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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기피되는 시대에 지적 갈증을 해소해주는 책이다.”
-최인철(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정신적 성장, 관계성의 회복, 도덕의 재발견
내 인생의 새로운 기쁨과 목적을 찾아주는 이야기
『사람을 안다는 것』은 세계적 베스트셀러 『두 번째 산』과 『인간의 품격』, 그리고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꾸준하게 공동체와 인간성의 회복, 연결과 유대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해온 작가 데이비드 브룩스의 새로운 발견을 담은 책이다. 사람을 만날 때 지극히 소극적이고 방어적이었던 브룩스는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서기로 마음먹으면서, 누군가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리고 상처를 받을지언정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껴보기로 결심한다. 이 책은 브룩스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 이후 4년간 ‘사람을 아는 일’이라는 한 가제 주제를 깊숙이 파고든 결과의 기록이다. 심리학ㆍ문학ㆍ철학ㆍ신경과학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인용과 연구 사례 등이 한 가지 주제를 향해 밀도 있게 펼쳐진다.
“어릴 때는 아는 게 많은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나이가 드니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이들을 위한 지침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한다. 『사람을 안다는 것』에 따르면 처음 보는 사람끼리 대화하면서 상대방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경우는 약 20퍼센트밖에 되지 않으며,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더라도 35퍼센트에 그친다.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일수록 서로의 마음을 읽는 정확도가 떨어지고, 그들은 상대방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에 점점 무지해진다. 사실 굳이 수치나 연구를 뒤적이지 않아도 인간관계에 대한 어려움은 모두가 몸소 느끼고 경험했을 것이다. 살면서 고정관념과 편견의 대상이 되는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사람들이 나를 오해한다는 느낌을 받거나 다른 사람에게 투명 인간 취급당하고 있다는 느낀 적이 있는가? 반대로 자신이 타인에게 그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이 책은 그동안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던, 혹은 회피해왔던 나의 인간관계 경험과 그 경험을 만들었던 나의 태도를 돌아보게끔 한다. “한 사람을 알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해본 적이 있는가?” 브룩스가 책 전체를 관통하여 던지는 이 질문은 다른 사람과 관계 맺고 살아가는 일에 관해 한층 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누군가에게 완전히 이해받는다는 느낌만큼 만족스러운 것은 드물다.”
단절의 시대, 관계의 기술이 필요한 이유
그렇다면 왜 ‘사람을 알아야’ 할까. 첫째는 다분히 실용적 이유다. 다른 사람을 제대로 알아봐야만 인생에서 중요하고 큰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결혼과 같은 중요한 인생 과제는 물론이고 함께 일하는 사람을 대할 때도 꼭 필요한 덕목이다. 직장인들에게 이직의 사유를 물으면 많은 이들이 회사 내의 인간관계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들은 상사와 조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고, 즉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제대로 보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에 회사를 떠났다. 사람을 알아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이 경험 자체가 아주 강렬한 정신적 기쁨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완전히 이해받는다는 느낌만큼 만족스러운 것은 드물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비치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면, 사람은 자기 안의 아름다움과 힘을 온전히 알아보지 못한다. 누군가의 잠재력을 알아볼 때, 그 사람도 비로소 자기 안의 잠재력을 알아본다.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들이 자기를 지켜보고 자기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평온과 안전을 느낀다.
나는 종종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이 자기를 바라본다고 느낀 때가 언제인지 또 어떻게 느꼈는지 묻는다. 그러면 사람들은 눈을 반짝이면서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순간을 이야기한다. 자기도 알지 못했던 어떤 재능을 다른 사람이 알아봐주던 때를, 극도로 지친 자신에게 절박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챈 사람이 곧바로 손을 내밀어서 올바른 방법으로 무거운 짐을 덜어주던 때를. (22쪽)
셋째는 국가적 문제의 해결이다. 브룩스는 외로운 개인이 넘쳐나는 이 시대의 사회적ㆍ관계적 위기는 본질적으로 도덕적 차원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우리는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서로를 친절하고 관대하게 대하는 기술과 성향을 길러내는 데 실패했다. 일상의 작은 만남 속에서 서로를 잘 대하지 못하는 행동이 쌓이면서 사회적 붕괴가 초래된 것이다. 정치적 스펙트럼 양극단에 놓인 사람들은 서로를 혐오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청년은 기성세대가 자신을 오해한다고 느끼고, 특권층은 다른 사회 구성원들을 의식하지 않는다. 이는 문명의 실패다. 우리는 도덕적·사회적 기술을 가르치는 방법을 재발견해야 한다. 이러한 위기는 브룩스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이 거대한 균열을 복구하려면, 작은 문제를 잘 처리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우정을 쌓거나 공동체를 만드는 데에는 사소하고도 구체적인 사회적 행동이 필요하다. 관계를 망치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 본인의 취약한 부분을 적절한 시점에 드러내는 것,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정중하게 대화를 끝내는 것, 용서를 구하거나 용서하는 것,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 고통받는 사람 곁에 있는 것, 모두가 환대받는다고 느끼는 모임을 만드는 것,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 (20쪽)
“다른 사람을 깊이 아는 것 자체가 도덕적 행위다.”
사소한 행위의 누적으로 도덕성을 회복하다
브룩스는 이 책을 통해 도덕성의 의미를 새롭게 구축한다. 철학자 아이리스 머독은 “도덕성이란 추상적인 보편 원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도덕적 행위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정의롭고 사랑스러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고 비도덕적 행위란 다른 사람을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심은 사소한 행위의 누적으로 점차 위대해진다. 직장에서 신입사원을 반갑게 맞아주는 일, 친구의 목소리에서 불안을 눈치 채고 괜찮은지 물어보는 일 등등…. 도덕성은 인생의 복잡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경이로움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고, 위협을 탐색하는 사람은 위험을 발견하게 마련이다. 따듯한 기운을 뿌리는 사람은 자기가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아름답고 뜨거운 측면을 이끌어내지만, 격식만 차리는 사람은 같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 사람의 딱딱한 측면밖에 보지 못한다. 정신과 의사 이언 맥길크리스트는 “관심은 도덕적 행동이다. 그것은 사물이 지닌 한 측면을 창조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게 만든다.”라고 썼다. 삶의 질은 우리가 세상에 투사하는 관심의 질에 따라서 상당히 달라진다. (52쪽)
“데이비드 브룩스는 철학이 가득한 실용서, 실용이 가득한 철학서를 완성했다.”
철학적 성찰과 실용적 솔루션을 동시에 제공하는 데이비드 브룩스의 역작
브룩스의 전작들과 차별화되는 이 책의 백미는 ‘사람을 아는 것’에 관한 방법들이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된다는 점에 있다. 관계에 관한 수많은 자료들과 인터뷰 등을 통해 브룩스는 타인과 관계 맺는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낸다. 상대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정치적 성향과 의견이 다른 사람과는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누군가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려면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지…. 이 책의 궁극적 목적은 다른 사람을 올바르게 바라봄으로써, 그 사람이 자신을 소중한 존재라고 느끼게 만드는 기술을 능숙하게 구사하도록 돕는 것이다. 브룩스의 깊은 통찰과 신중한 접근에서 나온 방법들은 어떤 기술을 익혀서 숙달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다. 이 책은 다른 사람을 대할 때의 태도를 바꿔놓을 것이며, 다른 사람과 중요한 대화를 나누는 방식을 모두 바꿔놓을 것이다. 타인과 함께하는 방식이 지금보다 나아진다면, 당신은 분명 인생의 특별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15년 전쯤 어느 날이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홈구장에서 경기가 있었는데, 타자의 배트가 부서지면서 손잡이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헬리콥터 날개처럼 뱅글뱅글 돌았고, 선수 대기석을 넘어 관중석에 앉은 내 발 앞에 떨어졌다. 나는 손을 뻗어 배트를 잡았다. 관전 도중에 배트를 줍다니, 파울 타구보다 천 배는 드문 일이었다!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면서 전리품을 흔들고 주변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잠깐이나마 유명 인사가 된 기쁨을 만끽해야 옳았다. 그랬어야 했건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모두가 쳐다보는데도 나는 그저 배트를 발밑에 내려두고는 별다른 표정도 없이 앞만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나 자신에게 고함을 지르고 싶다.“좋으면 좋다는 티를 좀 내!”
p.16~17
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상처받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사람들과 부대끼는 쪽을 선택했으며, 내 감정을 더 많이 공식적으로 표현했다. 나는 사람들이 이혼에 대해서, 배우자가 죽고 난 뒤 느끼는 슬픔에 대해서, 아이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걱정에 대해서 기꺼이 속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내면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가슴 깊은 곳을 찌르는 이건 뭐지? 아, 이게 바로 감정이구나!’ 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중략) 인생의 목표도 바뀌었다. 어릴 때는 아는 게 많은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나이가 드니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현명한 사람은 정보를 소유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연민 어린 마음으로 이해한다. 현명한 사람이야말로 인생이 무엇인지 안다.
p.19
마음을 여는 일은 충만하고 친절하고 현명한 인간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사회적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는 인간관계, 공동체, 우정, 사회적 연결 등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만 이 단어들은 추상적이다. 실질적 행위, 즉 우정을 쌓거나 공동체를 만드는 데에는 사소하고도 구체적인 사회적 행동이 필요하다. 그런 사회적 행동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관계를 망치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 본인의 취약한 부분을 적절한 시점에 드러내는 것,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정중하게 대화를 끝내는 것, 용서를 구하거나 용서하는 것,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 고통받는 사람 곁에 있는 것, 모두가 환대받는다고 느끼는 모임을 만드는 것,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
p.20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으로 들어갈 때, 어떤 사람은 누구라도 안아줄 것 같은 따뜻한 표정을 하고, 어떤 사람은 마음의 문을 냉담하게 닫아버린 표정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너그럽고 애정이 담긴 눈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어떤 사람은 격식을 차리지만 차가운 시선으로 일관한다. 그 시선, 그 첫 번째 눈길은 세상을 향한 그 사람의 태도를 드러낸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경이로움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고, 위협을 탐색하는 사람은 위험을 발견하게 마련이다. 자기 주변에 따뜻한 기운을 뿌리는 사람은 자기가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아름답고 뜨거운 측면을 이끌어내지만, 격식만 차리는 사람은 같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 사람의 딱딱하고 냉담한 측면밖에 보지 못한다. 정신과 의사인 이언 맥길크리스트는 “관심은 도덕적인 행동이다. 그것은 사물이 지닌 어떤 측면을 창조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게 만든다.”라고 썼다. 삶의 질은 우리가 세상에 투사하는 관심의 질에 따라서 상당히 달라진다.
p.51~52
간단히 말해, 나를 포함한 몇 세대에 걸친 사람들은 타인의 깊이와 존엄함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기본적인 도덕적 기술이 사라지면서 단절과 고립이 나타났고 잔인함이 허용되는 문화가 나타났다. 일상의 작은 만남 속에서 서로를 잘 대하지 못하는 행동이 쌓이면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끔찍한 사회적 붕괴가 초래되었다고 믿는다. 이는 문명의 거대한 실패다. 우리는 도덕적·사회적 기술을 가르치는 방법을 재발견해야 한다. 이러한 위기는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p.157
어려운 대화를 어렵지 않게 할 방법은 없다. 자기와는 인생 경험이 전혀 다른 사람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흑인으로 사는 것, 여자로 사는 것, Z세대로 사는 것,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살아가는 것, 노동자 계급 남자로 사는 것, 이민자로 사는 것, 그리고 그 밖에도 수많은 인생 경험을 겪으며 살아가는 것이 어떤지 나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개인에게는 신비로운 깊이가 있다. 서로 다른 문화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므로, 낯선 문화 앞에서는 존중하는 마음과 경외감을 품어야 한다. 그럼에도 타인을 바라보고 타인의 말을 듣는 능력을 높이는 기술을 연마하는 데 힘쓰면 타인의 관점을 얼마든지 알 수 있음을 나는 확인했다. 불신을 신뢰로 되돌려 서로 존중하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도 확인했다.
p.176~177
나는 인간성에 대해서 예전보다 훨씬 많이 안다. 성격적 특성에 대해서 알고, 현재 수행하는 삶의 과제에 따라, 고통받는 순간에 따라 한 사람의 존재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도 안다. 또 우울한 사람과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알고, 다른 문화권에 속한 사람의 관점이 다르다는 것도 안다. 이런 지식 덕분에 나는 인간 일반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전문성이 있으며, 낯선 사람에게 다가갈 때나 친구와 나란히 걸어갈 때 예전보다 자신감이 넘친다. 대화할 때 상대방에게서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도 안다. 상대방에게 중대한 질문을 던지는 일을 예전보다 더 잘하고, 대화의 역학 관계를 훨씬 잘 감지하며, 나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과 대화할 때도 대담해졌다. 상대방의 취약성이 내 앞에서 고스란히 노출된다고 해도 이제는 그 자리에 얼어붙는 따위의 바보짓은 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나를 신뢰할 때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줄 알게 되었다.
p.376~377
우리는 스스로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복잡한 생각, 더 깊고 더 흥미로우며 더 미묘하고 더 고차원적인 생각을 한다고 인식한다. 이 현상을 증명하기 위해서 니컬러스 에플리는 경영대학원생에게 창업 동기를 물었다. 응답자들이 공통으로 내놓은 대답은 가치 있는 일에 관심이 있어서 였다. 뒤이어 그들에게 다른 학생들이 창업하려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대부분이 돈을 벌기 위해서 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자기 외의 사람들은 얕고 저차원적인 문제에 사로잡혀 있다고 바라보고 있었다.
수많은 뛰어난 작가나 사상가도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전혀 알지 못해요.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또 그들이 하는 경험을 함께 하는 것.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랍니다.
메리 파이퍼
지미 도렐은 고가도로 아래에 노숙자를 위한 교회를 짓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하며 사는 이다. 그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생명체로 바라본다. 유순하고 미천하며 소외되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 살아 있는 모든 사람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보내는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당신은 무신론자일 수도 있고 불가지론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존중과 경건함,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이 무한한 존엄성을 지닌다는 인식은 사람들을 제대로 잘 바라보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신이라는 존재와 관련된 발상 전체가 우스꽝스럽다고 느낄지 모른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각자의 영혼을 지녔다고 생각한다면, 모두가 자기 내면에 초월적인 불꽃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힘이나 지성, 재산에서는 동등하지 않더라도 영혼 차원에서는 모두가 동등하다. 만약 당신이 마주치는 사람 하나하나를 모두 소중한 영혼으로서 바라본다면, 당신은 그들을 소중하게 대하게 될 것이다.
일루미네이터가 되는 것, 즉 다른 사람을 온전한 모습 그대로 바라보는 일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일종의 기량이고, 구체적인 기술의 종합이며,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다. 한국 사람은 이를 '눈치'라고 부른다. 독일 사람은 헤르젠스빌둥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는 다른 사람의 온전한 인간성을 바라보도록 마음을 훈련한다는 뜻이다. 마음의 기술은 누구나 익힐 수 있다. 이전과는 다른 의식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면 누구나 일루미네이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메리 파이퍼 심리 치료사는 오랜 세월 서로에게 만성적으로 분노하는 모녀를 상담하고 있었다. 한번은 상담 도중에 모녀가 싸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분노와 비난이 난무하는 언어 폭력을 주고받았다. 그런 다음에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먼저 침묵을 깼다.
'' '왜 굳이 자기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
그 말을 듣고 딸은 깜짝 놀랐다. 어쩌다가 어머니와 그런 상황까지 내몰렸는지 되돌아보던 자신의 생각과 똑같기 때문이다. 그 순간, 두 사람은 서로를 공격하던 무기를 내려놓고는 예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조명을 비추는 순간이었다. 심리 치료사는 어머니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앞으로는 저를 빼고 두 분께서 이 문제를 놓고 얘기를 나누면 돼요.''
누군가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사소한 이야기나 우연한 동행은 커다란 의미가 있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그 의미를 크게 인정하지 않는다. 때로는 어떤 사람에게 인생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해서 대답을 듣는 것보다 그 사람이 식당에서 웨이터를 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당신이 누군가를 아무리 잘 안다고 하더라도, 사소한 것들을 화제로 정기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경험을 쌓지 않고서는 크고 중요한 문제를 그 사람과 나누기 어렵다.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어떤 부부가 있다. 이 부부는 친구를 오래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식사를 마친 뒤에도 계속 식탁에 남아서 함께하거나 풀장 옆에 놓인 긴 의자에 누워서 빈둥빈둥 함께하면서, 일들이 저절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고 관계가 저절로 형성되도록 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에게서 오래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은 훌륭한 재능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커다란 질문들을 꺼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사생활을 침범할까 봐, 대화가 무거워질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마음속으로는 모두 깊은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 이런 마음은 일반적으로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간절하다.
사람들은 자기 존재와 관련된 질문을 기꺼이 받는 것이다. 자기를 드러내려는 인간적인 욕구는 강력하다. 사람은 돈을 받는 것보다 자기 정보를 공유하는 데서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 사람은 자기 경험, 그 가운데서도 특히 부정적인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충돌을 강하게 느낀다.
듣고 듣고 듣고 또 들어라. 당신이 이렇게만 하면 사람들은 기꺼이 자기 말을 할 것이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평생 그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에게도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한 명 한 명이 모두 수수께끼다. 수많은 수수께끼로 둘러싸여 있을 때는 질문하며 살아가는 것이 최고다.
행동심리학자 니컬러스 에플리는 사회적 연결 이야말로 행복,성공,건강, 인생의 수많은 이점을 만드는 최고의 원천임을 알았다. 그런데 에플리는 전철에서 문득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충격을 받았다. 누군가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휴대전화만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들은 자기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일을 하지 않을까?
에플리는 사람들이 출근하고 있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도록 유도 실험을 했다. 통근길이 어땠는지 물었다. 긍정적인 대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외향적인 사람뿐만 아니라 내향적인 사람조차도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보내는 통근길이 휴대전화에 머리를 처박고 보내는 통근길보다 훨씬 재미있더라고 대답한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야기를 더 많이 하지 않을까? 연구를 계속 진행해서 그 수수께끼의 대답을 찾아냈다. 대화가 얼마나 즐거울지 예측하지 못하기에 대화를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담하건대,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옆구리를 가볍게 슬쩍 한번 찌르기만 해도 그는 자기가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술술 풀어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 문화와 예절을 만들었다. 이를 바로잡는 방법은 단순하고 쉬우며 재미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하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