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카페 쥔장님께서 20일에 한국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박사연구생으로 연구생공부하러 한국으로 떠납니다.
쥔장님의 건축공학박사로 성공하기를 미리 기도합니다.
한세기 하고도 이십여년을 지켜온 학문의 전당.
정확히 29년전에 입학을 했으니 강산이 3번 변할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가장 변하지 않은 곳은 정문이다.
학교 안에는 너무 많은 건물이 들어서서 이제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을 듯하다.
우리가 입학하던 78년에 비교해서 최소한 5배 이상 덩치가 커진듯하다.
정문을 지나면 운동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연세공학원이라는 시설이 자리잡고 있다.
삼성, LG같은 기업의 연구부문 일부가 건물에 입주해서 산학협동연구가 활발하다.

백양로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무악산.
무악산 자락으로도 건물이 계속 들어서서 얼마 후면 산도 보이지 않을 듯.

공대 건물 좌측에 있는 여자바위(??)
저 움푹 패인 곳에 등을 붙이고 앉아 있으면 무척 편안하다.
봄날에 저기 앉아서 눈을 감고 졸고 있노라면
무릉도원에도 가고 도솔천을 넘어서 하늘나라에도 가는 기분이었다.
가끔은 지나가는 여학생들을 품평하기도 했었다.
그 시절엔 여학생 비율이 10% 정도 밖에 안되었다.
특히 공대 동기생 중엔 여학생이 5명 뿐이라 인기가 무척 좋았다.
지금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니 그 인기가 자기 미모에서 비롯된 줄로 착각을 하더군.

공대 건물 오른 쪽에는 남자바위(???).
지금 생각하니 이 건물의 좌우에 배치한 바위들은 풍수지리에 의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전면이 둥그렇게 된 건물이 백주년기념관. 5월 12일에 행사가 열릴 곳이다.
뒤로 세브란스 병원의 신관이 보인다.

연세대학의 상징물인 독수리 상.
왜 연세대가 독수리고 고려대가 호랑인지?
독수리처럼 창공으로 비상하는 기개를 가지라고 함일런가?

3학년때 준공이 된 중앙도서관.
도서관 앞에 용재 백낙준 박사의 동상이 있다.
이 분이 해방 후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내시고 연세대학의 발전을 위한 공로가 크시다.
학교 다닐 때 이 도서관 앞에서 다른 분들과 담화를 나누던 모습을 보곤 했는데 이젠 동상으로 보니 느낌
이 남다르다.
도서관하면 생각나는 것이 많다.
공부 좀 하려면 몇몇 친구들이 자판기 커피를 마시자고 꼬드겨서 자리를 뜨곤 했다.
가끔은 2층 부터 5층까지 한 바퀴를 돌며 친구들을 찾아서 단체로 놀러가기도 했다.
한 20여명을 몰고 어린이대공원에 진출해서 세종대학교 여학생들과 단체미팅도 했었다.
단체행동 중에 있었던 한가지 비리.
일부가 주동이 되어서 공업수학 시험을 보이코트하기로 하고 학생들이 교실로 들어가는 것을 막았는데
범생이 학생 몇몇이 들어가 시험을 보는 바람에 나머지 학생들이 수없이 권총을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하려는데 일부 몰지각한 학생들이 이웃학교 여대생을 도서관 안으로 데리고 와서
야릇한 광경을 연출해 면학분위기를 많이 상하게 했었다.
지금은 대학가에 부는 고시 열풍으로 인해서 자리를 차지하는 일 부터가 쉽지 않은가 보다.

학생회관 지하에 학생식당이 있다.
식권을 사서 밥을 먹는데 가장 비쌌던 것이 400원 하던 오뎅백반.
돈이 없으면 국 국물만 70원에 따로 사서 도시락 밥과 같이 먹었다.
일하는 아주머니들에게 잘 이야기하면 국이나 밥을 따로 퍼주기도 했다.

대강당. 78년 3월 2일 입학식을 한 장소.
대강당에서 매주 채플을 하였다.
단과대학이 돌아가면서 요일별로 예배를 보고 지정된 좌석도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출석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했었던 듯.
들어볼만한 사람들이 온다면 가끔 들어가서 예배도 드리고 공연도 본 기억이 난다.
79년도로 기억되는데 어느 시간에 미국에서 신학교를 다니던 목사지망생 조영남이 왔다.
기타를 메고 가슴엔 하모니카까지 달고 한시간여 공연을 했다.
노래 한 두곡 부르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식으로 진행을 했는데
'학교 밖에서 내 공연을 보려면 2만원짜린데 공짜로 듣는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실망했다.
그 때 인상 때문에 지금까지도 내게는 비호감.

진달래꽃이 만발했다.
그 위에 있는 건물이 전에 도서관이었던 곳.
지금은 아마 음악대학 건물로 쓰이는 듯하다.

교정이 지금 가장 화려한 것은 바로 이 진달래 군락때문이다.
지금도 많이 젊은이들이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연세대학교 본관 앞에 서있는 언더우드 동상.
우리는 공과대학이어서 문과가 있는 이 쪽에 자주 오지 않았다.
졸업하고 더 자주 오는 듯하다.
초로의 아저씨는 이 동상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언더우드는 1882년 미국 북장로교단의 조선 선교사로 임명을 받고 일본을 거쳐 인천으로 입국하였다고
한다. 20대의 젊은이가 복음의 씨앗을 이 땅에 뿌리니 그 열매가 수천만배가 더 열렸다.
첫댓글 한국 오심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학문에 많은 발전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화이팅!!!
학문에서 더욱 큰 성공을 거두기를 바랍니다.축하!
지기님 축하드립니다. 정말로 쉽지 않습니다. 우리 카페의 자랑입니다.
인정세계님-
드립니다..코스모스화원 카페의 자랑이며 경사입니다..

축하합니다...큰 성공을 미리 축하합니다~!
지기님 , 축하드립니다 . 박사연구생공부 잘 하고 오세요 ~
여기서 연세대학교를 훤히 다 보게 되네요. 우리 지기님이 이 좋은 대학에 간다는 말씀이죠
대단하시네요. 다시 한번 
드립니다.
덕분에 지기님이 이제부터 공부하게 될 연세대학교의 이모저모를 둘러밨습니다..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기님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추카 합니다 ...지기님...!
지금부터라도 돈많이 벌어나야겟네.지기님 필업하면 별장설계를 부탁해야지.ㅋㅋ 축하합니다
연세대면 한국서 최고명문대로 알아주는 대학인데 지기님이 박사후로 가신다니 참 경하할만한 일입니다 감축 드립니다 물론 축하주도 빼놓을수 없겠지만 ㅎㅎㅎ
경사스러운 일이네요 축하드립니다.한면으로는 좋은 일이지만 다른 한 면으로는 섭섭함도 잇씀다.박사 공부를 하시면 카페두 자주 돌볼새 없어 지기님글이랑 자주 볼수 업게 되겟네요 ....이전에 농촌에서 중점고중에 입학해서 집을 떠나 백리밖에잇는 시내 학교에 떠날때 외 할아버지 낙누하시며 고중에 가지말고 집에 잇으라 하시던 모습이 떠오름다...아무쪼록 학문을 잘 닦으시고 영광의 꽃따발 안고 귀국하시기 바람다...
첫째로 축하 드려요, 둘째로 서운한 감을 금치 못하겠네요, 셋째로 휘황찬란한 성과를 취득 하시구 돌아오세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얼마나 좋을까~~방학에 연길 올때면 선물 기다리지 않고 지기님을 기다리겟슴다 ㅎㅎㅎㅎ
진심으로 지기님이 연세대박사생이 되신것을 축하합니다. 지기님이 박사생이라는건 진정 우리 코스모스화원카페의 자랑이고 영광입니다.
지기님 한국으로 오신다니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박사 연구 열심이 배우고 좋은 성과 있길 바랍니다. 가끔씩 소주 생각 나면 연락 바랍니다.
축하 합니다 ! ! !
인정세계님 참 부럽네요 이렇게 좋은 학교에서 박사공부를 할수 있다는게.... 축하 드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훌륭한 지기님을 둔 우리도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인정세게님 축하드립니다.
인정세계님. 축하드립니다.
쥔장님 축하드립니다. 저기메 윤동주시비가 있는곳이 있는데 ......
박사 님을 ... 지기로 모신것은 ..코스모스 뿐이리라....!!!! 박수 치메설 .축카 합미다....!!!!
쥔장님!축하드립니다. 한국에서 박사공부 순탄하시기를 미리 바랍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시간나면 우리 카페에 지속적인 관심을 돌려주시기를 바랍니다.