로
머지않아 동일본대지진 발생 5년째를 맞게 됩니다. 하지만 원전 사고로 후쿠시마 주민들이 입은 몸과 마음의 피해·손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아니,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욱 복잡하고 해결하기 힘든 과제들마저 불거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며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던 와중에 많은 분들이 ‘그저 피해자에 머물러 있을 때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고, 정부와 도쿄전력에 원상회복과 손해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 ‘생업을 돌려줘, 지역을 돌려줘!’ 후쿠시마 원전 소송 원고 단장 나카지마 타카시 씨는 “우리는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하나의 큰 장애물을 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일본의 민주주의가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검증하는 것이지요. 같은 문제에 직면해 계신 한국의 여러분과도 연대하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 pp.7~8
3월 11일, 사야카 씨는 서둘러 하교해 집에 돌아와 있었습니다. 지진으로 수도와 전기가 끊기고, 여진이 몇 시간이나 이어졌습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가족 모두 고타츠에 둘러 앉아 라디오 방송에 귀를 기울였지만, 원전에 관한 정보는 한마디도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피난 지시가 내려져 가와우치무라의 초등학교로 피난한 후에야 신문을 보고 원전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요오드제가 배포되었고, 사야카 씨도 복용했습니다. 그리고 아침, 점심, 저녁 매 끼니를 주먹밥 한두 개로 때우는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하다 보면, 역시 사고를 일으킨 도쿄전력을 용서할 수가 없어요.” - p.27
“후쿠시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입장에서 볼 때, 원전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만약 어딘가에서 또 원전 사고가 일어난다면 일본은 정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릴 거예요. 이런 견디기 힘든 고생을 경험하는 건 우리가 마지막이었으면 합니다.” - p.33
구마가와 씨는 “전쟁통에도 체험해 본 적 없는 처량한 피난살이였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주먹밥 두 덩이와 단무지, 난방 기구도 없이 판자 사이에 모포 한 장만 놓여 있던 피난소, 맨땅에 구멍을 파 놓았을 뿐인 화장실. 수많은 피난민이 한 대의 세탁기를 같이 써야 했습니다. 그나마 갈아입을 옷도 없어 더러워진 옷을 뒤집어 입어야 했습니다. (...) 나미에마치로 돌아가는 것도 ‘방사선량이 높다’는 이유로 금지돼 있고,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수색도 늦어졌습니다. 그래서 4월에야 동생의 시신을 발견했지만, 시신은 이미 심하게 손상된 상태였습니다. 구마가와 씨의 자책이 이어졌습니다. “원전건설 반대를 관철시켰어야 해요. 저지하지 못한 건 정말 한심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pp.82~83
“맑은 공기에 자연이 풍요롭던 곳이었습니다. 산에서 딴 고사리, 벚꽃나무 아래서 먹던 도시락, 사람과 사람 사이의 깊은 정을 느낄 수 있었던 이다테무라로 돌아가고 싶어요.” 대지진과 원전 사고는 카와세 씨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결혼해서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 p.106
“피난민들이 원전 사고 때문에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데도, 증세를 해서 이재민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려고 하다니요. 다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피난생활로 아무런 희망도 갖지 못하는 마당에 말이죠.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요.”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가 바다로 유출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등 원전 사고 수습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원전의 재가동을 시도하는 자민당 정권을 바라보며 마쓰모토 씨의 불안감은 더해갑니다. - p.116
사토 씨 부부의 소원은 농업에 복귀하는 일입니다. 벼농사, 채소농사를 포기할 수 없어 가설주택 근처 밭을 빌려 채소 재배를 시작했습니다. (...) “최근 오염수 문제를 보고 있노라면 나미에마치에 쉽게 돌아가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불안하죠. 정부도, 도쿄전력도 더는 진실을 은폐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최소한 우리가 먹을 것만이라도 직접 밭에서 재배하고 싶으니까요.” - p.131
소마 시에서 대지진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439명. “바다로 나가는 게 늦어진 배들은 죄다 해일에 휩쓸려 가버렸지. 간발의 차였어.” 3월 12일 아침 6시가 지났을 무렵. 아다치 씨는 마쓰카와우라항에 인접해 있는 소마항으로 돌아왔습니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아다치 씨는 “조업이 재개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며 지금도 어구 손질과 점검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내일이라도 바다에 나가고 싶어.” - p.135
다카하시 씨는 현재 약 250그루의 무화과나무를 재배중입니다. 원전 사고 후 새롭게 100그루를 늘렸습니다. (...) 안전한 환경을 되돌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과일을 생산하는 것은 인생 후반전의 보람과 직결되는 과제입니다. “도쿄전력은 피해자가 청구한 배상금을 제대로 지불해야 합니다. 물론 물도, 공기도, 토지도 모두 원래대로 되돌려 놓아야 하고요.” - p.139
“아버지는 농부셨습니다. 후쿠시마 농부들은 진중하고 조심성이 많지요. 냉해로 고통받고 빈곤과 가난에 시달려온 역사를 가지고 있는 까닭에 그런 기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오죽하면 재판까지 걸었겠습니까.” 원전 사고와 관련한 많은 사실이 은폐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네모토 씨는 “진상을 규명해야 할 과제가 아직 수없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사실을 은폐하는 비밀보호법을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반대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 pp.179~180
출판사 서평
동일본대지진과 원전 사고 이후
후쿠시마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에게 후쿠시마는 방사능으로 뒤덮인 죽음의 땅 정도로 인식된다. 체르노빌과 비견될 거대한 황무지에 망가진 원전과 쓰나미의 잔해가 어지러이 뒤엉켜 있는, 인적 없는 공포의 대지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후쿠시마 현은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있기 전까진 200만 명의 생활 터전이었다. 농수산물이 고루 유명한 비옥한 환경에서 후쿠시마 사람들은 현의 기후처럼 온화하게 살았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진 그들은 여전히 후쿠시마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후쿠시마를 떠나 인근에서 피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13만여 명이다. 그리고 피난 생활 도중에 사망한 후쿠시마 사람은 1,800여 명으로 쓰나미와 지진으로 인한 직접 사망자 수를 이미 넘어섰다(사망실종자 1만8천여 명 중 확인된 후쿠시마 현 주민은 1,607명). 농사를 지으며, 혹은 고기를 잡으며 소소하지만 건강한 생계를 꾸려가던 고령자들은 좁은 가설 주택에서 아무 보람 없이 수년을 보내며 언제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다.
많은 후쿠시마 주민은 “지진과 해일만이었다면 죽지 않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의 역사에서 그랬듯, 그들은 묵묵히 땅을 갈고 집을 다시 짓고 배를 수리해 몇 년 안에 지역을 재건했을 것이다. 그들이 고향에서 생을 이을 수 없게 한 ‘3.11’이라는 대재앙은 다름 아닌 ‘원전 사고’였다. 방사능 유출로 구조 작업은커녕 접근 자체가 통제됐고 사람들은 가족과 친구의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몸과 마음에 입은 피해는 조금씩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심해지고 있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책임을 회피하고 구제를 방관하는 가운데, 후쿠시마 사람들은 ‘피해자’에 머물러 있지 않기로 했다. “생업을 돌려줘! 지역을 돌려줘!”라는 이름의 후쿠시마 원전 소송이 그 의지의 표출이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을 상대로 한 이 소송은 후쿠시마 현 내 59개 시정촌에서 4천여 명이 원고로 참여한 대규모 집단 소송이다. 원고단의 첫 번째 요구인 ‘원상복구’는 단순히 사고 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피해의 원인이었던 원전을 없애자는, 다시 말해 “방사능도 없고, 원전도 없는 지역을 만들자”는 넓은 의미에서의 ‘원상회복’이다. 이는 ‘전체 구제’를 요구함으로써 국가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피해에 걸맞은 구제 의무를 부여하려는 점, 후쿠시마와 같은 피해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탈원전’을 요구하는 점 등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거대한 인재에 맞서 싸워온 94명의 목소리,
그 3년 8개월의 기록
이 책에 등장하는 후쿠시마 주민의 대부분이 이 ‘생업 소송’의 원고다. 변호단 사무국장인 미나기 이즈타로 씨는 법정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우리가 맛본 고통, 괴로움을 결코 다른 사람들이 경험해선 안 된다. 우리 원고단은 원전 사고로 곤란에 빠졌지만, 일본인들이 그 일로부터 명백한 교훈을 얻어 커다란 진전을 이루었다는 세계적 평가를 받기 바란다”고 말했다. 원고단장 나카지마 타카시 씨는 “우리는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하나의 큰 장애물을 넘고 있다. 오늘날 일본의 민주주의가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검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고향을 버린 것도, 국가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원전’이라는 거대한 불행의 근원에서 벗어나기 위해 줄곧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후쿠시마에 산다》에 등장하는 후쿠시마 주민은 94명이다. 〈신문 아카하타〉에서 현재까지도 연재중인 후쿠시마 주민 인터뷰를 2014년 11월 5일 자 분까지 묶었다. 나이와 직업은 물론 사고 피해의 정도, 피난 상황 등 처지가 다양하고 극복 방식도 제각각이다. 그들 또한 방사능 피해를 두려워하고 “후쿠시마 여자와는 결혼하면 안 된다”는 폭언이나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지에 대한 불안, 타 지역과의 사업 거래 두절과 같은 편견, 대대손손 이어 온 가업의 몰락, 불합리한 배상 문제 등 구체적인 고난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원전은 없어져야 한다”는 인식은 모두 같으며 나름의 방식으로 있는 힘껏 목소리를 내고 있다.
피난소, 친척집 등을 전전하며 친구들과 헤어진 여고생 요시노 씨는 라디오방송 진행자가 되어 후쿠시마의 현실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이 꿈이다. 시설 이용자들이 해일에 휩쓸리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한 물리치료사 사토 씨는 후쿠시마를 떠나지 않고 재활센터에서 일한다. 농부 사사키 씨는 수확한 채소를 피난민들이 사는 가설 주택에 공급하고 있다. 오부치 씨는 방사능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알리기 위해 ‘원전재해정보센터’를 열었다.
매주 열리는 ‘후쿠시마 금요행동’에 참가해 원전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 원전을 대체할 태양열 발전 설치에 몰두하는 사람들, 증언록과 가이드북, 노래와 사진, 그림으로 후쿠시마의 실상을 알리는 예술가, 피난소 옆에 텃밭을 만들고 방사능 수치를 계측하며 시험 재배에 힘쓰는 농민, 가설주택에서조차 취미를 만들고 이웃을 격려하는 노인, 오히려 후쿠시마로 들어와 피난민을 돕는 의사, 변호사 등 차분하지만 단호한 등장인물들은 “후쿠시마야말로 ‘원전 제로’의 신호를 발신할 수 있는 곳이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원전만 없었어도….”
‘후쿠시마 발’ 외침을 들어야 하는 이유
사고 5년이 되어가는 현재에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수습되지 않았을 뿐더러 피해 구제의 전망마저 불투명하다. 사고 원인의 해명은커녕 아베 정부는 ‘특정비밀보호법’ 제정으로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을 통제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후쿠시마와 주민들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의문의 답을 끊임없이 찾고 있다. 그리고 후쿠시마에 원전이 들어설 때 왜 적극적으로 반대운동에 나서지 않았는지를 후회하고 곱씹는다.
이 ‘후쿠시마 발’ 외침을 우리가 들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후쿠시마 주민이 직접 말한 ‘충격 르포’나 ‘감동 실화’이기 이전에 ‘국가의 책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절대 안전하다”던 일본의 원전 안전 신화가 이미 깨졌고 세계적으로 원전을 줄이는 추세임에도 우리 정부는 아랑곳없이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심지어 후쿠시마에서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불과 6개월 후인 2012년 9월에 경북 영덕군을 원전 건설 예정지로 지정 고시했고, 이를 둘러싼 반대 주민과의 갈등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헌법이 규정하는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위해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책무를,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국민이 목청껏 일깨워야 한다는 현실은 뼈아프다. 하지만 후쿠시마 주민들이 슬픔, 분노, 고통을 딛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은 피해자들의 연대와 저항이 얼마나 당연한 인간의 권리인지도 느끼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