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좋다 / 강용환
2박 3일간의 들뜬 여정들
짐을 풀기 바쁘다
얼씨구
좋다
지화자
좋다
주고받는 잔 속에는
시와 흥을 채우며 깊어가건만
가로등은 달빛에 취해
사리분별을 잃고 잠이 들었다
나와 같은
밤손님마저
어둡다할 지경인데
이미 깊숙이 꼼처넣은 주머니 속
눈치채지도 못했는지
흥에 취한 사람들은 불*만이 없다
오늘도
저 달빛에 유영하는 우리시가
물이 좋은 까닭이다
*불편함과 전등.
생명 자연 시 (5행시)
생/ 생소한 것처럼 티낼 것 없다
명/ 명석하다고 영감까지 얻는 것은 아니거늘
자/ 자신을 돌아보고 사물과 교감하다 보면
연/ 연분이 닿는 저 자연이 말 꽃피워 줄 터이니
시/ 시상이 세상에 뿌려질 놀라움 아니겠는가
시작노트
우리시자연학교 백일장은 자정을 남겨두고 선장의 지휘아래 낚시 배를 띄웠다.
하루 동안 월척을 낚아야 하는 경기가 시작된 것이다.
털이 듬성듬성하고 굵은 팔뚝을 가진 태공은 이미 몇 마리의 월척을 양식하였는지 못이 박힌 손바닥으로 이미 팔뚝을 걷어붙이고 있다.
본인도 양식이 없는 바는 아니어서 서너 마리의 물고기를 양식하고 있었지만 양식은 내던져 버리고 자연산으로 승부를 걸었다.
하지만 물고기라는 것이 잡고 싶다고 잡혀지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종류를 선택한 물고기를 잡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을 태공이라면 잘 알 것이다. 게다가 나는 낚시에는 초자이기에 더욱 어려웠다.
도착지에 어선이 다다른 것은 자정이 막 지날 무렵인 듯하다. 헌데, 도착하자마자 어선의 등은 점멸하고 말았다.
나의 실수였다.
어선이 도착하기 전에 떡밥을 준비해야 했는데 짙은 어둠에 떡밥의 봉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불펜에 달린 전지스위치를 돌려 불을 밝혔다.
순간 성격이 괴팍한 선장님은 벼락같은 고성을 질렀다.
-뭐하는 짓이야?
-너무 어두워서 떡밥을 찾으려고 불을 켰습니다.
스윽 쳐다보는 눈빛, 예전에 우이시낭송회 뒤풀이로 내게 일격을 가한 그 눈빛의 주인공이었다.
불을 켜는 것은 낚시하는 태공에게 피해를 주니 조심하라는 일침이었으리라. 아니면 다른 태공이 대어를 낚는 방법을 눈치챌까 역정을 내는 것일까?
눈빛을 보아하니 거기까지의 도량은 아닌 듯 보였지만. 태공들이 이런 시상을 눈치 챈다면 아마 나와 같은 밤손님이 득시글거릴 것이 빤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괴팍한 선장님은 나와 만날 때마다 화두를 냅다 던져주었지만, 이번 고성의 화두는 내가 이해하지 못할 아리송한 화두였다.
헌데 이 무슨 일인가. 나에게 번쩍하고 대단히 큰 입질이 왔다.
화두를 생각하다 짜릿한 손맛을 얻은 것이다.
우리 속담에 재수 없는 태공은 뒤로 넘어져도 낚싯바늘에 코가 꿰인다했지만, 나는 뒤로 놀라 자빠져도 입에 물고기가 물린 것이다.
선장의 고함에 놀라 고기가 입을 딱 벌림과 동시에, 나도 놀라 던져진 낚싯바늘이 보기 좋게 물고기의 턱이 걸린 것이다.
일타 양피다. 아니 이것은 일타 완빵이다.
낚시 줄이 탱탱하다. 아니 방방하다. 둘 다 표절인가? 그러면 짱짱하다 해야겠다.
나는 낚싯대를 휘청거리게 했던 물고기의 힘이 빠지기가 무섭게 낚싯대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거대한 물고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낚싯대 5미터와 나의키 3미터까지 합하여 8미터를 수직으로 세우고도 물고기의 꼬리는 보이지 않았다. 실로 거짓말 같은 사실이었다.
하여 나는 뒤꿈치를 80센티 띄우고서야 겨우 물고기의 꼬리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꼬리로부터 다시 물고기의 몸통(5행시의 희미한 실체)이 들어나는 일이 벌어졌으니 실로 믿기지 않는 이상한 일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몸통이 아니라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가 허물을 벗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바다 속의 또하나의 눈빛을 발견한 나는 무척 놀랐다. 아 그놈은 수컷의 마누라(5행시 본체)였다. 암놈은 수컷을 살리고자 거죽을 물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수컷의 허물을 입에 물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암컷의 눈빛을 보았기에 불쌍하여 놓아 줄 수밖에 없었다.
뭐 물론, 냉정하게 잡았다 해도 내게는 잡은 물고기의 본을 뜰 전지도 없었다.
하여 성과 없는 물고기 부부를 생이별 시키느니 물고기를 살려주는 것이 도리라 생각했기에 암놈에게 선행을 베풀었다.
그러나 나는 불만이 있다. 선장님은 본을 뜰 전지를 준비해야 했다.
나는 물고기의 본을 뜰 전지만 있었다면 필시 냉정하게 대어를 낚아 올리는 행운을 얻었을 것이니 말이다.
내게는 A4용지가 너무 작았고 880센티의 전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행복했다. 물고기 부부의 영혼이 내 품에 안겼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그 물고기를 틀림없는 월척이라 생각한다.
아울러 선장님에게 강력히 주장한다.
우리시 기자님에게는 의자를 주어야하고 용환이에게는 880센티 이상의 전지를 주어야 한다고 말이다.
뒤늦게 나원참태공님은 물고기 낚는 법을 전수한다며 선상에 누워 별을 바라보라 내게 권했지만, 나는 관심이 없었다.
이미 큰 입질을 본 나에게 별을 보라는 권유는 귀를 막아놓는 잡음이었다.
더구나 달이 밝은 탓에 별은 가깝게 보이지 않았기에, 내가 따라 누울 이유도 없었다.
또한 밝은 달빛에 별을 보자는 나원참태공님의 전수는 나를 무시하는 처사다.
나는 유년기에 등잔불 밑에서 공부하며 묘의 봉분을 베고 17년 동안 별을 보았기에 나원참태공님의 길바닥에 누워 별 보는 전수는 턱도 없는 비법이다.
혹시 모를까? 나원참태공님이 저와 함께 백두산이나 금강산을 베고 별을 본다면 조금 생각해 볼 수도…….
아무튼 홍해리 회장님의 이번 화두는 보기 드문 화두였다. 다음 화두는 어떤 화두일까 무척 기대된다.
나는 항상 회장님과 우리시 시인님들의 시낭주머니를 노리고 있다.
나는야 밤손님이니 행여 시상을 훔친다하여 도둑놈이라는 하지마시길…….
첫댓글 흠! 아직 창작실 스승님들 소굴로 들어가 맞짱하기는 이른가 보군요. 장풍을 맞고 보니 허리가 몹시 쑤십니다. 수정합니다. 1연: 2박 3일간의 들뜬 여정들 / 짐풀기 바쁘게 건배를 한다/ 3연: 주고받는 잔속에는/ 시와 흥을 채우며 깊어가는 밤 / 이젠 완벽의 글을 게시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군님..... ㅎㅎㅎ 재미있습니다. 월척을 하셨는데 그걸 몰라보다니.... ㅉㅉㅉ, 나원참태공! 이름이 맘에 듭니다..... 나원참..... 5행시가 참 좋습니다.
나병춘시인님 반갑고 즐거웠습니다. 또한 나원참태공님의 뒤늦은 시상에 이렇게 입담을 주시니 아주 흡족한 여름학교 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불편한 점도 많았었지요? 헌데 태공님 천사님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낭만적인 시마당을 펼쳐주시니 행사가 순조로웠던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