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HOW PROUST CAN CHANGE YOUR LIFE.
알랭 드 보통 지음 / 지주형 역/ 생각의 나무

가루약을 쉽게 먹기 위한 얇은 먹는 비닐이 있다. 아 이름이...
약가루가 목구멍에 걸려 사레들어서 먹던 약 다 토해내고, 오히려 눈물 쏙 빠지게 고생하지 않게 해주는 그 비닐 말이다.
어려서 약 먹을 때마다 그 흰 것에 싸서 꿀꺼덕 했는데.
알랭 드 보통이 쓴 프루스트 책은 내게 이 가루약 먹는 비닐 같은 책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소설을 쓴 작가가 쓴 책이어서 그런 느낌을 더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비좁은 책장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먼지만 쌓여 가고 있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완네 집 쪽으로)를
삼키게 해줄 지도 모르는...
작년 삼순이드라마에서 마들렌을 홍차에 찍어먹으면서, 이 책을 언급 했을 때도, 책을 꺼내 보기는 했으나,
일백 페이지쯤 넘긴 후에 결국 던져 버린 책.
한 페이지 내내 마침표가 없이, 기나긴 이어짐으로 날 숨넘어가게 하던 책 말이다.
미술 쪽엔 영 젬병이지만, 고흐의 작품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저 사람에게 광기가 없었다면, 저런 작품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하는...
어디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정신분석을 안받으려고 한다고. 분석 받고 치료를 받으면, 자신들의 삶이 편해지기는 하지만,
창조성도 같이 없어져서, 더 이상 예술 활동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한다고. 그렇다면, 창조성과 광기가 같다는 말일까?
자, 프루스트를 살짝 들여다보기로 하자.
“나는 그녀에게는 언제나 4살짜리였다”
유명하고, 실력 있는 의사 아버지와 유태인 엄마의 부잣집 장남으로 태어난 프루스트는 34살까지, 자신의 엄마가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았다고 한다.
엄마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키워진 아들. 이 엄마는 아들의 연인처럼, 평생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아들을 독립시키지 못한 엄마였다.
그래서일까. 프루스트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이성보다는 동성에 관심을 더 보였다고 한다. 특히 꽃미남의 총각들에게.
비록 동성도. 이성도 이루어진 사랑 없이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마음에 억압되어 있는 것이 많으면, 그것이 몸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몸으로 나타나면 히스테리. 생각으로 나타나면 강박이 되는 거라고 한다.
프루스트도 늘 천식과 민감한 피부 때문에 외출도 자유롭지 못했고, 언제나 한기를 느껴서, 한여름에도 코트를 입고 외출할 정도였다고 하니. 자신의 침대를 사랑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자위에 강박적으로 몰두하면서 지냈단다.
이렇게 병을 달고 살고, 소화기관 안 좋으니, 극도로 민감해서, 이웃집의 피아노소리에도 미칠 지경이었단다. 한마디로 움직이는 종합병원수준이랄까.
“그들이 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프루스트가 모든 만남에서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이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라고.
늘 타인의 모습에 자신을 맞추면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타인의 친절함을 거짓으로 보고, 책은 거짓된 상냥함이 없다고 말한 사람이다.
흔히 우리는 자아존중감 부족한 사람이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예민하다고 말한다.
자아존중감은 6,7세경에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는 자신의 의미 있는 사람들의 반응으로부터 생긴다고 한다.
34살이 지나도, 자신의 엄마에게 오줌 줄기에 대한 것까지 일일이 보고하고, 잠자러 가면서, 자신의 엄마에게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쪽지로 남기는
이런 사람에게 자아존중감이 생기기는 힘들었을 것 같기는 하다.
지금 주변에 있다면, 심하게 염려스럽고.. 못. 난. 놈.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왜 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훌륭한 책이라는 거지?
하나는 그의 탁월한 관찰력과 통찰력이란다. 그리고 이 책은 프루스트가 자신의 몸과 마음의 고통을 대작이라는 결과물로 만들어내서 더 위대하다고.
사회적 통념을 벗어난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묘사해낸, 때론 한 문장이 한 페이지 되기도 하지만, 그의 섬세함의 정수를 보여주는 책이란다.
그의 사물을 보는 관점, 또한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거라고. 우리가 삶에 불만을 가지는 이유는 삶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우리가 삶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샤르댕이라는 화가가 우리 주변에 있는 일상을 그린 것들이(자화상, 아내의 초상, 정물) 훌륭한 작품이 되듯이.
그리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나오는 그 마들렌이 특별한 이유는 마들렌을 홍차에 찍어서 먹는 순간 그에게 잊혀졌던 유년의 기억을 불러일으켜
긴 소설을 시작할 수 있게 한 사물을 대하는 그의 눈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프루스트표 마들렌의 이야기를 보니, 어느 분석학자가 ‘신기원적 시간’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예수의 탄생이 B.C와 A.D를 나누는 시간이듯이.
개인의 삶에도 그의 삶을 다르게 만드는 그런 사건이 일어난 시간이 있다고. 커다란 상실이나. 이별 뭐 그런 외상이 될만한 것들 말이다.
내 신기원적 시간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 시간은 늦은 6살이거나 이른 7살 무렵이 아닐까 싶다.
내가 살짝 비틀어서 봤지만, 알랭 드 보통이 이 책을 쓴 이유는 우리의 삶을 바꾸는데 프루스트와 잃어버린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면 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진 책이다. 그래서 책의 구성 역시. 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법, 자신을 위한 독서법..기타 등등.
알랭드 보통은 프루스트의 정수는 최고의 감수성과 집중력이며, 프루스트에 대한 참된 경의란 그의 눈을 통해서 우리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지,
우리의 눈을 통해서 그의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란다. 이 말은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일리에 콩브레를 가란 말이 아니고,
그가 가졌던 사물을 보는 눈으로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땅을 보는 거란다.
독서가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이 우리를 정신적 삶으로 인도할 수는 있지만, 정신적인 삶을 구성하지는 않는 것처럼.
저 책장에 먼지와 뒹굴고 있는 프루스트의 저 책을 읽을 날이 올까?
|
첫댓글 음악은 산책방 목화샘 것..슬쩍.. 아시죠?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2페이지로 마감한 어느 싸나이도 있슴다....,'HOW PROUST CAN CHANGE YOUR LIFE.'는 끝까지 읽을 수 있을라나?
녜. 책 별로 두껍지 않고. 잘 넘어가던데요.
으~~~머리야... 요즘 감기 독하네요 -.-;; 4월은 제 개인적으로도 정말 잔인한 달입니다.. 음..항상 무언가에 허덕이는 나는 자아존중감이 많이 부족하다 싶습니다 ^^;;
숨은 샘의 방대한 독서량에 그저 탄복할 뿐...심리학과 관련지며 설명까지 곁들여 주시니 무조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